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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새를 몰라서

  • 작성일 2020-08-01
  • 조회수 3,433

[단편소설]



아직 새를 몰라서



고수경




우리 집에는 저어새 한 마리가 산다.
앵무새나 카나리아 같은 새였더라면 귀여워했을지도 모른다. 왜가리나 두루미처럼 커다란 새도 부리는 저렇게 넓적하고 길지 않았다. 크기가 작거나 부리가 짧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얼굴이 검지 않고 눈자위도 뻘겋지 않은, 일반적인 새였더라면.
일반적인 게 뭔데?
아내가 물은 적이 있다. 그런 건 잘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단지 저어새가 우리 집에 있는 게 불편했다. 그것도 화장실 욕조에. 아내는 내가 나쁜 버릇을 고친 게 새 덕분이라고 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변기에 한참 앉아 있는 것, 샤워를 사십 분 넘게 하는 것 모두 아내가 싫어하던 버릇이었다. 이주일 전까지는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원하는 만큼 혼자 있을 수 있었다. 이제는 할 일이 끝나면 서둘러 나와서 안방이든 거실이든 부엌이든 어디론가 가야 했다. 고작 새 때문에. 욕조에 달린 샤워 커튼을 치고 옷을 벗은 뒤 샤워기를 최대한 바깥으로 돌려 틀었다. 수증기가 차면 화장실의 물비린내가 더 짙어졌다. 코가 먹먹해지다 못해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반투명 커튼 너머에서 새가 끼리리리릭 울었다. 정강이가 자꾸 욕조에 부딪혔고 조급하게 샤워를 마쳤다.
물기를 덜 닦고 나와 몸을 으슬으슬 떨었다. 삼월 말이었다. 안방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금이는 화장실에 있어요.
드라이기를 끄고 거실로 나가자 낯선 사람 두 명이 아내를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에 기관 사람들이 올 거야. 아내의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새와 욕조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고 다른 사람은 차트에 뭔가를 표시하면서 적었다. 새의 날갯죽지도 들어 보고 배 안쪽을 만져 본 뒤 손가락으로 군데군데 눌러 보았다. 새는 초조한 듯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괜찮아, 괜찮아. 그는 능숙하게 새를 다독였다. 그 뒤에는 욕조의 물 온도를 재고 새가 먹는 사료도 모두 확인했다. 줄자로 부리의 길이를 잴 때는 나도 궁금해서 다가가 눈금을 엿보았다. 십팔 센티미터였다.
구조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상태가 괜찮네요. 환경도 좋고요.
그는 화장실에서 나와 차트를 살펴보면서 말했다.
부리에 주름이 전부 잡혔더라고요. 길이도 다 자랐고 색깔도 완전히 검고. 다섯 살쯤 된 것 같아요.
많은 건가요?
아니요. 평균 수명이 열다섯 살은 넘으니까 인간 나이로는 삼십대 정도죠.
나와 아내도 딱 삼십대 중반이었다. 저 새가 우리 또래라는 점이 믿기지 않았다.
산책은 잘 안 다니시죠?
네,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좀.
가끔은 나들이를 다녀오시는 것도 좋아요. 정서에 도움이 될 거예요.
나들이 비용도 청구가 되나요?
자기야.
아내가 팔을 꽉 잡았다. 왜. 물어볼 수는 있잖아. 어깨를 으쓱하면서 눈짓했다.
나뭇가지도 넉넉하게 준비해 주세요. 얘가 곧 둥지를 만들 테니까요.
둥지요?
알을 낳아야 하잖아요. 모르셨어요? 뒷머리와 가슴 쪽 노란 깃털이 번식깃이에요.
그 사람은 새가 알을 낳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새가 낳는 알은 두세 개, 알을 품는 기간은 이십오 일, 부화한 새끼들을 돌보는 기간은 사십 일이었다. 이후 직원들이 새끼들을 데려간 뒤 보조금을 입금해 주는 방식이었다. 연초의 교미 기간에는 한 달 동안 새를 데려가서 짝짓기를 시키는 것까지 그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이 새가 무사히 알을 낳게 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알려주었다. 저어새를 멸종 위기종에서 해제하는 일, 개체군의 밀도를 증가시키고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일에 대해서도 말했다.
두 분은 정말 중요한 일을 하시는 거예요.
직원들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


동물이라도 키워 보자고 아내가 제안했을 땐 글쎄, 하고 말을 흐렸다. 강아지? 산책을 시켜 줄 여유가 없다. 고양이? 털이 많이 날린다. 고슴도치? 가시가 무섭다. 나는 귀찮거나 두려운 게 많았고 아내도 그럴 줄 알았다. 산부인과에 이박 삼일 입원하고 퇴원한 뒤 아내는 자주 울었다. 동물을 키울까 고민해 보는 게 울지 않을 때 하는 일 중 하나인 줄 알았다. 아내가 동물을 하나씩 대면 싫은 이유를 말했다. 햄스터? 좀 징그러워. 거북이? 우리보다 오래 살지도 몰라.
이주일 전 장인이 집에 찾아와서 양철통을 내려놓았을 때 나는 강아지든 고양이든 거북이든 이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했다. 통 밖으로 나와 있는 긴 주걱 같은 부리가 금방 나를 칠 것처럼 느껴졌다. 키가 내 허리까지 올라오는 조류를 보고 아내는 감격했다. 진짜 내 스타일이야. 장인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낚시 갔다가 주워왔다. 갯벌에 혼자 서 있지 뭐니.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지?
길을 찾던 중인 거면 어떡하죠?
장인은 껄껄 웃었다.
이 녀석은 이제 길이 없어. 거긴 매립되고 있거든. 시에서 유원지를 지을 거야.
저는 이런 게 우리나라에 있는지도 몰랐어요.
안 보였던 거지. 점차 없어지고 있기도 하고.
멸종 위기종이구나.
아내가 새에게 속삭였고 장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조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한 마리씩 데려갔다던데 거기서도 낙오된 모양이다. 그러니 잘 키워야 해.
새가 별안간 푸드덕거리더니 양철통에서 튀어 올라 나왔다. 화이트 헤링본 장판을 깐 바닥에 새 발 모양의 진흙이 묻었다. 황급히 양모 러그를 뒤로 밀었다.
이리 와봐. 여기로 와.
아내는 박수를 치면서 새에게 손짓했다. 나는 장인이 욕조 안에 진흙을 깔고 물을 채우는 동안 스티로폼 박스를 열어 보았다. 그리고 화장실 안쪽으로 고개만 내밀었다.
장인어른, 이 박스는.
먹이로 주려고 사왔다. 수산시장에서.
낚시 가셨던 건요.
고기는 놔줬지. 얘를 데려왔고.
고기를 잡아오고 얘를 놔주셨어야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회를 쳐서 먹거나 매운탕을 끓여 먹는 게 저어새 키우기보다는 훨씬 평범한 일이었다. 새는 저벅저벅 욕조 안을 걸어 다녔고 아내가 넣어 준 민물고기를 건져 먹었다.
잘 먹네. 내일 수산시장에 다녀와야겠어.
장인이 돌아간 뒤에도 아내는 욕조 옆에 목욕 의자를 두고 앉아서 신기한 듯 새를 구경했다. 나는 화장실 문턱에 서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괜찮겠어?
그럼. 나 혼자 다녀올 수 있어.
그게 아니고. 얘를 키울 수 있겠냐고.
아내는 시선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결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글쎄. 우리는 아직 해본 적 없는 일이긴 하지.
이건 좀 남다른 일이니까.
그런데 어차피 누군가는 이 애를 책임져야 하잖아.
그러니까 그걸 왜 하필 우리가 해야 하냐고 묻는 대신 화장실 문을 닫고 나왔다. 예전의 아내는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집 근처 공원부터 도심 번화가의 식당, 경기도 외곽의 펜션까지 갔다. 그리고 어떤 메뉴를 고르고 뭘 할지, 다음에는 어디에 갈지 고심했다. 나는 종일 아내를 따라다니고 집에 와서 화장실에서 천천히 발을 씻으며 하루를 끝냈다.
다음날 아내가 새를 키우기 싫으냐고 물었을 때 당신이 원한다면 키워도 좋다고 대답했다. 내가 원해서 키우는 게 아니라 당신도 원해야 키우는 거야. 아내는 그렇게 말했는데 나는 정말로 원한다고 말했다. 내가 집에 없는 시간에 아내가 뭔가를 하길 바랐고 그게 새를 키우는 일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울지 않게 되고 예전처럼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면.
그러나 새가 들어온 뒤에도 우린 그대로였다. 오히려 밥을 먹을 때나 빨래를 갤 때도 아내는 화장실을 흘끔거렸다.
안 보이니까 불안하네.
언젠가 아내의 말에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문짝이라도 뜯지 그래.
아내는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 이후부터 내가 퇴근해 돌아오면 밥을 차려 주고 설거지를 마치는 대로 화장실에 들어가 버렸다. 주말에도 아내는 시시때때로 새에게 먹이를 주고 물을 갈아 주었다. 밥을 먹을 때와 내가 들어가야 할 때 외에는 거의 화장실에 있었다. 실제로 내내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거실에 있으면 화장실에서 새가 물장구치는 소리와 아내의 콧노래 소리만 들렸다.
그랬던 아내가 부산하게 화장실과 거실, 안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기관 직원들이 다녀간 뒤부터였다. 노트북으로 뭔가를 검색해 보다가 불현듯 줄자를 가지고 화장실에 들어가기도 했다. 부엌에서 서성이는 아내 뒤에 대고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소금이가 알을 낳는다잖아.
아내가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지금보다 더.
아내는 싱크대 앞을 오가며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더 큰 욕조가 필요해.


*


새 한 마리를 키우는 일이 이렇다고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다. 이 새가 알을 낳는 것을 돕고 지켜보고 부화한 새끼들 돌보기까지 거들어야 한다고. 이 새가 떠나면 그 새끼 새 중의 한 마리를 또 키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새의 새끼, 또 그 새끼의 새끼까지도. 화장실이 두 개도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거기다 이제는 멀쩡한 욕조까지 갈아치워야 하다니.
우리는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서 한참 설전을 벌였다. 나는 더 넓은 욕조가 필요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고 아내는 산후조리원에 보내주자는 것도 아닌데 욕조 하나도 못 사느냐고 성을 냈다. 언성이 높아지자 새가 화장실에서 끼리리리릭, 하고 울었다.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버린 뒤 나는 외투와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장인과 장모가 사는 이층짜리 주택에는 주차장이 없었다.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길에 벚꽃이 핀 나무 몇 그루를 봤다. 아직 이렇게 쌀쌀한데. 세상의 동식물들이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하러 온 걸까? 페인트를 칠한 철문 앞에 서서 생각했다. 새를 왜 데려왔냐고 따지는 건 무의미했고 욕조도 없는 장인 집에 데려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말해보고 싶었다. 지금의 아내와 그 새, 먹먹한 물 냄새가 나는 화장실에 대해서.
장모는 문을 열어 주고 앞서 집 안으로 걸어갔다. 장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 양반은 낚시하러 갔지, 뭐. 다음 생에는 광어로 태어날 인간이야.
현관에서부터 거실로 이어지는 복도에는 낚싯대와 빈 통이 즐비했다. 거실에서 바둑 방송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등지고 앉아 물을 마셨다. 장모는 가부좌를 틀고 바둑판을 골똘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아무리 봐도 검은 돌과 흰 돌들이 어떻게 놓여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입을 열었다.
저희가 뭘 키우고 있는 거 아시죠? 장인어른이 데려오셔서요. 욕조에 두고 키우느라고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윤주는 자네가 욕조를 쓰지 않는다고 하던데.
장모는 흰 돌 하나를 집어 바둑판에 탁 올려 두었다.
샤워기는 씁니다. 아무튼 그렇다고 그런 게 있어도 되는 건 아니잖아요.
윤주는 자네가 소금이에게 해주는 일이 없다고 하던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새를 소금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 이름을 지어 준 건 나였다. 그때는 아내와 장인, 장모까지 새를 소금이라고 부를 줄은 몰랐다.
장모님. 저는 그 새가 저희 집에 왜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필요?
그러니까 그 새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요.
역할?
제 말은, 하고 뭔가를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장모는 바둑판을 가득 메운 돌들을 쓸어 담았다. 그리고 빈 바둑판 위에 돌을 하나 올렸다.
바둑이 끝나면 복기를 해봐야 해. 처음으로 돌아가야 어디서부터 틀렸는지 알지.
땀이 난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과일바구니를 들고 이 집에 처음 왔던 삼 년 전처럼. 그때 나는 결혼하고 싶은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을 글로 써서 외워왔다. 그런 건 아무도 묻지 않았다. 장인은 낚시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장모는 바둑을 둘 줄 아냐고 물었다.
낚시를 싫어해도 되고 바둑을 몰라도 된다고 말한 건 아내였다. 내가 너무 많은 생각에 잠겨 있으면 그녀는 무던한 정원사처럼 가지를 쳐주었다. 신혼집을 같은 평수의 저렴한 빌라와 비싼 아파트 중에서 고민할 때도 그랬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집은 미세먼지와 바이러스를 피하는 곳일 뿐이라고. 의지할 건 집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이어야지. 농담처럼 그런 말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달 전의 아내를 떠올렸다. 그녀가 정말 나에게 의지하려고 했던 순간을.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그녀는 내 앉은키만 한 배낭을 두 개 사왔다. 텔레비전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본 모양이었다. 나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다 괜찮아졌어. 아니, 사실 너무 힘들어. 거기 가면 나아질지도 몰라. 부부끼리 가면 더 돈독해진대. 싸우기야 하겠지. 그럼 어때? 우린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잖아.
우리는 결국 그곳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 더 돈독해지지도 못하고 싸워 보지도 못했던 걸까.
이왕 배낭을 샀으니 쓰기는 해보려고 국내 여행을 알아봤지만 그것도 무산되었다. 그때 우리한테는 이렇게 큰 배낭에 넣을 만한 게 없었다. 결국 돌돌 말아 옷장 깊숙이 넣어 둔 배낭을 보고 생각했다. 아내는 그냥 뭐라도 해보려고 했던 걸지도 모른다고.
이후 식탁에 혼자 앉아 있는 아내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뒤에 있는 줄도 모르고 스마트폰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중이었다. 나는 어쩐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화면 속 여러 연예인들이 시끌벅적 떠들었고 아내도 웃고 있었는데 집이 너무 고요했다. 영상이 잠깐 멎으면 그녀의 웃음소리가 정적 속에 내려앉았다. 물기도 없이 말끔히 정돈된 부엌에서 아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저렇게 웃는 게 더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그 뒤로 아내는 나에게 어딘가 가자고 하지 않았다. 그녀가 새를 데리고 나간 지난 주말 나는 아내도, 저어새도 없는 집을 현관부터 안방까지 돌아 다녔다. 부엌에서 밥통도 열어 보고 찬장 속 라면의 유통기한도 읽어 봤다. 그러다 아내가 앉아 있었던 그 식탁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때 아내의 말을 들었어야 했나.


*


밖에 나가자.
아내가 냉장고를 열어 둔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들이를 가야 한대잖아.
나는 화장실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우리가 화장실과 안방을 벗어나서 함께 어딘가를 가야 한다면 오늘이 적기였다. 도시 근처에 유원지가 새로 생겼다고 했다. 주말이었고 하늘도 맑았다. 다음 주말에는 집에 누가 올 수도 있고 내가 추가 근무를 할 수도 있었다. 혹은 비가 오거나 그냥 우리의 기분이 좋지 않을 수도.
그래. 그렇지.
잠깐의 침묵 끝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어떻게 데리고 나가지?
다용도실과 드레스룸을 차례로 헤집어 보았다. 저어새가 들어갈 만큼 커다랗고 우리가 가지고 다닐 만한 것을 찾아야 했다. 그때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아, 그 유모차 어디에 뒀지?
아내가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엄마가 가져가셨잖아, 나 퇴원하기 전에. 누구 줬을걸.
아. 그러셨지.
손부채질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붙박이장 안쪽에 구겨진 배낭이 보였다.
아내가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도시락을 싸는 동안 순례 배낭에 하드커버의 책을 넣어서 바닥을 평평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새에게 하네스를 채워야 했다. 아내가 새를 데리고 나갈 때 쓰려고 산 대형 앵무새용이었다. 해본 적은 없지만 아내에게 도와달라고 하기는 꺼려져서 우선 착용설명서를 읽었다. 별거 아니네, 중얼거리면서 하네스에 부리부터 넣으려고 했다. 꼭 새를 포획하는 모양새였다. 새가 푸드덕거리더니 별안간 튀어 올라 욕조에서 나왔다.
야!
너무 놀라서 소리쳤다. 새는 나를 한 번 돌아보고 그대로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뒤따라 나갔더니 젖은 진흙이 새의 발 모양대로 찍혀 있었다.
소금아!
비닐장갑을 낀 아내가 부엌에서 나왔다. 새는 나와 아내를 피해 거실을 뛰어다녔다. 새의 걸음에 따라 밝은 베이지색 러그에 진흙이 묻었다. 호주산 천연 양모인데. 탄식할 겨를도 없이 조금씩 새를 코너로 몰았다. 날갯죽지를 잡았을 때 새가 날개를 거칠게 흔들더니 날아올라서 베란다 난간에 앉았다.
소금아. 일단 내려와. 말로 하자.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말리듯이 아내가 간절하게 말했다. 너무 당황해서 그런 거겠지만 새한테 말로 하자니. 난간에서 내려오라는 말도 이상했다. 사실 새에게는 욕조보다는 베란다가, 집보다는 밖이 맞는 게 아닌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난간에서 우리를 돌아보는 모습이 욕조에 있을 때보다 더 일반적인 새 같아 보였다.
자기도 말 좀 해봐.
아내가 팔을 쳐서 아무 말이나 했다.
같이 나가자.
새는 예민하게 부리를 까닥거렸다. 아내가 계속 말을 걸면서 한 발짝씩 다가갔다. 너랑 놀러가려고 그런 거야. 그래도 내가 설명했어야 했는데. 많이 놀랐지. 미안해. 조금 뒤에 새는 아내에게 안겼다. 그들 뒤에서 말했다.
그럼 자기가 가방에 넣을래? 나는 도시락을 마저 쌀게.
안 돼. 내가 봐줄 테니까 자기가 해.
왜?
그래야 다음에 할 수 있지.
새는 아직 내가 못마땅해 보였고 나도 다르지 않았다. 기관 직원들에게는 초면에도 이렇게 경계하지 않았으면서. 일단은 서운해 할 시간이 없었다. 한 걸음 물러난 새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와봐. 여기로 와.
몇 분이 지난 뒤에야 부리와 머리를 통과해 몸통에 끈을 채울 수 있었다. 새의 깃털은 부드럽고 폭신폭신했다. 하얀 깃털 사이 노랗게 물든 번식깃이 눈에 들어왔다. 부르르 떠는 새의 등을 다독이면서 그 직원들처럼 괜찮아, 괜찮아, 하고 중얼거렸다. 끈을 넉넉하게 조인 뒤 리드줄을 걸었다. 하네스를 입은 새를 배낭에 넣자 부리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덮개를 헐겁게 잠그고 가방을 앞으로 멨다. 한 손으로 가방 밑을 받치고 다른 손으로 가방을 감싸 안았다.
무거워?
아내가 물었다.
산티아고는 안 가도 되겠어.
가방 밖으로 나온 부리를 보면서 말했다. 창고에서 카시트도 꺼냈다. 이건 남아 있네. 아내가 말했고 나는 다행이라고 대답했다. 조용히 현관문을 닫고 나와서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이 빌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고 우리는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대낮에 뭔가를 훔치는 도둑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계단참에서 아이와 올라오는 옆집 남자를 마주쳤을 때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이거군요.
남자가 말했다.
가끔 화장실에서 뭔가 우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우리도 가끔 댁의 아이가 악쓰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하려다 말았다. 손을 뻗어 부리를 만지려는 아이를 남자가 뒤로 숨겼다.
걱정 마세요. 웬만한 애들보다 순하다니까요.
아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 모르는 거죠. 부리가 이렇게 길고 위협적인데요.
이 새는 원래 이렇게 생긴 새예요.
그만 가자.
아내를 잡아끌었다. 등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아무튼 조심해 주세요. 저뿐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평소의 아내였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뭔지 남자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다문 채 계단을 내려갔다. 주차장에서 카시트에 가방을 앉혀 놓고 벨트를 맬 때 아내가 말했다. 이런 건 별거 아니야.
아내는 혼자 새를 데리고 나갔던 날 빌라 단지 안에서만 산책했다.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였지만 남녀노소 주민들을 다 만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하네스를 벗기면서 처음으로 후회했다고 말했다. 이 새를 키우기로 쉽게 결정했던 것을. 자신은 정말로 새가 창피하지 않고 이 새를 책임지는 일이 옳다고 확신했으나 그게 새에게도 옳은 일일까 싶었다는 것이다.
그날 하루는 소금이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 물 갈아 주고 먹이 줄 때도, 욕조 밖에 싼 똥 치울 때도.
아내의 말이 끝나고 정적이 흘렀다. 뒤늦게 입을 열었다. 왜 나한텐 얘기 안 했어? 나도 그때 집에 있었을 텐데. 아내가 픽 웃었다. 집에 있긴 했지.
오늘은 괜찮을까?
신호에 막혀 차를 세우고 중얼거렸다. 아내는 뒷좌석의 새를 돌아봤다.
나 혼자일 때보단 나을 거야. 남자가 있으면 험악하게 굴지는 않으니까.
그때 왜 같이 가자고 안 했어?
산책만 그랬던 게 아니라.
아내가 창문을 내려서 바람을 쐬었다.
우린 그동안 뭐든 같이 하지 않았잖아.
나도 창문을 내렸다. 나의 창문과 아내의 창문으로 바람이 드나들었다. 아내는 중고가구점에 전화를 걸었고 나는 욕조 값을 기관에서 지원받을 수 있을지 따져 봤다. 그 욕조는 새를 위한 것이니까. 새가 낮은 소리로 울었고 우리는 길게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유원지 입구를 통과했다. 정문 앞에서 초록색 조끼를 입고 시위하는 열댓 명의 사람들을 지나쳤다. 중앙에 선 사람이 확성기에 대고 외치는 소리는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았다. 핸들을 돌려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잘은 모르지만 그들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도 문제가 있겠지. 백미러를 흘긋거리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그저 휴일을 보내러 왔을 뿐이라고.


*


주차장에서 나와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일렉트로닉 기타의 파열음이 선명해졌다. 분수대 옆에서 밴드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잔디밭에서는 얼굴을 하얗게 칠한 사람이 마술 쇼를 하는 중이었다. 어디든 사람들이 몰려서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길을 되돌아 나왔다. 그 뒤로 자전거 대여소와 테니스장, 농구장, 축구장, 족구장을 지났다. 길게 늘어선 플리마켓도 보았고 게임장에서 보드를 타는 어린애들도 구경했다. 새에게도 보여주려고 가방을 조금 젖혔는데 새는 오히려 쑥 들어가 버렸다. 가방을 고쳐 안고 물었다.
이쯤 되면 그 직원의 말을 의심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애가 좀 특이한 애일 수도 있지.
놀이터와 경찰지구대를 지났을 때 멀리 지평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닷가를 매립해 지은 백사장이었다. 한때는 어떤 새들이 살거나 지나다녔을 곳. 우리가 이 유원지에서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서 더 쌀쌀했지만 견딜 만했다.
흰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새를 꺼냈다. 기분 탓인지 새는 아까보다는 안정적으로 보였다. 도시락을 펼쳐 놓고 샌드위치와 과일을 먹었다. 아내는 락앤락에 담아온 민물고기를 긴 젓가락으로 집어서 새의 부리 안에 넣어주었다. 그러느라 잘 먹지를 못해서 아내에게는 내가 음식을 먹여 줬다. 한가롭게 늦은 점심을 먹는 동안 수많은 개들을 봤다. 개들에게도 여기가 제일 적당한 장소인 모양이었다. 진돗개부터 리트리버, 슈나우저, 웰시코기, 포메라니안, 종류가 셀 수 없이 다양했다. 그래도 눈자위가 빨갛거나 주둥이가 너무 튀어나와 있는 개는 없었다.
저어새들은 다 어디 있을까?
돗자리에 누워서 물었다.
누군가가 데려갔겠지? 웬만한 서식지는 매립되고 사라졌으니까.
아내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저어새 같은 것들이 또 있나?
많지. 금개구리, 흰발 농게, 맹꽁이. 멸종 위기종 키우는 사람들 커뮤니티가 있거든. 거기서 봤어.
걔네는 다 어디 있을까?
자기들 집에 있겠지.
보조금 받는 사람들은 있는데 정작 그 동물들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아.
다른 사람은 우리 눈에 안 보이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만 이런 걸 키우는 것 같지.
아내도 새를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더 말하고 싶었다. 예쁘지도 귀엽지도 않고 크기도 너무 큰, 일반적이지 않은 애완동물은 우리가 키우는 이 새 한 마리뿐인 것 같다고.
도시락 통을 정리한 뒤 아내가 샌들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나도 약간 머뭇거리다가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백사장에 서자 양 발바닥이 간지러웠다. 아내는 파도가 밀려오는 쪽으로 리드줄을 끌었다. 새는 느리지만 편안하게 아내를 따라갔다. 발이 바닷물에 잠기는 곳에서 아내가 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그들을 찍었다. 역광이어서 형체만 겨우 찍혔지만 아내와 새를 알아보기엔 충분했다. 나는 다가가서 하네스에 걸어 놓은 리드줄을 풀어 주었다.
이래도 되나?
아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내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새는 바다를 보고 서 있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이러다 날아가면 어떡해.
가만히 있어 보자.
새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다리가 절반 넘게 잠겼다. 소금이라는 이름을 지었던 이유는 이 새가 바다에서 왔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새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주걱 같은 부리로 수면을 저었다. 옆으로 몇 걸음 걸어가서도 똑같이 했다. 병뚜껑과 구겨진 빨대 같은 걸 몇 개 건져 보더니 곧게 섰다. 기지개를 켜듯 양 날개를 넓게 펼친 뒤 해수면에서 두어 뼘 날아올랐다. 날개는 위로 솟았지만 아랫배가 불룩한 몸통은 금방 내려앉았다. 새는 날개를 반듯하게 접고 돌아왔다. 잠깐 산책을 다녀온 것처럼. 아내는 돗자리를 털었고 나는 새를 배낭에 넣어서 멨다.


*


다음날 오후에는 나 혼자 새를 단지 안에서 산책시켰다. 아직 둘이 있기엔 좀 어색했지만 산책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단지를 반쯤 돌았을 때 욕조 배달 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새의 목줄을 풀어 배낭 안에 넣은 뒤 집 앞으로 되돌아갔다. 욕조를 실은 용달차가 빌라 건물 앞에 섰다. 아내도 나와 있었다. 트럭에서 내린 배달 기사는 고동색 피부에 쌍꺼풀이 짙은 청년이었다. 조금 당황했는데 다행히 그는 통화할 때처럼 한국어를 잘 구사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이 빌라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말을 듣고 기사는 모자를 벗었다.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다리차는요?
앞으로 멘 배낭을 부둥켜안고 물었다.
그건 삼만 원 더 내요.
기사는 배낭에서 빠져나와 있는 부리를 흘끔거리며 말했다.
이미 배송비를 이만 원이나 냈잖아요. 그러면 욕조를 집 안으로 가져다주는 거 아닙니까?
이만 원 너무 싸요. 그래도 집 안까지 가져다줘요. 엘리베이터 있으면.
기사는 손으로 햇볕을 가리고 주위에 둘러선 빌라들을 돌아보았다. 어떡하지. 우리가 소곤거리는 동안 그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사무적으로 말했다.
환불해도 돼요. 반품 배송비 내면요.
이런 사람들을 많이 봤다는 투였다. 나는 기사에게 삼층까지 운반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기사는 모자를 부채처럼 부치면서 못 미덥다는 듯 나를 살펴보았다.
다칠 수도 있어요.
에이, 남자 둘이서 욕조 하나 든다고 안 다쳐요.
욕조가 다칠 수도 있다고요. 스크래치.
설마요. 고작 삼층인데.
지나가는 부부가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이쪽을 구경했다. 나는 그들이 새의 검고 긴 부리를 봤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나에게서 배낭을 건네받아 빌라에 들어갔다. 분리수거장에 갔던 부부가 이쪽으로 돌아올 때 기사는 다시 모자를 썼다. 그리고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털어내며 트럭의 뒷문을 열었다.
내가 앞에서 욕조를 끌고 기사가 뒤에서 받쳤다. 일층에서 이층으로 가는 계단의 중간층에서 고비가 왔다. 계단은 좁았고 욕조는 길었으므로 올라가는 욕조의 방향을 틀려면 욕조를 비스듬히 기울여서 더 높이 들어야 했다. 아래에 있는 기사는 욕조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더 높이. 더 높이 들어요.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기사가 자리를 바꿔 주어서 아래로 내려갔는데 아래에서도 기사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다 왔어요, 하는 목소리만 들렸다. 기사가 위에서 끌어 주고 있는데도 욕조가 너무 무거웠다. 자꾸 욕조를 떨어뜨릴 뻔했고 삼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세라믹이 쇠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살펴보니 하얀 테두리에 난간 쇠기둥의 자국이 나 있었다. 이것 봐요. 기사가 중얼거렸고 나는 깨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중고 욕조를 옮기는 것 정도는 잘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계단 위로 욕조를 신중히 밀었다.
아내가 새를 안고서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기사는 집 안으로 들어서다 말고 멈춰 서서 새를 바라보았다. 새의 작은 머리와 동그란 눈, 하얀 깃털을. 세라믹 욕조를 세로로 세운 뒤 화장실로 밀어 넣으면서 기사가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저요?
새요.
아, 소금이.
욕조의 길이가 화장실의 너비보다 길어서 대각선으로 놓아야 했다. 세면대 앞에 서도 욕조가 다리에 닿았다. 아내에게 새를 받아와서 욕조에 넣어 주고 이전 욕조에 있던 흙을 가져다 날랐다. 그사이에 기사는 스마트폰을 꺼내 새와 셀카를 찍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머쓱하게 스마트폰을 내리고 말했다.
쉽게 못 보는 거니까요.
기사는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욕조에 있는 희고 통통한 저어새의 사진이 그의 SNS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바다 건너에 있을 그의 팔로워들은 이 새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곳의 빌라 사람들과는 다르겠지. 새는 얼마나 넓어졌는지 재보려는 듯 욕조의 끝에서 끝으로 왔다 갔다 했다.
기사는 플라스틱 욕조를 분리수거장 옆에 버리는 것까지 도와준 뒤 떠났다. 저녁을 때우고 아내와 컴컴해진 공원에 들러서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아까보다 벚꽃이 더 많아 보였고 저녁인데도 어제보다 쌀쌀하지 않았다. 이제야 따뜻해질 모양이었다.
화장실은 확연히 비좁아졌다. 아내는 욕조에 몸을 붙이고 앉았는데 세면대 아래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옆에 변기 뚜껑을 닫고 앉아 나뭇가지를 짧게 꺾었다. 작은 목욕 의자에 쪼그려 앉은 아내의 정수리와 마른 어깨를 내려다봤다.
무사히 낳겠지?
아내가 민물고기를 욕조에 넣어 주며 중얼거렸다. 무사히 낳지 못할 수도 있나. 여기 오기 전에 수컷을 만나지 않았다면 무정란만 낳게 될 것이다. 일정한 길이로 꺾은 나뭇가지들을 욕조 옆에 모아 두며 대답했다.
알을 품는 것만으로 기분이 나아질 수도 있을 거야. 유정란이든 무정란이든.
그래도 건강하긴 한가 봐. 아까 봤지? 알을 낳고 나면 아주 날아갈 수도 있겠어.
그건 좀 문젠데. 이 욕조는 어떡해.
화장실의 반을 차지하는 욕조를 가리켰다. 새는 내가 이 욕조를 어떻게 가져왔는지 알지도 못하고 조그만 머리통을 까닥이며 민물고기를 주워 먹었다.
다른 걸 키울 수도 있지. 이건 누가 들어가도 괜찮을 정도로 크니까. 아이들이라면 세 명까지도 들어갈걸.
아내는 뒤뚱뒤뚱 걷는 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는 같이 욕조의 물을 갈아 주었다. 욕조가 더 커져서인지 물이 빠져나가는 데 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우리 집의 소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가 언젠가 떠나면 이 큰 욕조는 텅 비게 될 거다. 어쨌든 일단 물을 갈아 주고 새가 둥지를 만들기 편하도록 나뭇가지를 짧게 꺾어야 했다. 물을 틀고 수전을 살살 움직여 온도를 조절했다. 이 계절의 바닷물과 비슷한 온도로. 이 새가 의지할 건 욕조가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내, 그리고 나. 욕조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고수경

작가소개 / 고수경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 수료. 202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


《문장웹진 2020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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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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