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호텔 해운대

  • 작성일 2019-10-01
  • 조회수 3,242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단편소설」



호텔 해운대



오선영





KBS 라디오 문학관 방송듣기
? KBS 라디오 문학관에서 오디오북을 만나볼 수 있어요





"저희가 들려드리는 노래를 잘 들으시고 특수효과음 자리에 들어갈 단어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어렵지 않은 문제이니 귀 기울여서 들어주세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신 분 중 열 분을 뽑아 모바일 커피음료권을 보내드리구요, 특별히 한 분에게는 특급호텔 숙박권을 드립니다. 뽀송뽀송한 침구에서 꿀잠을 자고 일어나 마시는 모닝커피 한 잔, 상상만 해도 기분 좋으시죠?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주세요. 자, 음악 나갑니다."
아침 방송 디제이의 달콤한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나운서 출신의 진행자는 정확한 발음과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로 수많은 고정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옆집 언니처럼 사근사근하면서도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적당히 지적으로 보였다. 가끔씩 멘트 실수를 하거나 광고를 잘못 보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모습조차 귀엽고 사랑스럽게 승화시켰다.
음악퀴즈가 나오면 지각이다. 라디오 방송은 보지 않아도 되는 시계와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광고가 나오고 음악이 흐르며 게스트가 등장했다. 엄마는 왜 아침부터 시끄럽게 라디오를 켜놓았냐며 잔소리를 하지만, 수정에게 그것은 출근준비를 안내하는 사내방송과 같았다.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땡땡땡 푸른 밤 그 별 아래······ 외롭다고 느껴진다면 떠나요, 땡땡땡 푸른 밤 하늘 아래로."
노래가 나온다. 익숙한 멜로디에 수정은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떠나요오, 둘이서어 모든 거얼 훌훌 버리고오~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에~ 수정은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올리다가 스마트폰을 찾아 재빨리 문자를 보냈다.
〈정답 제주도! 언니 제주도 가고 싶어요. 회사 생활에 찌들어 있는 직장인에게 제주도의 푸른 바다와 밤하늘을 보여주세요. 제발요!〉
수정은 이전에도 라디오방송에 사연과 퀴즈 정답을 보내 당첨된 일이 있었다. 모두 지역방송사의 프로그램이었다. 청취자가 한정된 지역프로그램은 참가하는 사람이 적었고, 그만큼 퀴즈 당첨확률이 높았다. 특급호텔 숙박권, 대형 전자제품만큼 값이 나가는 상품은 아니어도 지역 소극장 관람권이나 새로 생긴 해수탕 입장권, 특정 시기에만 구입할 수 있는 햇과일 등은 실생활에서 요긴하게 쓰였다.
노래가 끝나고 다시 디제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음악이 나가는 동안 많은 분들이 답을 보내주셨는데요. 퀴즈 정답은 바로 '제주도'였습니다. 1988년 발표된 최성원 씨의 곡을 2004년 성시경 씨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들으셨어요. 모바일 커피음료권을 받으실 분은요,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가 2057, 6737 분입니다. 나머지 분들은 정리해서 게시판에 올려놓을 테니 확인해 주세요. 자, 대망의 특급호텔 숙박권을 받으실 분은 두구두구두구 바로오오 휴대전화 끝자리 5136분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세상에! 5136은 수정의 휴대전화 끝자리였다. 가운데 네 자리가 다르지 않다면 호텔숙박권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인 것이다. 노란 블라우스에 오른팔만 끼운 채 수정은 트램펄린 위의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지각은 생각나지 않았다. 제주도의 에메랄드빛 바다와 하얀 갈매기, 해변을 따라 늘어선 아기자기한 카페들, 챙이 넓은 모자와 커다란 꽃무늬가 프린트 된 빨간 원피스, 테가 동그란 미러선글라스가 수정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쇼퍼백을 들고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아니라 15인치 캐리어를 꺼내 공항으로 출발하고 싶었다.



*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이 전부인 부장은 이번 달에만 수정의 지각이 세 번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 아이나 몸이 아픈 시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지각을 자주 하냐고 빈정거렸다. 그 말은 수정에게 하는 동시에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최 디자이너를 겨냥한 문구이기도 했다. 부장은 출판사 발전에 여직원들이 도움 되는 일이 없다며 여사원과 남사원 간의 임금 차등을 주장했다. 제 부인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몸이 아픈 조부모를 간병했기 때문에 자신이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수정은 담임선생에게 혼나는 중학생처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부장이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만이 이 상황을 빨리 끝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괜찮나?"
옆자리의 최 디자이너가 말을 걸었다. 자신은 너무 많이 겪은 일이어서 이제 익숙하다며 수정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각을 한 건 제 잘못이어서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지각과 맞바꾼 제주도 특급호텔 숙박권이 있으니,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싶었다. 신라호텔? 롯데호텔이나 해비치호텔인가? 특급호텔이면 5성급 호텔임이 분명한데······. 혀끝을 간질이는 초콜릿 같은 단어들을 애써 입속으로 삼켰다. 달콤한 호텔들이 초콜릿 속에 박혀 있던 알사탕처럼 녹지 않고 남았다. 색색깔의 사탕알갱이가 입안을 굴러다녔다. 수정은 혓바닥 위에 사탕을, 아니 호텔을 올려놓고 천천히 녹여 먹었다. 아이스커피 속의 각얼음을 깨물듯 아삭아삭 소리 내는 법이 없었다. 선홍색 혓바닥이 주황색, 보라색, 연두색으로 물들자, 텀블러 가득 생수를 받아 꿀꺽 하고 삼켰다. 수정의 유일한 입사동기이자 밤 수유에 시달리느라 다크서클이 점처럼 짙어진 최 디자이너에게 제주도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였다.


작은 회사였다. 사장을 포함해 전 직원 7명뿐인 부산의 작은 출판사였다. 수정의 명함을 받은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우와, 출판사 다니면 책 많이 읽으시겠네요? 저처럼 책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재미있는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열 명 중 여섯, 일곱 명이 동일한 질문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정은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입 꼬리를 살짝 올려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럼 화학회사 직원은 화학물품 좋아하고 파스타집 알바생은 삼시세끼 파스타만 먹어요? 라고 역질문을 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묻는 사람들이 그녀의 직업과 '책'에 대한 호기심, 일종의 좋은 의미의 관심과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책이란 물품에 대한 인식이 '돼지국밥'이나 '웨지힐'과 같지 않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기에 수정은 대형 인터넷서점의 베스트셀러 상위목록에 있는 책 제목들을 파블로프의 개처럼 줄줄 읊으며 상대의 호의에 응답했다.
부산에 출판사도 있어요? 출판사는 다 서울이나 파주에 있는 줄 알았는데.
두 번째로 많이 듣는 말이었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은 출판사와 작가 이름을 따져 가며 책을 샀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은 알람서비스에 맞춰 초판을 구매했다. 특정 출판사의 북클럽에 가입하고, 분기별로 뽑는 서포터스에 지원했다. 회원들에겐 책보다 예쁘고 눈길을 끄는 굿즈들이 메인상품처럼 따라왔다.
수정은 두 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에도 어색하게 웃었다. 첫 번째 질문을 들었을 때보다 더 당황했지만 입 꼬리를 활짝 당겨서 웃었다. 앞선 질문이 그녀의 직업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뒤의 물음은 그녀의 직장을 얕보거나 무시하는 의미로 들리기도 했다. 마치 회사라면 삼성이나 현대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듣보잡' 회사가 있었나, 라는 식으로. 콜라는 코카콜라와 펩시만 있는 줄 알았는데 815콜라라는 것이 있었냐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수정은 지역문화예술계의 상황과 작은 출판사의 중요성, 문화의 획일화와 대형화에 저항하기 위한 여러 사례들을 나열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의 필요성과 중요도에 대해 말하곤 했다. 목소리를 높였다가 낮추면서, 때론 상냥하고 다정하게, 어느 구절에선 웅변조로 장엄하고 강단 있게. 질문보다 몇 배나 긴 답변이 기차에 매달린 화차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대답을 들은 질문자는 갸우뚱하던 표정을 고치고 수정의 말에 수긍했다. 수정은 질문자의 변화된 태도를 보며 뿌듯해하다가, 문득 회사명 하나로 제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화차가 없어도 기차 이름을 알 수 있는 KTX처럼, 명함 한 장으로 더 이상의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그러니까 이 땅의 콜라 역사를 바꾸기 위해 태어난 815콜라의 가치와 의의는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815콜라가 코카콜라나 펩시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사실 수정도 처음에는 두 번째 질문자들과 같은 질문을 했었다. 지역 국립대학교의 국어국문학과 학생이던 수정은 전공을 살려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방대학교 인문대학 출신의 이력을 가지고 전공을 살리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그나마 학과에 맞춰서 직업을 구하는 건 교직이수를 해서 국어과 임용시험에 통과하는 길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영학과, 경제학과 복수전공을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거나, 일찌감치 학과공부는 접어두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집중했다.
그렇기에 수정은 전공과 유사한 계열에 취업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동기들은 낙타 등에 앉아 바늘귀를 유유히 통과한 그녀를 부러워했다.
"운이 좋았지, 뭐. 니도 잘 될끄야."
수정이 수줍은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비록 전 직원이 7명뿐인 소규모의 출판사지만 '편집자' 혹은 '에디터'로 불리는 스스로가 대견했다. 동경하던 작가를 대면하고, 취미였던 독서가 밥벌이가 되었으며, 모니터 속의 활자들이 물성을 지닌 책으로 나오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건 수정이 막연하게 꿈꿔 온 일이었다. 20대의 남은 희망사항이라면 박봉의 월급이 오르고 야근수당이 나오는 일, 그리고 오랜 연인인 민우가 취업에 성공하는 것뿐이었다.


스마트폰 액정 위로 '02'로 시작되는 전화번호가 떴다. 수정은 스팸전화나 광고인 줄 알고 빨간색 거절 버튼을 눌렀다. '051'로 시작되는 지역번호, '010'이 달린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곳에서 전화가 오는 일은 잘 없었다.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조용히 화장실로 갔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아침 구성작가입니다. 휴대전화 뒷자리가 5136분 맞으시죠?"
수화기 건너편에서 정확한 표준어 발음이 들렸다. 출판사 합격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수정은 두 손으로 휴대전화를 잡고 공손하게 답했다.
"네에."
구성작가와 대화를 할수록 자신의 부산사투리가 도드라져 보였다. 어쩜 저렇게 정확하고 깔끔하게 표준어를 구사하는지. 내용물보다 포장지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처럼 그녀는 구성작가의 발음과 억양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구성작가를 따라서 말끝을 살짝 올려 대답했다. 수정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겐 똑같은 '부산사투리'로 들릴 테지만 말이다.
"〈호텔 해운대〉, 일박 숙박권이구요. 원하시는 날짜와 요일은 호텔 고객센터로 직접 연락하셔서 예약하시면 됩니다. 2인 조식 포함 상품이며 수영장을 포함한 부대시설은 따로 계산하셔야 해요. 차액을 지불하시면 룸 업그레이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저기, 작까님. 제주도가 아니라 해운대요?"
설명을 듣고 있던 수정이 말꼬리를 싹뚝, 자르며 물었다. 그 바람에 리드미컬한 부산 억양과 센 발음이 날것으로 드러났다.
"네, 청취자님.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특급호텔 〈호텔 해운대〉 숙박권입니다."
그러니까, 특급호텔이란 게, 제주도가 아니라 부산 해운대란 말인가! 수정은 앞장과 뒷장을 바꿔 책을 출판했을 때처럼 머리가 띵, 하고 아파 왔다. '제주도의 푸른 밤'을 실컷 틀어 놓고 해운대 호텔 숙박권을 주다니. 청취자를 우롱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러니 방송국 놈들 이상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전화를 끊고도 수정은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초콜릿 호텔이 염전 위의 소금이 되어 입속을 굴러다녔다. 짜고, 짜고, 짠맛. 혓바닥의 짠맛이 입천장과 잇몸, 사랑니까지 구석구석 들러붙었다. 입안이 소금강이 될 듯해서 그녀는 종이컵에 믹스커피 두 포를 뜯어 부었다. 달고 느끼한, 무게감 있는 액체로 소금들을 덮어버려야 했다.



*


화요일, 수요일 연차를 내었다. 지난주에 수정이 편집 담당을 했던 단행본이 무사히 출간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는 편집부장의 육촌의 아는 이웃이라는 60대 수필가였다. 부장은 수정에게 특별히 신경 써서 교정을 보고 피드백을 하라며 당부했다. 책은 작가의 인생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잠언록을 가장한 인생 성공기였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마음을 비웠다, 울적한 날에는 아내와 함께 홋카이도 노천온천에 몸을 뉘었다, 다정한 이웃과 함께 18년산 프랑스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와 같은 문장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종이를 좀먹고 있었다. 이런 책을 사 보는 사람이 있기나 하나, 싶었지만. 금요일에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길 정도로 책이 팔렸다. 그들이 책을 끝까지 정독할지는 의문이지만.
물론 수정이 담당했던 모든 책들이 저와 비슷한 건 아니다. 지역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의 첫 시집은 정말 좋아서 책장을 넘기는 게 안타까울 정도였다. 사려 깊으면서 유머와 재치를 겸비한 시편들은 기존의 시 문법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수정은 그즈음 만나는 지인들에게 박의 시집을 추천하고 다녔다. 하지만 작은 출판사의 재정상 대형 광고와 홍보를 하기 어려웠고, 인맥도 학맥도 쑥맥인 박의 시집은 물류창고 구석에 박스째 놓여 있어야 했다.
어쨌든 부장이 신경 쓰던 잠언록이 잘 나왔고 수정은 연차를 낼 수 있었다. 민우는 주말도 아닌 어정쩡한 화, 수요일에 호텔을 꼭 가야 하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수정은 그의 뜻을 이해하지만 주말은 추가요금이 있다고 설명했다. 택시 할증료만큼 두려운 '추가요금'이라는 단어 앞에서 민우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디데이가 잡혔다. 수정은 주말 내내 '호캉스'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제주도가 아니어서 잠시 실망했지만, 공짜로 〈호텔 해운대〉 숙박이 어딘가 싶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갈 수 있으니 경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수험생인 민우에게도 큰 무리가 없을 듯했다. 생각해 보면 수정은 부산에서 28년째 살고 있지만 해운대 특급호텔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피서철 해운대 앞바다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가슴이 답답할 때 해운대 겨울바다를 찾은 일 또한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듯 그렇게 해운대를 찾았다. 부산의 북쪽에 있는 수정의 집에서 해운대는 너무 멀었다.
서울로 대학을 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이런 대화를 했었다.
"니 가로수길, 이태원 가봤나? 평창동은?"
"그게 어딘데."
"니는 그것도 모르나. 왜 미니시리즈 보면 남녀 주인공이 가로수길에서 브런치 먹으면서 데이트하잖아. 주말연속극에서는 평창동입니다, 하고 전화 받고. 서울 사람들은 다 그기 가는 줄 알았는데."
"몰라. 내는 학교랑 기숙사만 왔따 갔따 한다. 술도 학교 앞에서만 마시고. 강남 한 번 가봤는데 정신이 없더라."
"그게 뭐꼬? 서울 가면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벨로네."
"뭐라카노, 니는 부산 산다고 맨날 회 처먹고, 밀면이랑 돼지국밥 먹다가 시원소주 마시면서 롯데 응원하고, 해운대 가서 바다수영하나."
"그게 뭐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
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내가 부산이 고향이라니까, 꽈선배들한테 이 질문을 을매나 받는지 아나. 창문만 열면 바다 보이는 줄 안다니까. 그니까 니도 그딴 거 묻지 말라꼬."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친구는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부산, 해운대, 회, 밀면, 돼지국밥, 롯데.
친구와 헤어지고 수정은 두 사람이 나누었던 단어들을 다시 불러내 보았다.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의 추억처럼, 부산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낱말들을 별 하나마다 짝짓기 하였다. 그것들은 제게 무척 익숙하고 낯익은 것이면서, 낯설고 먼 것이었다. 축구공, 연필처럼 질감을 가진 물건처럼 여겨지다가, 잡으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버리는 미세먼지나 바람 같았다. 명확한 얼굴을 가진 듯하면서 정확히 어떤 얼굴인지 알 수 없는 복면강도 같은 존재였다. 부산, 부산이라. 수정이 두 입술을 붙였다가 떼면서 '부산'을 부를수록, 그것은 어느 먼 타국의 지명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졌었다.


초록색 검색창에 '호캉스'를 입력했다. 호캉스 준비물, 장소, 시기 등이 연관 검색어로 떴다. 그중 호캉스 준비물을 눌렀다. 샤워용품은 호텔에 구비되어 있으니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 치약과 칫솔은 없는 곳이 많으니 꼭 가지고 가라, 생수는 보통 2병을 주는데 부족하면 근처 편의점에서 사라(ps-호텔은 생수도 비싸다) 등의 글들이 나왔다. 게시글 밑으로 메탈 소재 캐리어와 명품 로고가 찍힌 비키니 사진이 배치되어 있었다.
수정은 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처럼 필요한 내용을 메모하고 스마트폰으로 화면을 찍었다. 〈호텔 해운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조식당 위치와 로비, 수영장과 피트니스 클럽을 확인했다. 능숙하고 세련되게, 모든 것이 익숙한 단골손님처럼 행동하고 싶었다. 준비를 하는 것만으로 이미 호텔에 가 있는 기분이었다. 구김 하나 없는 새하얀 시트 위에 민우와 누워 있는 모습을 떠올렸다. 딱딱하던 손끝이 말랑해지면서 두 뺨에 살짝 열이 올랐다. 특별한 밤을 위해 큰 맘 먹고 ck속옷도 구입했다. 다리와 겨드랑이 제모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손톱만 하던 상상이 주먹만큼 커지더니 열기구처럼 크게 부풀어 올랐다. 열기구를 탄 수정과 민우 앞으로 상상과 망상, 열망과 욕망이 무지개처럼 펼쳐졌다. 그녀는 각기 다른 색깔과 표정을 지닌 빛들에 첨벙, 하고 몸을 던졌다. 파도의 날개를 따라 빨강에서 보라까지 마음대로 헤엄쳐 다녔다. 그러다가 홀로 한 상상임에도 괜히 겸연쩍어져서 엄마가 있는 거실을 향해 헛기침을 했다.
이번 호캉스는 민우를 위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수정과 민우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수정이 국어국문학과, 민우는 사회학과 학생이었다. 두 사람은 '문학과 영상예술' 수업에서 같은 조였고, 과제를 위해 도서관과 영화관을 드나들다가 사귀게 되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 마니아인 민우는 종종 젊은 여자 시간강사를 시험하는 듯한 질문을 했었다. 객기와 오만이 적당히 섞인 복학생의 태도가 수정에겐 지적이고 패기 넘쳐 보였다. 민우와 함께 '영화의전당', '서면CGV ART관', '모퉁이극장'을 순회하며 취향과 취미를 공유했다. 가끔씩 부산에서 상영하지 않는 독립영화를 보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의 독립극장을 찾았다. 1+1 하는 편의점 삼각김밥과 캔커피를 들고 대구행 고속버스에 올랐을 때, 그녀는 자신처럼 창백한 영혼을 지닌 그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수정이 먼저 취업을 하고, 민우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 예전처럼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고 다섯 시간 동안 영화평을 주고받는 일이 줄어들었지만, 수정은 여전히 핑크빛 로맨스 안에 있다고 믿었다.
"in부산 하고 싶다, in부산."
민우가 부산시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을 보고 와서 말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에서 살고 있는 민우는 앞으로도 부산에서 쭉 살고 싶어 했다. 'in서울', 'in수도권'을 외치며 타 지역으로의 취업을 꿈꾸는 이가 있지만, 지방에 사는 20대가 똑같은 희망사항을 지닌 건 아니었다. 민우에게 'in서울'은 'out부산'의 다른 말이었다. 부산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살아온 터전에서 추방됨과 동일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부산시 공무원 채용인원은 해마다 줄고, 경쟁률은 해마다 신기록을 세웠다. 수정이 퇴근 후, 애정하는 감독의 신작영화를 보러 가자 해도 민우가 행정법 특강 운운하며 거절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래서 수정은 이번 호캉스를 잘 보내고 싶었다. 공부에 지친 민우에게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주고 싶었고, 살짝 멀어진 듯한 두 사람의 관계도 회복하고 싶었다. 서비스가 좋은 특급호텔에서 푹 쉬고 나면 민우도 힘내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우리 캐리어 어디 있는데? 접때 엄마 중국 여행갈 때 들고 간 거 있잖아."
수정이 거실로 나오며 물었다.
"즈기 베란다 창고 함 봐라."
주말연속극 재방송을 보고 있던 엄마가 턱 끝으로 베란다를 가리켰다. 창고에는 파란색 김장봉투 대(大)자에 들어 있는 분홍색 캐리어가 있었다. 엄마는 비닐 입구를 몇 번이나 돌려서 꽁꽁 묶어 놨다. 수정은 새로 붙인 네일 스티커가 떨어진 줄도 모른 채, 묶인 김장봉투를 푸는 데 집중했다. 캐리어는 깨진 부분 하나 없이 깨끗했다. 먼지만 털어서 사용하면 되겠네. 그녀는 흐뭇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제 방으로 옮겼다.
〈청춘산악회 10주년 기념 중국 장가계 여행〉
수정의 눈에 파란색 잉크로 선명하게 박아 놓은 문구가 들어왔다. 이게 뭐야! 가방이 엄마 지인들로 구성된 산악회 기념여행용으로 만들었단 걸 깜박했다. 수정은 돌하르방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서랍에서 캐릭터 스티커를 가져와 글자 위에 붙였다. 스티커는 붙이면 붙일수록 더 조잡해졌다. 스티커를 떼어내고 매니큐어용 아세톤과 화장솜을 가져왔다. 하얀 화장솜에 아세톤을 흠뻑 적셔 글자 위에 문질렀다. '청춘산악회'가 '저주사악회'로 변하더니 '주회'로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분홍색 캐리어 커버도 함께 벗겨졌다. 공기구멍이 뚫린 현무암처럼 분홍색 캐리어 위로 하얀 동그라미들이 생겼다.
수정은 점점 커지는 하얀 점들을 보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두 눈이 뻑뻑해지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백팩을 메고 호텔에 가고 싶지 않았다. 손잡이가 긴 캐리어를 끌며 호텔 로비로 폼 나게 입장하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남은 스티커를 다시 붙였다. 분홍색 캐리어에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들이 찰싹찰싹 달라붙었다. 여행 가는 게 기쁜지 어금니가 보이도록 과장되게 웃고 있었다.



*


약속장소는 서면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 앞이었다. 민우가 오전 공부를 해야 해서 평소와 같은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수정은 준비해 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뒤, 분홍색 캐리어를 끌고 서 있었다. 마치 부산으로 휴가를 온 관광객처럼 보였는데 수정은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저 멀리 민우가 보인다. 수정은 민우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점차 표정이 굳어졌다. 민우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보이는 초록색 학원 가방을 또 메고 나타난 것이다. 저놈의 백팩! 힘들면 거북이처럼 가방 속으로 머리를 숨기겠다는 건지. 그는 어딜 가든 학원 가방을 애착인형처럼 끼고 다녔다. 검은 면바지에 남색 후드티셔츠, 뒤축이 닳은 아디다스 운동화. 수정은 민우의 차림을 훑어보다가 얇은 면바지 위로 그의 야윈 다리가 드러나자, 입을 우물거려 굳은 표정을 풀었다.
"자기야, 지하철 타러 가자."
민우가 수정의 분홍색 캐리어를 번쩍 들고 앞장섰다.
"해운대역까지 몇 코스고?"
수정이 검지손가락으로 2호선 노선표를 따라가 보았다. 서면, 전포, 문현, 지겟골 ··· 센텀시티, 벡스코, 동백, 해운대. 16개의 역을 통과해야 했다. 수정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연산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갈아탄 뒤 서면까지 왔었다. 이제 2호선을 타고 해운대로 가야 한다. 오늘 하루 부산시 지하철을 다 타는 것 같네.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지쳤다. '우리 택시 탈까?'라는 말이 그녀의 목구멍을 간질였다. 민우의 주머니 사정을 뻔히 아는데 택시비를 내라고 할 순 없었다. 그것은 오롯이 말을 꺼낸 수정의 몫이었다. 호텔 '추가비용' 앞에서 말을 잇지 못했던 민우처럼 수정도 택시비 앞에선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16개 역을 지나 해운대역에 도착했다. 활주로에 착륙한 비행기처럼 2호선 지하철이 역사 안으로 안착했다. 평일인데도 해운대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민우와 수정은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듯 단말기에 띡, 교통카드를 찍고 지하철역을 벗어났다.
"으음, 바다내앰새!"
출입구를 나오자 수정이 두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짭조름한 바다향, 철썩이는 파도소리, 백사장에는 하얀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닐 것 같았다.
"바다는 무신, 저까지 한참 걸어가야 된데이."
민우는 그런 수정의 모습이 귀여운지 피식 웃었다. 역사 앞에는 때에 찌든 살찐 비둘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호텔 해운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3번 출구로 나와 라마다앙코르 해운대호텔을 끼고 직진했다. 다행히 보도블록을 재정비해서 캐리어를 끄는 데 불편이 없었다. 양옆으로 돼지국밥집과 밀면집, 순대가게가 즐비했다. 편의점과 치킨집, 호프집, 노래방도 줄줄이 이어졌다. 문틈으로 돼지국밥, 밀면, 순대, 치킨 냄새가 새어 나왔다. 오묘하게 섞인 음식 냄새는 식욕을 자극하는 듯하면서 입맛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잔가지처럼 난 골목 사이로 모텔과 여관, 여인숙 간판들이 한낮에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쌔앵, 빨간색 포르쉐가 두 사람 옆을 지나갔다. 열심히 걷던 수정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붉은 꽃무늬 원피스가 땀에 젖어 다리에 척척 감겼다. '바다의 왕자'와 '해변의 연인'을 틀어 놓은 노래방 유리창을 거울삼아 원피스를 고쳐 입었다. 민우는 말없이 캐리어를 끌고 앞서 갔다. 플라스틱 바퀴가 달그락거리며 시끄럽게 울었다. 그의 초록색 학원 가방과 그녀의 분홍색 캐리어가 보색 대비를 이루었다. 언뜻 보면 민우는 호캉스가 아니라 독서실에서 고시원으로 이사 가는 수험생처럼 보였다. 한참을 걸어 씨클라우드호텔까지 오니 해운대 주도로가 나타났다. 횡단보도 건너편은 정말 해운대 '바다'였다.
"좀만 더 힘내. 이제 다 와 간데이."
민우가 뒤를 돌아보며 응원했다. 수정은 그런 민우를 향해 두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체크인만 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공짜 〈호텔 해운대〉 숙박이 어딘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해운대 주도로에서 왼쪽으로 꺾은 뒤, 100미터를 걸어가 양 갈래 길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기서 또 50미터를 걸어가니 〈호텔 해운대〉가 나타났다. 최근 신관을 오픈한 호텔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수목과 잔디밭, 이름 모를 조각품들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자동차박람회에 온 듯한 착각이 들 만큼 화려하고 생경한 외제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수정은 민우에게 다가가서 카카오프렌즈 스티커가 보이지 않게 캐리어 방향을 돌리라고, 배려하면서 짜증이 묻은 말투로 말했다.
"세금 10프로, 봉사료 10프로는 개인부담이어서 지불해 주셔야 합니다. 디파짓은 카드 주시면 오픈해 드리고, 체크아웃 때 결제됩니다, 고객님."
단정한 인상의 호텔리어가 예의바르고 상냥하게 말했다.
"예? 이거 이벤트 당첨돼서 받은 건데요. 제 돈으로 온 게 아니라."
"네, 고객님. 근데 세금을 포함한 부가세는 개별부담이라고 안내되었을 건데요. 주최 측에서는 숙박비와 조식비를 담당하구요. 부가세는 고객님 개별부담입니다."
수정은 앞장과 뒷장을 바꿔서 책을 인쇄했을 때보다 더 머리가 아파 왔다. 전혀 예상을 못 했던 일이었다. 손끝이 딱딱하게 굳고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등줄기를 따라 끈끈한 땀이 흘러내렸다. 이번 달 남은 생활비와 다음 달 카드값을 재빨리 셈해 보았다. 데스크 앞에 서 있던 호텔리어가 한 발짝 물러났다.
그때, 수정의 뒤에 서 있던 민우가 성큼 앞으로 나오더니 네모난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이걸로 결제해 주세요."
아, 이렇게 든든한 애인이라니! 수정을 대신해 젊은 여자 시간강사의 질문에 답하던 날카롭고 패기 넘치던 민우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어떤 상황도 막아내는 든든한 조원이었다. 하지만 추억 속의 민우를 채 복원하기도 전에 수정은 보고야 말았다. 결제 사인을 하는 민우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그의 목소리에 잔뜩 묻어 있는 물기와 웅크린 어깨를. 저 돈이면 민우가 학원 식당에서 돼지불백을 일주일 이상 먹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그렇다고 숙박을 취소하고 나가자는 말을 할 용기도 없었다. 내가 호캉스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부가세를 내도 호텔 숙박비를 생각하면 남는 장사 아닐까. 그동안 데이트 비용을 담당했으니 민우가 이 정도는 해도 괜찮겠지. 수정의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질문과 대답, 의심과 회의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야, 경치 죽이네."
커튼을 걷자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점성이 강한 파란색 바닷물이 출렁출렁 춤을 췄다. 유리창 전면에 채도가 높은 파란색 잉크를 풀어 놓은 것 같았다. 바다의 흰 꼬리를 따라가면 아스라한 수평선에 가닿았다. 11층 호텔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해운대 바다는 정말 이국적이었다. 수정은 이 바다가 제가 알고 있는 해운대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까칠까칠한 백사장에 앉아서 본 풍경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궁에서 베르사유 정원을 본 태양왕의 심정이 이랬을까. 저 넓은 바다를 내 집 마당처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게.
"오길 잘했제?"
수정이 민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민우가 수정의 어깨를 팔로 감싸며 안았다. 막 연애를 시작했던 조원 시절처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수정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키스는 달고 부드러웠다. 3자 모양의 갈매기가 파도소리를 물고 날아왔다. 시원한 파도소리에 부가세가 쓸려 내려갔다.


민우와 수정이 호텔 2층의 중식당 메뉴판을 보고 있었다. 자장면 18000원, 황제짬뽕 39000원, 탕수육 42000원, 다행히 부가세 포함이었다. 수정은 예쁘게 원피스를 입으려고 어제 저녁부터 굶었다. 허기가 지다 못해 뱃가죽이 등에 붙을 것 같았다. 하지만 머뭇거리는 민우의 손을 잡고 식당 앞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호텔 해운대〉를 나와 해운대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누가 뭐라캐도 부산 사람한텐 국빱이 최고제."
민우가 수정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말을 하면서 무언가 미안한 듯 수정의 눈을 살짝 피했다. 수정은 그런 민우를 이해하면서 속상했고, 속상해하는 자신이 속물적으로 느껴지다가 친구의 인스타그램이 떠올라 다시 속상해졌다.
"시험만 붙으면 호텔 쭝국찝에서 탕수육 사줄게."
"아이다, 내 돼지국빱 진짜 좋아한다아이가."
수정이 민우의 손을 꽉 잡으면서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아아는 스타벅스에서 먹을 거데이. 여기 스벅이 씨뷰라서 좋다더라."
민우가 수정의 통통한 볼을 살짝 꼬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첫 데이트를 하는 연인마냥 두 손을 꼭 잡고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민우의 마른 손이 따뜻했다. 얼큰하게 취한 중년의 남녀가 여관 골목으로 사라졌다. 수정은 자신이 그들과 같은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의 해운대는 낮과 또 달랐다. 분주하고 시끄럽던 곳이 적당히 차분하면서 활력이 넘쳤다. 수입맥주를 손에 든 관광객들이 백사장에 들어섰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 무리가 싸구려 폭죽을 밤하늘에 쏘았다. 목줄을 한 시베리안허스키가 등산복을 입은 주인과 산책을 했고, 버스킹을 하는 긴 머리 남자도 있었다. 수정은 샷 추가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민우는 휘핑크림을 듬뿍 올린 카라멜마키아또를 들고 걸었다. 민우가 '여수 밤바다'를 허밍으로 부르자, 수정이 여수를 '부산'으로 바꾸며 따라 불렀다. 바닷바람이 불어와서 한낮의 더위를 식혀 주었다.
두 사람은 국밥집을 나오면서 다시 손을 잡았다. 다정하고 다정하게, 손바닥에서 땀이 날 정도로 손을 잡았다. 마치 다정한 것 이상은 가진 게 없다는 듯,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들의 소박한 순정이 빛나길 바란다는 듯, 손을 놓으면 모래더미 속으로 빠지기라도 한다는 듯이 절대로 손을 놓지 않았다.


눈을 떴다. 수정은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딘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하얀 시트와 포근한 침구, 주황색 조명과 하늘거리는 커튼, 〈호텔 해운대〉였다. 지난 밤, 수정과 민우는 객실로 돌아와 섹스를 했다. 모텔 대실도, 민우의 자취방도 아니었다. 두 사람이 누워도 자리가 충분한 킹사이즈 침대와 적절한 온도, 조도가 낮은 조명까지 있었다. 수정은 평소보다 더 달뜬 표정으로 민우를 바라보았지만 두 사람의 섹스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침부터 움직인 탓에 수정은 너무 피곤했고, 매일 수험서에 시달리는 민우의 체력 역시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수정은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아마도 비싸고 좋은 침구 덕분이 아닐까 싶었다.
"잘 잤나?"
민우가 테라스 앞에 서 있었다. 커튼 사이로 파란 하늘과 해운대 바다가 보였다. 수정이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이자 민우가 커튼을 열었다. 팔짱을 끼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수정은 스마트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조식 먹고 체크아웃 해야겠네. 언제 다시 와볼까. 민우가 원했던 주말 숙박을 하려면 돈이 더 들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호텔 서비스를 더 누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1박2일은 생각보다 짧았고, 호텔에서 즐길 수 있는 무료 서비스는 예상한 것보다 적었다. 천천히 객실 안을 훑어보았다. 호텔명이 나오게 셀카를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쓰지 않은 어메니티는 캐리어 안에 챙겼다. 민우가 9급 공무원이 되어도 특급호텔에 편하게 올 수 없을 것이다. 민우도 나처럼 매달 카드값에 힘들어할 거고, 퇴직과 이직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월요일이 오면 꾸역꾸역 출근을 하겠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건 서로의 마른 손이지 호텔 카드키가 아닐 것이다. 수정은 자꾸만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서 민우를 향해 다가갔다.
민우는 여전히 테라스 앞에 서 있었다. 수정이 가까이 와도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았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고 섰다. 바다를 보는 것 같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수정이 민우에게 팔짱을 껴도 반응이 없었다. 그 순간, 수정은 보았다. 민우의 눈이 어떤 욕망과 야망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바다보다 더 멀리, 바벨탑보다 높게 솟아올랐다. 제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눈. 수정은 자신이 한 생각을 민우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짧은 순간 깨달았다. 그리고 민우가 원하는 것을 자신이 줄 수 없다는 것도. 수정의 손바닥이 얼음 덩어리를 움켜 쥔 것처럼 차가워졌다. 팔짱을 빼면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럼에도 민우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퉁퉁하게 살이 찐 하얀 갈매기들만이 파도소리를 음악 삼아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 본 작품은 2019 청년예술가 생애 첫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가의 작품입니다.















오선영

작가소개 / 오선영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소설집 『모두의 내력』이 있다.


《문장웹진 2019년 10월호》


추천 콘텐츠

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