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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채집 체험학습

  • 작성일 2016-09-07
  • 조회수 3,312


[단편소설]



곤충채집 체험학습



김숨



*


전체적으로 검은빛에, 뒷날개 부분은 야광의 푸른빛이 살짝 도는 제비나비이다. 그가 휘두르는 포충망은 번번이 목표물인 제비나비를 벗어난다. 폭염인 데다 근처에 늪이 있어서 습도마저 높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는 짓무르도록 땀에 흥건히 젖었다. 그는 제비나비 잡는 걸 포기하고 숲을 둘러본다. 숲 여기저기 허공에 대고 포충망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다들 한낮의 몽유병자들 같다. 저마다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홀려 찾아든 숲 속을 혼몽 중 헤매는 듯하다.
키가 훌쩍한 청년이 포충망을 어깨에 사선으로 걸치고, 그의 아들 옆을 조용히 지나간다. 서른 살쯤 되었을까? 청년의 길쭉하고 메마른 얼굴은 햇볕을 받아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본격적인 곤충채집에 나서기 전 강사는 펜션에 딸린 강당에 참가자들을 모아 놓고 곤충채집 도구들과 채집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강당에서 청년은 아들 바로 앞에 앉아 있었다. <별빛농원>의 ‘곤충채집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들 가운데 청년은 유일하게 혼자이다. 참가자는 스무 명 남짓으로, 대개 가족 단위이다.
나비와 나방이 매한가지라고 여길 만큼 곤충에 문외한인 데다 별 흥미가 없는 그는 나흘 전 충동적으로 곤충채집 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도 그는 그런 체험학습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한 달도 더 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동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들을 날카로운 무엇인가로 긁고 다녔다. 한 대도 아니고 스물세 대나. 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cctv카메라에 범행 현장이 고스란히 찍혔는데도 아들은 자신이 한 짓이 아니라고 한사코 우겼다. 그는 완벽한 증거물인 cctv카메라를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들에게 자신이 한 짓을 똑똑히 일깨워주기 위해서.
아파트 관리소장은 일흔 살은 되어 보이는 늙은 사내로, 피해자인 아들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흠집을 원상 복구해 놓으면 고발 조취는 하지 않겠다는 피해자들의 의사를, 법적 보호자인 그에게 전했다.
관리사무실 모니터에 지하주차장이 담겨오는 순간, 그는 곤충 표본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동을 끄고 납작 웅크리고 있는 차들은 마치, 내장을 제거하고 박제 처리한 곤충들 같았다. 표본 상자 속에 질서정연하게 진열된 곤충들 사이를 아들이 하루살이처럼 한없이 가볍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비를 잡으려는 것뿐이었어요.”
“나비?”
“나비가 날아다녀서요.”
“나비라…….” 관리소장은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나비가 어디 있다는 거냐?”
“저기 있잖아요.”
관리소장이 안경을 추어올리며 모니터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기요…… 나비…….”
관리소장이 모니터 화면을 정지시켰다. 선팅을 짙게 한 독일산 외제차가 담겨왔다. 아들이 집게손가락으로 모니터 한 지점을 꾹 찍어 보였다. 지문이 모니터 속 외제차 앞 유리에 묻어났다. 나비가 앉았다가 날아오르면서 일으킨 파문처럼.
“그거 참, 나비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냐?”
“……날아갔어요.”
“날아가? 어디로?”
“몰라요…….”
아들은 입을 멍하니 벌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이없어 하는 관리소장의 눈길이 그를 향하는 순간 그는 수치심과 함께 아들을 향한 분노를 느꼈다.
관리소장이 그에게 내민 견적서는 모두 스물세 장이었다. 견적서마다 적힌 금액은 달랐다. 아들이 무엇인가로 긁어 흠집을 낸 차들 중에는 고급 외제차도 아홉 대나 있었다.
“그 녀석 참, 커서 뭐가 되려는지 끝까지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하네…….”
관리사무실을 나서는 그와 아들의 뒤에 대고 관리소장은 방점을 찍듯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다.
아파트 근처 맥도날드에서 최신 햄버거를 사주면서 그는 아들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뭘로 그랬니?”
“뭐가요?”
햄버거를 베물려다 말고 아들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햄버거 빵과 빵이 벌어지면서 그 사이에 차곡차곡 채워 넣은 내용물들이 게걸스럽게 흘러내렸다. 미간을 찌푸리고 내용물들을 훑던 그는, 마요네즈가 듬뿍 묻은 상추를 손으로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못으로 그랬니? 칼로?”
“내가 안 그랬다니까요.”
졸리는 목소리로 항변하는 아들을 추궁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차라리 나방이라고 했으면 믿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못으로 그랬다면, 그 못을 아들은 어디서 구했을까. 칼로 그랬다면 그 칼은? 지금 아들의 손에는 플라스틱 재질의 투명한 독병이 들려 있다. 텅 비어 보이는 독병은 살충제 용도로 쓰이는 에틸아세테이트로 채워져 있다. 그 안에 곤충을 넣으면, 그 곤충은 수 초 만에 사후경직에 이른다. 청산가리를 쓰기도 하지만, 곤충의 몸체를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는 데다 위해성이 적어 주로 에틸아세테이트를 쓴다던가.
아들이 점점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같아 그는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아들이 굼뜨게 그를 돌아다본다.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아들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뭉개져 있다. 습진 바람을 타고 흙과 썩은 뿌리가 뒤섞여 풍기는 냄새가 훅 끼친다. 새가 한 마리 금을 긋듯 아들과 그 사이를 가르면서 사선으로 날아간다. 목 부위 깃털이 주황빛인 새는 몹시 천천히 난다. 포충망을 휘두르면 새를 얼마든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산비둘기일까? 뻐꾸기……?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새가 있는지 그는 모른다. 강사의 말에 따르면 곤충은 백만여 종이나 된다. 백만여 종 중에 인간인 자신이 알고 있는 곤충은 사마귀, 매미, 땅강아지, 무당벌레, 장수하늘소, 바퀴벌레, 개미 정도가 고작이라고 생각하니 실없는 웃음이 절로 난다.
아들이 손에 든 독병을 무심히 이리저리 흔들며 그에게 다가온다.
“그게 있었으면 잡았을 거예요.”
아들이 그의 손에 들린 포충망을 쳐다본다.
“뭘 말이냐?”
“나비요…….”
평일 대낮 녹음 속에서 보니 아들은 훌쩍 자라 있다. 이목구비도 뚜렷해져 있다. 쌍꺼풀이 져 순하고 천진난만해 보이는 눈이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난다.


흡사 역도 선수처럼 생긴 산벚나무 너머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잡았나 봐요!”
“뭘?”
“나비요, 나비!”
흥분한 아들을 데리고 그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간다.
손에 채집도구를 하나씩 든 사람들이 강사를 빙 둘러싸고 있다. 뭘 잡았나 했더니 제비나비이다. 뒷날개에 푸른빛이 도는 것이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쫓던 제비나비 같다. 기껏 쫓던 제비나비를 다른 사람에게 가로채인 것 같아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쫓았으면 제비나비를 잡았으려나? 하지만 그가 쫓던 제비나비라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5만여 평에 달한다는 숲에는 제비나비가 한두 마리가 아닐 것이다.
강사가 포충망 망 속 제비나비의 가슴 부분을 엄지와 중지로 누른다. 우두둑 소리가 그의 귀에 들릴 정도로 제법 크게 난다.
“가슴 근육을 파괴시키는 거예요.”
마흔 초반쯤 되어 보이는 강사가 짓궂은 표정을 짓는다. 웃을 때 한쪽 볼에만 보조개가 파이는 게,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강사가 망에서 제비나비를 꺼내 남자 아이에게 내민다. 그의 아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작은 남자 아이가 뒷걸음질 치면서 엄마인 듯한 여자를 애원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본다. “우리 애가 겁이 많아서…….” 여자가 마스카라를 바른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도록 눈웃음치면서 제비나비를 받아든다. 여자의 까만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들이 제비나비의 찢긴 날개만 같다. 제비나비의 날개를 손톱 모양으로 오려서, 손톱마다 붙여 놓은 것 같다.
“2분 정도 심장박동이 멈출 때까지 눌러 주세요.”
정확히 2분 뒤, 강사는 여자에게서 제비나비를 받아 흰 기름종이 위에 놓는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삼각 모양으로 접는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나비나 잠자리처럼 날개가 상하기 쉬운 곤충들은 독병 속에 넣지 않고, 파라핀지로 만든 삼각지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고요.”


*


어디선가 슬그머니 나타난 청년이 그의 앞을 지나쳐 간다. 특별히 눈에 거슬릴 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청년이 신경 쓰인다. 물 한 방울 안 섞은 녹색 물감을 덕지덕지 발라 놓은 듯한 수풀로 청년이 걸어 들어가는 것을 바라보던 그는 아들을 이끌고 그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앞서 걷던 아들의 얼굴이 거미줄에 삼켜지는 것을 그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본다. 그는 거미줄을 보았다. 앞에 거미줄이 있다고 경고할 새도 없이 아들의 얼굴은 거미줄에 삼켜졌다. 아들의 얼굴이 거미줄이 아니라 덫에 걸린 것 같다. 한번 걸려들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덫. 찢기고 뭉개진 거미줄이 아들의 얼굴과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 그는 거미줄을 떼어 주려고 아들의 머리로 손을 뻗는다. 그의 손이 닿기 무섭게 아들이 얼굴을 홱 돌려 그의 손을 피한다. 아들의 행동에 무안해진 그는 목덜미에 맺힌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주위를 둘러본다. 그새 청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윙―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전기드릴 나사가 급속히 회전하면서 허공에 구멍을 내는 것 같은 소리는 정수리께서 들려온다. 말벌이다.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뒷걸음치며 말벌을 향해 재빠르게 포충망을 휘두른다. 걸려들 듯 걸려들지 않던 제비나비와 다르게 말벌은 단번에 걸려든다. 씨실과 날실을 반복적으로 교차해 촘촘하게 짠 망 속 말벌이 굉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그가 독병을 망 안으로 밀어 넣자 말벌이 알아서 그 안으로 날아든다. 날아들자마자 5센티 남짓한 독병 속이 천 길 낭떠러지라도 되는 듯 추락한다. 일순간 세상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모든 움직임이 멎은 것 같은 정적이 흐른다. 숲 곳곳에서 간헐적으로 출몰하던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왜 갔니?”
행정구역상 한 동네에 속하지만 그들이 사는 아파트와 그 아파트는 6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들은 정문을 통해 그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을까. 지하주차장 곳곳에 설치된 cctv카메라가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아들은 몰랐던 걸까.
“도대체 왜?”
아들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일으킨다. 물푸레나무의 되착이는 잎들 새로 난분분 떨어지는 빛 조각들 속에 서 있는 아들을 그는 홀린 듯 바라본다. 빛 조각들이 너무 날카롭고 눈부셔서 아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졸음이 몰려온다. 전날 그는 자정 넘어 거의 만취 상태로 귀가했다. 숙취가 남아 있는 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먹은 충무김밥과 라면이 소화가 안 돼 속이 더부룩하다. 서울에서 변산반도 근처에 있는 <별빛농원>까지 그는 꼬박 네 시간을 내달렸다. 아내는 함께 오는 대신에 자녀교육법 특강을 들으러 갔다. 강의 제목이 ‘내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라고 했던가.
아들이 도둑질을 한 것도,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아내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과 불면증,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 경찰이 cctv 속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아들이 저지른 짓은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범행 당시 아들은 공교롭게도 자신이 다니는 초등학교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cctv 속 문제의 소년이 자신의 반 아이들 중 하나라는 것을, 담임선생이 단번에 알아보았다던가.
특별한 줄 알았던 아들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어렵게 인정하고 난 뒤라 아내의 충격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잖아도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그와 아내는 와인을 마시면서 단 하나뿐인 자식인 아들에 대해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여보, 나는 우리 아들이 특별한 줄 알았어. 평범한 보통 애들하고 다른 줄 알았단 말이야. 우리 아들이 지극히 평범한 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평범한 게 최고야. 날 봐…… 평범해도 잘만 살잖아. 평범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우리 본부장 아들이 어려서 미술 영재였다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줄 알아?”
“뭐하고 있는데?”
“마흔 넘었다는데 결혼도 안 하고 아버지한테 용돈 타 쓰면서 살고 있잖아. 본부장이 그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빌딩 한 채는 날렸다던 걸. 미술 학원을 차려준다고 해도 미술 영재였다는 자존심이 있어서 싫다나 봐.”
“1302동 아주머니 아들 말이야…… 초등학교 때 학생회장까지 했다지 뭐야.”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뒤로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더니, 고등학교도 자퇴하고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지 뭐야. 그 집 아저씨는 아들이 꼴 보기 싫어서 지방 발령까지 받았나 봐. 아주머니가 아들 때문에 정신과 약까지 먹는다니…….”
아내에게는 평범한 게 최고라고 했지만, 아들이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그도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내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가 받은 충격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아들이 평범하지조차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불쑥불쑥 엄습했다. 그는 자신이 아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인 아들이 수수께끼 덩어리 같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또래 남자 아이들에 비해 천진난만하고 순한 줄로만 알았다. 외모만이 아니라 매사에 낙천적이고 무던한 자신의 성격까지 빼닮은 줄 알았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내나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아들은 고정 불변하는 법칙처럼 변함이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자신이 한 짓을 담임선생은 물론 반 아이들이 다 알고 있는 데도 학교에도 잘 다니는 눈치였다. 아들이 둔해서인지, 뻔뻔스러워서인지 그는 도무지 판단이 안 되었다. 밥을 먹다가 혹은 티브이를 보다가 문득 얼굴을 바라보면, 아들은 특유의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내에게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모니터 속 cctv에 찍힌 자신을 보고도 아무 반응이 없던 아들을 보면서 그는 그때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낯선 공포감에 휩싸였다. 공포감이 가라앉은 뒤, 자신과 아내에게는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들에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불쑥 들었다. 자신들이 미처 예측 못한 돌연변이적인 그 무엇인가가.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진실이다. 아들이 말해 주지 않는 진실. 아들에게 돌연변이적인 무엇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진실을 알고 싶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cctv를 확인하고 돌아온 뒤로 그는 더더욱 진실을 알고 싶었다. 1박 2일 일정인 곤충채집 체험학습에 아들과 참가한 것도 진실을 알기 위해서다. 푸른 대자연 속에서 살아 있는 진짜 나비를 보면 아들이 진실을 말해 주리라 기대했다.


아들이 휘두르는 포충망 망 속으로 나비가 걸려드는 것을 그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나비를 잡았구나……!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리던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아들 곁으로 다가간다. 제비나비는 아니다. 배추흰나비일까? 나비의 날개는 흰색이다. 윗날개 양쪽에는 검은 점이 눈알처럼 박혔다. 아들이 나비를 꺼내려 망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나비를 꺼내는 과정에서 날개가 찢어진다.
그가 말릴 새도 없이 아들이 멀쩡한 왼쪽 날개를 찢는다.
“무슨 짓이냐?”
아들이 고개를 비틀어 그를 쳐다본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 깃든 얼굴이 그는 순간적으로 소름 끼쳐 더는 말을 잇지 못한다.
“짝짝이잖아요.”
아들이 퉁명스럽게 내뱉는 말을 듣고서야 그는, 나비의 가장 큰 특징이 좌우 대칭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양 날개를 수놓은 색채의 반문이 나비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것을.
아들은 찢던 날개를 마저 찢는다.
불현듯 수년 전 아들과 했던 데칼코마니 놀이가 떠올라 그는 아들이 나비의 날개를 찢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반으로 접은 도화지의 한쪽 면에 물감을 칠한 뒤 접었다 펴, 좌우 대칭 무늬를 만드는 놀이다. 아들은 그가 도화지를 펼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면서 박수를 쳤다.
아들은 좌우 대칭을 맞추기 위해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번갈아가면서 조금씩 찢는다. 마치 색종이를 찢듯 아무 망설임 없이. 살아 있는 나비의 날개를 찢는다. 몸통만 달랑 남을 때까지 아들은 찢고, 또 찢는다.
아들의 손에 들린, 몸통밖에 남지 않은 나비는 징그럽게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그는 조금 전까지도 몸통에 붙어 있던 흰 날개가 한낱 환이 아니었나 싶다. 나뭇잎들 새로 조각조각 쏟아지는 빛들과 녹음을 머금은 공기, 습진 바람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환…… 애초에 몸통에 날개 따위는 달려 있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환이 사라진 것뿐이라고 생각하니 징그러울 것도 없다.
그는 굳은 얼굴로 나비의 몸통을 악착같이 잡고 있는 아들의 손을 바라본다. 색종이를 찢듯, 살아 있는 나비의 날개를 찢을 수 있는 손……. 그 손에 녹슨 못이 들려 있는 상상을 한다. 녹이 묻어나 피처럼 불그스름한 땀이 손금을 타고 흐르는 손을.
한순간 그는 아들의 손이 자신의 손과 닮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깨를 부르르 떤다.
……재미로 나비의 날개를 찢은 것은 아니지 않나. 날개의 좌우 대칭을 맞추려다 보니 그런 게 아닌가. 나비의 평균 수명이 기껏해야 20일에서 25일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위안이 된다.
문득 나비의 날개에도 혈관이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한지처럼 얇고 가벼운 날개 속에 피가 흐르는지.
“갈고리나비야.”
청년이다. 그가 의식 못 하는 새 다가온 청년이 아들의 손에 들린 나비의 몸통을 내려다보고 있다.
“갈고리나비요?”
아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도 따라서 몸을 일으킨다. 눈빛이 불안정한 게, 그는 청년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가하는 곤충채집 체험학습에 혼자 참가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무려 3백만에 달한다는 청년 백수일까.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 과장인 그는 자신이 곤충채집 체험학습에 참가하고서야 청년 백수 시대를 절감할 줄은 몰랐다.
아들과 청년 사이를 가로막고 서면서 그는 청년에게 묻는다.
“나비에 대해 잘 아나 봐요.”
청년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를 뜯다. 회오리치듯 어지럽게 자란 풀 더미로 성큼 발을 내딛는다.
“갈고리나비래요.”
그리고 아들은 손가락을 벌려 나비의 몸통을 땅에 떨어뜨린다.


*


그는 산벚나무 밑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산벚나무 줄기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는다.
아들이 포충망을 휘두르면서 산벚나무 뒤로 간다. 천연덕스럽고도 구슬픈 뻐꾸기 울음소리가 먼 듯 가까이에서 들린다.
잠드는 줄도 모르고 잠든 그는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축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진다. 벌레가 문 것일까. 날카로운 것이 뺨을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못 같은 것이…… 아들이 한쪽 손에 못을 들고 동굴 같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꿈을 꾼 것도 같다.
그런데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들을 찾아 정신없이 숲을 헤매던 그의 앞에 늪이 불쑥 펼쳐진다. 괴괴한 기운이 감도는 늪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아들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정욱아!”
아들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부르면서 늪으로 발을 내딛던 그는 멈칫한다. 아들이 아니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들끓는 하루살이들 때문에 청년을 아들로 착각했다. 청년이 그를 향해 돌아선다.
“……왜요?”
청년이 그렇게 물어서, 스무 살쯤 나이를 훌쩍 먹은 아들이 서 있는 것만 같다.
“혹시 내 아들 못 봤습니까?”
“설마요……!”
탄식에 가까운 청년의 목소리가 불길하게 들려 그는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라니요?”
“설마요!”
그는 청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온통 개구리밥으로 뒤덮여 의뭉하기 그지없는 늪을 등지고 서 있는 청년으로부터 서둘러 돌아선다.


<별빛농원>에 딸린 펜션 쪽으로 허겁지겁 발을 내딛던 그는, 노란 등산복 차림의 사내가 손도끼로 썩은 나무 밑동을 파헤치는 광경을 목격한다. 참가자들에게 곤충채집에 필요한 도구를 나누어줄 때 강사는 원하는 이들에 한해 손도끼를 나누어주었다. 아들은 형제들 사이에 서서 사내가 손도끼로 나무 밑동을 인정사정없이 내리찍는 걸 구경하고 있다. 아들은 그를 보고도 무시한다. 자신의 인생과 무관한 사람을 쳐다보듯 흘끔 쳐다보고는 그만이다. 형제들 사이에 서 있어서인지 그는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내의 아들 같다. 사내의 아들들도 아들만큼이나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다.
사내가 등산 모자를 벗고 수건으로 이마와 머리를 훔친다. 휑한 머리가 드러나자 사내의 모습이 희극적으로 변한다. 가리가리 파헤쳐진 나무 밑동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의 형상이다.
“아버지 노릇하기 어렵네요.”
사내가 불룩 나온 배를 내밀고 그를 향해 실없어 보이는 웃음을 짓는다.
“그러게요.”
그는 건성으로 대꾸하고 아들의 손을 잡아끈다. 아들은 발을 질질 끌면서 마지못해 그를 따라온다.


배회하듯 숲을 헤매던 그와 아들은 나무 밑동 앞에 되돌아와 있다. 삼부자는 그새 그곳을 떠나고 없다. 아들이 나무 밑동 앞으로 가 쪼그리고 앉는다. 무기력한 심정으로 아들의 숱 많은 뒤통수를 응시하던 그는 아들 곁으로 다가가 앉는다.
“딱정벌레예요.”
삼부자가 버리고 간 나무 밑동에서 아들은 딱정벌레를 세 마리나 잡는다. 그는 건강검진 때 쓰는 배변봉투처럼 생긴 비닐봉지 속에 딱정벌레들을 집어넣는다. 채집 도구들을 나누어줄 때 강사는 딱정벌레나 사슴벌레 같은 곤충을 넣을 비닐봉지도 대여섯 장씩 나누어주었다.
“그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왜 갔니?”
“딱정벌레요.”
“딱정벌레가 왜?”
“같이 넣으면 어떻게 해요.”
“그 아파트에는 왜 갔니?”
“한 봉지에 넣으면 서로 싸우니까 따로 넣으라고 했잖아요.”
그는 기껏 비닐봉지에 넣은 딱정벌레들을 도로 땅에 쏟는다.
“무슨 색깔이었니?”
“뭐가요?”
“나비 말이야, 날개가 무슨 색깔이었니? 노란색? 흰색? 검정색?”
“모르겠어요.”
“어떻게 모를 수 있지?”
“모르겠으니까요…….”
아들이 재미없는 책을 읽듯 중얼거린다.
“거의 잡을 뻔했단 말이에요…… 거의 잡을 뻔했다가 놓쳤단 말이에요.”
건성으로 중얼거리는 아들의 얼굴이 그 어느 때보다 아무 생각이 없어 보여서, 그는 더는 아무 말도 묻지 못한다.


삼부자는 이팝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빵, 과자, 주스 등을 먹고 있다. 캔에 든 콜라를 마시던 사내가 손짓으로 아들과 그를 부른다. 사내가 봉지에 든 빵을 아들에게 권한다. 아들이 그의 눈치를 살피는 척하더니 빵을 받아든다.
형제가 자신들이 잡은 곤충들을 아들에게 구경시켜 준다.
“둘째는 하마터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습니다.”
“그래요?”
“첫째 낳고 묶었다가 3년 만에 풀었습니다. 하나보다는 아무래도 둘이 나을 것 같아서요. 큰애가 유치원에 입학하던 날 아내가 생맥주나 한 잔 하자면서 집 앞 호프집으로 끌고 가더니 진지하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죽고 난 뒤에 아들이 혼자 세상에 남겨질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면서 하나 더 낳자고요. 평소 같으면 돈 아깝다고 노가리나 시켜 주던 아내가 웬일로 훈제오리를 다 시켜 주나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내 말이 맞는 것도 같기도 하고, 알딸딸하니 취기가 올라오기도 해서, 기네스 한 병 시켜 주면 그러겠다고 했더니 바로 시켜 주더라고요.”
그는 자신 역시 아들을 낳고 정관 수술을 받았다고, 사내에게 말하려다 관둔다. 아들이 세 살 되던 해 그는 스스로 비뇨기과를 찾아가 정관수술을 받았다. 그가 다니던 공단 사무실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비뇨기과 병원에서였다. 그즈음 점심을 주로 해결하던 푸드 코트가 있던 건물 8층에 비뇨기과 병원이 있었다. 수술대에 오르자 도시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마취 주사를 놓을 때 따끔했던 것 말고는 특별히 불편했던 기억은 없었다. 수술이 끝난 뒤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푸드 코트가 있는 지하로 내려가 전주콩나물국밥을 한 그릇 사먹었다.
사내가 그에게 아들의 나이를 묻는다.
“열두 살입니다.”
“딱 중간이네요.”
“중간이요?”
말뜻을 못 알아듣는 그에게 사내가 자신의 아들들 나이를 말해 준다. 아들은 사내의 첫째 아들보다는 두 살 적고, 둘째 아들보다는 두 살 많다. 사내의 말대로 아들은 딱 중간이다.
사내는 신상명세서를 작성하듯 그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묻는다. 그가 한 마디를 하면 서너 마디를 한다.
“참, 천재의 첫째 조건이 뭔지 아십니까?”
“글쎄요…….”
천재가 되는 데도 조건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조금 생각해 보니 있을 것도 같다. 둘째 조건도, 셋째 조건도 아닌 첫째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제 아내가 그러는데 욕망이랍니다. 아내가 첫째는 일찌감치 포기했는지, 요즘 둘째의 욕망을 키우는 데 아주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물을 주면 무럭무럭 자라는 콩나물처럼, 욕망도 자랄 수 있다는 것 그는 미처 몰랐다.
“그럼 둘째 조건은요?”
“둘째 조건이요?” 사내가 그것은 미처 생각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게요, 아내한테 한번 물어볼까요?”
사내가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내더니 통화를 시도한다. 전화를 받지 않는지 혼잣말을 투덜거린다.
“제 아내가 워낙 바빠서요…… 수학 학원을 하거든요, 제 아내가요. 그쪽 아내 분도 바쁘신가 봐요. 함께 못 오신 걸 보면요.”
“강의를 들으러 가서요.”
“강의요?”
“내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네?”
“그게 강의 제목이랍니다.”


*


등을 기대고 잠들었던 산벚나무 근처에서 그는 청년과 다시 만난다. 아들이 청년을 흘끔흘끔 쳐다보면서 지나쳐 간다. 그는 무시하고 지나쳐 가려다 말고 청년 곁으로 다가간다.
“저기…….”
청년이 그를 빤히 쳐다본다. 그는 청년에게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나비를 봤습니다.”
“……나비요?”
청년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생전 처음 보는 나비였습니다. 내 평생 빛깔이 그렇게 황홀한 나비는 처음이었습니다.”
“…….”
“내 아들이 잡을 뻔했다가 놓치고 말았지 뭡니까. 거의 잡을 뻔했다가요……!”
그는 진지하다 못해 정색을 하고 말한다. 자신이 청년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비를…… 어디서 봤는데요?”
그는 손을 들어 방금 자신과 아들이 걸어 나온 수풀을 가리켜 보인다. 청년은 그의 말을 선뜻 믿지 못하는 눈치다.
“저기……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
“나비하고 나방하고 도대체 뭐가 다릅니까?”
“…….”
“나비하고 나방하고…….”
“정지해 있을 때 달라요.”
“정지해 있을 때요?”
“나방은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있지만, 나비는 날개를 등 뒤에서 합쳐 곧추세우고 있어요…….”
그는 청년이라면, 지하주차장에서 쫓던 것이 나비였다는 아들의 말을 믿어 줄 것 같다.
청년이 그에게서 돌아선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수풀로 걸어 들어간다. 그새 그늘이 진 수풀은 깊고 비밀스러워 보인다. 그는 청년이 수풀 너머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는다.
정적이 흐르는 수풀 너머에 지하주차장이 있을 것 같다. 박제한 곤충들 같은 차들 사이를 아들이 포충망을 휘두르면서 뛰어다니고 있을 것 같다.


강당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강사는 사람들에게 곤충들을 종류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시킨다. 촉수나 다리가 부러졌거나, 내장이 터져 흘러나왔거나, 날개가 기형적으로 말렸거나, 몸통이 뒤틀린 곤충들은 아까워하지 말고 버리라고 한다.
“자, 지금부터 각자 잡은 곤충을 가지고 표본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강사는 호랑나비를 가지고 표본 만드는 시범을 보인다. 그는 아들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강사가 주사기를 사용해 뜨거운 물을 호랑나비의 날개에 주입하는 것을 지켜본다. 경직된 호랑나비를 스티로폼 위에 놓는 것을, 양 날개가 수평이 되게 하고 그 둘레를 따라 군데군데 핀을 꽂아 고정시키는 것을, 더듬이와 머리도 핀으로 고정시키는 것을.


*


아들이 잡은 딱정벌레는 플라스틱처럼 굳어 핀의 감옥 속에 갇혀 있다. 형태를 고정시키기 위해 꽂은 핀의 개수는 모두 스무 개다. 딱정벌레는 부러진 다리 하나 없이 윤기가 흐르는 게 살아 있는 것 같다.
펜션 마당에서는 야간 채집 준비가 한창이다. 그새 등산복을 벗고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은 사내가 손짓으로 그를 부른다. 그는 사내와 함께 강사를 도와 수은등과 발전기를 나른다. 사내는 신이 나 있다. 야간 채집은 그도 은근히 기대가 된다. 뭔가 특별하고 즐거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어스름이 깔려오면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숲을 배경으로 흰 스크린이 설치된다. 숲 옆은 계곡이다. 사인용 식탁보를 두 장 합친 크기의, 광원(光源)을 쏠 스크린이다.
강사는 곤충채집의 하이라이트는 야간 채집이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흐린 밤이 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를 전하면서, 오늘 같은 밤이야말로 야간 채집을 위한 최적의 밤이라고 알려준다. 주로 야간에 활동하는 곤충들은 주광성으로 빛을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란다. 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달도, 별도 뜨지 않는 칠흑 같은 밤에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곤충을 채집할 수 있다. 그런데 곤충들이 빛을 찾아 날아드는 시간이 달라서, 시간대별로 채집되는 곤충의 종류가 다르다.
검푸른 숲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어서 스크린은 눈에 확 띈다. 돔 구장 같은 숲이 통째로 출렁 폭발할 듯 흔들린다. 오늘 밤 곤충들의 무덤이 될 스크린에 잔잔하게 잔물결이 인다.
스크린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청년을 찾는 걸까. 참가자들이 펜션 식당에 모여 저녁을 먹을 때도 청년은 보이지 않았다.
“나비를 잡으러 갔다.”
“나비요?”
아들이 눈을 껌벅거린다.
“그 아저씨 말이다.”
“알고 있어요.”
아들의 무심한 대답에 그는 기습을 당한 기분이다. 그가 청년에게 나비를 봤다고 말하는 소리를 아들은 듣지 못했다. 그가 수풀로 드는 것을 아들은 보지 못했다.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있었니?”
“…….”
“지하주차장에서 네가 쫓던 나비 말이다……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있었니?”
“날개요?”
“차창에 붙어 있을 때, 나비가 날개를 수평으로 펴고 있었니?”
“…….”
“……그게 아니면 등 뒤에서 곧추세우고 있었니?”
“기억 안 나요.”
그는 스크린 너머 숲으로 눈길을 준다. 막막한 심정으로 숲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까마득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5년도 더 전 일이었다. 충북 괴산에서 농사짓고 살고 있는 큰형이 택배로 배추와 감자, 오이, 방울토마토 등을 부쳐온 적이 있었다. 농약 한 방울 안 쳤다는 배추에는 연두색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 제법 귀여운 애벌레를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들은 그걸 기르자고 제 엄마에게 졸랐다. 벌레라면 질색하는 아내가 난처해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번 길러보지 뭐.”
그는 애벌레가 달라붙어 있는 배춧잎을 따 베란다로 가져갔다. 천사나팔꽃 화분 옆에 배춧잎을 놓아두면서 아들에게 말했다. 때가 되면 나비가 되어 날아갈 거라고……. 다음날 잠에서 깨자마자 아들은 베란다로 달려갔다. 천사나팔꽃 화분 옆에 놓아둔 배춧잎을 살피던 아들이 쿵쿵 발소리를 내며 주방으로 달려가더니 제 엄마에게 따졌다.
“엄마가 내 애벌레 버렸어요?”
“아니…….”
“그럼 애벌레가 어디로 갔어요? 엄마가 내 달팽이도 버렸잖아요?”
“달팽이……?”
대형마트에서 산 관상용 달팽이를 아들 모르게 버린 적이 있는 아내는 난처해했다. 그녀는 자신이 관상용 달팽이를 버린 사실을 아들이 까맣게 모르고 있는 줄 알았다.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그는 아들에게 말했다.
“애벌레가 글쎄 밤사이에 나비가 되어 날아가 버렸지 뭐야. 베란다 창을 열어 주자 팔랑팔랑…….”
“그래요? 무슨 색깔이었는데요?”
“그러게…… 무슨 색깔이었더라…….”
당황한 그는 말끝을 얼버무리고 베란다 창 너머를 응시했다. 아파트가 보였다. 아들이 지하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을 못으로 긁고 다닌 그 아파트였다.
“저기로 날아갔어요?”
“그래, 저기로…….”
아들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쫓던 나비야말로 환(幻)이었을 수도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어쨌든 아들은 나비를 보기는 본 것이니까. 아파트 관리실의 흑백 모니터에 아들의 지문이 묻어나는 순간, 지문의 소용돌이치는 무늬 속으로 그 어떤 색채가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그는 언뜻 본 것도 같았다.
점점 더 많은 곤충들이 스크린으로 날아든다. 곤충들이 스크린에 달라붙는 소리는 마른 땅에 소나기가 내리는 소리를 방불케 한다. 그는 곤충들이 재 같다. 검게 타버린 숲에서 날아온 재.
“생각해 보니까, 나도 본 것 같다.”
“뭘요?”
“나비를…….”
아들이 그를 쳐다본다.
그가 천사나팔꽃 잎 위에 놓아 준 애벌레…… 애벌레는 베란다 하수구 구멍 근처에서 까맣게 말라죽어 있었다. 사라진 지 한 열흘 만에 말라죽은 채로 나타난 애벌레를 그는 좌변기에 버렸다.


“참, 아내하고 통화를 했는데…… 벌써 그 강의를 들었답니다.”
“강의요?”
“내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그 강의요.”
“그런가요…….”
“다른 강의도 꼭 들어 보라고 권하던데요.”
“다른 강의요?”
“내 아이는 여기 있습니다…….”
“네?”
“강의 제목이요.”
사내가 실없이 흘리는 웃음소리를 지우면서 발전기가 우웅우웅 돌아간다. 최초의 빛처럼 수은등이 켜진다.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른다. 스크린은 수은등 불빛을 고스란히 흡수한다. 수은등이 정면으로 내쏘는 부분을 제외하고, 스크린은 전체적으로 푸른 야광 빛이다. 스크린을 통과한 빛에 숲이 반사되어서다.
빛을 찾아 날아든 곤충들이 스크린에 떨어진다. 나방, 잠자리, 좁쌀만 한 곤충부터 엄지손가락만 한 곤충까지.
아이들이 독병으로 스크린에 달라붙어 있는 곤충들을 훑고 다닌다. 신이 난 아이들은 마치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 같다.
“어서 가라!”
그는 아들의 등을 떠민다. 망설이던 아들이 푸른 야광의 불빛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아들의 손에 들린 독병이 빛을 찾아 스크린으로 날아든 곤충들을 가리지 않고 삼키는 것을 그는 묵묵히 지켜본다.(끝)







소설가 김숨

작가소개 / 김숨

- 1974년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투견』, 『침대』, 『간과 쓸개』, 『국수』와 장편소설 『백치들』, 『철』, 『나의 아름다운 죄인들』, 『노란 개를 버리러』,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바느질하는 여자』, 『L의 운동화』, 『한 명』이 있다.


《문장웹진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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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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