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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길34, B102호

  • 작성일 2013-10-04
  • 조회수 1,163

 

 

무릉길 34, B102호

 

 

원종국

 


 

 

무릉길34,B102호-삽화

 

 

    권력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권위가 생긴다. 권위가 널리 퍼져 확고해지면 명예를 갖춘 신분이 되고, 이것이 지속되어 질서가 잡히면 역사가 된다. 그렇다면 권력은? 권력은 물론 돈이 만든다. 돈. 그런데 빌어먹을 돈은 어떻게 만들지?

 

*

 

    그는 라운딩하는 틈틈이 컵라면을 먹었다. 시장은 인터벌이 길거나 몹시 짧았다. 골프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루룩. 한참 만에 휘두른 공도 벙커나 러프로 들어가기 일쑤였고, 어느 땐 대충 휘둘러 워터해저드에 집어넣기도 했다. 서슬에 청둥오리 몇 마리가 물 위에 앉은 채로 퍼덕거렸다. 그때마다 시장의 캐디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추켜올렸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제스처였다. 후루룩. 그러니 그 역시 대충 휘둘러 가며 보조를 맞춰 줄 수밖에 없었다. 시장 선거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데다, 박빙인 상황이었다. 만약 시장이 재임에 성공한다면…… 그로서는 누가 당선되든 그 밥에 그 나물이었지만, 어쨌든 현 시장을 언짢게 해서 좋을 건 없었다. 헤게모니라는 게 잃긴 쉬워도 되찾는 건 만만치 않은 법이니까. 후― 후― 후루룩, 후루룩. 한데 선거운동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 그의 집까지 내방했으면서도 시장은 대체로 침묵 모드였다. 1, 2번 홀에서 티샷을 할 때 의례적인 인사말 몇 마디를 건넨 것 외엔 “거참 되게 꼬이네”, “어허, 오늘 왜 이렇게 안 맞지?” 하는 정도의 푸념만 이따금씩 흘리는 정도였다. 후― 후―.
    시장이 페어웨이와 러프 혹은 벙커를 오가는 틈틈이 그는 훌쩍훌쩍 라면 국물을 마셨다. 심지어 평소엔 눈길 한 번 준 적 없던 영양성분표를 꼼꼼히 챙겨 읽기까지 했다. 열량,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나트륨…… 그리고 스프에 들었다는 무슨무슨 조미분, 풍미분, 추출분말 들까지. 꼼꼼히 읽다 보니 나트륨의 경우엔 컵라면 한 개만 해도 하루 권장량의 72퍼센트나 포함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게 미안했던지 용기엔 표준조리법대로 조리했을 때, 그러니까 국물을 포함했을 때 100그램당 나트륨 함량이 별도로 표기되어 있었다. 요컨대, 웬만하면 국물은 먹지 말고 그냥 버리라는 소리였다. 그는 입안 가득 머금은 라면 국물을 뱉은 뒤에 용기를 옆으로 치워 놓았다. 하루에 한 개 이상의 컵라면을 꼬박꼬박 먹는 그로서는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정보였다. 어제만 하더라도 아침엔 라면 국물에 햇반을 말아 해장했고, 점심엔 별식으로 비빔면을, 저녁엔 소주에 곁들여 원조김밥과 컵라면을 먹지 않았던가. 시장과의 라운딩이 끝나면 나트륨 과다 섭취의 부작용에 대해 검색해 보리라 생각하고 있을 때,
    탱그랑,
    시장이 알바트로스를 했다. 이 미친놈이, 파(par) 파이브 홀에서 두 타 만에 공을 홀컵에 넣은 것이었다. 티샷이 대단히 정교한 장타였던지라 긴장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 파 파이브 홀에서 알바트로스라니. 시장은 캐디와 하이파이브를 하더니 가벼운 포옹에 이어 볼키스를 하며 그린 위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17번 홀에선 동타를, 18번 홀에 가선 슬쩍 역전을 허용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부러 져주는 것과 따라갈 수 없는 것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제집에 달린 골프장인데도 알바트로스를 쳐본 기억이 한 번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사기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는 남은 홀에서 연이어 버디를 추가했지만 추격은커녕 타수만 더 벌리고 말았다.
    냉장고에는 갈증을 해소시켜 줄 만한 게 없었다. 생수나 탄산음료는 바닥났고, 우유나 과일주스 같은 건 들여놓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고, 시원한 캔 맥주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그는 애꿎은 냄비뚜껑을 열었다가 오만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언제 끓인 건지 기억 없는 김치찌개엔 하얀 곰팡이가 눈처럼 소복하게 덮여 있었다. 김밥이나 떡볶이, 피자 같은 걸 샀을 때 따라온 단무지와 오이피클이 눈에 띄기는 했지만 적당한 선택은 아닌 듯싶었다. 그는 냄비에 든 걸 개수대에 쏟아 붓고 나서 한참 동안 수돗물을 틀어 흘려보냈다. 거름망이 그득해서인지 물은 아주 천천히, 악취를 있는 대로 발산한 후에야 스미듯 하수구로 내려갔다. 꼴꼴꼴꼴.
    컵에 수돗물을 받아 커피믹스를 억지로 녹인 뒤 냉동실에 굴러다니던 얼음 몇 덩이를 집어넣어 마셨더니 그런대로 갈증은 해소되었다. 수돗물에선 비릿한 소독내와 흙내, 얼음에선 냉장고 냄새가 뒤섞인 다소 알싸한 풍미가 뒤늦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는 얼음 한 덩이를 와짝 씹었다가 개수대에 그대로 뱉어냈다. 서너 시나 됐을까. 더위도 더위지만 끈적끈적한 습기는 말 그대로 장난이 아니었다. 이놈의 더위가 언제나 한풀 꺾이려나……. 주인집인 이층 베란다에서 돌아가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창문 위쪽에서 숨 가쁘게 들려왔다. 올 여름만 지나가면 가을이나 겨울엔 풀 옵션 원룸으로 이사할 작정이었다. 올 여름만, 어떻게든…… 빨리 가을이 되어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면.
    자리로 돌아와 보니 그와 시장은 일몰을 배경으로 마주서 있었다. 해안가로 도열한 해송 숲과 갈매기들이 노을빛에 곱게 물들어 있었다. 캐디들은 시장이 라커룸으로 돌려보낸 듯했다. 시장은 부러워 죽겠다는 듯, 그의 집을 둘러싼 풍광에 대한 감탄으로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눈이 달렸다면, 당연히 좋은 것도 볼 줄은 알겠지! 그러나 그는 과찬이시라며, 다소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는 대문자 Y 모양의 오른쪽 가지 끝에 산다. 도시를 통틀어 가장 전망이 좋은 집 중 하나이고, 가격 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테라스에 서면 눈앞에 광각 렌즈를 낀 것처럼 옥빛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말하자면 왼쪽으로 한껏 튼 고개가 오른쪽 끝으로 휙 돌아갈 때까지 바다가 보인다. 완만한 곡선으로 잔잔하게. 드문드문 섬들이 아스라이 떠 있는데, 해무가 깔린 아침나절이나 노을빛에 일렁이는 저녁이면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아름다웠다. 현실이라기엔 지나치게 환상적인, 아니 이상적인 그림이랄까. 고개를 숙이면 백여 종의 조경수로 빼곡한 정원이 길쭉한 타원형으로 가로놓였다. 정원에 잇대어 바다를 바라보며 라운딩할 수 있는 퍼블릭 코스 골프장과 중대형 요트 대여섯 대를 한꺼번에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이 각각 하나씩. 이백 명쯤 모여 파티를 열 수 있는 프랑스식 정원과 로마풍 분수대, 수영장. 그리고 분재, 수석, 연못이 고즈넉한 일본식 후원(後園)까지…….
    그러나 골프장을 조성하는 바람에 이런 귀찮고 부담스런 인사들이 꼬인다 싶으니 짜증이 솟았다. 이참에 골프장을 밀어버리고 놀이공원이나 만들까 생각했다가 그는 도리질했다. 하루 종일 자지러지는 어린애들 비명소리나 듣는 것보단 그래도……. 가만, 그렇다면 대단위 문화공연장은 어떨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같은 폼 나는 것으로……. 그의 상상력이 마구 날갯짓을 펼치려는 찰나 시장이 초를 쳤다.
    “전엔 여기에 뭐가 있었는 줄 아세요? 그러니까 삼십여 년 전에.”
    “…….”
    “바다요. 그냥 바다가 있었죠. ……사람들은 우리 이상시를 더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보다 칠 대 앞선 시장님 시절의 얘기죠. 그래서 놀고 있던 동부지역의 구릉을 깎아다가 여길 메웠어요. 그 자리엔 뉴타운을 만들고. 그 양반도 갈아엎고 뭘 새로 조성하는 거 엄청 좋아했거든요. 아, 물론 경기부양책의 일환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누구나 올 수 있는 생태공원을 조성했는데, 그 다음다음 시장님 시절에 재정난이 극심했어요. 결국 민간에 분양하고 말았죠. 그러고 한참 지난 어느 날, 우리 시에 투자의 귀재가 나타났던 겁니다. 말 그대로 혜성처럼. 허허, 사실 우리한테는 ‘듣보잡’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이상시에서 돈이 제일 많은 거물이 되셨더라구요. 허허허.”
    삼십 년 전, 여기 간척하던 시절을 알고 있다고? 이 자식이 지금 뭔 소릴 하려고 설레발을 치는 거지? 그러나 시장은 계속 떠들고, 그는 선풍기를 바짝 끌어다 놓고 앉아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돈을 그저 들고만 있는 건 해변에 모래성을 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재료는 쌔고 쌨지만 그것만으론 성이 탄탄해질 수가 없어요. 밀물에 파도가 살랑살랑 치고 들어오면 금방 허물어져 버린다 이 말입니다. 무슨 얘긴지 아시지요?”
    결국 선거자금 달라는 소리였구나! 씹탱이.
    “제가 뭘 아나요. 그저 우리 회사엔 딸린 식구들이 많으니까, 열심히 사업만 했던 거구…….”
    씹탱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지금 사모님하고, 이혼 생각하고 있지요? 어휴, 큰일 나십니다. 회장님 재산이 한두 푼도 아닌데, 그거 재산분할하면 반 토막 나십니다. 허허허. 사모님하곤 그만 화해하시고…… 차라리 저를 밀어 주세요. ……이젠 회장님도 정계에 진출하실 때가 됐어요. 이번에 잘 밀어 주시면, 다음번엔 또 제가 화끈하게……. 허허, 나중 일을 알 수 있나요? 어떻게 될지. 허허허.”
    이 새낀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길래 이렇게 능청스럽게 연기를 잘할까? 자아도취일까, 과대망상일까? 그보다도, 말 같잖은 이혼 소문은 어디까지 퍼져 나간 걸까? 아내가 잠수를 타서 몇 달째 행방이 묘연한 건 사실이지만, 가뜩이나 그룹사 전체의 성장세가 둔화된 마당에 이런 루머가 자꾸 돌아서는 곤란했다. 그는 그저 이상시에선 이혼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는지 궁금해서 전담 변호사에게 넌지시 물어봤을 뿐이었다. 그 자리에 집사와 비서가 함께 있긴 했지만, 그들이 외부에 말을 흘렸을 리도 없고…… 그때,
    투둑,
    현관문에 뭔가 부딪히고 나서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집이었다면 신문이 배달되어 온 것으로 착각했을 법한 소리. 그는 잠시 인상을 찡그리고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인기척은 더 없는지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깐 서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에 창문들이 일제히 흔들렸을 뿐.

 

*

 

 

   녀석들 중 누군가가 해코지를 하고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현관문 앞에는 신문지와 구덕구덕 말라비틀어진 짜장면 덩어리, 그리고 군만두 따위가 흩어져 있었다. 근처 어느 집에서 내놓은 중국 음식 찌꺼기를 신문지에 싸인 채로 투척한 모양이었다. 접시와 함께 던지지 않은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나. 하, 나, 이런 피라미 같은 놈들을……. 그는 머리만 현관 밖으로 살짝 내놓은 채 집 앞으로 면한 골목 쪽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다른 소리가 더 날 리 없었다. 녀석 혹은 녀석들은 골목 끝의 전봇대 뒤쯤에서 이쪽을 주시하며 흐뭇해하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쫓아 나간다 하더라도 T자 형태로 갈라진 그쯤에선 어느 쪽으로 도망쳤을지 알 수 없는 데다, 이게 만약 유인책이라면 괜한 우세를 당할 가능성만 높았다. 어쩌면 짬뽕 국물이 든 비닐봉지가 그의 이마를 향해 날아올지도 몰랐다.
    하, 나, 이런……. 그는 빗자루를 찾아다가 음식 찌꺼기와 신문지를 담벼락 아래 구석으로 쓸어 붙이고 나서 담장 밑에 바짝 붙어 앉았다. 일부러 담 너머로 고개를 빼고 들여다본다면 모를까, 골목에 서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을 만한 자리였다. 그는 담벼락에 등을 붙이고 앉아 골목 쪽 동향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다.     이젠 그늘이 졌지만 한낮에 달궈진 담장은 여전히 뜨끈했다.
    녀석들을 처음 만난 건 보름쯤 전이었다. 입사 오 년 만에 정규직 사원으로 전환된 대학 동기가 제대로 한턱 쏜다기에 토요일 저녁부터 부어라 마셔라 ‘밤드리 노니다가’ 다음날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 입구 PC방 앞에서 조무래기 네 명이 옥신각신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 사학년이나 오학년 정도. 덩치는 웬만큼 자랐지만 아직 어린 티가 역력한 사내놈들이었는데, 샌님 같은 인상의 아이 하나를 벽 쪽에 몰아붙인 채로 뭔가를 계속 치근덕거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삥을 뜯고 있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은 데다 오래지 않아 국가를 위해 봉사할 공무원이 될 사람으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는 건 뒤늦은 합리화이고, 당시에 그는 해장술에 얼근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는 별 관심 없는 척 몇 걸음 지나쳤다가 되돌아와 녀석들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를 괴롭히면 쓰겠느냐, 너희 중 누군가가 이런 처지에 놓인다면 좋겠느냐, 벌써부터 이런 못된 짓을 배우면 장차 뭐가 되겠느냐, 너희 같은 놈들 때문에 나라가 화합을 못 하는 것 아니냐……. 처음엔 녀석들도 사뭇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듣는 척했다. 그러나 설교가 길어진다 싶었던지 눈빛을 교환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더니 한꺼번에 우르르 내빼버렸다. 그로서는 여러 모로 다행스런 일이다 싶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구했고, 어른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다했다. 되바라진 청소년들을 꾸중하다 도리어 폭행을 당했다는 뉴스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려오는 시절 아닌가. 그렇지만 괴롭힘을 당한 아이에게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진지하게 물었을 때, 사태가 이상한 쪽으로 변질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고맙기는커녕 왜 남의 일에 간섭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냐는 표정. 녀석들 틈에 끼어 있을 때보다도 더 울상이 된 아이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큰길 쪽으로 멀어져 가는 아이를 오랫동안 눈으로 배웅하면서, 그 역시 괜한 참견을 했나 싶어 한참 동안 멀거니 서 있었다.
    한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집에 당도해 대문을 열 때 누군가 뒤쪽 멀리에서 그를 미행하고 있다는 낌새가 느껴졌다. 그때라도 적당히 연기를 하며 다른 골목으로 빙빙 돌며 따돌렸더라면 좋았을 텐데, 조무래기들이라고 얕잡아본 게 실수였다. 몇 계단 내려서 열쇠로 현관문을 따려는 찰나, 골목 쪽에서 담 너머로 고개를 빼고 들여다보는 한 녀석의 얼굴이 빼꼼 비쳤다. 그가 돌아보자 잽싸게 담 아래로 몸을 숨겼다가 이내 어딘가로 내달리는 소리가 탁탁탁탁 골목을 울렸다. 그건 일종의 선전포고였고,
    싸움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는 녀석들의 소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지만, 녀석들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에게 분풀이를 할 수 있었다. 골목을 지나치며 그의 현관문에 뭔가를 투척하는 것은 대표적인 수법이었다. 골목 옆에 바로 붙은 반지하 방이다 보니 지나가는 척 걸어가다 뭔가를 슬쩍 던져 넣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레이더망조차 갖춰지지 않은 대공포 부대에 출현하는 스텔스기라고나 할까. 먹다 남은 수박껍데기 토막이나 물러터진 토마토 같은 건 그래도 귀여운 장난에 속했지만 고양이가 헤집어 놓은 20리터짜리 쓰레기봉지 따위가 툭 터져 있을라치면 꼭뒤가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런 일로 경찰에 신고를 하기도 뭣하고, 개인 비용으로 CCTV를 설치하기도 뭣했다. 주변의 초등학교를 돌며 탐문을 한다든가 골목 한쪽에 잠복을 하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생각해 보면 그 역시 우스운 꼴이었다. 이번 유월과 칠월에 치른 공무원시험 결과가 어서 발표되어 지긋지긋한 반지하 셋방을 하루빨리 떠나는 게 차라리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빨리 가을이 되어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면 말이다.
    아무려나, 울고 싶을 때 뺨 맞은 격으로, 그는 자못 울적했다. 서른넷이란 나이에 아직 취업 준비 중인 것만 해도 서글픈데 코흘리개들한테 이런 ‘개무시’를 당하다니. 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는 단 오 분이라도 좋으니 녀석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로를 이해할 구석도 생기지 않을까? 우린 사실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마찬가지의 피해자이고 소외된 약자란 걸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신세 한탄 비슷한 넋두리를 속으로 늘어놓고 있을 때,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담 너머에서 들려왔다. 지나가는 척 서성이고, 또 서성이는 척 왔다 갔다 반복되는.
    그는 소리를 죽이려고 삼선 슬리퍼도 벗어 놓은 채 계단참으로 후다닥 튀었다. 잘못했다간 머리 위로 뭔가가 쏟아져 내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선수를 친다면 녀석들을 현행범으로 잡을 수도 있는 절호의 찬스 아닌가. 그는 길고양이라도 된 양 발뒤꿈치를 치켜든 채 옥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뜻밖에도 발소리의 주인공은 피자 배달원이었다. 빨간색 조끼를 입은 남자 한 명이 쪽지를 들여다보며 골목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도 몇 번이나 배달시켜 먹은 적 있는 브랜드였다. 한 판 가격에 두 판을 주면서 콜라와 파스타까지 덤으로 주는. 대체 어디서 마진을 남기는지 신기할 정도인 피자집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주 바뀌는 눈치이긴 했지만. 아무려나 이번 피자 배달원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데다, 액션도 무척 커보였다. ‘여기에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없네!’라는 연기 과제를 받은 팬터마임 배우처럼. 대문 옆에 붙은 주소를 확인하고, 재차 주문서를 들여다보고, 골목 끝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고, 핸드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다시 대문 옆의 주소들을 일별하고…….
    ― 할머니, 37호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무릉길 37, 지층 103호인데…….
    때마침 밖을 내다보고 있던 주인집 할머니가 피자 배달원의 눈에 띈 모양이었다. 옥상에선 이층이 보이지 않았지만, 피자 배달원의 시선은 이층 베란다로 향해 있었다. 그는 옥상 난간 안쪽으로 고개를 슬쩍 집어넣었다. 골목길 어디에서도 녀석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주인집 할머니 눈에 띄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며칠 전엔 현관문 앞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핑계로 찾아와서는 작정한 듯 월세 인상 얘기를 꺼냈었다. 아들 내외가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말이었지만, 그런 계획은 할머니 머릿속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컸다. 등기부등본상의 주택 소유주가 할머니인 것은 물론이고,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세입자 관리는 주로 그녀의 몫이었다. 몇 달째 보증금을 까먹으며 집구석에만 들어앉아 있는 그가 못내 불안했을 터였다. 그래도 그렇지, 이십에서 삼십으로 한꺼번에 십만 원이나 인상된다면 그에겐 너무 부담스런 금액이었다.
    ― 37호라, 그런 데는 없을 텐데…….
    ― 아예 없다고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고요?
    ― 우리가 무능길 34호고, 저기가 35호, 우리 옆집이 36호. 그게 단데. 저 옆으로 꺾어진 골목부터는 도원길이고, 그다음은 뭐라더라……. 아무튼, 없어요, 우리 무능길에는.
    ― 주문한 사람하고 통화도 했는걸요. 이 골목이 분명한데……. 커다란 모과나무 두 그루 지나서 녹색 대문이 있고, 그 옆으로 하얀색 쪽대문이 있는 집이라던데.
    ― 아, 없는 집이래두 그러네요. 딱 보니 누가 장난질을 쳤구먼그래.
    모과나무 두 그루와 녹색 대문까지는 맞았다. 그렇지만 하얀색 쪽대문이라면 꽤나 눈에 잘 띌 텐데, 그도 이 골목 안에서는 본 기억이 없었다. 게다가 비슷비슷한 골격으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들인데 반지하에 3호까지 있는 집이라니…… 혹시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 정거장 같은 데서 주문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며 그는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피자판을 든 채로 담장으로 뛰어들어야 할 텐데. 그는 맨발로 옥상을 서성이며 시답잖은 상상들을 이어 붙였다.
    ― 설마요, 만 원밖에 안 되는 걸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요.
    ― 싸니까 부담 없이 장난칠 수도 있겠지. ……어여 돌아가시구랴, 후덥지근한 게 어째 소나기라도 한 줄금 퍼붓겠구먼.
    ― 비요? ……이렇게 하늘이 맑은데요?
    ― 노인네가 온다면 오는 거예요. ……정 찾고 싶으면 행길에 있는 복덕방 가서 물어보든지. 요즘 것들은 제가 만들어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죄 시켜 먹을 생각만 한다니깐.
    온종일 햇볕에 달궈진 옥상 바닥은 한 자리에 오래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는 괜스레 옥상까지 올라왔다 싶었다. 빨리 이상시로 돌아가 시장을 배웅해야 했다. 이혼 소문을 어떤 경로로 들었는지, 삼십 년 전엔 어디서 뭘 하던 놈인지 에둘러 캐물어야 했다. 그리고 집사를 불러 체크할 것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 그의 방으로 내려가다간 할머니 눈에 걸릴 게 분명했다.
    밖으로 나온 지 오 분이나 지났을까? 시장에게 아무런 메시지도 안 남기고 나왔는데……. 화장실 간 줄 알까? 그는 초조하게 아래쪽 골목을 내려다보았다. 오 분이면 이상시에선 한 시간 십오 분이나 되는 시간이다. 일 대 십오의 비율이니까. 어쩌면 시장은 이미 관사로 돌아갔기 쉬운데, 피자 배달원은 여전히 골목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교대로 발을 들어 주며 빼곡하게 들어찬 다세대 주택의 옥상들과 길 건너 빌딩숲을 휙휙 둘러보았다. 이런 다세대 주택지는 공간효율이 신통치 않은 데다 도시개발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상시였다면 벌써 갈아엎고도 남았을 동네였다. 게다가 건물들마다 깔고 앉은 반지하들이라니. 그렇게 짓는다고 건축비가 덜 드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건 그저 건축 기술이 미개하던 선사시대에 벽채 올리기가 어려우니까 땅을 파고 들어갔던 움집의 변형 아닌가. 그러니까 내 소유의 땅이라면 저기쯤에 50층 주상복합 오피스텔을 세 동 세우고, 그 앞에 인공호수와 중앙공원을 배치하고, 뒤쪽에는 수목원이나 박물관, 대학교 같은 걸 유치할 텐데. 없는 세상. 이상시의 운영체계는 나름 합리적이고 투명했다.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고 이상보다 훨씬 더 이상적이어서 깜짝깜짝 놀랄 때도 많았다. 어느 땐 그곳에서 몇 달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실제 생활이 영 낯설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래 봐야 일 년이면 두어 달, 7․9급 공무원시험을 모두 치르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는 두 달 남짓이었지만. 삼 년째 그 패턴을 반복하다 보니 그곳에서 지내게 될, 그곳 시간으로의 삼 년이 그립기까지 했다. 선계(仙界)에 빠져 며칠 잘 지내고 나와 보니 실제 세계에서는 수십 년이 지나 있더라는 옛날이야기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다. 주인집 할머니의 발음대로 여긴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고 그저 ‘무능(無能)길’일 뿐이니까.
시장이 얘기했던 삼십 년 전, 그는 간척사업에 동원되어 흙을 퍼 나르는 일개 트럭 운전사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이 년 전, 그는 공무원시험이 끝나자마자 이상시―이 명칭도 실은 ‘이상한 도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에 처음 들어와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일자리도 흔했고, 물자도 흔했고, 돈도 흔했다. 시민들은 다들 종자돈을 만들어 이상시의 자본가가 되길 꿈꿨고, 그때부터 그는 이미 투자의 귀재 소릴 듣기 시작했다. 사는 것마다 상종가를 쳤고, 팔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 깡통이 되었다. 주식에서도 부동산에서도 그는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 세상. 인터넷 세상에도 사주팔자라는 게 있다면, 그가 이상시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한 순간은 만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축복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는 어쩌면, 정말로 이상시에서의 삶이 더 길고 유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기에선 결혼도 했고 집도 샀으며, 회사를 창업해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훨씬 더 많은, 유망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또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거긴 정말로 없는 세상도 아니고, 여긴 그 모든 게 상실된, 실제론 없는 것이나 진배없는 세상인데……. 그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큰누님의 전화였다. 한 달 뒤로 다가온 아버지의 회갑을 어떻게 할지 상의하는 전화일 게 뻔했다. 그 즈음이면 7급 공무원시험 발표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는 그럭저럭 치렀다고 생각했다. 설령 거기서 불합격된다면 그 다음 달에 있을 9급 공무원시험 발표는 거의 확실하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핸드폰을 무음 처리한 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예상대로 시장은 돌아가고 없었다. 그가 남긴 말풍선엔 “바쁘시군요? 그럼, 잘 처리해 주시리라 믿고, 전 이만”이란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골프장은 괴괴한 어둠에 싸여 있었다. 바다 쪽으로는 집어등을 밝힌 어선들이 드문드문 떴고, OB라인 바깥쪽으론 사슴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집사를 불렀다.
    “별일 없었나?”
    “예.”
    “내일 조찬 모임을 겸해 중역회의를 열 테니까 연통 좀 넣게.”
    “예.”
    “오후엔 헬기 한 대만 알아봐 주게. 빌딩 몇 채는 팔고 새로운 투자처도 알아봐야겠어. 두어 시간 내려다볼 건데…… 자네도 같이 가지.”
    “예.”
    “집 주변에 CCTV 좀 더 설치해 주게. 지금보다 서너 배쯤 많이, 더 촘촘하게.”
    “예.”
    “아! 그리고 저 사슴들은 뭔가? 어디로 들어온 거지? 당장 쫓아내게.”
    “저건 프로그램입니다. 제가 손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프로그램이라구? 그렇다면…….”
    “맞습니다. 이곳에 골프장을 설치할 때 기본으로 깔린 이미지입니다.”
    “호!”
    그는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사는 반 보 뒤에서 플래시를 비추며 그를 따랐다. 묵묵히. 집사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현관에 열두 명의 하녀들이 나와 그를 맞았다. 아내는 집에 없었다. 돌아와 있지 않았다. 집은 지나치게 넓고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텅 빈 느낌. 이런 느낌도 프로그램된 걸까, 생각하며 그는 서재로 올라가 창가 흔들의자에 앉았다. 그의 집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였다.
    그는 그 자리에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새삼스레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그는 이 분 거리의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소주와 새우깡을 사왔다. 부러 골목 끝까지 걸어가 봤지만 역시 하얀색 쪽대문은 없었고, 들어올 때 보니 아닌 게 아니라 그의 현관 앞은 꽤나 지저분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역시 학교 다니던 시절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소소한 학용품이 없어지거나, 노트가 찢겨져 있거나, 억울한 내용의 낙서가 씌어져 있거나, 어딘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거나……. 친구들은 그걸 놀이라고 말했지만 그에겐 상처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번 사건을 겪고 보니 그랬다. 자, 좀 이른 저녁을 시작해 볼까. 그는 55년산 매켈란을 모니터에 따라 놓고 소주를 홀짝였다. 밖은 아직 환한데, 이상시는 하마 밤이 깊었다. 홀짝, 아삭아삭.
    그가 손짓하자 문 옆에 서 있던 집사가 곁으로 다가왔다.
    “집사람은 어딜 갔을까?”
    “어딜 가신 게 아니고, 접속을 안 하시는 겁니다.”
    “그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알 수 없지요.”
    “그래, 알 수 없는 일이지, 알 수 없는 일이야. ……가출한 건 아니니까. 이 이상한 도시에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훌쩍, 아삭아삭…… 아삭 아삭 아삭.
    집사도 모르는 일이지만―알 턱이 없지만―그제는 오전 아홉 시가 되자마자 이상시 사이트를 관리하는 업체에 전화를 걸었었다. 제 아내가 가출을 했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신상 정보 좀 알 수 있을까요? 처음엔 직원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그런 거라면 경찰서에 신고를 하셔야죠, 하는 답변이 세 번이나 돌아왔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야 겨우 상황을 파악한 직원의 답변은 이랬다. 지금 우리가 무슨 소꿉장난하고 있는 줄 아세요? 그 말은 대학 졸업 후 딱 세 달간 인턴으로 근무할 기회가 생겼을 때 사수한테서 자주 듣던 말이었다. 눈물까지 찔끔거려 가며 사정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직원은, 고객님 죄송합니다, 하고 일방적으로 말한 뒤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후에도 한 번 더 걸었지만 담당 직원은 외부 출장 중이었다.
    그의 아내는 좀 허영에 들뜬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나름 순수한 구석이 있었다. 요트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파티를 여는 일이라든지, 가장무도회에 참석해 밤새는 줄 모르고―그래 봐야 실제론 한 시간 남짓이지만―춤을 추는 일이라든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일 따위를 즐겼다. 그는 코웃음을 쳤지만, 그가 일에 매달려 회사의 규모를 키워 온 일이나 매한가지로 현실에서는 즐길 수 없는 일이기에 그토록 갈구했던 게 아닐까 싶으면 좀 짠해지기도 했다. 훌쩍, 아삭아삭……. 그러니 제발, 아내가 좋은 일로 이상시를 떠났기를 그는 간절히 바랐다.
    아무려나 그가 밤을 새워 55년산 매켈란을 비우고, 조찬 모임을 갖고, 헬기를 타고 이상시를 몇 바퀴 돌고, 그러고도 또 다른 시장 후보와 한 차례의 라운딩을 끝냈을 때,
    후두두둑,
    밖에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주인집 할머니 말이 맞았다. 제법 굵은 빗방울은 꽤 오랫동안 요란하게 쏟아졌다. 마침내 그가 졸음에 겨워 요만 깔아 놓고 방바닥에 엎어졌을 때도 장대비는 그치지 않고 내렸다.

 

*

 

 

    몇 시나 되었을까?
    딸깍,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잠결에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벌써 며칠째 서너 시간씩밖에 못 잔 데다 마치 물 먹은 스펀지처럼 온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반지하의 방바닥보다 더 낮은 곳이 있다면 기꺼이 스며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아이고, 쯔쯧…… 이를 어째. 물구덩이가 따로 없네. 아, 총각! 좀 일어나 봐. 쫌만 늦었으면 진짜로 물귀신 될 뻔했어. 젊은 사람이 이렇게 약 먹은 병아리 같아서야 원.
    아닌 게 아니라, 물은 누워 있는 그의 어깨 참에서 찰박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방까지 물이 들어오다니…….
    ― 그러게 현관 앞 청소 좀 잘하라니까. 신문지 몇 장이 하수구를 막았나 봐. 물이 흘러 내려갈 데가 없으니까 이리로 들어찼구먼그래, 쯧.
    잠결에도 그는 녀석들이 투척한 신문지가 빗물에 휩쓸려 하수구를 막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그렇지만 좀체 눈이 떠지지 않았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발목께에서 물이 계속 찰박였다. 주인집 할머니와 아들 내외가 물을 퍼내는 동안 그는 책상 위로 올라가 누웠다. 책상은 넓지 않았고,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서 누워 있기가 쉽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처럼 잔뜩 오그린 채로 그는 책상 위에서 버텼다. 꿈인지 생시인지, 혹은 또 다른 없는 세상의 일인지…… 그에겐 모든 것이 몽롱하기만 했다.
    남들은 세월이 빠르다고들 난리인데 내겐 왜 시간이 더디게만 흐르는 걸까. 십대 때도 이십대 때도 빨리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여전히 난 어른이 되지 못했고 언제 될 수 있을지도 까마득하기만 하구나. 집사야, 집사야! 빨리 수해대책을 강구하고, 동부지역 뉴타운에 있는 빌딩 두 개만 급매로 내놓도록 해라. 처분해서 긴히 쓸 데가 있느니. 집사야, 마님에게 연락해서 급히 들어오시래라. 우리 사이가 한동안 너무 소원했느니라. 요트에 닻을 올려라. 바다로 멀리멀리 나갈 것이니. 할머니, 제발 두어 달만 좀 기다려 주세요. 올핸 확실하다니까요. 그때까지만 좀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 제발. 제발. 아, 컴퓨터! 컴퓨터가 젖으면 안 되는데…… 집사야, 집사야!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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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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