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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 2009-05-26
  • 조회수 3,437


 

 

 

김신우

 

 

 

밤이 되었군요. 밖에서 돌아온 남편은 버릇처럼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자기 방으로 들어가요. 아침이면 빈 깡통들은 재활용 상자에 분류되어 버려져 있고 책상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어요. 남편의 깔끔한 성격을 잘 알기에 밤늦게 방에서 술을 마신다고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죠. 남편이 왔다 간 건지 종종 착각이 들 정도로 남편은 자기 주변에 존재감을 표시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조용히 들어와 자기만의 공간 속에 머물다 다시 일하러 나가죠. 안주라도 챙겨 줄까 싶어 안방 문을 열고 나가려다 나는 이내 그만두어요. 간신히 잠든 아기가 깨서 울 것만 같아 불안하거든요. 아기는 아주 조그만 기척에도 예민하게 굴어요. 낯가림이 심해 엄마 품으로만 파고들며 유난스레 울죠. 베이비시터를 썼다 몇 시간 만에 그만둔 이후로는 남에게 맡기는 일도 엄두가 안 난답니다.

“보통 까칠한 아기가 아니네. 막무가내로 울기만 하고 영 붙여 주지를 않아요. 엄마 손을 많이 타서 그러는지…….”

얼굴을 붉히고 돌아서며 여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죠. 목이 쉬어라 우는 아기를 품에 안고 애타게 달래 보았습니다. 업었다 안았다 토닥였다 흔들었다 미친 여자처럼 방 안을 서성거려 보아도 소용이 없어요. 급기야는 아기를 다용도실에 내놓고 문을 닫았어요. 오디오 시디의 마지막 트랙이 다 돌아갈 때까지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죠. 갓 태어난 아기를 냉동고에 넣고 숨지게 한 비정한 엄마의 신문 기사를 읽으며 문 밖에서 울고 있는 아기를 보았어요. 발버둥 치며 사투를 벌였는지 덮어 놓은 겉싸개가 풀어헤쳐져 있었죠. 아기를 낳을수록 상실감이 커져 갔다고 그 여자는 말했다는군요. 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걸 나조차도 곧잘 잊어버리곤 한답니다. 출산 후 생긴 치질로 끙끙대며 볼일을 보고 나온 어느 날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애가 울고 있었어요. 깜빡 잊고 전원을 끄지 않은 온열 매트 위에 아기를 누여 놓았던 거예요. 이불이 깔려 있긴 했지만 연한 살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바르르 떨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꼴깍꼴깍 우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번쩍 아기를 안았어요. 토닥토닥 흔들며 한참을 달래는 사이 아기는 겨우 진정이 돼서 울음을 그쳤는데 그때까지 나는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는지도 모르고 뭔가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젖을 물린 채 누워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말아 올린 윗도리 밖으로 나온 등허리와 뱃가죽이 시려 눈을 뜨면 이렇게 한밤중이에요. 숨소리를 죽이고 아기 볼에 입을 맞춰 봅니다. 제발 좀 푹 자렴. 잠든 아기에게서 나는 냄새를 킁킁 맡아 보아요. 심장이 녹아내릴 듯 포근하고 애처로워요. 유난히 하얀 아기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더 도드라져 보이네요. 자지러지게 울던 모습은 간데없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로 자고 있군요. 자는 아기를 보고 있으면 시간이 멎은 듯해요. 가장 고요하고 안전한 곳으로 숨어 아기와 나 단둘이서만 세상과 무관하게 있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답니다. 땀으로 젖은 아기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보아요. 검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요.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출산의 공포는 언제나 숙명처럼 따라다녔어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십대 후반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십대에도 줄곧 가위에 눌리며 아기를 낳는 꿈을 꾸었어요. 산고의 과정은 생략된 채 꿈속에선 언제나 이제 막 태어난 아기가 내 품에 안겨 있었지요. 태지가 떨어지지 않아 징그럽게 생긴 핏덩이를 안고서 나는 불안 속에 떨었어요. 그럴 때면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구나 하는 걸 알았죠. 꿈에서 깨고 나면 두려움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어요. 결혼해서 아기를 낳은 지금도 그런 꿈은 여전히 되풀이되곤 해요. 꿈속에서 나는 둘째를 낳았다거나 현재와 전혀 무관한 어떤 상황 속에서 아기를 낳아 안고 있어요. 방금 전에도 꿈속에 낯선 아기가 보였어요. 아기를 안고 있는 꿈은 늘 실제처럼 생생해서 깨고 나면 오싹한 기분이 들죠. 언제부턴가 나는 알기 시작했어요. 꿈속의 아기는 그냥 아기라는 형태를 갖고 있을 뿐 그것의 본질은 괴로움과 근심 걱정이라는 것을요. 내가 느끼는 어떤 고통이 아기라는 형태로 전달되어지는 것뿐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아기를 갖고 낳아 키우는 동안 내 마음은 늘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며 방황하고 있어요.

만삭에 가까워지자 초음파실의 여자 병리사는 뱃속의 태아가 딸이라고 알려 주었어요. 정밀 초음파실의 좁고 어두운 방에서 그녀는 내 배 위에 아로마 젤을 바른 뒤 프로브를 갖다 대고 이리저리 움직였답니다. 차가운 감촉이 닿을 때마다 태동이 요란하게 느껴졌어요. 이리저리 꿈틀대는 태아의 모습이 모니터에 흐릿하게 잡혔죠.

“초산일 때는 입체 초음파를 보여 줘도 남아와 여아의 성기를 구분 못하는 산모들이 많아요. 돌돌 말린 탯줄을 보고 고추로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여자아이가 확실하군요. 원래 비밀인데.”

그녀가 은밀하게 내 귀에 대고 속삭이기 전에 나는 알고 있었어요. 양수 속에서 하늘거리는 태아의 머리카락을 보았거든요. 물결 속에 떠다니는 바람처럼 아기의 머리카락은 신비롭게 팔랑거렸답니다. 무심결에, 여자애가 틀림없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어요.

두 번 유산된 태아의 성별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해요. 임신 초기에 자연유산 되었으니까요. 아기집이 보일 무렵이면 이상하게도 태아의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한번은 진하게 하혈을 했고 또 한번은 인공유산처럼 수술을 했어요. 그런 걸 계류유산이라 한다고 언젠가 보았던 『임신과 출산』이라는 책에는 적혀 있었죠. 책을 사 놓고 두어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는 너무 두꺼운 책을 산 걸 곧 후회하곤 했어요. 책을 읽다가 깜빡깜빡 잠이 들었죠. 얼마 못 가 책 위에는 먼지가 쌓이기도 하고 식은 머그잔이 올려 있기도 했어요. 모처럼 일찍 퇴근하여 돌아온 남편은 그런 내 모습에 질색하며 돌아섰답니다.

“도대체 집에서 뭐하는 거야. 글은 쓰는 건가?”

성취감이 없는 내 일상을 비웃듯 남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데스크톱 앞에 앉았죠. 그러곤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와서도 책상에 파일을 쌓아 놓고 앉아 일에 몰두해 있는 게 일상처럼 되어 버렸는걸요. 일과 밥과 잠에 있어서 우린 언제나 서로 겉도는 시간 속에 있었어요. 혼자서 밥을 먹다가 남편이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속에서 울컥거리며 뭔가가 치밀어 올라왔어요. 남편의 집에서 유령처럼 세 들어 사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나는 남편의 방에 불을 지르는 상상을 하며 달려가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죠. 마사지 시트를 얼굴에 붙이고 눈을 감으면 차가운 에센셜의 느낌을 받으며 마음이 가라앉았으니까요. 촉촉한 수분감이 전신에 퍼지는 어느 순간에 미약한 태아들의 심장이 얼어붙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해요. 소통할 수 없는 단절감과 성과 없는 일 사이에서 나는 비쩍비쩍 말라 가며 수축되었어요. 별 소득 없이 흘러가는 시간들을 잡지 못한 채 우두커니 빈집을 지키고 있는 개처럼 말이죠. 개보다 못한 인생. 실패의 연속. 노트북의 자판에 그렇게 쳤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전공과는 멀어진 글쓰기를 떠올렸어요. 되지도 않는 습작이나 하려고 남편에게 기생하는 것 같아 구역질이 올라왔죠. 그게 입덧이라는 걸 알고 나서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았어요. 착상이 잘되어 유산의 조짐이 없다는 말을 전했을 때 수화기 건너편에서 담담하게 일관하는 남편의 태도가 무성의하게 느껴졌어요. 점점 먼 길로 돌아가고 있다고 남편은 나에게 말했답니다. 아랫배가 불러올 때까지도 입덧이 멈추지 않아 욕실의 변기통을 끌어안고 구토를 했어요. 맑은 위액까지 쏟아 내고 기어서 방으로 돌아오다 보면 남편의 방에서는 인터넷 회화 강의가 간간히 들려왔어요. 그 방과 이쪽 방 사이의 길이 정말 먼 길처럼 느껴졌답니다.

“그러지 말고 차라리 입원을 하라고. 당신이 이러고 있으면 내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는지 알아?”

새벽에야 들어오는 남편이 아침이면 몸만 빠져나가며 가끔 그런 말을 했어요.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있으면 내 자신이 한심하고 무기력한 여자처럼 생각되었죠. 넥타이를 매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컥컥 막혀 왔어요.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져 앓을 때마다 남편은 말했어요.

“당신은 참 이상한 여자야. 스스로에게 불행하다고 주문을 걸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바로 당신 자신이라고.”

베개로 내 얼굴을 짓누르고 앉아 있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 보면 남편은 여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었어요. 무작정 차를 끌고 나가 낯선 동네를 배회하고 다녔죠. 새벽녘 도로 한복판을 달리다 보면 태동을 느끼며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옥죄어 드는 소외감이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들었으니까요.

아기가 태어난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혼자예요. 혼자 TV를 보고 혼자 일을 하고 혼자 잠을 자죠. 남편은 예전보다 더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을, 일주일을, 한 달을 아기와 단둘이 지내던 어느 날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어요. 아기는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자지러지게 울고만 있었고요. 아무리 달래고 얼러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어요. 정신이 멍해진 나는 아기를 드럼세탁기 속에 넣은 채 문을 닫아 보았답니다. 남편이 달려와 나를 밀쳐내고 얼른 아기를 안아 주길 바랐죠. 누군가의 연락을 받고 급히 집을 나가는 남편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아기의 울음소리에 무감각한 남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을 주지 않는 아빠에게 반응하지 않으려는 듯 아기는 잘 먹지도 잘 자지도 않아요. 언제나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울음을 달고 살죠. 앙앙거리는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답니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같은 개월의 아기들을 보면 울컥 눈물이 쏟아지곤 해요. 또래에 비해 몸집이 훨씬 작고 무게도 덜 나가는 아기를 업고 소아과에 갈 때마다 의사는 말했어요. 저체중이니 영양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이에요. 좋다는 분유를 주문하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여도 소용이 없었어요. 뱃구레가 작은 아기는 두 번 세 번 먹고는 더 이상 먹지를 않습니다. 다른 엄마들처럼 나 역시 먹이고 입히고 재우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났죠. 칭얼거리는 아기 옆에서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아침이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어요. 남편은 그런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 대신 뭔가를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해야 할 최소한의 말들만 했고 그 말마저 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죠. 술에 취해 들어오면 아기와 내가 있는 안방 문을 열어 보고는 한참 동안 서 있는 게 다였어요. 남편이 방문을 닫고 나갈 때까지 나는 자는 척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았어요. 일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이 곧바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살 순 없어, 혼잣말을 뱉어 냈죠. 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라는 거라는데 나는 자꾸 불안해져요. 이러다 우리 아기가 영영 자라지 않으면 어떡하죠? 정말 두려워요. 나는 백일이 넘도록 고개를 가누지도 못하는 아기의 볼에 내 뺨을 갖다 대 보아요. 엄마가 옆에 있어 줄게 아가야.

어렴풋이 눈을 떴어요. 이른 아침부터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잤나 봐요. 분리수거를 하는 날인지 아파트 공터가 소란스럽네요. 나는 자고 있는 아기가 깰까 봐 살며시 베란다로 나가 보았어요. 남편이 이미 버리고 출근했는지 분리수거함은 말끔히 비워져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재활용품을 내놓는 공터 쪽에 여름부터 보이지 않던 우리 아기의 보행기가 내려다보이는 거 있죠. 어디에 치워 놓았는지 몰라서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재활용품 더미에 버려진 우리 아기의 보행기가 비를 맞고 있었어요. 나는 후다닥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공터로 나갔어요. 우산을 받쳐 든 아파트 주민들이 분리수거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어요. 나는 누가 집어 갈세라 얼른 보행기를 주워들었죠. 누구도 나에게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서 괜히 사람들을 의식하며 말했어요.

“누가 이렇게 멀쩡한 걸 내다 버렸나 몰라.”

아래층 여자를 따라 나온 애완견이 자꾸만 나를 보고 컹컹 짖어댔어요. 비가 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수다를 떨 여유도 없이 무신경하게 쓰레기만 처리하고 있었죠. 개 짖는 소리에 민망해진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어요. 집에 들어와서야 내가 맨발로 뛰쳐나갔다는 걸 알았죠. 이런. 또 건망증이 도졌나 봐요. 현관문에 열쇠를 꽂아 두고 열쇠 찾아 헤매는 일 정도는 다반사지만 신발 신고 나가는 것조차 깜빡할 지경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좀 심했네요. 기억이란 건 참 이상해요. 좋은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데 나쁘거나 슬펐던 기억은 금방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특히 몸이 느끼는 통증 같은 거 말이에요. 출산 때 느꼈던 진통이나 혹은 다쳐서 뼈가 부러졌을 때처럼 아팠던 통증의 기억들은 애써 생각하려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아요. 머릿속에 관념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기억이 몸으로 느껴지지는 않죠. 고통스러운 순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면 인간은 한순간도 살 수 없을 거예요. 조금씩 잊고, 버리고, 다른 것들로 채우며 사니까 살 수 있는 거죠. 인생은 어쩌면 기억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잊기 위해서 지속되는 건지도 몰라요. 막달이 가까워 오자 호르몬 색소가 목과 겨드랑이 주변에 시커멓게 퍼졌어요. 얼굴의 기미도 농도가 진해져 갔지요.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보기 싫은 삶의 얼룩처럼 말이죠. 나는 날마다 썬 블록을 짙게 바르고 집을 나섰어요. 인근에 있는 대학 캠퍼스 중턱까지 워킹을 하고는 땀범벅이 된 채 집에 와 샤워를 했죠.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산후 조리원 요가 교실에 나가 체조를 하고 나면 나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마음이 조금씩 비워졌어요.

남편은 왜 한마디 말도 없이 아기 물건을 버렸을까요. 아무리 남처럼 산다고는 하지만 자기 맘대로 아기 물건에 손을 대다니요. 나는 마른 수건을 가져와 비를 맞고 버려진 보행기를 닦았어요. 상판에 붙어 있던 모빌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지만 아기가 타고 노는 데는 별 문제가 없겠어요. 남편이 아기 보행기를 발로 찬 그날 밤 나는 많이 아팠어요. 편도선이 부어 열이 펄펄 끓었죠. 목은 면도칼을 대 놓은 것처럼 침도 삼키기 힘들 만큼 아리고 온몸의 근육들이 마디마디 아팠어요. 오한에 바들바들 떨며 나는 간신히 누워만 있었어요. 아기를 보고 있는 건지 아기가 나를 보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나는 다 죽어 가는 사람처럼 꼼짝없이 누워 있었어요. 옆에선 아기가 옹알이를 하다가 시들해져 칭얼칭얼 울기 시작했죠. 분유를 타 먹일 기운이 없어 누운 채 젖을 물렸어요. 충분히 차오르지 않은 젖을 빨려고 아기는 입을 쩍쩍 벌렸답니다. 유두가 헐어 쓰라렸어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형편없어 보였어요. 사는 게 서글퍼 소리 없이 눈물이 나왔죠. 휴일이라 병원에 가지 못하고 타이레놀 두 알로 버티던 나는 남편이 돌아와 아기 좀 봐주면 얼마나 좋을까 미친 듯 상상을 했어요. 남편도 나의 지긋지긋한 편도선염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가까스로 일어나 거울을 보고 입을 벌려 보았어요. 편도선이 부은 자리에 곰팡이처럼 하얗게 곱이 껴 있었어요. 곪은 자리가 더럽고 징그러워 나는 얼른 입을 다물었어요. 혹시라도 아기한테 옮을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거든요. 아기 낳고 키우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그런 거라고, 자주 가는 이비인후과 원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주섬주섬 기저귀 가방을 챙겨 콜택시를 불렀어요. 가다가 죽더라도 응급실에서 죽고 싶을 만큼 아팠으니까요. 가슴팍에 아기 띠를 둘러 그 속에 캥거루처럼 아기를 담은 채 나는 엉덩이를 걷었어요. 간호사는 어이없이 쳐다보다 혀를 차고는 항생제가 들어간 근육주사를 놓은 뒤 쏜살같이 사라졌어요. 전쟁터처럼 발 디딜 곳 없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빠져나올 때까지 아기는 죽도록 악을 쓰며 울어댔어요. 땀으로 곤죽이 되어 집에 돌아와 보니 거짓말처럼 남편이 돌아와 있었어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남편은 책을 읽고 있었죠. 어쩐 일인지 선뜻 아기를 봐주겠다는 남편이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어요.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 이제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였어요. 원수 같은 남편의 휴대폰이 또 울려왔어요. 전화를 받지 않기를 나는 얼마나 빌었는지 몰라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온갖 저주를 퍼부었죠. 누군가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 주고 있는 남편은 참 다정하고 의리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들을 향한 진심 어린 배려가 토씨 하나마다 묻어났으니까요. 그래서 남편은 항상 바쁜가 봐요. 하지만 그날따라 남편이 아무리 심각하게 대화를 주고받아도 내 귀엔 애교로밖에 들리지 않았어요. 남편과 동료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 내용은 그렇게 인간답고 지적이며 세련될 수 없었어요. 난 속으로 생각했죠. 당신들은 좋겠다. 아플 때 쉴 수는 있으니까. 고민을 나누며 대화할 상대도 있고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 남편은 꼭 나가 봐야 하는 일이라며 옷을 챙겨 입었어요. 나는 이를 악물며 아기를 안고 침대에 누웠어요. 우는 아기를 잠재우려고 무작정 젖을 물리는 수밖에요. 찌르르 젖이 돌며 모유가 사출되자 또다시 심장이 꺼질 것처럼 축 가라앉는 기분에 빠져들었어요. 모유를 줄 때마다 몸속에서 이상한 호르몬이 나오는지 심장이 내려앉는 것처럼 축 처지면서 우울해져요. 점점 밑으로 가라앉는 착각 속에 나는 잠이 들었죠. 쿵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떠 보니 침대에서 떨어진 아기가 숨이 넘어가게 울고 있었어요. 하필 바닥에 이불도 깔려 있지 않았는데 맨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거예요. 아기를 안고 정신없이 머리를 문질러 주었죠. 그저 발만 동동거릴 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기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거의 패닉 상태에 가까워졌답니다. 그렇게 어이없는 실수를 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이제 고작 몇 개월밖에 안 된 아기를 떨어뜨리다니요. 목도 못 가누는 아기를요. 아기를 데리고 침대에 올라가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요.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책하다가 나는 엄마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또 다른 생명을 돌보겠다고 버둥거리는 형편없는 꼴이라니요.

한밤중에 돌아온 남편을 향해 나는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어요. 임신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을 동반하고 산부인과를 찾아본 적이 없지만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남편이 내게 이럴 수 있나요. 초음파로 태아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혼자 들을 때에도 바쁜 남편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간혹, 배부른 부인들을 옆에서 부축해 주는 남편들의 모습을 보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싱글 맘들은 오죽하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했죠. 막상 아기가 태어나면 남편이 일중독에서 좀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말이죠.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옆에서 죽어 가는 사람을 놔두고 나가서 독립운동을 하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너무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괴로웠어요. 외로움이 뭔지 슬픔이 뭔지 남편은 아무것도 몰라요. 남편은 거실에 놓여 있던 보행기를 발로 걷어찼죠.

“당신은 왜 나와 결혼했지? 고작 애를 안고 징징거리기나 하려고 결혼한 건가? 당신은 지금 직무 유기를 하고 있어. 왜 자신의 일을 하지 않는 거야. 이렇게 통속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실망스러운 줄 알아? 나에게까지 그 역할을 강요하진 마. 언제까지 애만 끌어안고서 아줌마로 늙어 죽을 셈인가? 이렇게 사는 게 당신은 행복해?”

아직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아기의 보행기가 나뒹굴고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았어요. 암담한 미래와 불가능한 현실이 두려워 일어설 수가 없었죠. 온몸에 패배자의 표식을 달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작게 움츠렸어요.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남편의 얼굴과 부기가 덜 빠져 부석부석한 나의 얼굴이 거실의 도어 락 새시에 비쳤답니다. 안방에서 자고 있던 아기가 깨서 마구 울어댔어요. 남편은 태연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죠. 쿵, 하고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내 가슴속에서도 뭔가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답니다.

나는 가끔 생각해요. 행복이 너무나 먼 곳에 있다고 말이죠. 나의 행복은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어요. 일에 쫓겨, 아기에게 눈을 맞추고 웃어 줄 시간이 없지만 남편은 행복해 보여요.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 마트에 가고 병원에 가는 수많은 부부들의 일상이 부럽다가도 문득문득 두려워지죠. 꿈의 실현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서 허우적대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으니까요.

통속적인 역할이 싫다면 그만둬요. 남편과 아빠의 역할을 흉내만 내어 주는 것도 당신에겐 너무 힘든 일인가요? 통속적인 역할조차 해내지 못하면서 통속을 비웃지 말아요.

그 말을 차마 남편에게 하진 못했어요. 오랜만에 나를 만난 엄마조차도 내게 통속적인 눈물을 흘려주지 않았거든요. 십 몇 년 만에 만난 엄마가 너무나도 곱게 차려입고 나왔을 때 나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어요. 내가 간절하게 원했던 엄마의 모습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던가 봐요. 종일 밥 차려 먹을 시간도 없이 아기와 시름하다 보면 미치도록 누군가가 그리웠어요. 식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을 때마다 엄마를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했죠. 초등학교 때 엄마를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엄마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려는 나에게 불쑥 찾아왔죠. 제과점에서 팥빙수를 시켜 놓고 앉아서 엄마와 나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답니다. 숟가락으로 묵묵히 얼음을 부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나도 똑같이 따라 할 뿐이었죠. 빙수 얼룩이 옷에 묻었지만 어쩐지 엄마에게 닦아 달란 말을 하지 못하고 헤어졌어요.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삼십 분가량을 기다린 후에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어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윤택함이 흐르던 중년의 부인은 예전의 엄마가 아닌 것 같았어요. 엄마를 기다리는 내내 나는 가족을 찾아 주는 TV 프로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부둥켜안고 우는 부모 형제들을 나는 매주 시청했어요. 그들이 나를 대신해 가슴을 쥐어짜며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혼 후 한 번도 자식의 얼굴을 보러 오지 않았던 엄마는 곱디곱게 단장을 하고 나와 그 흔한 눈물 한 방울 찍어 내지 않았어요. 난 지극히 통속적인 해후를 기대했었는데 말이에요. 엄마가 옆집 아주머니 같이 소박하게 늙어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죠. 값비싼 옷과 장신구를 걸치고 나온 엄마에게 침을 질질 흘리는 우리 아기를 한 번 안아 달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주는 거라는데 난 우리 아기한테 과연 사랑을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엄마는 말했어요. 남편이 지방의 시장 후보로 출마해 연일 바쁘다고요. 유세장과 지역 구석구석을 따라다니다 보면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며 안타까워했죠. 엄마도 갑자기 아기를 데리고 나타난 딸과의 만남이 어색했던 걸까요. 엄마는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들만 했어요. TV에서 자식을 껴안고 울던 사람들은 혹시 자식들에게 미안해서라기보다 서러웠던 자신들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에 울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엄마가 하는 말들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어요. 당신이 몸담아 헌신했던 이웃들에게 보내는 미소를 나에게도 지어 보였죠. 나는 빙수를 먹을 때처럼 그저 묵묵히 엄마를 바라보았어요. 침을 삼키는데 목이 아파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이에요. 자식을 낳아 보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데 그날 난 그렇지 못했어요. 아니 어쩌면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죠.

밤이 되었네요. 이제 곧 자정이에요. 남편이 돌아오면 우리 아기의 보행기를 보겠죠. 주방 식탁에 앉아 나는 남편을 기다려요. 식탁 위엔 부옇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네요. 날마다 쓸고 닦아도 집 안엔 먼지가 잘도 내려앉지요. 라디오에서 정각을 알리는 시그널이 작게 울려요.

아기가 태어난 시간도 자정을 바로 넘긴 시각이었어요. 어제와 오늘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태어난 아기는 쪼글쪼글하고 어딘지 처량해 보였어요.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부터 다시 한밤중이 될 때까지 나는 분만 대기실의 침대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 힘을 주었죠. 진통 간격이 점점 짧아졌지만 아기는 쉬 문을 열고 나오지 못했어요. 힘을 줄 때 호흡을 끊어 먹지 말고 길게 내쉬라고 간호사들이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짐승 소리 같은 비명으로 울부짖었어요. 담당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시로 내진을 하며 산도가 열린 정도를 체크했어요. 자궁문은 그런대로 열리고 있는데 아기가 골반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했죠. 그들이 벗어 놓은 비닐장갑에 붉고 누런 피가 묻어났어요. 혼탁한 분비물의 색깔을 보자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죠. 남편은 여전히 복도에서 전화 통화를 하느라 쉴 새 없이 바빴어요. 끊임없이 휴대폰의 진동이 울리고 남편은 긴 통화를 위해 밖으로 나갔죠. 너무 아파서 그런지 몰라도 자궁 경부가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들지 않았어요. 아기는 42주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죠. 분만 예정일이 지나도록 진통의 기미가 없자 병원에서는 유도 분만을 권했어요.

시골의 친척집에서는 개가 새끼를 낳을 때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죠. 예민하고 지친 어미 개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갓 낳은 새끼를 물어 죽이거나 삼켜 버린다면서요.

“남의 손을 탄다 싶으면 어미 개는 새끼를 죽이고 말아. 차라리 제 스스로 물어 죽이는 게 낫다고 여기는 동물적인 본능이지.”

언젠가 낳자마자 어미 개에게 잡아먹힌 새끼 개 이야기를 들려주며 친척집의 할머니는 말했죠. 자리를 살펴 주고 슬며시 나오는 사이 방금 전까지 있었던 새끼 중 한 마리가 보이지 않더라는 말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까지 떠올리곤 했어요.

촉진제를 맞고 진통이 시작된 지 스무 시간이 가까워 오자 남편은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답니다. 그때 가랑이 사이로 양수가 흘러내렸어요. 뜨뜻미지근한 물이 베드를 적시는 순간 또다시 무시무시한 진통이 찾아왔죠.

“양수가 터졌으니 이제부턴 아기가 잘 내려올 거예요.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간호사 몇이 다가와 심박동 기계와 혈압을 체크하며 내 손을 잡아 주더군요. 침대 헤드 손잡이를 꼭 쥔 채 나는 길게 힘을 주었어요. 팔에서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면서요. 간호사들이 다가와 내 몸에 자기들의 체중을 실어 힘을 지탱하게 해주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죠. 비참한 몸부림의 절규를 느낄 겨를도 없이 진통은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자동으로 반복되는 진통의 주기마다 고통의 반대말이 인격이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까무러치며 찾아오는 짧은 휴식 같은 순간조차 너무 달콤해서 조금만 더 그렇게 쓰러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해요!”

간호사가 작게 소리를 질렀어요. 분만대에 올라가 국소마취를 하자마자 회음을 절개했어요. 길게 마지막 힘을 주자 곧바로 아기 머리가 나왔어요. 머리가 나오자 어깨와 몸통은 저절로 쉽게 빠져나왔죠. 핏덩이가 쑥 미끄러져 내려올 때까지 나는 신음 소리를 삼키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어요. 의사가 아기 아빠인 남편에게 탯줄을 자르라고 가위를 건네주었죠.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남편은 당황해서 하마터면 가위를 떨어뜨릴 뻔했어요.

“질겨서…… 잘 안 잘라지는데요.”

진땀을 뻘뻘 흘리는 남편 대신 의사가 신속하게 탯줄을 잘랐죠. 새끼 개처럼 눈이 감긴 아기가 내 품에 안겨졌어요. 아기는 아주 작고 낮은 목소리로 힘없이 울었어요. 나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죠. 아기를 안고 있기도 힘들 만큼 몸이 떨려 왔어요. 출혈 때문에 추운 거라고 당직 의사는 말했어요. 간호사가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가자 자궁 속에 있던 태반이 미끄덩거리며 빠져나왔어요.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정신이 몽롱해져 왔답니다. 무거웠던 뱃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헛헛함으로 나는 잠이 오지 않았어요. 죽도록 힘을 쓰고 나서인지 속이 좋지 않아 미역국도 먹지 않았죠. 수면을 취하지 못하고 뒤척이는 사이 긴 밤이 끝나 가고 있었어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간들처럼 말이죠.

새벽에 나는 아기를 보러 신생아실로 갔어요. 신생아실 유리창에 기대어 손목에 찬 산모 팔찌를 보여 주었죠. 아직 면회 시간이 아니라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간호사는 포대기에 꼭꼭 싸인 아기를 데려와 보여 주었어요. 나는 창문에 바싹 붙어서 아기를 보았어요. 아기는 눈을 꼭 감고 울고만 있었지요. 젖을 물려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어떻게 젖을 물려야 할지 머릿속이 캄캄하기만 했어요. 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졌죠. 간호사 손에 아기를 안겨주고는 좌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산후 조리원에서 말도 없이 뛰쳐나왔을 때 나는 이미 나약한 의지조차 상실해 버렸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지도 몰라요. 조리원에서 나온 나는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았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든 말든 걷다가 힘이 들면 버스 정류장 의자에 무심코 앉아 있었으니까요.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나는 곳도 나를 받아 줄 곳도 없이 막막하기만 했죠. 조리원에서 하는 일이라곤 모유 수유를 하거나 유축기에 대고 불은 젖을 짜는 게 거의 전부였어요. 산모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간간이 있긴 했지만 나는 별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답니다. 아기 엄마들과 말을 트기 시작하면 친정과 시댁과 남편에 대해 나도 뭔가는 꺼내야 할 말이 필요했으니까요. 신생아실에 아기를 맡겨 놓고 좁은 산모방으로 들어오면 우두커니 창문 밖을 바라보곤 했어요. 이웃해 있는 건물의 교회에서 이따금씩 성가가 들려왔죠. 찬송가를 듣고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왔어요. 한밤중에 일어나 멕시코로 이민 간 시댁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기도 했답니다. 출장을 떠난 남편에게 부재중 전화를 걸 때마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죠. 당신이라도 전화를 받아요. 뒤늦게 남편과 통화가 되면 음악 소리와 웃고 떠드는 소리에 가로막혀 말소리가 분명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남편은 자신감에 차 말했죠. 이번 일도 잘되었다고 말이에요. 남편의 직장 선배라는 사람이 혀 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나와 통화중인 남편의 전화기를 가로채 갔어요. 흐트러진 노랫소리와 호들갑스러운 웃음소리가 엉킨 채 통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져 버렸죠. 남편에게선 어색한 변명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어요. 어느 날 나는 마냥 조리원을 뛰쳐나왔어요. 새끼를 낳고 덕지덕지 피딱지가 붙은 어미 개처럼 절룩거리며 거리를 배회했죠.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땅히 갈 데가 없었어요. 시내 한복판에 몸 푼 여자가 있을 만한 곳이 어디 있겠어요. 힐끗힐끗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버스정류장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돌연 유방에 통증이 왔어요. 가슴이 벽돌처럼 단단하게 뭉치면서 고약한 호르몬처럼 찌르르 젖이 새어 나왔죠. 젖은 옷의 앞섶에서 젖비린내가 맡아지자 말할 수 없이 아기가 보고 싶어졌어요. 다시 아기에게 돌아왔을 때 산모가 없어진 조리원은 왈칵 뒤집어져 있었답니다. 산모들끼리 모여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기는 배고파서 울다가 분유를 잔뜩 먹고 잠이 들어 있었고요. 비명을 참아 가며 유방 마사지를 받는 동안 가슴 한구석에서 더 큰 급소를 타격 당한 듯 나는 하염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어요. 밤새도록 젖몸살을 앓다가 새벽에 깨어 신생아실로 갔어요. 유리창 너머로 자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보였지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쌔근쌔근 걱정 없이 자고 있었어요. 저로 인해 엄마가 겪게 되는 몸과 마음의 변화를 알 리 없을 테니까요. 남성도 여성도 아닌, 모체이기만 한 몸. 사회 속에 섞이지 못하는 좌절감을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대신 천륜이라는 형틀 속에 묶여 나는 망연히 아기를 바라보았어요. 다시는 아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왠지 나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죠.

남편이 현관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요. 나는 모른 척 와인글라스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어요. 용기를 내어 남편과 마주 앉아 볼까 해서요.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니까요. 나는 레드 와인을 서로의 잔에 적당히 따라 놓았어요. 욕실에서 손을 씻고 나온 남편이 식탁으로 뚜벅뚜벅 걸어와요. 오랜만에 마주 본 남편의 얼굴엔 수염이 까칠하게 돋아 있네요. 어쩐지 늘 깔끔하게 다니던 남편의 모습 같지가 않아요. 남편은 난데없이 가방에서 컵라면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어요. 생일날 밖에서 뭘 먹고 들어왔기에 컵라면을 사 왔나 싶어 순간 어이가 없어졌죠. 전기 주전자에 물을 데운 남편은 식탁에 놓인 와인도 본체만체하며 허겁지겁 컵라면을 먹기 시작했어요. 나는 혼자서 와인을 한 모금 마시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 보았어요. 김치도 없이 라면을 먹는 남편의 모습이 안 돼 보였거든요. 냉장고 안에는 생수 몇 병과 달랑 계란 몇 알뿐이었어요. 아무리 들여다봐도 김치가 보이지 않네요. 냉장고가 이렇게 비어 있을 리가 없는데 정말 이상해요. 며칠 전에는 임신 전에 입었던 옷가지들도 보이지 않더니 말이에요. 요즘 들어 자꾸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기곤 한다니까요. 내가 모르는 사이 남편이 또 갖다 버린 걸까요. 남편이 주변 정리가 확실한 남자라는 건 알지만 집안 살림에까지 손을 대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아기 물건과 내 물건을 말도 없이 치우는 남편의 일방적인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라요.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일만 해도 그래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집을 내놓아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요? 거실에서 잠옷 바람으로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절걱거리며 문 따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중개인 여자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급전세로 내놓은 거라 값도 싸고 무엇보다도 집이 아주 깨끗해요. 이 집 아저씨가 해외 법인으로 발령이 날 거라나 봐요. 아직 새집인데, 서둘러 달라고 어찌나 부탁을 하던지. 대개 안주인들이 나서기 마련인 집안일에 이 집 사장님은 어찌나 자상하고 꼼꼼한지 사모님 손 거칠 필요 없이 직접 나서서 챙기는 거 있죠.”

나도 모르는 사실들을 중개인 여자는 훤히 알고 있었어요. 남편이 해외 법인으로 갈 거라는 소린 금시초문이었거든요. 회사 근처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줄곧 있어 왔던 터라 갑작스런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진 않았죠. 아기는 젖을 빨다가 막 잠이 들어 있었어요. 나는 사람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얼른 아기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어요. 사람들 소리에 아기가 깰까 봐 나는 그게 제일 걱정이었으니까요. 밤새 보채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아기를 나는 그렇게라도 재워야 했어요. 집을 둘러본 사람들은 안방 문이 잠겨 있어 순간 당혹스러워했어요. 중개인 여자가 대충 둘러대고 나섰죠.

“안방 문은 수리를 좀 해야 된다고 그러더군요. 잠금장치가 고장 나서 툭하면 아무 때나 잠겨 버린다고 말이에요. 그런 건 뭐 큰 하자가 아니니까 다음번에 자세히 보도록 하죠. 제가 이 집이랑 구조가 똑같은 집을 보여 드릴 테니까 우선 거기로 가서 보시겠어요?”

대체로 만족한 듯 집을 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돌아서며 말했어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집이 좀 썰렁하네요. 관리가 잘 돼 있어 좋긴 하지만요.”

사람들이 돌아간 후 나는 보일러 온도를 높게 설정해 놓았어요. 벌써 가을이 오려는지 환절기 기온차가 크게 느껴졌어요. 올가을은 유난히 빠르다고 생각하면서요.

라면을 다 먹은 남편은 보행기를 보고도 본체만체 지나쳤어요. 소파에 다리를 뻗고 누워 그대로 잠들 태세군요. 참다못한 나는 남편을 잡고 마구 흔들었어요.

“일어나 봐요. 계속 이렇게 시치미를 뗄 거예요? 언제까지 침묵하고 있을 건지 말해 보란 말이에요!”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수납장을 열었어요. 예방접종 맞춰야 될 때가 됐는데 아기수첩이 보이지 않았거든요. 접종 스케줄이 어긋나면 안 되는데 말이에요.

“혹시 아기수첩도 당신이 치웠어요?”

하지만 남편은 귀찮은 듯 눈살을 찌푸릴 뿐 대꾸가 없어요. 아기와 나에게 무신경한 남편의 태도를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네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죠. 나는 남편의 방으로 들어가 책장과 서랍을 뒤졌어요. 금방이라도 따라 들어올 줄 알았던 남편은 코를 골며 자고 있군요. 인감과 보험증서를 보관하는 상자 속에서 아기수첩을 찾아냈어요. 수첩 속에 건강 보험증도 함께 들어 있군요. 평소에 잘 열어 볼 일 없는 상자 속에 그것들이 있다는 게 좀 어색했어요. 내가 자주 깜빡하고 잊어버리니까 남편이 보관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죠. 하지만 태연하게 자고 있는 남편은 다른 날보다 유독 얄미워 보이네요. 무심결에 아기수첩을 열어 보았죠. 어떻게 된 일인지 여름 이후의 접종 기록이 모두 누락되어 있어요. 간호사의 실수로 기재되지 않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네요. 투덜거리며 건강 보험증을 열어 보았죠. 눈앞이 하얘졌어요. 세대원을 표시하는 란에 아기와 나의 이름이 없어요. 기억이란 참 감쪽같아요. 내가 잊은 걸까요. 기억이 나를 잊은 걸까요.

남편이 보행기를 차 버리고 나간 그날 밤 나는 아기를 안고 베란다를 서성이며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렸어요.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졌죠. 아기가 점점 서럽게 울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전원이 꺼져 있는 남편의 전화기를 향해 수화기에 대고 자장가를 불렀죠. 반복해서 부르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몸도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죠. 시민 공원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어요. 열대야를 잊은 사람들의 즐거운 탄성과 웃음소리가 멀고도 가깝게 들려왔습니다. 찬란한 불꽃에 화답하듯 폭죽이 터질 때마다 나도 외마디 소리를 내었죠. 탄식인지 환호인지 모를 작은 소리로. 아기를 안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어요.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밝힐 때마다 내 마음속에선 하나 둘씩 불빛이 꺼졌죠. 또다시 아기와 나 단둘이만 남겨졌어요. 기본적인 역할조차 하지 못하는 건 바로 나였답니다. 엄마라는 타이틀이 내겐 가당치 않았어요. 일을 핑계로, 아이를 핑계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인걸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고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남편을 견딜 수가 없답니다.

아기와 나는 이제 더 이상 머물 곳이 없네요. 나는 또 어느 곳을 떠돌아야 할까요. 아직 한밤중인 것 같이 어둡기만 한 현실을 말이에요. 어디선가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어요. 나는 베란다로 나가 망연히 밖을 내다보아요. 구급차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어요. 경찰들이 나와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군요. 아기를 안고 뛰어내린 여자의 이야기로 그 밤에 아파트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어요.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 나는 밤새도록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렀어요. 아침이 되자 남편은 안방 문을 열고 평소처럼 방 안을 둘러보아요. 나는 아기를 안고 거실로 나와 남편을 바라보죠. 오래전부터 이 집에서 남편을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요.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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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춤추는 무당 당골 이심과 춤추지 않는 무당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사진에 대하여 한정현 기생 아니고 무녀예요. 무당이라고요, 아저씨. 이 여자한테 그랬다간 저주받는다고요. 어쩌려고요? 팔아먹게? 그런 말을 했던 이는 곧 어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말하는데도 생생한 눈빛이 빛난다.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되레 큰소리다. 내, 내가 억지로 잡아끌었나! 누가 이 얼굴에 돈을 내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사내는 손목이 잡힌 이심이 아니라 그이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나도 그냥 기생은 아니죠. 아저씨 그렇게 내 얼굴 빤히 보면 돈 내야 돼. 알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이가 입고 있던 소맷자락이 그것을 알려준다. 잘 다린 소맷자락에 수가 놓여 있다. 초량권번. 사내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보다도 낮은 자세로 어느새 이심의 손목을 놓고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내가 놓아 준 이심의 손목은 줄이 그어진 듯 붉다. 공창제도는 한참 전에 없어졌지만, 부산이든 서울이든 이젠 사창제도가 판을 쳐요. 미군들에게 매매 놓아 주는 곳도 많고요. 몰랐나요? 어느 누가 꿀이라도 한가득 따라 놓은 걸까.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운 지 1년이 넘고 보니 거리마다 향기는커녕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향을 품고 있구나. 이심은 공창이 뭔지도 사창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부산이라는 곳에 오기 전까지. 다만 저건 알았다. 그이가 들고 있는 소매 끝에 달린 초량권번이라는 이름. 이 사람은 북쪽이 밀고 내려올 때 군예대로 온 최승희의 제자일까, 아니면 호남 제일 이매방의 제자일까. 이심은 문득 건너의 그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심은 아마 저이가 권번에 들어갈 무렵 시집을 갔을 거다. 세습무라는 것은 보면 희한했다. 부모가 전라도 세습무인 당골이라 한들 그 자식이 당골이 될 수는 없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것이 그들의 업, 인간사 그 모든 번뇌 속에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한 맺힌 자리라 그런 것일까. 기이하게도 당골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심은?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은 어떠한가. 이심은 제 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이심은 신이 아닌 한 인간에게 모든 걸 걸고자 했다. 한여름 빨래터에서 땡볕을 지고 일하는 이심에게 다가와 부채로 가만히 빛을 막아 주던 그 소년에게 모든 것을 걸고자. 사라진 것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처음 해변에서 홀로 하얀 천을 두르고 기녀들이나 추던 입춤을 휘날리듯 추던 그 누군가. 어느 집 기녀가 저리 고울까. 종일 마른 볕에 앉아 빨래를 하던 이심에게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지러움에 잠시 이심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그 꿈이, 아니 그가 웃으며 부채로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그것은, 윤슬이 아니었다. 그의 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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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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