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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색환

  • 작성일 2007-07-31
  • 조회수 2,464

 

물색환



안성호




한 달째 물색환(物色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담배도 소용없었다. 창밖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사물의 색을 손가락으로 굴려 둥글게 만들어보았지만 몸 안에서 만져지는 것은 구슬처럼 둥근 환(丸)이 되지 못했다. 한약방 같은 곳에 전화를 걸어 알아도 봤고, 한의학 서적을 뒤적거리기도 했지만 교수에게 이것이 바로 물색환입니다,라고 말할 것은 못 되었다. 그렇다고 십전대보탕 같은 것으로 몸보신을 해서 사람의 머리가 맑아지고, 머릿속에 든 생각들이 잘 정리된 서랍처럼 정갈하다고 해서 문학과 통하는 건 또 아니지 않던가. 

 


 

애초, 교수가 많은 문하생 중 하필이면 왜 날 지목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태 만에 걸려온 전화였을 게다. 교수는 대뜸 전화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강군인가? 자네 지금도 소설을 쓰는가? 그렇담, 자네 나랑 같이 물색환을 만들어볼 생각 없나?”

교수의 생뚱한 질문에 잠시 정황을 파악하느라 잇댈 말조차 잊고 있었다. 물색환, 물색환이 뭐죠? 하고 되묻는 수밖에.

“한 알만 먹으면 문학의 도와 통하게 되는 뭐 그런 약일세. 고호환, 정로환, 우황청심환과 같이 환으로 만든 것…….”

처음에는 교수가 몇 년씩이나 흘러가버린 세월에 대한 푸념을, 연락이 통 없어 소원해진 제자에 대한 농쯤으로 이해했다. 그것도 아니면 지금 당신의 몸이 의탁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전혀 알 도리 없는 무슨 한약재 이름일 거라고. 하지만 환갑이 훨씬 넘은 교수는 지금도 간혹 신문 지면에 건장한 모습의 사진과 함께 글을 싣고 있었다. 게다가 제자들에게 그런 농이나 사치할 만큼 자애 가득한 사람이 못 된다는, 뒤늦게 떠올린 생각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교수가 세상과의 절연을 계획하고 있거나 그것이 아니면 나의 잘못을 꾸짖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낚싯대를 챙겨 문을 나서는 교수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 손엔 낚싯대, 한 손엔 파란 플라스틱 통을 든 교수는 좁다란 숲속 샛길을 따라 걸어갔다. 간간이 바람이 불었고, 그때마다 교수의 하얀 와이셔츠가 펑퍼짐하게 부풀어올랐다. 가끔은 감나무 뒤로 사라졌던 교수가 햇빛을 받으며 숲속에서 홀연히 나타나기도, 플라스틱 통이 나무에 부딪혀 퉁― 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거실 한 구석에 놓인 병풍을 창가로 옮겼다. 교수가 나에게 물색환을 만드는 비법이라며 내보인 유일한 것이었다. 병풍은 백지였다. 그 하얀 종이를 보며 사람이 먹었다 하면 대번에 문학의 세계에 승천하게 되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것을 만들어야 하다니.

낚시터로 나간 교수는 어둠이 깔리면 낙엽들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메기를 잡기 위해 미끼로 쓴 큰 지렁이를 설상가상으로 덥석 물고 만 붕어 두세 마리를 매운탕 거리로 내놓으며 물색환의 진척 정도를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물색환에 대해 생각을 늘이고 있었습니다, 하는 정도. 그 정도를 말하는 폼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동안 누적된 피로를 보여줘야 했고, 그간 연구 결과가 마치 혓바닥 밑에 고여 금방이라도 빠져나올 듯, 그것을 짐짓 단속하듯 어눌하게 말수를 줄여야 했다. 그리고 침통한 얼굴로 붕어를 받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매운탕을 끓이는 동안 교수는 한낮에 내가 했던 행동과 별반 다르지 않게 담 너머 감나무를 향해 시선을 던져 놓았다. 바람을 따라 허공으로 잎사귀를 찔러넣는 감나무를 보며 교수의 손은 의자의 팔걸이에 헐겁게 삐져나온 못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의자에 앉아 예의 그 삐져나온 못을 만지고 있었다. 오늘내일 안으로 물색환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의자의 못을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그 뜻 모를 침묵, 사위로부터 밀려오는 정적에 짓눌려 몸이 눅진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손이 부지런히 그 까끌까끌한 못을 만지고 있는 동안 마음은 이상스레 텅 비어 갔고, 강으로부터 밀려와 소나무 잎사귀를 흔들어 놓고 마는 바람에도 잠깐씩 정신을 빼앗겼다. 그런 아득한 정신, 내가 여기로 온 후 계속 짓눌려 있던 이상야릇한 침묵으로 잠식되어 갔다. 

교수와 내가 물색환을 만들기 위해 서울에서 가평으로 온 뒤 교수는 1년에 한두 번 들르던 작업실을 꼼꼼하게 손질했고, 숲을 거닐다가 낡은 의자를 발견하곤 그것을 작업실로 들고 왔다. 그러면서 주변에 강이 있고 햇볕 잘 드는 작업실 앞에는 감이 익어 가더란 말과 함께, 늦은 질문 같지만, 자네 내게 미처 못한 말이 있던가 하고 물었다. 

“네.”

“뭔가?”

“물색환을 어떻게 만들 수 있단 말입니까?”

물색환을 만들려는 의도,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인가를 일견 내비쳐주고자 던진 질문이었다.

“음악에는 음계란 게 있잖은가? 그렇듯 문학에도 그와 같은 시심(詩心)이 있네. 그 시심을 손에 꼬옥 거머쥔다면, 또 그것을 입에 틀어넣을 수만 있다면 누군들 단박에 문학과 통하지 않겠는가?”

“시심을 어떻게 손에 넣는지요?”

“그 방법을 알고 싶은가?”

“네.”

대화는 여기에서 끝이 났다. 그날 저녁, 잠을 자기 위해 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웠을 때까지도 교수는 그 방법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솜이불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면서 가슴께가 뻐근했다. 일종의 정적이나 침묵의 무게였으리라. 교수는 다음날 함께 조반을 먹으면서도 끝내 그 방법에 관해 말이 없었다. 궁금증은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며칠 뒤, 나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 마음으로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이 말한 그 시심은 사람의 어디를 통해 오는 것입니까?”

교수님은 의자에 앉아 예의 그 의자의 못을 만지작거렸다. 좀체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내게는 그 물음이 장독에 메주처럼 짙은 색으로 거듭 우러나기 시작했고, 그 물음들은 고스란히 내 것이 되어버렸다.

침묵은 스스로를 앓게 만드는 병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1주일 동안 창밖만 보고 있다가 나는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내 자신에게 유보시킨 뒤 밖으로 나가 강이 보이지 않는 이편 숲을 발정난 개처럼 뛰어다녔다. 의자에 앉아 창밖 풍경만 보고 있자니 몸속으로 유실된 바늘이 내 몸을 저미고 다니는 듯 몸 곳곳이 가렵고 고통스러웠으며 목줄기가 화끈거렸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수평선을 번쩍 들고 일어설 듯 이글이글한 태양의 일출이든, 내 몸의 어딘가를 적시며 뭉클한 뜨거움으로 솟구쳤다. 흡사 세상과 내가 사별한 뒤 등을 돌리며 걷는 영혼의 체념 같은 것일 터. 이러한 시선에서 세상의 희로애락과 얼추 비슷한 이치가 뜬금없이 피어올랐다. 시선만이 아니었다.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내 심상이 뚫고 들어가 내 몸에 흡착되면서 희열이 솟아올랐다. 이것을 채로 걸러낸다면 바로 감동이라는 것일 테다. 고추 씨앗 하나에 삶과 죽음이 함께 보이는 그 지경까지! 그런 깊이로의 집요함, 열정, 끝간 데. 시심은 그런 궁극에서 왔다. 그런데 세상에 그 궁극이란 대체 어디를 두고 하는 말인가. 과연 그것이 손에 잡힐 듯 형체를 띠고 있기라도 한 것이며 또 경단처럼 뭉쳐질 일인가.

맥이 탁 풀린 채 집으로 오자마자 나는 백지장인 병풍과 대면하게 되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노을이 백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것을 유심히 보니 내 몸에 훈기가 젖어들면서 나는 소꿉장난을 하듯 상상에 빠졌다. 몽롱한 시선을 통해 서푼서푼 걸어나간 상상 속의 화자(話者)가 음계처럼 생겨먹은 공기의 계단을 밟고 자유롭게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었다. 그렇다면 물색환이란 이 멋대로인 화자를 찾아내어 비닐봉지에 밀봉한 뒤 환(丸)으로 응축하면 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람의 비밀스런 정신세계를 딱 부러지게 이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안타까움이 여기에 있었다. 귀신이면 몰라도 인간들에게 빛과 바람과 구름들이 가슴살을 찢고 들어와 하나의 상(像)이 맺히는, 이 시심을 먹고 자라는 화자를 두루뭉술 뭉치고 꿀을 발라 사람에게 먹일 순 없는 일이었다.


물색환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물색환을 내놓지 않으면 입술을 꼭 깨물고 그 동안 강에서 메기를 잡아 어미 새처럼 끼니를 물어줬던 교수를 놀리는 격밖에 안 되니 도리 없는 일이었다.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강을 건너 교수가 앉아 있는 강둑을 향해 꾸뻑 인사를 한 뒤 갈대 숲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지난 장마에 생긴 물웅덩이에 발이 빠지기도 했다. 버스나 기차를 탈 생각을 해봤지만 물색환의 재료가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행 가는 기분일 순 없었다. 그것은 개똥일 수도 있고 논두렁에 뜻 없이 흐르는 물, 바람, 바람을 따라 멀리 날아온 곤충, 꽃씨가 될 수도 있었다.

갈대 끝이 불이 난 듯 붉게 일렁거렸다. 해가 근처 산 뒤에 와 있었다. 나는 해와 엇갈리게 무작정 걸었다.

얼마를 걸었던 것일까. 누군가 손전등으로 내 얼굴을 비추며, 움직이면 쏜다, 하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팔을 들어 귀 뒤에 바짝 붙였다. 총을 거머쥔 병사가 멀리서 한번 더, 누구냐? 움직이면 쏜다! 하며 총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왔다. 딱히 댈 말이 없었다. 병사는 등 뒤로 다가와서 호주머니를 뒤적였고 저만치 총으로 날 겨누고 있던 또 한 명의 병사가 초소로 들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저 물색환만 생각하느라 주민등록증이나 나를 증명할 만한 신분증을 가지고 올 정신이 없었다.

“길을 잃었나 봅니다. 뭐 나쁜 의도를 품은 사람은 아니니 길을 열어주든지, 아니면 그냥 온 길을 되돌아가게 내버려두십시오.”

지프차가 왔고, 나는 뒷좌석으로 떠밀려 오랫동안 어둠 속을 달렸다. 내 옆에 탄 남자는 일등상사였다. 그는 개처럼 연신 내 몸에서 냄새를 맡으려 들었다. 내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프차가 위병소를 통과하면서“충성!”하는 구령이 들렸고, 그들의 군부대에 내린 나는 몇 개의 초소를 지나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책상에서 차트를 펼쳐 보고 있던 군인이 날 보곤 볼펜으로 의자를 가리켰다.

“이 시간에 그곳엔 왜 간 거요?”

“약재를 찾으러 갔습니다.”

“몸이 아픈 게요?”

어디가 아프냐는 말에 나는 손바닥으로 다른 손의 손등을 만졌다. 그것은 가슴을 어루만지는 것만큼 쉬이 마음을 추스르게 했다.

“한 알만 먹으면 만병통치약처럼 단박에 문학의 도에 이르게 하는 약을 찾으러 나선 것입니다.”

“만병통치약? 문학의 도?”

내가 한 말에 군인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는 것을 보고 낭패감이 들었다. 괜한 일에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생각에 내 가슴만 어수선했다.

“물색환이라는 것입니다.”

“물색환은 또 뭐요?”

몇 번이라도 사죄를 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그런 사정으로 쉽게 통과시켜줄 사람들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군 작전지역 깊숙한 곳이었다.

팔에 ‘일직사령’이라는 완장을 두른, 소령의 부리부리한 눈매가 점차 호기심어린 눈으로 짜부라지고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하나를 건네며 소령이 말했다.  

“흐, 그런 약이 있다는 것은 처음 듣소. 그렇담 혹 당신도 북으로 가시려는 건 아니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런 게 여기에는 없다며, 더러는 북으로도 가잖소?”

“난 단지 물색환을 찾을 뿐입니다. 만일 그곳에 그것들이 있다면 응당 갈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그것들은 불행하게도 내가 쉬이 발견을 못해서 그렇지 세상 어디에도 흔하게 널려 있을 것입니다.”

문학의 도니 물색환이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그들에게 모두 털어놓았나 보다. 자칫 지뢰밭으로 들어갈 뻔한 나를 두고 그들은 물색환이 곧 총알이 아니겠냐는 둥, 전쟁이란 사람을 죽이는 행위인데 총알보다 앞서가는 그 무엇이 바로 시심과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둥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다가 지금 군대 막사에서는 민간인을 재워줄 수 없으니 가까운 암자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암자에는 인근 군부대 훈련장에 떨어지는 탄피(彈皮)를 주워 팔아 생계를 꾸리는 여자가 살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지프차를 타고, 나는 그들이 말한 암자로 향했다.

어둠을 가르는 두 줄기의 서치라이트가 마치 파충류의 더듬이처럼 어두운 산속 이곳저곳을 더듬거리다가 마침내 민가의 허술한 지붕을 발견하곤 길 입구에 멈춰섰다. 앞서 걸어갔던 상사가 그들이 말한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지프차가 돌아가고 나는 그 여자를 따라 걸었다. 아슴푸레한 장작불로 어른거리는 아궁이, 띄엄띄엄 서 있는 전등 불빛, 그 불빛으로 인해 얼추 드러난 처마에 매달린 옥수수며 삶의 자질구레한 단층들, 불빛이 얼큰하게 배인 수목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흐르는 물소리, 간간이 툭툭 부서지는 나뭇가지 소리까지 가세해 한층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여자는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잦바듬한 길을 한참 동안 따라가자 비로소 지붕이 낮은 암자가 나타났다. 춧담 위에 멈춰선 여자가 문을 열었다. 마른 흙냄새가 숨길을 탁 막을 만큼 잔뜩 고여 있었고, 물소리가 바로 발밑에서 들리는 듯 귀청을 울렸다.

“방은 이것뿐입니다.”

여자는 재빨리 문을 닫곤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여전히 그 물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어디 가까운 곳에 폭포나 경사가 급한 개울이 있을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간 나는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피로에 잠겨 물밑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돌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채며 천천히 어디론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물소리에 한번 잠을 깨자 좀체 잠들 수가 없었다. 눈을 감고 쏟아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더러는 낙엽이 떨어져 바닥을 끌며 지나가기도 했다. 뱃전에서 잠을 자듯 물소리에 정신을 팔며 얇은 잠에 들락말락할 때 무엇이 발가락에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살결이 발가락을 따라 밀리는, 틀림없는 사람의 몸이 발끝에서 느껴졌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조금 전에 방을 잡아 주고 간 여자가 아닐까. 쓸개즙같이 어두운 방안에 젊은 남자와 여자라! 순식간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소령과 일등상사, 그리고 방을 잡아준 여자가 재빨리 머릿속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불깃을 한 손으로 꾹 누른 채 천천히 이불에서 몸을 빼내 불을 켰다. 잠(蠶)에 든 고치처럼 여자가 이불을 돌돌 말아 자고 있었다. 잠잠히 여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의 윤곽이 쉽게 잡히지 않았다. 눈을 비벼 다시 뜨고, 얼굴로 흘러내린 여자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모은 다음 얼굴을 보았다. 생각보다 젊은 여자였다. 나는 묵직한 짐짝을 내려놓아야 할 사람처럼 버둥거렸다. 객수(客愁)랄까 여독이랄까 뭐 그런 것 따위가 핑계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도 했다. 이 여자가 탄피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다니. 그러고 보니 그런 삶의 무게가 눈가로 조금 묻어나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바퀴 달린 앉은뱅이 의자를 밀 듯 조금 조금씩 엉덩이를 밀며 여자 가까이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초상화를 그리듯 여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물색환 때문이었다. 자칫 실수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물색환을 찾기 위해 다잡아놓은 마음이 흩어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눈을 감고, 눈을 떴다. 여자의 몸에서 따뜻한 빛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그 빛의 쟁반, 얇은 귀퉁이가 깨져나와 내 몸으로 박혀들었다. 그럴 참에 여자가 깨어났다. 눈을 부비는가 싶더니 벽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날 쳐다보았다.

“안 주무세요?”

여자가 말했다.

“당신은…….”

달아나버린 잠을 재차 불러들이기 힘들 만큼 방안에 고요로 꽉 차 있었다.

“제가 무섭지 않으세요?”

이렇게 묻는 말이 더 무섭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시종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꼭 물고 있는 여자의 마음이 사뭇 궁금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버릇처럼 여자를 병풍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천천히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꿍 벽을 뚫고 어디론가 밀려들 것도 같았다. 나로부터 멀어진 여자는 벽지처럼 여린 빛을 내며 벽에서 웃고 있었다. 잠에서 이제 막 깬 고치가 나비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수 천 마리의 나비가 벽에 붙어버린 문양으로 날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계속 멀어져갔다. 내민 내 손이 떨고 있었다. 눈을 닦고, 심호흡을 해보지만 여자는 계속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여자의 얼굴 모양새를 따라 그림을 그리듯, 나는 여자의 윤곽을 따라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는 여자의 생김생김이 몸으로 전해졌다. 내가 여자를 만난 게 아니라 어느새 내 몸이 한 여자의 몸을 읽어내고 있었다. 쏟아버린 물기를 마른 수건이 닦아내듯 내 몸으로 여자의 모든 것을 받아내고,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내 중심으로부터 밀어냈다. 번다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단 한번에 선을 그은 수묵화처럼 간결한 여자의 상만이 내 몸속에 자리를 잡아 갔다. 궁극, 시심, 감동이 여자와 나 사이의 어떤 대롱처럼 생긴 줄기를 타고 뻗어내렸다. 시심을 꽃피우는 미상불 화자를 두루뭉술 뭉친다 한들 물색환이 되겠는가. 그런데 결명자만 한 뭔가가 목젖을 타고 뱃속으로 넘어 들어갔다.   

“물색환……. 당신이 물색환입니다.”

“물색환이라뇨, 손님? 손님도 탄피를 주우러 오셨나요?”

여자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탄피라뇨?”

“환이라고 했잖습니까?”

“환?” 

바람이 더욱 세차가 불고 간간이 모래 같은 것이 문풍지로 날아와 짜르르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풍경, 바깥 풍경에 더욱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방에서 여자와 나는 오랫동안 정적에 가로놓여 있었다. 나는 우스운 이야기라며 얼마 전 나에게 일어났던 일을 들려주었다.


교수로부터 전화가 오기 전이었다. 나는 집 천장에 목을 맸다. 목을 매는 데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 정신이 들어 읽었던 신문에 난 기사에 의하면 내가 ‘독자로부터의 피격’, 또 다른 신문에는 ‘소설을 쓰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어느 소설가’라고 나와 있었다. 둘 다 그럴싸한 이야기였지만 사실과는 달랐다. 바로 쓰고 있던 소설 속 화자(話者)로부터의 끈질긴 자살 권유였다.

내가 쓰고 있던 소설의 제목은 ‘골목길에서 만난 낯선 얼굴’이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길을 가다 보면, 길모퉁이가 나온다. 보도블록을 따라 가다가 우연히 만나는 길모퉁이.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약간 길옆으로 걷는다. 누군가 길모퉁이 뒤에 서 있을 것만 같다. 나와 닮은 안경을 쓴 누군가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해올 것도 같고, 혹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셰퍼드가 그곳에 묶여 있을 것도, 낡은 의자에 앉은 창녀를 만날 것도, 죽은 고양이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것도 같다. 더러 길모퉁이 그 너머에는 길이 밀리고 담벼락이 밀려 퇴적된 그 단층 안으로 내가 밀려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기도 한다. 그런 길모퉁이에 나는 서 있다. 문장이란 내리막길에 놓인 유모차 같은 것이기에 누군가 앞서 밀쳐놓으면 요령 없이 끝까지 그 속도를 늦출 수 없는 것인 데 비해 내가 쓰고 있던 소설은 위험하게도 비탈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이것은 산문을 단 한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글이 작가의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낯선 세계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을. 그러던 중에 담벼락, 그곳에서 나는 배회하는 낯선 한 인물을 은연중에 목격하게 되었다. 그는 다름 아니라 소설 안과 밖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나, 즉 화자(話者)였다. 여기서 나는 몇 번이고 교수가 쓴 ‘소설론’을 뒤적거려 좀체 떨어지지 않는 나와 화자 간의 거리를 맞추려 노력했다. “묘사하라! 사물을 보고 몇 걸음 물러선 뒤 묘사하라!” 그러나 나에게 소설이란 소설, 그 자체로서 일찌감치 나의 전부였기에 더욱 더러운 감정이 달라붙어 진흙탕에 빠져들고 말았다. 기차를 타거나 담배를 사기 위해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 곳곳에서 내 소설의 주인공을 발견하게 되고 그 주인공과 마주한 소설 속 화자를 발견하곤 했다. 내 소설은 속이나 밖이나 독자가 없었다. 오직 나,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속의 화자와 주인공과 나뿐이었다. 그러하니 자연히 현실과 가상, 소설의 안과 밖이 불분명했다. 삶 자체가 한편의 소설이라는 말이 이럴 때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결국 소설은 화자와 내가 대화를 주절주절 늘이는 것으로 원고를 채웠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을 죽여야 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을 죽인 뒤에도, 소설이 끝난 뒤에도 화자는 내 머릿속에 번연히 살아 있었다. 작가의 뇌리에 박혀 떨어지지 않는, 찰거머리 같은 화자! 모퉁이에 서서 담배를 피우며 오른쪽을 보고 서 있는 화자와 발로 담뱃불을 비벼 끈 뒤 왼쪽으로 시선을 던져놓고 있는 나. 소설은 끝났지만 화자는 계속 내 몸 안에 살고 있었다. 나는 벽 높은 곳에 못을 박고 전선을 매달았다. 그리고 머리를 집어넣었다. 기필코 내가 누군가를 죽인다는 생각이, 그 누군가가 화자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이 명징해 올 즈음 현관문 소리가 났고 집주인이 전세방의 재계약을 상의하기 위해 들어왔다. 불쑥 찾아온 주인이 119에 전화를 걸어 번연히 살아난 나는, 그 뒤로 날 죽이려 한 독자가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출판사로부터는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간 것을 경험하였으니 이제 슬슬 글을 장만해야 하지 않겠냐는 출판 제의를 받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여자는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글을 쓰다가 목을 매는 일이야 허다한 일은 아니지만 간혹 신문지상을 통해 보지 않았냐고 얼버무렸다.  

밖으로 나가 바람을 갈아 마셨다. 어젯밤에 들었던 계곡의 물소리는 다름 아닌 암자 뒤편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것들은 세상의 허물처럼 떨어지고 바람에 날렸다. 그리고 이미 내 몸속에 들어와버린 여자가 몸 안에서 자꾸만 달그락거렸다.

해질 무렵에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찍 잠자리를 만들었다. 역시 교수와 한 이불에 들었다. 교수는 아무 말도 없었다. 가지런히 팔을 가슴 위에 올린 채 천장만 바라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거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게 유리창에 밀려와 있었다. 어둠 속에 나의 형체가 떠올랐다. 마치 담을 넘어 거실로 살금살금 걸어오던 도둑이 뜻하지 않게 도둑의 키보다 훨씬 큰 화분을 만났을 때, 야릇한 불안, 뜻 없이 화분에 심겨진 꽃의 이름이 갑자기 궁금해지는 듯 내 얼굴이 자못 궁금했다. 깡마른 내 얼굴이 둥싯 떠올랐다. 동시에 암자에서 본 여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것은 나무나 풀, 달이나 별처럼 내 마음속에 자리를 틀어 앉아 있었다.

다음날, 점심때가 되기도 전에 교수가 집으로 왔다. 손바닥만한 붕어를 내놓으며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날따라 부엌에서 그릇 만지는 일에 유별나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교수가 나직이 나를 불러 칼을 달라고 말했다. 붕어의 배를 갈랐던 칼을 개숫물에 헹궈 교수에게 건넸다. 교수는 테이블 위에 놓인 감을 천천히 깎기 시작했다.

“오늘 세 명의 손님이 그간 자네가 만든 물색환을 맛보기 위해 찾아올 걸세. 별 탈이야 없겠지만 혹여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네만, 할 말이 있으면 이참에 해보게나.”

손에 묻었던 붕어의 피가 거실 바닥에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뱀의 허물처럼 길다랗게 이어가던 감 껍질이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교수님은 물색환의 맛이 어떨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낚시는 손맛이라 하네. 그렇다면 그 물색의 맛은 일착으로 눈에 보여지고, 머리에 남아있어야 하고, 똥으로 버려진 그 나머지이니 사람의 몸맛이 아닐까도 싶은데…….”

“몸맛이라뇨?”

교수님은 감을 먹기 시작했다. 우물거리는 교수의 입속에서 씨가 나올 때까지 나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씨 세 개를 뱉어 낸 교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내가 대체 뭘 어쩌자고 이러한 헛된 일에 고생이냐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언뜻 입 밖으로 끄집어낸 모양이었다. 핏물과 붕어의 하얀 비늘이 잔뜩 묻은 두 손바닥을 활짝 펴보이면서까지. 순간 숲의 정적을 깨며 새들이 날아왔다. 그러한 풍경과 맞닥뜨린 나 역시 잠깐 동안 새들의 진로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어떤 감상이 두 사람의 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을 그리며 얼른 지나쳤다. 별안간 두 손바닥을 내놓고 서 있는 내 모습에 오히려 내가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얼른 수저를 놓고 집 뒤, 감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담배 연기는 빠른 속도로 햇볕에 하얗게 말라 갔다.

교수가 다시 강으로 간 뒤 나는 물을 데워 목욕을 했다. 암자에서 묻어온 여자의 냄새며 군부대에서 묻어온 화약 냄새며 모든 것들을 박박 문질렀다. 물색환이란 어차피 있고 없고의 문제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것들을 어떻게 제 몸 안에서 읽어내느냐이니 땟구정물을 응축해 먹는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물색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었다. 밀려나온 때를 경단으로 만들고, 그리고 약탕기를 들고 숲으로 갔다. 그것을 약탕기 속에 넣고, 강물을 조금 떠넣었다. 교수가 시킨 대로 약재는 온유한 시심을 위해 낮은 불에 다려야 했다. 또한 세상의 모진 격랑에서도 문학은 돈후함을 잃지 말아야 하기에 강바람이 막 언덕배기를 오르는 지점에서 위태위태한 불꽃으로 약탕기를 달궈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색환은 물과 함께 마시는 것이 아니라 태워서 향을 흡입해야 한다는 것도 벌써 교수에게 들어두었다. 물색환을 먹은 뒤 술과 음식으로 자연의 큰 의미를 허풍스러운 것으로 자칫 오염시킬 수도 있다는 교수의 기우였다.

어스름이 들기 전에 세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감잎을 따서 만든 차를 내놓았다. 얼굴이 딱딱하게 보이는 세 명의 손님들은 자주 한숨을 내쉬었다. 감잎차의 쓴맛이 입에 돌아서인지 세 명의 손님들은 감잎차를 테이블 맞은편 교수 쪽으로 밀쳤다. 교수는 예의 그 의자에 앉아 못을 만지작거렸다.

“교수님, 정말 그러한 약이 있는지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약골이 두 팔을 무릎에 놓고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교수는 해죽이 웃곤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자 옆에 앉았던 또 한 명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내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제야 교수는 나를 그 세 명의 손님들에게 소개했다.

“강군일세. 이번 물색환을 만든 주인공이네.”

세 명의 손님들은 아하, 짧은 탄성을 내지르며 꾸뻑 머리를 숙였다. 말로만 들었던 그 물색환이 사실임을 확인 받은 듯 그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얼굴에 미소를 오랫동안 잃지 않았다. 

“고생 많이 했쑤다.”

누구 한 사람이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얼른 교수의 시선을 읽었다. 교수의 시선은 창으로 가 있었다. 차가운 날씨로 인해 성에가 껴 있고 얼음판의 숨구멍처럼 뻥 뚫린, 그러나 짙은 어둠이 배인 유리창을 통해 내 얼굴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약탕기 바닥에 들러붙은 것들을 긁어 꿀을 바르고 더운 공기를 덧씌워 공처럼 천천히 굴렸다. 그리고 꿀의 향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린 뒤 세 개의 물색환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세 명의 손님들은 달려들어 그 생김새를 본 뒤 향기를 맡았다. 그러면서도 이 한 알이면 문학을 통한다는 말이 제대로 실감되지 않은 양, 연신 고개를 흔들며 탄성을 자아냈다.

“자네들은 연배도 비슷하고, 비슷한 점도 많으니 안면을 터놓는 것이 좋을 것이야.”

교수의 한 마디에 분위기는 서로를 위로하거나 격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그들은 물색환을 한 개씩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나는 그들에게 그것을 태워 향기를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 명의 손님들은 태울 게 뭐 있냐, 사람을 우습게 보냐며 따지듯 물었다. 귀신들도 아닌 이상, 향으로 그 문학의 도에 이른다니! 하며 세 명 중 한 사람이 재빨리 물색환 하나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나머지 두 사람은 물색환을 입에 넣은 사람의 목젖이 깔딱 솟아오르자 자기네들도 슬그머니 물색환으로 손을 뻗치는 것이었다. 물색환을 꿀꺽 삼켰던 한 명은 뛸 듯이 기쁜 마음에 낡은 소파에 몸을 지긋이 기댄 채,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요, 하곤 눈을 감았다. 교수가 눈짓을 했다. 나는 물색환 한 개를 쟁반 위에 올려놓고 성냥불을 그었다. 두 명의 손님들은 좀 더 많은 향기를 흡입하기 위해 붕어처럼 한 번 공기를 들이마시고는 오랫동안 참았다가 뿜어내고, 그렇게 반복했다. 두 개를 태워 음미한 다음 세 명의 손님들은 잠이 들었다.

세 명의 손님들은 거실에서, 교수와 나는 방에서 잠을 잤다. 여느 때와는 달리 교수와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지난번 암자에서 듣던 물 흐르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고 포탄이 지붕 위로 지나가는 듯한 서늘함도 느꼈다. 그 소리는 다름 아닌 종이 구겨지는 소리였다. 5분이 채 되지 않는 간격을 두고 그 소리는 계속 들렸다. 교수는 내 왼팔을 자신의 오른쪽 팔로 꾹 누르고 있었다. 팔을 빼내고, 조금 거리를 두고 누우면 이번엔 교수의 팔이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런, 까닭 모를 일들이 잠을 자면서 계속 되풀이되었다. 그것은 방조 내지는 암묵적인 묵인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것이었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색환 한 알이면 문학의 도와 통한다는 이 사실에 지레 겁을 먹거나 효험이 나타나지 않아 스스로 절망에 빠져 필시 큰 일을 벌일 게 틀림없었다. 나는 머리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이불에서 몸을 빼내 거실로 나왔다.

석유난로를 켜 둔 거실은 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바람에 커튼이 부풀어 올라 펄럭거렸고, 창틀이 덜컹거렸다. 창가로 걸어갔다. 바람에 배를 내민 커튼을 보며 세 명의 손님들에게 물색환이 무어 필요할까 싶었다. 몸 안에 두 사람 몫의 존재감,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여섯……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여러 명의 화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벌이는 그들에게 물색환은 오히려 독이었다. 한 알만 먹으면 문학의 도에 이른다는 이 말 자체가 독인 것이었다. 여러 명의 화자를 버리고 당신은 먼지처럼, 당신은 바람처럼, 사물을 타자를 흡입하라는 건 곧 자신을 버리고 항아리처럼 텅 빈 몸으로 세상을 향해 우두커니 서 있으라는 말이나 진배없었다. 자객이 지니는 칼처럼 항상 소설가의 몸에 품고 다니는 화자를 죽이라는 것. 그것은 그들에게 자살밖에 선택할 여지를 주지 않는 일이었다. 

해가 강을 지나 소나무 위로 번지고 있었다.

하늘과 소나무의 경계로 검붉은 아침이 밀려왔다. 강물 아래에는 수초 속 붕어들이 잠을 깰 것이고, 강 너머 갈대들은 이슬을 말릴 것이며, 멀리 암자에 나비는, 여자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것이었다. 그 연기가 코끝을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몸 안에 탄피 모양의 화인(火印)이 조금씩 딱딱하게 변하는 것도 같았다. 이것이 혹 물색환은 아닐까.문장 웹진/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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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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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낭독을 들으면서 입술 거스러미를 다 먹어버렸어요ㅎㅎ 은밀한 낭독 잘 들었어요. 저는 조용한 인간입니다. 이 소설처럼 누군가 대신 저의 말을 발화해준다면 좋겠네요. 앞으로 작가님의 다른 은밀한 낭독들을 많이 들어보고 싶네요^^

    • 2011-11-23 20:07:3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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