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그들만의 세상

  • 작성일 2005-08-04
  • 조회수 4,654

 

김윤영


내가 피터팬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내가 특별히 삐딱한 아이였기 때문은 아닙니다. 나는 얼굴도 못 본 할아버지에게도 꼬박꼬박 편지를 써온 순한 아이입니다. 어릴 땐 부모님이 시키니까 했고, 머리가 굵어진 다음에도 반항이라든가 그런 방식으로 거부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날 보면 삐뚤어지지 않고 이만큼 큰 것도 용하다며 아주 대견해합니다. 내가 귀는 안 먹었다는 걸 깜빡 잊고 그런 말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파주댁 아줌마는 그런 내가 쪼끄맣고 비비 말라비틀어졌는데 뭐가 다행이냐고 퉁을 놓으시지만, 그보다 심한 소리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나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감옥에 계셨던 할아버지가 특사로 출소하셔서 우리 집에 처음 오셨을 때에도, 처음 보는 손자인 나를 보시고도 뭐라 말을 잘 잇지 못하신 걸, 나는 이해합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정정하셨습니다. 날 보고, 얘가 걔냐? 라고 하셨죠. 얘가 바로 그 병신이냐? 의 다른 말이라고도 생각됐지만, 나는 그런 데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꿋꿋한 척해도, 마징가제트 주제가만 들어도 울고 싶었던 때가 전엔 종종 있었습니다. 무쇠팔 무쇠다리……. 그렇습니다. 나는 걷지 못합니다. 철로 된 보조기구, 바로 무쇠다리를 박아 넣고 그러고도 모자라 휠체어까지 끌고 다닙니다. 내가 피터팬이나 원더랜드 얘기를 듣기 싫어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내게 피터팬처럼 날아다니는 얘긴 아무리 동화라 해도 듣기 싫은 얘기였습니다. 피터팬이 산다는 원더랜드 같은 세상은 실제 있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할아버진 겉보긴 멀쩡했지만 나보다 나을 게 전혀 없다고 파주댁 아줌마는 궁시렁거렸습니다.

아줌마는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분입니다. 아빠의 먼 친척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직장 다니는 엄마가 도저히 날 감당 못했기 때문이죠. 아줌마한테 난 애물덩어리지요. 그래도 그전의 아줌마들처럼 날 그렇게 구박하지도 않았고, 못하겠다고 보따리를 싼 적은 많지만 정작 날 두고 나갈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온 뒤 자연히 아줌마의 일은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위궤양에 신경통에 수전증에 당뇨에 관절염에 백내장까지 두루두루 앓으시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이런저런 약에 누에가루, 선인장가루 생즙이며 침까지 대느라 더 그랬지요. 에구, 누구는 자식 잘 둬서 빨갱이 주제에 호강하고 사는데 나는 이 나이에 남의 새끼 똥이나 치고 있으니, 이 썩어 문드러질 팔자야……. 그렇다고 내가 정말 변을 못 가린다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아주 가끔 허리에 마비가 와서 그 긴장 땜에 오줌을 지린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줌마는 그걸 꼭 똥 쌌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녀서 깎일 것도 없는 내 체면을 더 구겼습니다.

그래도 난 아줌마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아줌마는 내 치다꺼리를 해줄 뿐만 아니라 친구도 돼주기 때문입니다. 내게 고스톱을 가르쳐준 것도 아줌마의 나에 대한 애정의 한 표현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비록 처음엔 수도 없이 잃어서 저금통을 깨야 됐지만, 아줌마가 잠깐이라도 흐뭇해하는 걸 보는 것도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공짜로 배우는 수업이란 원래 없지 않습니까. 아줌마에게 배운 고스톱을 나도 건수에게 가르쳐줬습니다. 전 공짜였죠.

건수는 내 유일한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을 두 번인가 했고 날 보고 애들이 다리병신 깡통로봇이라 놀릴 때 걔들 다리를 부러뜨린 것도 건수였습니다. 그때 건수엄마랑 우리 엄마까지 학교로 다 찾아와 참 시끄러웠지요. 그래서 건수는 우리 집에 아무 때나 놀러와 밥 달라고 해도 되는 특별한 손님입니다. 특히 엄마는 건수한테 꼼짝 못합니다. 저한테 떨어져 나가지 않은 마지막 친구라고 생각해서겠죠. 건수가 보기엔 껄렁해 보여도 됨됨이가 된 애라는 것도 엄마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건수가 유달리 건강한 편인데다 키만 해도 180이 넘는다는 점도 엄마는 참 부러운가 봅니다. 내 앞에선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것도 난 알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늘 엄마나 아줌마가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같은 반 여자애들이 나만 보면 슬슬 피한다거나 간혹 친해지는 애가 있어도 그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거나, 그런 것들이 지나고 나니 애틋하게 생각되기도 합니다. 가끔 가다, 이 병신같이! 등의 말을 내뱉고 날 쳐다보곤 황망히 말을 고치셨던, 시원시원해서 내가 좋아했던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나 길이 막혀서 엄마가 늦게 오신 날 날 업고 집까지 데려다주셨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납니다. 물론 이 세상엔 좋은 사람만 있진 않지요. 저런 애들도 학교 다니고 참 세상 좋아졌네, 하고 껌을 짝짝 씹으며 지나가던 옆반 선생님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예쁘고 날씬했던 처녀 선생님이었지요. 

그 후 중학교는 특수학교를 갔지만 너무나 천차만별인 아이들 속에서 나는 전보다 더 힘들었고 결국 엄마 아빠는 나를 집에 두게 했습니다. 작년까진 가정교사를 두고 영어나 수학 같은 것도 배웠지만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선생님이 나빴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고, 배워야 내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뭘 고집부린 적이 없는 내가 끝끝내 우기자 엄마 아빠도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건수에게 물어 요즘 유행하는 게임이랑 노래가 뭔지 다운 받고 건수네 학교 선생님들, 계집애들 얘기를 듣는 게 훨씬 유익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곧잘 둘이 맞고를 치기도 했고요.

가끔은 파주댁 아줌마도 꼈는데 그럼 아주 피튀기는 게임이 되곤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아줌마는 잘 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격은 무지 급해서, 무리하게 하다가 독박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요.

한번은 아줌마가 똥쌍피를 먹으려다 싸버리고 그걸 건수가 낼름 먹고 바로 고 들어가서 기어이 쓰리고까지 가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게다가 건수는 아줌마에게 흔들고 쓰리고에 피박에 광박까지 씌웠습니다. 그때 점당 백이었지요. 아줌마는 이성을 잃더군요. 정말 그때 엄마가 와서 말리지 않았으면 건수는 집에도 못 갔을 겁니다. 아줌마가 내 돈 다 따기 전에는 못 간다고 악을 쓰며 밥도 안주고 버티는데 정말 무서웠습니다.

건수는 어릴 때부터 골목대장이었는데 중학교 가서는 더 멋있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쌈도 잘하고 잘생기고 성격도 앗쌀하고……, 그런 건수도 고민되는 게 많다고 했습니다. 저보고 부럽다는 소리도 한 적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것 안 배워도 되고 개 같은 선생들 안 봐도 되니 다행이라면서요. 건수는 공부는 잘 하지 않았습니다. 왜 대학을 꼭 가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소릴 늘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오시고 나서 집안 분위기는 확 바뀌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거의 내게만 쏟아 부었던 신경을 할아버지에게 더 써야 됐기 때문이죠.

할아버지가 왜 감옥에 가게 됐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런 것 때문에 저런 노인네를 감옥에서 내보내주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합니다. 할아버지는 특히 죄질이 안 좋아 다른 할아버지들이 5,6년 전에 확 풀려날 때에도 못 나온 거라고들 합니다. 그때 나온 할아버지들 중엔 벌써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나요. 하여간 내가 이 사회에 유난히 적의가 많아서는 아닐 텐데, 이해가 안 됩니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새파랗게 젊을 때부터 미군정에 찍혀서 도망 다닌 독종이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요. 전평이니 9월 총파업이니 사상전향제니 국가보안법이니 진보당이니 통일운동이니 양심의 자유니, 그런 어려운 소리들도 더 모르긴 하지만요. 증조할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지주였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일본 유학 갔다 오고 감옥 들락거리면서 그 많은 땅을 다 말아먹었다고 합니다. 큰아버지랑 고모들 두 분은 할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막내인 우리 아빠만 머리 좋아 독지가의 장학금 받고 대학 나왔지, 당신들은 못 배워서 못산다고 늘 얘기하십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우리 집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늘 했던 소리가 있습니다. 할아버진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게 좀 달라서 고생을 하시는 거고, 그러니 우리는 할아버질 욕하면 안 된다고요. 그게 어쩌면 할아버지에 대한 내 인상의 전부일지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간첩인지 아닌지는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건수도 그랬습니다. 우리 할아버진 간첩이었대, 라는 내 이야기에 놀라지도 않고 그래? 한마디 하곤 끝이었습니다. 엄마가 얘기하면 안 된대, 라는 내 수줍은 말에도 그러지 뭐, 그러고 말았습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집에 오시고부턴 건수가 가끔씩 내게 안 물어본 건 아닙니다.

-니네 할아버진 진짜 간첩이었냐.

-경찰에선 그렇다고 하는데 아빠와 어른들은 너무 잘나서 누명쓴 거라고 한다.

-어디가 편찮으신 거냐.

-아줌마 말에 의하면 온몸이 종합병원이란다.

-고문도 당해 보셨다고 하냐.

-당근이다.

-할아버지가 결국 공산당이랑 쌤쌤이란 얘기냐.

-공산당이랑은 별로 안 친한 것 같은데 통일이랑은 친하다고 들었다.

건수는 상당히 우리 할아버지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난 아직도 서먹서먹해 할아버지, 라고 한번 부르지도 못해봤고 할아버지도 그 매서운 눈길로 역시 날 빤히 쳐다보기만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그냥 봐도 무서웠습니다. 눈동자의 경계가 흐릿하고 뿌연 것이 꼭 계란 노른자가 으깨진 것 같달까요.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게 사실이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그게 백내장 때문일 거라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수술을 받으면 훨씬 나을 텐데 할아버지가 필요 없다고 버티셔서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한번 억지로 끌고 가 간단한 검진을 받고 온 다음부터 병원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하려고 하셨습니다. 더 살아서 뭐하냐고, 더 사는 게 욕이라고 하시면서요.

할아버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보내셨습니다. 몇십 년 만에 나왔으니 바깥세상 구경도 하시라고 암만 뭐라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같이 감옥에 계셨다는 할아버지들을 만나러 낙성대인가 가시는 날을 빼놓곤요. 가족 없는 분들이 사시는 곳이라고 했는데, 갔다 오면 더 우울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생각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날 처음 보면 내 행색이 너무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놀라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잔머리를 굴리며 굉장히 안쓰러워하는 눈빛을 팍팍 보이는 게 순서인데, 할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얘가 걔냐? 단 한마디를 던질 때도 그랬고, 그 이후에도 나에 대해 따뜻하거나 연민의 눈빛을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날 동정하는 눈빛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몇 년간이나 할아버지, 안녕하시어요, 저 웅호야요……. 이런 위문편지를 썼던 손자인데 참 무심하구나……, 그런 생각이 잠시 스치긴 했습니다.

그렇게 내겐 마냥 어려웠던 할아버지인데 건수는 아주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웅호 친군데요, 어쩌구저쩌구하면서 말입니다. 건수가 그렇게 싹싹한 놈인지 참 새삼스러웠습니다. 오냐, 또 왔구나, 너는 볼 때마다 키가 더 크는 것 같구나, 그런 소리를 할아버지도 언젠가부터 건네시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할아버지들처럼요.

그러다가, 건수 그놈이 할아버지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주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우리 할아버진 보통 사람이 아니더군요. 그전엔 화투 구경도 못해봤다고 하셨고 게다가 눈이 침침해서 흑싸리하고 칠싸리가 구별도 잘 안 된다고 하셨는데, 몇 주 치니까 아줌마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이 된 겁니다. 아줌마도 나이롱은 아닌데요.

결국 고스톱 때문에 친하게 된 거냐, 라고 누가 묻는다면 아니라곤 못하겠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변 정세가 유화 국면에 접어들었달까요. 파주댁 아줌마는 할아버지를 빨갱이라고 낙인찍고 처음부터 못마땅해했는데 점점 그게 아니었습니다. 아줌마의 아들이 그때 짤려서 놀고 있었는데 차마 엄마 아빠에게 얘길 못한 걸 할아버지에게 했고, 할아버진 당장 아빠랑 큰아버지랑 고모들한테 얘기해서 일자리 하나를 구해줬다고 합니다. 무슨 운전기사가 됐다고 해요. 그리고 아줌마는 할아버지 시중을 들다가 고문당한 상처를 봤다고 합니다. 아줌마는 그게 어떤 건지 내게 말을 안 해주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나는 지금도 그게 어떤 건지 모릅니다). 아줌마 같은 사람은 쉽게 빠지고 쉽게 바뀌더군요. 니네 할아버지는 진짜 인물이다, 내가 옛날에 대학에서 청소할 때도 보니까 똑똑한 애들이나 데모하는 거지 멍청한 것들은 그 짓도 못하더라.

그러면서 아줌마는 할아버지가 고스톱을 배웠다는 걸 알고 심심하면 같이 쳐댔고, 그러다 날 끌어들였고 건수가 오면 한 명은 광 팔고……. 이런 식의 판이 돌아가게 된 겁니다. 게다가 손이 하나 생겼다고 아줌마는 날 맡기고 슬슬 마실 나가는 일까지 생기니, 집에 단 둘이 있게 된 이상 말 안 하고 배길 순 없지요.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뭘 물어보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하듯이, 세상 참 편리해졌구나, 영화를 집에서 다 보다니……. 컴퓨터란 게 이런 거구나. 요즘은 왜 옛날처럼 눈이 안 오냐, 인제 봄이구나……. 이런 식인 거지요. 내가 항상 할아버지에게 묻는 편이었죠. 할아버지 중국집에서 시킬 건데요, 뭐 드실래요, 비디오 틀어드릴까요, 바둑판 찾으세요, 전화 왔었는데요…….

한번은 제가 가끔 맞는 주사약을 놓으러 간호사 누나가 집에 왔습니다. 난 이제 약이랑 주사엔 이골이 나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가만히 보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한 말씀 하시더군요.

-그거, 모르핀 같은 거요?

-예?

-감각을 둔하게 하는 약이 아니냔 말요?

-글쎄 그런 것도 좀 있지만, 그래도 웅호가 장기간 치료를 받아서 이건 꼭 필요한…….

-당장 그만 두시오.

-네?

할아버진 애 정신력을 좀먹게 하는 건 마약과 같다고 꼬장꼬장하게 일갈하셨고, 간호사 누나랑 엄마는 당황해서 할아버지를 납득시키려고 애썼습니다. 쟤한테 필요한 건 정신력이야, 약이 아냐 하고 호통을 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슬글슬금 친해진 할아버지랑 가끔 둘이서 집 밖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한 번씩 느릿느릿하게 동네를 돌다 오시던 할아버지가 어느 날, 웅호야 같이 한번 나가보련? 네가 괜찮다면 말이다, 하셨을 때 솔직히 난 놀랬습니다. 걱정도 됐습니다. 할아버지가 휠체어를 제대로 밀 수나 있을까, 이곳 지리를 잘 모르실 텐데. 예상대로 할아버진 다른 어른들처럼 힘은 없었지만 그런 대로 놀이터나 멀리 마로니에 공원까지도 절 밀고 갔다 오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혜화동이 동숭동 코앞에 있는데 그게 뭐가 머냐고 하겠지만 대통령이 다섯 번 바뀔 동안 감옥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요. 게다가 일흔 넘은 골병든 노인이라면요.

할아버진 절 밀고 아주 천천히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돌이나 보도블록에 끼여서 잠깐 멈추면 길바닥 틈에 난 풀떼기 같은 걸 그냥 보아 안 넘기고 한참 앉아서 보시다가 가곤 했습니다. 한번은 마로니에 공원 구석에서 민들레를 봤지요. 저게 민들레구나 하고 알 뿐이지 별 관심도 없는 제게 할아버진 민들레가 어떤 식물이고 종자가 어떻고 그런 설명을 한참 하셨습니다. 민들레를 좋아하시나 봐요. 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진 웃으시기만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웃는 것도 으시시했습니다. 저는 또 나불댔습니다. 이쁜 꽃도 얼마나 많은데요. 민들레는 꽃 축에도 못 낄 걸요. 그제야 할아버진 띄엄띄엄 이런 얘길 하셨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면회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런 사람들이 있긴 하단다. 근데 나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거든. 그러다 어떤 독방으로 옮겨졌는데, 무슨 꽃씨가 날아와서 창 바로 바깥에 싹이 텄단다. 그땐 그게 민들렌지도 몰랐고 결국 그 노란 꽃이 피는 걸 한참 후에 보게 됐지. 내가 살아서 이런 것도 보는구나 싶어서…… 하고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할까요. 이 꼿꼿한 할아버지가 민들레 하나를 보고 감격했다는 게 잘 믿겨지지가 않았습니다. 무슨 동화에 나오는 얘기 같았습니다. 감옥이란 데가 그런 데구나……, 그런 생각을 잠깐 하긴 했지만요.


할아버지의 고스톱 실력이 나날이 늘자 파주댁 아줌마는 슬슬 판에서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판돈 없는 고스톱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니 점점 아줌마의 쌈짓돈이 새나간 거지요. 그래서 건수, 할아버지, 나 이런 삼자 대결 구도가 익숙해졌는데 쳐본 사람은 다 알지만 계속 치다 보면 으레 성격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건수는 평소엔 잘하다가 발동 걸리면 욱 한다는 게 흠이었습니다. 전 소심해서 원고 이상 해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스톱이죠. 아줌마의 행태는 아까 말했듯이 독박 쓰기 딱 좋은 타입이구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뭐라 분석하기 힘든 타입이었습니다. 우선 고스톱이라는 이 사천만의 게임 자체에 문제제기를 항상 했습니다. 이게 일본에서 들어온 거 아니냐고 시비를 거시는 거야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그 룰에 관해서입니다. 피박은 이해가 가는데 왜 광박이 있어야 되냐는 식이죠. 피야 숱하게 널렸지만 광은 다섯 개밖에 없는데 그거 가진 사람이 점수 난다고 남은 사람들 박 씌우는 건 너무 형평에 어긋난다면서요. 또 요새 화투엔 조커가 다섯 개, 여섯 개까지 들어 있는데(빠꾸피, 쓰리피 등등) 우리는 보통 세 개쯤 넣고 해왔습니다. 근데 할아버진 그걸 몽땅 빼자는 겁니다. 요행수를 노리게 되는 건 아주 안 좋다면서요. 하도 할아버지가 우겨서 조커 딱 한 장만 넣고 하게 됐답니다. 그리고 어쩌다 누가 운이 대통해서 흔들고 쓰리고에 양박이다 그래서 따따따블이 되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심하다고 에누리를 해야 된다고 할아버지는 주장하시는 겁니다. 같이 다 살아야지 왜 상대방들을 알거지로 만드냐고요. 그게 바로 고스톱의 묘민데요, 하고 우리가 암만 항의해도 할아버지의 고집은 엄청 셌습니다. 결국 우린 할아버지 말대로, 아무리 흔들고 어쩌고 해도 따블을 상한선으로 정하게 됐습니다. 진짜 점수는 몇 점이다, 이렇게 기분만 내보고요. 김새지요. 목돈도 안 모이구요. 할아버진 또 자기가 점수가 나도 상대가 빈털터리면 안 받고 그냥 넘어가 버립니다. 그 자리에서 꼭 받아내는 아주 지독한 사람들도 있다지요. 할아버진 그렇게 허술하게 돈을 받고도 제일 많이 따곤 했습니다. 그게 신기한 일이었지요. 나는 할아버지가 다음엔 뭘 갖고 걸고넘어지실까 그게 은근히 궁금하곤 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어느 날, 할아버지는 이제 돈 걸고 하는 게임은 하지 말자고 청천벽력 같은 소릴 하셨습니다. 바둑알로 하자면서요. 할아버지 땜에 처음 점 백으로 치던 것도 점 오십으로 내렸고 급기야 최근엔 점 십으로 치고 있었는데, 그래서 별로 칠 맛도 안 나고 있었는데 바둑알이라뇨. 정말 건수와 난 몸으로 막았습니다. 안 하면 안 했지 절대 안 된다고요. 도대체 돈도 안 걸고 무슨 낙으로 치냐고요. 하여간 그때 느꼈습니다. 도대체 할아버진 너무 순진한 건가, 아직도 이 사회에 적응이 안 되는 건가, 이 고스톱이라는 게임이 원래 그렇고 그런 건데 그걸 바꾸려 하다니요. 할아버지가 세상을 바꾸려 하시가다 감옥을 가셨다는 얘기가 그때야 좀 이해가 되더군요. 할아버지는 이 사회의 룰도 바꾸고 싶었던 거겠죠. 고스톱 룰을 바꾸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이 세상의 룰을 바꾸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건수가 놀러오는 게 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라고 생각하려는데 엄마가 어디서 들은 얘긴지 그게 아닐 거라고 했습니다. 건수가 이상한 애들이랑 몰려다닌다고요. 우리 집에 놀러 와서도 예전처럼 희희덕거리지 않고 뭔가 생각이 많은 듯 했습니다. 125CC 중고 오토바이 하나 장만한다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걸 비밀이라고 신신당부를 했었습니다.

할아버진 눈이 더 나빠지셔서 매조랑 사쿠라를 구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들여다보면서 쳐야 했고 같이 치던 파주댁 아줌마는 짜증을 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고스톱을 치는 일은 점차 줄었습니다. 할아버진 더 말이 없어지셨습니다. 인터뷰인가를 하러 온 무슨 기자에게 호통을 치고 쫓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네놈이 역사를 뭘 아느냐고, 날 가르치려고 하냐면서요.

어느 날 건수가 못 보던 가죽잠바를 쫙 빼입고 놀러 왔습니다. 머리엔 보라색 브릿지를 하고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오랜만에 보니 약간 서먹하더군요. 건수는 오토바일 타면 구질구질한 것들을 다 잊을 수 있다는 얘길 하더군요. 새로 사귄 친구들은 공고를 다니거나 학교를 때려친 애들인데 나만큼 좋은 놈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놈들하고만 사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건수는 쓸쓸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지금은 제일 작고 후진 걸 타지만 언젠가―그날이 곧 올 거라고 했습니다―1200CC 뿅가는 걸 몰게 되면 널 꼭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수의 얼굴은 어른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밤도 깊었는데 날 휠체어에 앉히고 깜깜한 정원으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임마, 꿈을 가져. 언젠가 넌 내 오토바이 뒤에 타고 펄펄 날아다닐 거야. ET에서도 나오잖아. 내 어깨에 얹은 건수의 손이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그게 건수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패싸움이 벌어져 건수는 정학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고자질한 애를 집 앞에서 칼로 그어 경찰에서도 건수를 찾고 있단 소릴 아줌마에게서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미 건수는 집을 나간 뒤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젠 지팡이를 짚고도 옆에 누가 있어야 안심이라고들 했습니다. 할아버지와 같이 고생하셨다는 친구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을 때 마침 집에 사람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혼자 나가셨다가 아주 곤욕을 치르신 것 같았습니다. 낙성대 만남의 집인 줄 알고 무작정 가셨다가 장소가 다르다는 걸 알고 헤매신 겁니다. 가족이 없는 분들의 장례는 너무나 볼품없다고 갔다 온 엄마 아빠가 얘기했습니다. 그런 분들 몫만큼 사셔야 한다고 이제 병원 가서 눈이라도 고치자고 할아버지를 설득했지만, 할아버진 더 완강하게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신 것 같았습니다. 파주댁 아줌마까지 옆에서, 그만 좀 고집 피우셔, 이런 자식들이 요새 어딨어, 좀 편하게 사셔, 그렇게 혀를 끌끌 찼지만 할아버진 끄떡도 안 했습니다. 큰아버지 고모들까지 번갈아 오셔서 북새통을 떨었고, 할아버지의 고집을 노망이라고 포기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뜸하던 어느 날, 파주댁 아줌마까지 경동시장에 약 사러 가고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날도 따뜻해져서 정원으로 통하는 이중샷시를 열고 느긋하게 앉아있는데 어디서 이상한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렸습니다. 애기가 칭얼대는 소리 같달까요. 유심히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옆집 장독대랑 담벼락 사이였습니다. 할아버지도 소리를 들으시고 궁금해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내 휠체어를 끌고 난 할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어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담 틈으로 보니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버둥거리고 있었고 쥐를 먹다 만 흔적이 보였습니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니 쥐가 쥐약을 먹었나보군, 하셨습니다. 살릴 수 없겠죠? 얼마나 힘들까요. 무심코 이런 소리를 하자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은 힘들지 모르지만 빨리 죽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는 게 저놈에게 더 나을 거다, 라고요. 듣고 나니 별말은 아닌데 말씀하신 할아버지의 목소린 참 냉랭했습니다. 난 아무 말 없이 그 고양이를 그저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할아버진 왜 수술을 안 받으세요? 한참을 있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더한 것도 견뎠는데……, 뭐 한 게 있다고 이제사 그런 걸 받누……, 별로 더 보고 싶은 것도 없다. 이 세상은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더 나빠지고 있어……. 나는 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보는 세상과 내가 보는 세상은 정말 그렇게 다른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순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났는진 모르지만, 할아버지에게 뭔가 화가 났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수술로 걸을 수만 있다면 백 번이라도 받겠어요. 저는 더 나빠지는 세상이라도 남들처럼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어요. 

말해놓고도 내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만큼 울어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은 우는 사람을 토닥여도 주고 안아주기도 하던데, 내 옆에 할아버지는 그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셨습니다. 내게 손가락 하나 까딱 안 대고 말도 없이요. 그러다 시장 갔던 파주댁 아줌마가 들어오는 걸 보시고 할아버진 혼자 휭하니 집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상하게 나도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왔습니다. 너무 울어서 더 나올 눈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할아버진 자기 맘대로 실컷 사신 분이니까 나하곤 다르지, 난 쥐약 먹은 쥐 때문에 거품 물고 죽어갈 도둑고양이 같은 팔자고…….

고양이는 더 이상 버둥거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돌을 하나 가까스로 집어 그놈 머리를 향해 던졌습니다. 할아버지 말대로 더 좋은 세상에 갈 것 같진 않지만 빨리 죽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는 정말 숨이 끊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아줌마가 거기서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며 내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 왜 그리 눈이 부었냐고 아줌마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또 돌을 들어서 누군가를 맞히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무서웠습니다.


무슨 후원회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집에 왔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반가워하시는 몇 안 되는 손님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할아버지 얘기랑 많은 사람 얘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구술하셔도 되지만 맘에 들게 책이 나오려면 직접 글을 보셔야 할 텐데, 하고 걱정들을 했습니다.

-난 이제 거의 눈앞이 안 보인다우. 난 빼구려.

-선생님, 오래 오래 사셔서 젊은 사람들에게 전해주셔야죠. 다른 분들은 더 안 좋으시다는 걸 아시잖습니까.

-…….

-수술 받으시면 회복되실 수 있다는데, 저흴 봐서라도 꼭 시력을 찾으셔야죠.

-…….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

아빠는 며칠 뒤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진 드디어 수술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참에 이런저런 다른 치료를 받자면서 아빠는 아예 할아버지를 입원시켰습니다.

할아버지가 병원으로 가시니 집안이 더 넓어진 것 같다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파주댁 아줌마는 원래 노인네가 집에 있다가 없으면 그런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보통 노인넨가, 아주 징한 노인네지, 하고 한숨을 쉬면서요.


할아버지의 수술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그전에 한번 병실을 찾아가긴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금방 나왔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날 잡아서 오신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보다 더 남루하고 약간 냄새도 나고 그런 분들이었습니다.

다음에 간 날은 바로 수술 전날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말씀이 없으셨고, 사촌들은 TV를 크게 틀고 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밥 먹으러 가자고 어른들이 부르셔서 우르르 나가고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금방 있었던 파주댁 아줌마는 그새 또 어디로 놀러 나간 것 같았구요. 할아버지의 눈은 그새 더 뿌옇게 된 것 같았습니다. 나야 걸어본 적이 없으니 그게 얼마큼 불편한 건지 정확히 가늠을 못하지만, 보이던 눈이 안 보이면 얼마나 답답할까,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주제넘은 짓이지, 하는 생각을 막 하려는데 갑자기 그 순간, 마른 고목 같은 할아버지 손이 내 손을 움켜잡았습니다.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할아버지, 파주댁 아줌마 부를까요.

-아니다, 그게 아니고……, 내가 전부터 네게 하려고 했던 말이 있었는데…….

할아버진 쿨룩거리시느라 말을 잘 못 이으셨습니다. 노을빛이 들어와 할아버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얼굴의 미세한 신경들이 떨리는 게 보였고 평소의 그 고집스런 얼굴과는 좀 달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죽어가는 고양이를 지켜보던 그 냉랭한 표정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쉽게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할아버진 계속 머뭇거리시다가 천천히 입을 여셨습니다.

-내가 워낙 사람들하고 말을 해본 지가 오래돼놔서……, 정작 할 말은 참 하기 힘들구나.

-말씀하세요. 유언하시는 것도 아닌데 뭐가 그리 힘드세요.

나는 정말 유언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면서도 잔인하게 그런 소릴 입 밖에 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난 정말 하지 말았어야 될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아니다, 나 같은 늙은이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하여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네 자신을 깔볼 권리는 없다는 거다, 웅호야. 너를 그렇게 살게 만든 이 세상이 잘못된 거지, 네가 못난 게 아니란다. 어른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어야 하는 건데……, 그러지 못했지. 할아버진……, 너 같은 사람도 다 잘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건데……, 그러지 못했구나…….

-…….

-네게…… 미안하구나…….

할아버지가 왜 제게 미안해하셔야 돼요, 그런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지만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다만, 할아버지 입에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할아버진 뭔가 거창한 목표를 갖고 사셨을 텐데, 그게 나 같은 애도 기죽지 않고 살 세상이랑 통한다니, 그런 얘긴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할아버진 그렇게 멀리 있는 분이 아니었나요, 나 같은 놈은 어떻게 되도 할아버지가 꿈꾸는 세상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나요……, 그런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훅 하고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할아버지 역시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더 말씀해주시길 바랐지만 역시 할아버진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묘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마치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곧 간호사 누나가 들어와 무슨 주사를 놓는다고 했고 파주댁 아줌마랑 어른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나는 결국 말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진 다음 날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수술은 실패였습니다.


할아버지의 눈은 수십 년 전에 받았던 고문 때문에 수정체가 손상돼서 수술은 별 효과가 없었다고 합니다. 갑자기 악화된 이유조차 확실히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술을 한 거였다고 어른들이 쉬쉬하며 하는 소릴, 난 뒤늦게야 들었습니다.

고생은 좀 했지만 사실 만큼 사신 거지, 그런 내 고약한 생각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내내 들었습니다. 수술이 실패한 것이 나와도 무관하지 않단 생각이 들어 난 속이 착잡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수정체를 다칠 수 있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싸워야 했던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었을까요.


할아버지는 다른 병동으로 옮겨지셨습니다. 계속 무슨 치료를 받으셨죠. 수술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신 건지 더 말이 없으셨고 계속 주무시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눈을 뜨시면 그 흐릿한 눈으로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엄마 아빠는, 비록 결과는 안 좋았지만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해서인지 한시름 놓은 듯했고 묵혀놓은 숙제처럼 내 얘기를 들춰냈습니다. 이모 둘이 얼마 전 LA로 갔기 때문에 날 보내면 좋을까 어떨까 그런 얘기였죠. 잊을 만하면 듣던 소리긴 하지만, 사실 전엔 그랬습니다. 여기보다 훨씬 시설도 잘 돼 있고 눈치도 안 보고 산다는데 가볼 만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정말 미국에 가면, 극장이랑 백화점이랑 놀이공원이랑 야구장이랑 더 쉽게 가고 더 좋은 점도 많겠지만, 거기라고 그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도 사람이 사는 데고 병신이 병신 취급당하는 건 엄연히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병원에 가서 혼자 집에 있는 날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나는 마루에서 TV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깼고, 날은 어느새 어둑해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나는 저게 누구 발자국 소린가 기억하려고 애썼습니다. 현관문이 열렸고 누가 들어왔습니다. 가죽잠바를 입은 건수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뛰어가고 싶을 정도로요.

-어떻게 된 거야, 어딨었어?

-…….

-집에는 갔다 왔어? 너네 엄마가…….

-됐어 짜샤, 잔소리는 하지 마.

-…….

-근데 왜 집이 이렇게 조용해? 할아버지랑 아줌마는?

나는 할아버지의 수술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안됐구나.

-인제 고스톱 칠 사람들도 없어.

건수는 씩 웃더군요.

-건수야, 어떡할 건데……. 학교는 가야지……. 전학 갈 방법도 있다고 하던데…….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난 이제 돌아갈 데가 없어.

-…….

-널 보고 싶어할 거야, 임마.

건수는 내 어깨를 한번 툭 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저벅저벅 걷는 소리와 대문 닫히는 소리가 분명 났습니다.

어쩌면 나는 잠깐 꿈을 꾼 건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 들어가신 후로 더 기력이 없어 보이는 건 내 느낌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른들은 병 고치려다 초상 치르는 거 아니냐고 쑤군대곤 했습니다.

내가 정원 구석의 민들레를 발견한 건, 어른들의 그런 막말이 듣기 싫어 파주댁 아줌마에게 밀어달라고 해 정원으로 나왔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줌마는 못 보던 화분 하나를 주워들고 갸우뚱거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여기다 이걸 놨을까, 흙도 담아놨네, 하면서요. 할아버지가 그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뭘 심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난 아줌마에게 말했습니다. 저 민들레를 담아서 할아버지에게 갖다드리면 어떨까요. 그랬더니 아줌마는 별 어린애 이 앓는 소릴 다 들어보겠다며 저런 잡초를 뭐하러 화분에다 담냐고 하셨습니다. 민들레는 잡초가 아니라고 했지만 아줌마는 끝끝내 잡초나 마찬가지라고 우겼습니다. 하긴……, 아줌마가 그 사연을 모르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아줌마가 나보다 더 할아버지를 이해한다 하더라도 다 알 수는 없는 거겠죠. 나도 아직 할아버지를 어려워하는 건 사실입니다. 너희 할아버지 같은 분 때문에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라는 말을, 어쩌면 나는 한참이 흘러도 이해 못 할지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은 건수가 바라던 세상보다도 내게 더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볼품없는 꽃이라도 저런 꽃도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엔 화려한 꽃들만 필요한 건 아닐 테지요.

난 민들레를 가지고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눈이 비록 낫지 못해서 함께 고스톱도 못 치고 민들레를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난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정말 처음으로요.


할아버지가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내가 바라는 세상의 한 모습이기도 합니다.《문장 웹진/2005.8》







추천 콘텐츠

튤립이 있는 식탁보

튤립이 있는 식탁보 강태식 존슨 카운티 외곽에는 중산층들이 모여 사는, 거의 모든 면에서 깨끗한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었고, 완전히 똑같이 생긴 집들이 - 지붕과 창문과 현관 손잡이와 마당을 두른 나무울타리의 모양까지 똑같은 집들이 - 거리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죽 늘어서 있었다. 진입로에는 작고 예쁜 우체통이 서 있고 - 어느 집이나 다 - 우유 배달 업체의 상표가 찍힌 낡은 주머니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팻말이 울타리 한쪽에 걸려 있으며 마당 잔디가 빗질 자국이 남아 있는 머리처럼 잘 정돈되어 있었다. 화단에 심은 꽃들도 거의 비슷하거나 완전히 똑같아 보였다. 차를 몰고 천천히 지나면서 보면 그랬다. 어디선가 가끔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모든 음이 기계가 치는 것처럼 정확했지만 음이 정확하다는 것말고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연주였다. 얼마 전에 하나뿐인 아들 톰을 다른 주에 있는 대학에 보낸 벤 하우저와 로지 하우저도 그 거리에 있는 많은 집들 중 한 곳에서 살았다. 그들은 아직도 아들의 방문 앞에 멍하니 서서 그 안에 아들이 쓰던 물건들만 - 사인볼과 다 버리고 딱 두 개 남은 레고 모듈러 시리즈와 절대로 버리지 말라고 고집을 부려서 버리지 못한 낡은 청바지와 픽업트럭을 끌고 이케아 매장에 가서 사온, 벤이 꼬박 이틀 동안 조립해서 겨우 완성한 오래된 이층 침대와 디딤판에 노란색 번개 마크가 크게 프린팅된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들만 – 남아 있다는 것을, 자기들이 그런 물건들과 함께 - 한때 아들이 필요로 했던 물건들과 함께 - 그 집에 남겨졌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벤과 로지는 아들이 자기들 품을 영영 떠났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고 - 날마다 그런 짐작이 확고한 사실로 굳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 자기들이 톰의 방문을 바라보며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벤은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 앉아 - 창 너머로 어둠이 차오르고 있었지만 벤은 희미한 빛이 감도는 그맘때의 거실을 둘러보며 오래 쓴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 로지가 외출 준비를 완전히 마치고 이제 정말 다 끝났다고 말해 주기를 - 립스틱만 바르면 된다거나 스카프만 고르고 금방 나가겠다는 말말고 진짜 이제 정말 다 끝났다고 말해 주기를 - 기다리고 있었다. 벤은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리모컨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손을 뻗어 TV를 켰고, 채널을 이리저리 돌린 뒤에 다시 TV를 껐다. “뭐 해, 벤?” 로지의 목소리가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망치질을 하는 것처럼 안방 문 너머로 들려왔다. 화장대 앞에 앉아서 눈썹을 그리거나 파운데이션을 더 꼼꼼하게 바르면서 몸을 뒤로 틀어 소리 지르는 로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손가락 끝으로 집어 떼어내거나 잠자리에 들기 전에 침대보를 잡아 펴는 것처럼 오랜 세월 동안 숱하게 보아 온 모습들. “아

  • 관리자
  • 2024-10-01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 춤추는 무당 당골 이심과 춤추지 않는 무당 오키나와 영매 유타의 사진에 대하여 한정현 기생 아니고 무녀예요. 무당이라고요, 아저씨. 이 여자한테 그랬다간 저주받는다고요. 어쩌려고요? 팔아먹게? 그런 말을 했던 이는 곧 어흥, 하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을 잔뜩 구기면서 말하는데도 생생한 눈빛이 빛난다. 사내는 입을 반쯤 벌리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되레 큰소리다. 내, 내가 억지로 잡아끌었나! 누가 이 얼굴에 돈을 내겠어! 그 말을 하면서도 사내는 손목이 잡힌 이심이 아니라 그이의 얼굴을 힐끗거린다. 나도 그냥 기생은 아니죠. 아저씨 그렇게 내 얼굴 빤히 보면 돈 내야 돼. 알죠? 아닌 게 아니라 그이가 입고 있던 소맷자락이 그것을 알려준다. 잘 다린 소맷자락에 수가 놓여 있다. 초량권번. 사내는 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아까보다도 낮은 자세로 어느새 이심의 손목을 놓고 슬그머니 물러선다. 사내가 놓아 준 이심의 손목은 줄이 그어진 듯 붉다. 공창제도는 한참 전에 없어졌지만, 부산이든 서울이든 이젠 사창제도가 판을 쳐요. 미군들에게 매매 놓아 주는 곳도 많고요. 몰랐나요? 어느 누가 꿀이라도 한가득 따라 놓은 걸까.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며 싸운 지 1년이 넘고 보니 거리마다 향기는커녕 악취가 진동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향을 품고 있구나. 이심은 공창이 뭔지도 사창이 뭔지도 몰랐다. 이 부산이라는 곳에 오기 전까지. 다만 저건 알았다. 그이가 들고 있는 소매 끝에 달린 초량권번이라는 이름. 이 사람은 북쪽이 밀고 내려올 때 군예대로 온 최승희의 제자일까, 아니면 호남 제일 이매방의 제자일까. 이심은 문득 건너의 그이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심은 아마 저이가 권번에 들어갈 무렵 시집을 갔을 거다. 세습무라는 것은 보면 희한했다. 부모가 전라도 세습무인 당골이라 한들 그 자식이 당골이 될 수는 없었다. 신과 인간을 잇는 것이 그들의 업, 인간사 그 모든 번뇌 속에서 자신의 삶은 없는 한 맺힌 자리라 그런 것일까. 기이하게도 당골은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심은? 남원 가재골 3대 당골 이심은 어떠한가. 이심은 제 발로 그 집에 들어갔다. 이심은 신이 아닌 한 인간에게 모든 걸 걸고자 했다. 한여름 빨래터에서 땡볕을 지고 일하는 이심에게 다가와 부채로 가만히 빛을 막아 주던 그 소년에게 모든 것을 걸고자. 사라진 것이 네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처음 해변에서 홀로 하얀 천을 두르고 기녀들이나 추던 입춤을 휘날리듯 추던 그 누군가. 어느 집 기녀가 저리 고울까. 종일 마른 볕에 앉아 빨래를 하던 이심에게는 꿈같은 광경이었다. 어지러움에 잠시 이심이 감았던 눈을 뜨고 보니 어느새 그 꿈이, 아니 그가 웃으며 부채로 빛을 가려 주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빛나던 그것은, 윤슬이 아니었다. 그의 춤이

  • 관리자
  • 2024-10-01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우리에겐 낮술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전하영 R과 나는 바닷가의 한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우리는 그 도시에 있는 어느 서점의 초청으로 북토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처음에는 서점이라고 해서 작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꽤 규모가 있었고 로컬에서는 인지도도 높은 곳이었다. 사례비가 두둑해서 나는 바쁜 R을 설득해 초청 인사로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럴 때는 그가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불려 다니는 일을 한다는 게 도움이 됐다. 주말에 집에 들어가지 못할 이유를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북토크는 공식적으로도 그의 일의 연장이었다. 북토크에서 이야기할 책은 내가 이십 년 전에 쓴 소설로 처음에 출간됐을 때만 해도 거의 팔리지 않았는데, 영화화되면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R은 그 영화의 제작자였다. 그가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책을 발견했고 영화화를 제의해 왔다. 안 될 게 뭐람? 그 책은 세상에서 잊힌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나는 반갑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지 않은 이차 저작권료에 더 관심이 많이 갔는데 알고 보니 그쪽에서는 내가 당연히 그보다 큰 금액을 부르리라 예상하고 미리 낮춰서 제시한 금액이라고 했다. 그런 사정을 파악하게 된 것은 R과의 관계가 좀 더 사적인 성격으로 진전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책이 영화화되자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책에 쓰인 시절도 내게 함께 돌아왔다. 이십 년 정도가 지나면 당시의 나를 더 이상 나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상황과 감정이 바뀐다. 인간의 몸은 7년마다 세포 전체를 모조리 갈아치운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책이 처음 출간된 이후 대략 세 번쯤은 완전히 다른 나로 거듭나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장 잘 아는 타인을 덕질하듯이 나는 과거의 나에게 향수를 느끼며 그때 그 시절의 장소를 방문하며 추억에 잠기곤 했고, 그때마다 함께하는 상대에게는 숨은 의도를 밝히지 않고 다른 볼일이 있는 것처럼 둘러댔다. 그것은 최근 들어 생긴 나만의 비밀이자 즐거움이었다. 북토크를 위해 우리가 방문하는 도시는 한때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오랫동안 쇠락의 길을 걷다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비싸고 조밀한 서울에 진력이 난 젊은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고 사람들이 모이니 인터넷 매체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제 조만간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물망에 오를 테고 그렇다면 이 도시도 많은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프랜차이즈 카페와 플라스틱 상징물로 가득 찬 어느 평범한 한국의 소도시 중 하나로 거듭날 것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제작자를 데려가는 셈이니 어쩌면 내가 그 도시를 망가뜨리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온 세상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 내가 하는 작은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더 큰 효과에 대한 전망. 책이 영화화된 뒤로 줄곧 내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기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R에게 그 도시에 가본 적이

  • 관리자
  • 2024-10-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