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공식 누리집 확인방법

  • 작성일 2024-05-01
  • 조회수 1,782

   끗


김학찬


   1

   크리스마스 선물은 컴보이가 좋겠습니다. 착한 어린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건 오직 현대 컴보이뿐이니까요. 컴보이는, 당신도 기억하실 겁니다. 벽돌을 치고 버섯을 먹는 슈퍼마리오를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게임기였으니까요(컴보이는 닌텐도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출시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혼자 외가에 있었습니다.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서도 울지 않는 착한 일곱 살이었고, 컴보이를 받을 자격은 충분했습니다. 저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부터 슈퍼마리오 노래를 불렀습니다. 립스틱으로 화장실 거울에 ‘컴보이’라고 써두기도 했습니다. 할머니도 선물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요. 혹시라도 할머니가 삼성 게임보이나 대우 재믹스를 사오면 피차 곤란해질 테니까요. 유치원 차석 졸업 예정이었던 저는 (분하지만 도저히 지영이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산타의 비밀 따위는 모른 척하며 크리스마스 아침을 기다렸습니다. 머리맡에 놓인 컴보이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손자의 웃음소리를 할머니에게 들려줄 계획이었습니다. 자고로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조잡한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려 있던 선물 상자는 고작 담뱃갑만 했습니다. 달랑달랑, 이상했습니다. 아무리 할머니가 골초라도 손자한테 담배를 선물로 주진 않을 텐데······. 저는 손을 떨면서 포장지를 풀었습니다. 휴, 다행히 담배는 아니었습니다. 포장지 안에 든 것은 화투花鬪였습니다.


   화투와 슈퍼마리오는 형 동생 사이입니다(물론 화투가 형입니다). 1889년 화투 제작으로 시작한 닌텐도는 (슈퍼마리오는 8억 장이 넘게 팔렸습니다) 지금도 화투를 생산합니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선물이 아주 어긋나지는 않은 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화투로 하늘을 날고 불꽃을 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할머니는 전자오락보다 더 재미있는 걸 가르쳐 주겠다며 화투패를 챠르륵 펼쳤습니다. 화투를 알면 일 년 열두 달을 직접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되는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궁금하지 않으냐고 속삭였습니다. 나이만큼 패를 섞고 (할머니는 예순일곱 번까지 패를 섞고 돌아가셨습니다) 짝을 맞추면 그날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분하지만 저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라는 말이 저를 충동질했습니다. 만약 한 살만 더 많았거나 적었다면 할머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운명에 비하면 만약은 부질없는 단어고, 화투점占과 민화투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금방 화투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화투점은 하루에 한 번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두 번 보면 반칙이니까요). 하루 종일 혼자 중얼거리며 화투를 (1인 2역으로) 치다 보면 스스로가 누구인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가뜩이나 엄마와 떨어져 있어서 심란한데, 자아정체성마저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패를 섞었습니다. 화투점으로 승부의 결과를 미리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온) 할머니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이기면 엄마에게 빨리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해주세요. 엄마도, 아빠도, 하다못해 쓸모없는 여동생마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중요한 승부를 화투점에만 의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광 한 장을 허벅지 아래에 몰래 숨기고 패를 돌렸습니다(민화투에서 제일 점수가 높은 건 광光입니다. 한 장에 20점이거든요). 손바닥의 땀을 몇 번이나 바지에 닦았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는 담배 연기를 천장에 내뿜으며 툭툭 무심하게 패를 뒤집기만 했습니다. 담배 한 개비가 끝까지 타고 나자 승부가 났습니다.


   - 이런 걸 나가리라고 한단다.


   나가리라는 말이 아멘, 나무아미타불처럼 들렸습니다. 짝이 맞지 않으면 성립조차 되지 않는 판이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패가 항상 딱 맞아떨어졌던 건 아직까지 속임수가 없던 세상에서만 살았기 때문이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 장을 뺄 걸······. 할머니는 금방 코를 골았습니다.


   착한 아이는 빠르게 타락했습니다. 어차피 크리스마스 선물도 날아갔고, 착한 어린이 노릇은 내년 12월에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요. 마을 아저씨들 옆에서 어슬렁거리다 사양하지 않고 맥주 한 모금을 얻어 마셨습니다. 마른오징어를 거칠게 찢고 사납게 질겅거렸습니다. 아저씨들은 하늘에서 버섯이 떨어진다고 소리치는 아이를 보며 웃었습니다. 


   저를 찾으러 온 할머니는 평상에 놓인 맥주병을 모조리 깬 뒤 엄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며칠 뒤 손님과 저녁을 먹는다는 운수를 뗐던 날 엄마가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저는 주머니 속에 든 화투를 만지작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아버지도 먼저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취해서 노곤하게 자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저는 불현듯 모종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2

   수학여행쯤이야······. 저는 패기만만했습니다. 귀신과 중학생은 무서워도 어른은 무섭지 않았습니다. 같은 학교를 6년이나 다녔으니 모르는 것도 없었고, 몸도 부쩍 커졌습니다. 친구들끼리 이틀만 자고 돌아오면 세상을 다 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디를 가도 뭔가 주섬주섬 꺼내는 (하다못해 귤이나 사탕이라도 가져오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호종이가 화투 두 벌을 가져왔더군요. 우리는 흥분했습니다. 아무도 딱밤이나 손목 때리기 따위의 말은 꺼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컸고, 딱밤을 때린다고 내 주머니에 돈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스톱을 시작했습니다. 고스톱은 민화투와 달리 나아갈 때Go와 멈출 때Stop를 고민해야 합니다. 왜 패를 받아 놓고도 강제로 죽어야 하는지, 광값을 줘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면 고스톱의 세계에 들어설 수 없었습니다(영원히 초등학생이 되는 거지요). 호종이는 친절하게 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집집마다 다른 규칙도 조율해 주더군요.


   (동생은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자타공인 집안 영재英才인 저는 단번에 고스톱의 요결을 간파했습니다. 광이나 단 따위로는 고작 3, 4점, 깔짝깔짝 그 판만 이기는 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벌어서는 출세할 수 없었습니다. 민화투에서 무가치했던 피가 고스톱에서는 장당 1점······. 태초에 피皮가 있었고, 고스톱의 요결도 피皮에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피를 말리고 내 피를 늘릴 것, 그것은 자본의 작동 방식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저는 여행비로 받은 돈의 여섯 배를 땄습니다.


   이다음에 과학자 따위는 되지 말고 화투나 계속 칠까? 로봇 따위 만들어서 뭐 해? 로봇도 고스톱으로 따면 되는데? 장래 희망과 진로를 수정하고 있는 와중에, 호종이가 친구들에게 잃은 돈의 절반을 일일이 돌려주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응? 굳이? 왜? 호종이는 혹시 공산당인가? 세상 물정을 모르거나 수상한 행동을 했던가? 평소 불평불만이 많았나? 다른 아이들도 호종이를 이해하지 못한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돈을 돌려준다는데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괜히 저만 억울해지더군요.


   - 재미있었잖아?


   호종이는 찡긋 웃고 금방 코를 골았습니다. 나약한 녀석, 대한민국은 어디까지나 자유민주경쟁사회야. 선의와 재미만으로는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어. 저는 단호한 자신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여섯 배를 벌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각오가 서 있었습니다(물론 호종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수학여행이 끝나고­현실의 학교에서는 화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끈기와 시간이 필요한 화투는 그만큼 선생님에게 걸릴 확률도 높았거든요. 교실에서 화투판을 펼쳤더니 다들 검지로 머리를 빙빙 돌리고 가버렸습니다. 소인배小人輩들은 빠르게 푼돈이 오가는 단순한 판치기 따위에 만족했습니다. 판치기는 도박인데, 장차 커서 뭐가 되려고······. 어쩔 수 없이 저는 동생에게 화투를 가르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을 실천하고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우습게 아는 엄마는 저와 동생의 용돈을 공평하게 줬습니다. 저도 성별에 따른 차별은 반대했지만 용돈이 부족한 건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엄마는 동생에게 오빠만큼 용돈을 주는 쪽 대신 오빠에게 동생만큼의 용돈을 줬으니까요. 신문에서 연공서열年功序列과 물가상승률物價上昇率이라는 단어를 보지 못했던 게 분명했습니다.


   저는 동생과 화투 치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연습도 하고 용돈도 벌 수 있었으니까요. 역시 파랑새와 일타쌍피一打雙皮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엄마가 왔을 때 파랑 새대가리, 아니 동생이 울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퇴근한 엄마는 피곤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딴 돈을 돌려주라고 했습니다(제가 좀 아는데, 엄마는 공산당이 아닙니다). 저는 정당한 노동이자 게임이라고 항변했는데, 부엌에서 나온 엄마의 얼굴에는 할머니가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담배를 피며 아무 말 하지 않던 그 얼굴 말입니다). 엄마는 그럼 일대일로 한 판 칠 생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봐주지는 않겠다더군요.


   나 원 참, 누가 누구를 봐준단 말입니까? 저는 입술을 말발굽 모양으로 만들어 엄마를 비웃어 주었습니다. 문득 엄마가 화투 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해서 혹시 규칙은 알고 계시냐고 정중하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엄마는 닥치고 패나 돌리라고, 부모의 아량으로 선先 정도는 양보하겠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엄마를 응원하더군요. 화투에 응원 따위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다니 역시 동생은 어딘가 부족한 게 확실했습니다.


   화투점에서 재물이 든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첫판을 이겼습니다. 두 번째 판도 이겼습니다. 그리고······ 십 분 만에 동생에게 딴 돈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십 분이 지나자 한 달 치 용돈이 사라졌습니다. 어디까지나······ 단지 자금이 모자라서 진 것뿐이므로, 저는 돼지의 명복을 빌고 (복수는 꼭 해주마) 살찌워 둔 돼지저금통을 모셔왔습니다. 엄마는 커터 칼 정도로는 자칫 손만 다친다고 식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반년 치 용돈이 삼십 분 만에 사라졌습니다. 첫 끗발은 개끗발이었습니다. (점괘를 잘못 해석했을까요?) 엄마는 동전을 정리하며 동생에게 얼마를 잃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천 원을 더 얹어 돌려주었습니다. 동생이 뭘 했다고 천 원이나 주느냐는 항변에는 응원도 정당한 노동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엄마의 콧노래 소리를 들으며 화투에는 부모 자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은 울면서 잤지만 길게 보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후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으니까요.



   3

   아버지는 손이 작았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작았고 심정적으로도 왜소해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표본과 같았습니다. 작은 손의 소심한 아버지는 엄마 몰래 사직서를 내고 (아직도 이유는 모릅니다) 고등학교 선배가 주임으로 있는 바닷가 오뎅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아마 선배 아저씨도 당황했을 겁니다. 우연히 만난 고향 후배에게 큰소리 한 번 쳤을 뿐인데, 공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후배와 마주쳐야 하는 건 너무하니까요. 엄마는 한숨을 쉬고 아버지를 구하러 동생을 데리고 부산에 갔습니다.


   엄마가 끌고 온 아버지의 옷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손목과 팔의 기름에 덴 자국들을 보고 있으니 오뎅이 아버지를 잘게 튀기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다니던 농협에서는 사직서를 어찌어찌 무마시켜 줬습니다. 관행이랄까, 관습이랄까, 그런 게 통하던 작은 지역 농협이었습니다. 농협 조합장도 엄마처럼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을 테지요. 저는 그동안 외가에서 할머니와 화투를 치고 있었습니다.


   십 년 뒤 아버지는 두 번째 사직서를 썼습니다. IMF가 터지면서 대출금이 회수되지 않는 일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출계에 있던 직원이 대신 갚아야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선빵 필승必勝이라, 먼저 그만두면 책임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물론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도 있었습니다(같이 근무했던 아저씨는 끝까지 버티고 정년퇴직까지 했습니다).


   모든 사건의 진짜 확률은 언제나 반반입니다. 엄마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우는 아버지에게 사람은 다 먹고살게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출근해서 조합장에게 스톱을 외쳤습니다. 아버지는 관행 덕분에 첫 번째 사직서를 도로 물렀고, 관습 때문에 두 번째 사직서를 낸 셈입니다.


   중학교 수학여행을 앞두고 밑장빼기를 연습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다를 수 없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닮은 작은 손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복잡한 기술을 익힐 수 없었습니다. 손이 작고 엄지대립근拇指對立筋이 약해서 세 번째 밑장을 빼면 오른손에 쥔 패들이 반드시 우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과학자 따위라도 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미 삼각함수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왜 sin30°는 cos60°와 같은 것일까요?)


   하지만 보이스 비 엠비셔스Boys, be ambitious, 저는 소년이었으므로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밑장에서 실패한다는 것은 두 번째까지는 가능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만 않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의도와 순서를 치밀하게 만들고 머리와 손을 부드럽게 일치시켰습니다(역시 영재英材는 어딘가 다릅니다). 밑장빼기 두 번을 뜻대로 완성했을 때 손바닥에서는 짭짤하고 달콤한 향이 났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인생을 다퉈 볼 만했습니다. 의도대로 두 장의 패를 가질 수 있으니까, 수학적으로도 허무맹랑한 계산이 아닙니다. 두 장의 베네핏benefit과 카지노가 돈 버는 방법은 같으니까요. 카지노에서 가장 많은 테이블은 블랙잭입니다. 그리고 블랙잭의 승률은 플레이어가 49%, 카지노가 51%입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규칙도 단순하고 승률도 거의 반반이니까) 꽤 공평한 게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카지노의 베네핏을 끝내 이길 수 없습니다. 겨우 2%가 높을 뿐이지만 무한한 반복 끝에 웃는 건 카지노입니다. 저는 두 번의 밑장빼기로 베네핏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 작정이었습니다. 일곱 장이나 열 장의 패로 치는 화투에서 확실한 두 장은 카지노의 법칙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요.


   설악산으로 가는 중학교 수학여행 전날은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호종이말고도 화투를 가져온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화투점을 떼볼 필요조차 없는 천재일우千載一遇였습니다. 제 전략은 간단명료했습니다. 상대방의 운 따위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조바심 낼 것 없이 부지런히 치자. 그렇게 저는 꼬박 이박삼일을 (낮에는 버스에서 자고) 고스톱만 쳤습니다. 사흘 사이에 제가 얼마를 벌었는지 아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창밖만 바라보며 돌아왔습니다. 제가 가져갔던 돈은 백 원 하나까지도 주머니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따고 잃고, 따고 잃은 결과는 정확하게 본전치기였습니다. 방심한 적도 없는데, 돈은 모두 제 돈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자리도 바꿔 가며 쳤는데, 피곤한 나머지 울산바위는 올라가지도 못했는데, 왜······. 휴게소에서도 내리지 않고 멍하게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호종이의 귓속말이 들렸습니다.


   - 손 너머를 봤어야지.


   호종이는 찡긋 윙크를 하고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너머라니 어디를 말하는 걸까, 여기는 강원도 휴게소인데, 혹시 38선을 뜻하는 것일까, 역시 호종이는 공산당이었던 것일까······. 아니 내 손, 너머, 그러니까 손에 쥔 패, 그리고 너머의 세상······. 아아, 호종이 말이 맞았습니다. 화투에서는 내려치는 패가 절반, 뒤집어서 가져오는 패가 절반입니다. 아무리 좋은 패를 들고 있어도 뒷장이 안 붙으면 번번이 내주기만 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나쁜 패를 쥐어도 뒷장만 붙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손에 쥔 패보다 뒷장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싸거나 싹쓸이는 어디까지나 뒷장에 달려 있으니까요. 


   역시 배움에 때와 장소는 없습니다. 인정합니다. 수학여행은 가치 있는 현장 교육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종이는 어떤 녀석이었을까요? 평소에는 같은 반이라는 사실조차 흐릿하게 느껴졌는데, 어떻게 수학여행 때만 되면 제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걸까요? 저는 호종이에게 끝내 이유를 묻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오뎅 공장에 간 이유를 묻지 못했던 것처럼요.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호종이를 잊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교훈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화투로는 돈을 잃지 않았습니다.



   4

   살면서 화투로 많은 재미를 봤습니다. F를 A+로 바꾼 적도 있고, 사단장에게 이겨서 헬기를 타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나 장군 따위와 치는 화투에 진심이 담길 수는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생존전략일 따름이었거든요. 역시 화투는 장인과 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장인匠人말고, 진짜 장인丈人 말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첫 명절이었습니다. 눈이 와서 사흘을 처가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가에 갇히자 당황한 건 장인이었습니다. 화장실을 가도 제가 있고 담배를 피우러 나가도 (뒷마당에) 제가 쪼그리고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 나쁜 짓을 하다 만난 친구처럼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어색하게 열두 번 정도 웃은 후, 장인은 갑자기 좋은 수를 떠올린 듯 과장되게 무릎을 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게 사위, 화투 칠 줄 아나?


   장모님은 남부끄럽게 장인과 사위가 무슨 화투를 치냐고, 집에 화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도 손으로는 담요를 꺼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 화투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서랍장이거나 장롱 구석이거나, 화투는 반드시 어딘가에 있습니다. 다만 그 자리를 잊고 있을 뿐입니다. 슬쩍 화투패 뒷면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올려 보니 새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장인의 화투 품새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장인이니까 저는 성심성의껏 상대해 드렸습니다. 기름값과 톨게이트 비용 정도만 챙길 생각으로 장인이 잃으면 좋은 패를 넣어 주고, 싸고 나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과장된 탄식을 내뱉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훈훈했고)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우리 둘 다 흥이 올랐다는 겁니다. 도박이 무서운 이유는 돈을 잃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돈이야 잃을 수도 있고 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도박의 진짜 무서움은 몰두에 있습니다. 화투에 빠져들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괜히 화투 앞에서는 부모 자식도 없다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느새 따닥, 쓸, 아싸 고도리를 외치고 있더군요(아싸는 참았어야 했습니다). 장인은 끝장났습니다. 장인은 허허, 이거 어쩔 수 없지, 하고 일어섰는데,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습니다(그리고 눈이 다 녹을 때까지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사위, 내가 혼자 연습 좀 했다네. 추석 때 내려가니 장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화투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화투는 진짜와 다릅니다. 속도감이 다르니까요. 강속구는 곧잘 치면서 느린 공만 나오면 맥을 못 추는 타자가 되어버립니다. 느린 만큼 더 여유를 갖고 배트를 휘두르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무래도 현실의 스윙이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헛스윙을 세 번만 하면 손과 마음이 무너집니다. 이번에는 명절 용돈 정도로 해결되는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화투는 전통민속명절놀이니까요, 하고 장인이 잃은 돈을 계산해서 돌려드리려고 했습니다. 장인은 입술을 꽉 깨물며 대답했습니다.


   - 자네 눈에는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글쎄요, 장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장인은 장인이고, 성은 아내와 같고, 성별은 아내와 반대고, 장모님한테는 한마디도 못 하지만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 (왜 장인과 사위는 꼭 하게체를 쓰는 걸까요?) 그럼 반만 돌려드리면 어떨까요? 라고 물었더니 장인은 담배를 거칠게 비벼 끄고 벌떡 일어나셨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어떻게 봤냐는 둥, 아들같이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럴 줄 몰랐다는 둥, 고스톱을 치면서 말이 너무 많다는 둥, 오늘 운 좋은 줄 알라는 둥, 다음 명절에 두고 보자는 둥······. 


   아아, 딴 돈의 절반만 가져간다거나 개평을 넉넉히 줘야 한다거나 하는 소리는 도박꾼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개평을 줄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더 현명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돌려받는다고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평을 받는 순간 앞으로 진심으로 복수할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진짜 이길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셈입니다. 모름지기 복수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꼭 이겼어야 했느냐고 아내에게 혼이 났습니다. 뜨끔했지만 사실 아내 돈도 몰래 따고 있어서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만 넘으면 어둑어둑해지는 한겨울 (12월부터 2월까지) 우리 집 동계 리그를 핑계로 아내의 용돈을 야금야금 따고 있었으니까요. 사실 아내 돈을 따는 게 큰 잘못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제공동체니까요. 넓게 보면 장인의 돈을 따는 것도 잘못까지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처가가 남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다음 설날, 장모님과 아내의 감시 때문에 장인과 저는 몸을 사렸습니다. 그리고 화장실 앞에서 장인을 마주쳤을 때 쪽지를 받았습니다. 오리백숙 잘하는 곳, 겨울에도 따뜻한 평상이 있음. 저는 투뿔++ 한우 등심보다 도널드덕Donald Fauntleroy Duck을 더 좋아한다고 답장했습니다. 우리는 세배를 마친 뒤 멧돼지가 뒹굴어서 망가진 묘를 손본다는 핑계를 대고 삽과 곡괭이를 챙겨 백숙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시간 후 입술의 오리 기름을 닦으며 일어섰습니다. 장인과 함께 돌아오는 시골길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역시 화투는 장인과 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5

   사람들은 좋은 패만 쥐면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화투는 실력과 무관하고, 진 이유는 어디까지나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글쎄요, 당신은 운이 좋으면 반달곰과 (상대는 아주 운 나쁜 반달곰이라고 치고) 싸워 이길 수 있으십니까? 운이 좋다는 건 말입니다, 애초에 괴물을 만나지 않는 겁니다.


   저는 괴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괴물 탓인지도 모릅니다. 입사한 지 일 년이 막 지났을 때였습니다. 거래처 이사의 조모상(무려 101살에 돌아가신)이었는데, 장례식장이 회사 근처라 퇴근길에 들러야만 했습니다.


   장례식장이란 뜻밖의 사람도 만나게 되고 평범한 안부도 의도 이상으로 길게 나누게 되는,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말단 사원에게 육개장만 먹고 일어서는 사치는 허락되지 않았고 술을 꽤 마신 부장은 화투를 치자고 했습니다. 너희도 백 살까지 살고 싶으면 느리고 긴 취미를 가져, 이거만 부지런히 쳐도 치매에 걸리지 않아. 언제나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부장을 보고 있으면 알코올성 치매가 바로 저런 것인가 싶었지만, 이 주장만큼은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화투판에서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해야 하고(판단), 자기 몫의 점수는 스스로 챙겨야 하고(계산), 상대방이 슬쩍 점수를 올리는 게 아닌지 감시하는 동시에 너스레도 떨어야 하니까요(의심과 기만).


   우리 판이 너무 재미있어 보였나 봅니다. 문상객들은 모처럼 열린 화투판을 붉은 얼굴로 쳐다보다가 저마다의 판을 깔기 시작했습니다. 화투가 모자라 옆 빈소에서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관전하는 사람, 낄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왕년에 화투 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 마음이 달아오른 사람과 눈이 번뜩이는 사람이 섞이고 판과 판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며 아사리판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진짜 장례식장에 온 것 같았습니다(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느새 제가 앉은 판은 우리 회사와 경쟁 납품 업체의 대결처럼 되어 있더군요. 부장은 부상으로 제일 먼저 이탈했습니다(오른쪽 어깨를 삐끗하자 왼손으로 치는 투혼을 발휘했지만 왼팔에도 쥐가 났습니다). 분명히 담배 피우러 간다고 했던 과장은 어느새 집에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매번 면박만 주는 대리는 이건 회사의 자존심이 걸린 사건이라고 외쳤습니다(주둥이로 화투 치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저는 회사 대표로 1:1 고스톱, 맞고를 치게 되었습니다.


   괴물은, 당신도 짐작하듯이 바로 호종이었습니다. 십 년 이상 훌쩍 지났지만 저는 호종이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찡긋 웃는 얼굴은 호종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호종이의 정확한 실력은 잘······그러고 보니……보기는 봤을까……? 당시 저는 제 화투를 치기에 급급했으니까요. 호종이가 세다는 건 어린 시절의 착각이었을지도 몰랐습니다. 호종이는 그냥 우연히 수학여행에서 화투를 칠 때마다 곁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호종이를 한 번 뒤집어 보고 싶었습니다. 


   고스톱의 묘미가 균형이라면 맞고의 핵심은 맞장입니다. 고스톱으로는 한 판에 큰돈을 따기 어렵습니다. 잘 맞아도 쓰리고가 고작입니다. 맞고는 다릅니다. 빠르게 피만 붙으면 파이브five 고, 씩스six 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쓰리고 이후부터는 고go 한 번에 두 배씩이니까, 고를 다섯 번 부르면 기본이 여덟 배입니다. 고스톱이 주고받는 탁구라면, 맞고는 상대를 반쯤 죽여 놓을 수 있는 이종격투기입니다.


   저는 반달곰이 되고 싶었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밑장을 뺐습니다. 한 판, 한 판, 다시 한 판. 호종이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보다 딱히 더 센 것 같지도 않더군요(역시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거나 과장되는 모양입니다). 반반 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졌습니다. 다른 판들은 멈췄고 모든 눈이 저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구경하던 거래처 이사는 비뚤어진 상장喪章을 가다듬으며 제안을 했습니다. (자신은 문상객을 맞아야 하니) 마지막으로 세 판만 더 치라고, 지는 쪽이 다음 입찰을 포기하라구요. 두 회사의 상사들은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동의했습니다.


   저는 날뛰는 마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6학년 때 딴 돈으로 아버지의 해진 벨트를 새로 샀던 걸 떠올려······ 그러면, 분명히 너는, 나는, 아니 너는, 아니 나는 할 수 있어······. 첫판, 떨리는 손으로 밑장빼기를 했지만 저는 딱 7점, 기본 점수로 이겼습니다. 호종이가 6점으로 추격해와서 스톱을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판은 호종이가 7점으로 이겼습니다. 저는 아예 점수가 붙질 않았는데 호종이는 그냥 스톱을 불렀습니다. 소심한 녀석, 역시 별것 아니야, 만약 내가 지금 너라면······. 잠깐, 마지막 판 선을 쥐어야 밑장을 뺄 수 있는데, 차라리 첫판을 내주고 두 번째 판을 가져올 걸······. 그 순간, 저는 선을 잡은 호종이가 눈으로만 웃는 것을 분명히 봤습니다.


   호종이는 시작하자마자 피를 늘려 가며 순식간에 고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도리로 일발 역전을 노렸지만 공산八月 기러기는 허무하게 호종이 앞으로 떨어졌습니다. 제가 이길 방법은 없었습니다(이사는 더 볼 것도 없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호종이는 계속 고를 외치며 패를 내려쳤습니다. 이미 다 이겼으면서, 꼭 그렇게까지 무참하게······. 어렸을 때는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주변에서는 어마어마한 점수에 탄식이 나왔습니다. 호종이는 찡긋 웃고는 마지막 패를 내려쳤습니다. 힘차게 뒷장을 따닥 뒤집었습니다. 저는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 이거 나가린데?


   부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은 먼저 치는 대신 반반의 확률로 마지막 패가 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먼저 치는 자의 진정한 고민은 패가 바닥날 때까지 고를 외치고 두 배 더 먹을지, 아깝지만 한 장의 패가 남은 지점에서 안전하게 멈출 것인지를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 무승부였습니다. 호종이는 고를 부르고도 붙은 패가 없었으므로 이기지 못했고, 저는 마지막까지 2점이므로 나지 못했으니까요. 사람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더니 (마치 어떤 영감이라도 받았다는 듯) 아까보다 더 떠들썩하게 화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와이셔츠를 앞뒤로 잡아당기다가 구두를 신던 호종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찡긋. 호종이는 장례식장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눈이 마주친, 서로의 눈이 서로의 눈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때 그 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있을 수 없는 오해와 숨길 수 없는 의도가 명백해지는 찰나, 호종이의 찡긋이 담고 있는 마음, 나가리에서만 불현듯 나타나는······. 저는 그것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이제 제 화투는 처음부터 다시 섞여야만 했습니다.



   6

   - 땅끝까지 이르러 서로 화투하라.


   대한바둑협회나 장기연맹도 있는데 화투협회가 없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화투는 아름답기까지 한데 말입니다(정치적 탄압이나 종교적 음모가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둑은 무에서 시작해 꽉 차오르고야 말고, 장기는 잡고 잡다가 끝내 텅 비어버립니다. 하지만 화투는 손에서 던진 만큼 바닥에 패가 깔리기 때문에 늘 48장, 결코 부족하거나 넘치는 법이 없습니다. 화투는 잘 치는 사람이 항상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아이가 어른에게 이길 수 있고 선이 말末에게 지기도 합니다. 화투에는 9단도 없고 초급도 없습니다. 화투 앞에서는 부모와 자식도 스승과 제자도 그저 평등하기만 합니다. 저는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다음날 세계화투회世界花鬪會를 창립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화투회의 단기적인 목표는 화투의 완전한 합법화와 인식 개선, 장기적으로는 10억 화투 인구 양성 및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입니다. 화투를 정규 교과에 넣어 12년제 교육 과정을 편성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화투를 통해 타자打者와 소통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전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각국 대표가 만나서 한 판 꽃싸움을 벌이면 되니까요.


   둥글게 둘러앉는 화투회에 회장 따위는 없습니다. 다만 코이코이こいこい를 변형해서 고스톱을 창안한 사람, 다윈의 진화론을 수정한 사람을 마음속 깊이 기릴 뿐입니다(아시다시피 그는 우장춘 박사입니다). 세계화투회는 번창할 겁니다. 벌써 회원도 두 명이나 있으니까요. 저는 조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화투를 가져갔습니다. 조카는 이제 여덟 살, 조기교육을 시작하기 적당한 초등학생이 되었거든요. 아직 우리 조직은 비밀이니까 삼촌 외에는 아무와도 화투를 치지 말고 섣불리 실력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조카는 (닌텐도 게임기와 새로 출시된 슈퍼마리오를 받으며) 저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조카와 저는 머리를 맞대고 강령도 정했습니다. 첫째, 언제나 꽃을 사랑한다. 조카는 화투패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회원이 될 수 없다고 썼습니다(역시 저를 닮은 조카는 영재가 분명합니다). 이어서 저는 두 번째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둘째, 가족 같은 사람에게만 밑장을 뺀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덧붙였습니다. (단, 가족의 범주는 회원 각자의 양심에 맡긴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강령이 필요한 순간이 되었습니다.


   화투점에서 저녁에 좋은 이를 만나 기쁜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화투점이 좋습니다.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싸리와 단풍의 의미가 달리 와 닿을 수 있거든요. 의미가 달라지면 그날의 운수도 바뀝니다. 없었던 운을 불러오고 불운을 행운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세 번째 규칙은, 당신이 우리와 함께 만들어 나가면 어떻겠습니까? 셋이 모이면 넷이 될 수 있고 넷이 모이면 다섯을 채울 수 있습니다. 서로 반복해서 패를 주고받다 보면 손 너머의 광경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같이 입술의 오리 기름을 닦고 싱긋 웃을 수도 있습니다. 믿고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오늘 이후 저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요.


   왜 하필 당신이냐구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이 없는 세계화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야말로 화투회의 □■이니까요. 당신이 이기면 (진짜) 이유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면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을/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지면 여기 놓인 가입신청서를 쓰시면 됩니다(거기, 도장은 아래에 찍으면 됩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제 시간을 당신에게 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으니까요. 천천히 입회원서를 읽어 보십시오. 우리는 분명 같이 재미있게 화투할 수 있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그냥 찡긋 웃어 주십시오. 결심하셨습니까? 그럼 패를 돌리겠습니다. 밤일낮장이니 지금은 낮은 패가 선입니다. 먼저 뒤집어 보십시오.

추천 콘텐츠

용서

용서 장진영 박정상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찾아왔다. 병문안하는 사람처럼. 교복 차림으로 미루어 보건대 박정상은 고등학생이었다. 과일 바구니도 무리해서 샀을 것이었다. 인디핑크 색깔의 광택 없는 종이로 고급스럽게 포장된 과일 바구니 안에 애플망고가 대여섯 개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탐스러운 알 같아서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박정상은 마르고 키가 컸으며 자신의 기다란 팔다리를 어떻게 가눠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큰 키 탓에 눈을 내리깔았는데 거만함보다는 주눅 든 모습에 가까웠다. 과일 바구니를 든 오른손은 안정적으로 허벅지 부근에 떨구어졌고 아무것도 들지 않은 왼손은 불안스레 허공을 맴돌았다. 기타를 치는지 오른손만 손톱이 길었다. 처음에 부모님은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떨떠름하게 현관문을 열었을 뿐이었다. 문을 연 사람은 아빠였다. 잡상인이거나 종교인이겠거니 싶었다. 그럼에도 문을 열었는데,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스스로 놀랐다. 심지어 안전고리도 걸지 않았다. 앞으로 아빠는 그 이유에 대해 자주 생각할 것이었다. 박정상이 “안녕하세요. 저는 박정상입니다.”라고 말하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거울을 보고 여러 차례 연습한 것 같은 동작이었다. 아빠는 박정상이 누군지 몰랐다. 초면이었고 이름을 들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지 알 것도 같았는데, 아슬아슬하게 참아 내는 재채기처럼 그 앎을 흘려보냈다. 아주 잠깐의 평화를 위한 안간힘이었다. 박정상이 자신을 박태섭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자 아빠는 기절했다. 허물어지듯 넘어진 게 아니라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통나무 모양으로 뒤로 쓰러졌다. 퍽, 하고 전구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부엌에 있던 엄마가 달려와 비명을 질렀다. 박정상은 움찔했지만 정면을 바라본 채 꼿꼿이 서 있었다. 처분을 기다리는 듯했다. 엄마는 식칼을 들고 있었다. 기절했던 아빠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몸은 그대로였지만 눈은 번쩍 뜨였다.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본능에서 비롯된 초인적인 힘 때문이었다. 아니면 그저 장하나가 아빠의 가슴팍을 밟고 지나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장하나는 외부인인 박정상의 발 냄새를 곰곰이 맡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아직 쓰러져 있는 아빠의 손바닥에 엉덩이를 가져다 댔다. 때려 달라는 뜻이었다. 장하나의 동생 장하다는 스탠드형 에어컨 위에서 식빵 자세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닐 수도 있었다. 장하다는 사시였다. 아빠는 자신이 왜 현관 바닥에 큰대자로 뻗어 있는지 알아차리느라 한참 헤맸다. 그러던 중에 식칼을 든 엄마를 발견했다. 아빠는 엄마와 박정상을 번갈아 응시하더니 스프링처럼 튀어 올라 달려들다시피 엄마를 끌어안았다. 혹시라도 엄마가 저지를지 모르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기절하지 않은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없는 행동이었다. 엄마가 “왜 이래!” 소리치며 몸을 마구 흔들어 댔다. “놔! 아니니까 놓으라고!” 몸싸움이 격해

  • 관리자
  • 2024-06-01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 정대건 1 얼마 전 오랜만에 박진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인간의 변화에 대해 냉소적인 편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이제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면 이미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것이 굳어져서 더욱 변화의 가능성이 적다고 여겼다. 진수와 나는 대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서 만나 무척 가깝게 지냈던 시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책을 출간하면 건네주기 위해 일 년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하던 사람들 중에 글을 쓰는 사람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고 진수와 나는 읽는 사람이 많건 적건 꾸준히 글을 쓰자고 서로를 독려했다. 그런데 출간 소식도 아닌데 모처럼 만난 그는 내게 상기된 표정으로 자신이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짝을 만났어. 천 퍼센트 확신해. 네가 쓴 문장처럼, 현실은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서는 것 같다.” ‘현실은 늘 우리의 비루한 상상력을 앞선다.’ 내가 이 문장을 쓸 때는, 낙관적인 기대보다 현실은 늘 가혹하다는 의미로 쓴 문장이었다. 그런데 진수는 이 문장을 반대의 의미로 인용했다. 자신이 행복에 대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상상보다 더 영화 같고 믿기지 않는 완벽한 짝이 현실에 나타났다는 거였다. 그렇게 확신에 찬 진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기했다. 내가 아는 그는 불안형과 회피형의 전형을 모아 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은 결코 선의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고 만다고 불신하는 쪽이었고, 나는 그 때문에 그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여겼다. 예비 신부인 민영은 아주 밝고 안정적인 성격의 회계사라고 했다. 뜻이 맞은 두 사람은 만난 지 100일 만에 이미 상견례도 마치고 예식장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그는 불신과 불안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와 관련된 명확한 일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SNS에서 한창 성인 애착유형 테스트가 유행이었다. ‘연애란 것은 안정형과 안정형이 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사연 만들기 모임’1)이라는 SNS를 보고 우스갯소리처럼 넘기지 못하던 그였다. 불안형이라고 결과가 나온 그는 술자리에서 그 얘기를 하며 진심으로 분개했다. 2살까지 형성된 애착 유형이나 12살까지 형성된 성격으로 사람을 설명한다는 게 결정론처럼 느껴져서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20대와 30대 동안 숱하게 불안정한 연애를 반복하며 많은 사연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너 여친이 안정형이면 안정형하고 만나지 뭐 하러 불안형을 만나?” 내 물음에 진수는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그런 생각 자체가 불안형들이나 하는 생각이래. 안정형은 그런 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가 좋으면 만난다고 하더라고.” 진수는 민영과 자신이 얼마나 천생연분인지 강조하며 일화를 들려주었다. 친구가 별로 없어서 예식장이 텅 비는 것을 걱정하는 그에게 친구가 없는 외톨이는 오히려

  • 관리자
  • 2024-06-01
안개가 시작된다

안개가 시작된다 김본 대관령에 간다는 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는 뜻이었다. 언니와 원규 오빠는 스키 동호회에서 만났다. 겨울이면 두 사람은 스키를 타러 대관령에 갔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여름에도 가기 시작했다. 결혼 후에는 아예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원규 오빠의 회사 일정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대체로 7월 마지막 주면 휴가가 시작되었다. 휴가 전주에 원규 오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평창까지는 자기 차로 함께 가자고. 사실상 그건 제안이라기보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오빠가 전화하기 전부터 나는 기차표를 예매해둔 상태였다. 슬기가 너 바꿔 달라고 난리다. 슬기는 막 네 살이 된 나의 조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오빠는 난처하게 웃었다. 진정으로 곤란하다기보다 즐거움에서 비롯된 웃음이었다. 내가 슬기와 통화하는 동안 오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슬기를 안아 올려 무릎에 앉힌 채로 기다릴까. 아니면 슬기의 귀에 휴대전화를 대주고 있으려나. 평창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오빠는 반쯤 장난으로 내 운전에 훈수를 두었다. 오빠, 나도 면허 있어. 내가 응수하자 오빠가 그럼 다음번에는 운전해서 오라고 했다. 세대 등록 해놔야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상상했다. 다음번을. 오빠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를 끌고 입장하는 모습을.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고, 내가 그곳의 세대원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상황을. 제한 속도를 초과했다는 알람이 울렸다. 나는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에 뜬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평창에 가까워지자 안개가 자욱했다. 눈앞의 거리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7백 미터 방면 평창IC라고 적힌 표지판을 막 지나쳤을 때, 계기판에 타이어 공기압이 낮다는 경고문구가 떴다.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 살펴보았지만 육안으로는 구별이 가지 않았다. 오빠는 뒷좌석에 앉은 슬기를 안심시켰다. 실 구멍인가 보다. 운전석 쪽으로 빙 돌아온 오빠가 말했다. 여분 타이어 챙겨올걸. 큰집에 있으려나? 오빠가 말하는 큰집이란 이모의 집이었다. 그뿐 아니라 오빠는 연구소에서 제공해 준 숙소 ― 오빠가 슬기와 함께 사는 아파트 ― 도 언니네 집, 이라고 불렀다. 마치 그곳이 언니의 소유이고 오빠와 슬기가 잠시간 얹혀사는 것처럼. 이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가 싶어서 잠시 긴장했다. 그러나 오빠는 보험사에 연락할 테니 차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멍청한 얼굴로 돌아와 운전석 문을 닫았다. 뒷자리에서 슬기가 잠금장치를 잠갔다 풀었다 장난을 쳤다. 출발하기 전 전체 잠금을 설정해 놓아서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문득 뒷좌석 문이 벌컥 열리면서 고속도로 한복판에 슬기가 쏟아지는 상상을 했다. 이모, 밝은데 어두워. 도로 양쪽으로 솟아오른 산 주위가 뿌옜다. 안개 때문에 그래. 내가 속삭였다. 안개가 뭐야? 슬기가 물었

  • 관리자
  • 2024-06-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2건

  • 해수면달빛

    이 신선함.

    • 2024-05-08 16:31:35
    해수면달빛
    0 / 1500
    • 0 / 1500
  • 잔잔

    가입신청서 여기요:+:

    • 2024-05-08 17:57:04
    잔잔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