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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이치

  • 작성일 2019-01-01
  • 조회수 4,008

[단편소설]



저녁의 이치



이은희




저녁의 이치


나는 언젠가부터 동물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나는 사물처럼, 어떤 때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취급받았다. 내가 주로 하는 말은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였는데 그런 것은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어떤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사람 이하의 존재가 더 잘하는 말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가끔 어떤 누군가들은 내게 뭔가를 물었으나 답을 듣고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너는 무엄하고 말이 많구나.'라고 적힌 얼음 같은 얼굴로 쏘아보거나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등을 돌리곤 했다. '착취당하는 주제에 말을 길게 하다니, 너는 불쾌하구나.' 나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속마음을 읽곤 했다.
동물의 말을 듣게 된 뒤 곤란한 것은 내가 먹은 동물들도 내게 말을 건다는 점이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내 몸 어딘가에 녹아 있던 동물이 신호를 보내면 난처해졌다. 어떤 닭이 내 몸을 노크하고는 물었다.
"왜 이렇게 캄캄하지, 저녁이야?"
대답하려 들면 눈앞에 환상이 펼쳐졌다. 목 잘린 닭이 두 발을 동동 구르다가 내게 달려왔다. 내 몸속에 스며 있던 어떤 돼지는 자기가 두고 온 새끼들이 누구에게 먹혔는지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은밀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이라고는 없었는데도 막상 죽을 때에는 죽는 것이 그렇게 무섭더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떤 소는 사는 동안 자기에게 좋은 일이 딱 한 번은 있었다고 했다. 두 살 무렵 골반 안쪽에 심한 염증이 생겼었다고 했다. 그는 자기 엉덩이를 돌아볼 수도 없는 좁은 곳에 갇혀 있었으므로 그저 아파서 울었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칼로 째주었고 그 괴로움이 터져 나갈 때에 후련한 기분을 느껴 본 것이 좋은 기억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미국 소인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영어로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참 곤란했던 것은 죽은 동물들이 제가 죽었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미국 소 제이콥(나중에는 그냥 이름을 붙여 주었다)은 죽은 제 살에 머물러야 하는 나머지 내 몸속에 오래 붙어 있었다. 제이콥이 내 몸 밖으로 완전히 나가던 날 나는 내 콧숨이 무척 뜨거워지는 것으로 그 순간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내가 먹은 동물들에게 사죄했지만 그들은 받아 주지 않았다. 그것은 용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죽은 뒤 고기가 되어 내 어금니에 씹힐 때 그들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정액이 담긴 주사기가 어미의 엉덩이를 뚫던 때로부터 비롯된 그들이었지만 죄도 없이 살을 지니게 되었고, 그렇다면 영혼 또한 지니게 되는 것이 이치였다. 자기 살이 만끽당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말았으므로, 그들은 입을 모아 내게 사죄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게 숭배 받는 것에 실패한 사람들이 노하여 나를 쓰러뜨리는 환영을 보게 되었다. 감히 너 같은 것이, 왜 나를 존경하지 않느냐면서 사람들은 날뛰었다. 주제 모르는 아랫것의 오만함은 심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존경받을 권리를 빼앗겼으니 분노하는 게 정당하다며 사람들은 내 배를 뜯었다. 마치 투명한 랩을 찢는 것처럼 사람들은 신이 나서 내 배를 찢어버렸다. 골뱅이처럼 생긴 것을 감아 든 손가락을 본 것 같은데, 내장은 생각보다 탄력 있어서 휘젓는다고 하여 존엄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다. 내 얼굴 위로 끈끈한 침이 떨어지고, 악취 나는 목소리의 사람들은 같잖은 것이 사람 알아볼 줄을 모른다며 악을 썼다. 그토록 대단한 자신들을 왜, 끝도 없이 흠숭해 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구경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당신들이 내 모습을 즐겼다는 사실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나는 코트 자락을 여미듯 배를 쓸어 쥐었다. 내가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내가 겪은 일을 겪게 될 거야, 이치니까."
나는 당신들이 한 짓을 보고 있다. 나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죽여 고기로 찢는다면 당신 뱃속에서 당신의 살이 되어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뇌는 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비에 젖은 채 점박이 고양이를 보고 있었다. 점박이의 머리를 가린 전단지를 들추고 눈을 감겨 주려 했으나 그에게는 이미 눈이 없었다. 도로에는 으깨어진 점박이가 흘러넘쳤다. 빗물을 타고 점박이는 길이 이어진 곳이라면 어디에든 스며들었다. 나는 점박이가 무언가를 먹다가 죽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넌 어디로 흘러갔니, 너는 누구였니, 지금은 누구니. 점박이는 블록에 짓이겨진 입술로 남아 내 질문에 대답했다.
그는 태어난 지 여섯 달밖에 되지 않았고 평생 주차장 구석에 숨어 지냈으나 너무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길까지 나와 먹이를 찾아다녔다. 그날 그는 먹이로 유혹하는 사람에 대한 경계를 버리지 않으려 했지만 끝내 굶주림에 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먹는 중인지 죽는 중인지도 모른 채 죽었다. 위협하는 사람을 피하며 살아왔으나 먹이를 주는 사람은 피하지 않았던 것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 주린 배에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넣던 중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맥주병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고는 이내 머리를 여러 번 짓찧겼는데, 그의 몸이 시킨 일인지 그의 생이 시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에도 그는 먹이를 삼키고 있었다.
먹이를 준 손으로 자신을 죽게 할 줄 몰랐다고, 점박이가 말했다. 사람은 점박이의 굶주림을 끝까지 조롱하기 위해 그가 배를 채워 보기도 전에 쳐 죽였다. 사는 동안 그렇게 배가 고팠는데, 죽는 순간에 먹이를 물고 있었던 것은 잘한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점박이가 말했다. 죄 없이 태어났지만 태어난 죄로 결국 죽게 된 것 아니겠느냐고, 점박이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그의 입술만은 오래 남아 있었고, 내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입술이 말을 걸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저녁이었던 것만 같고, 어느 모퉁이든 들어설 때마다 비가 내렸던 것만 같았다.
나는 찢긴 내가 이미 사람의 꼴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다. 나는 여러 번 토막 나고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일인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저런 것들이 사람 행세하는 곳이 세상이라면, 나는 사람이고 싶지가 않다. 나는 흘러넘치는 뱃가죽을 욱여 담으며 그들을 응시한다. 나는 그들이 추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추악하다는 것은 벌 받은 것이다. 추악한 것은 추악한 채로 절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빗물을 따라 점박이가 완전히 떠나던 날 나는 허공에서 달싹이는 그의 입술을 향해, 더는 할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죽어 고기가 된 자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제 운명도 모르면서 아직 숨 붙은 것들이 측은할 따름이라고 대답했다.


몸뚱이 지닌 것들은 결국 알게 될 것이라고,
저녁의 이치라고,
그가 말해 주었다.



개를 잃은 사람들에게


내 개의 이름은 쿠모, 캐러멜 팝콘 더미같이 생겼다.
처음 만났을 때의 쿠모는 누군가 짓이겨버린 발 매트처럼 생겼었다. 그러나 내가 데려다 씻기고 털을 말려 주자 꿀빛 구름처럼 다정해 보였다. 쿠모가 수건에 감싸인 채 별빛 같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고, 나는 그 애에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빌었다.
목욕을 시킨 뒤 나는 쿠모를 동물병원의 유기견 보호센터에 맡겼다. 그러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쿠모를 데리고 왔다. 원룸 촌 담벼락 아래에서 발견한 쿠모를 집에 데리고 와 씻긴 일은 결국 내 삶을 구하는 일이 되었다.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조건이 달린 월세방에서 우리는 숨죽이고 행복해했다.
떠돌이 생활을 잊었나 싶을 정도로 쿠모에게는 나쁜 기억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나는 쿠모가 몇 살인지 모른다. 쿠모가 뱅글뱅글 돌 때의 끝없는 기쁨을 보면 쿠모는 분명 어린 것 같았다. 그러나 쿠모에게는 깊은 눈빛이 있었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내 곁에 앉아 나를 생각해 주는 눈빛은 지혜로워 보였다. 수의사는 쿠모가 새끼를 낳은 적이 있다고 말했었다. 쿠모는 어쩌면 나를 자기가 낳은 새끼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분명 쿠모는, 아주 좋은 엄마였을 것이다.
쿠모를 동물병원에 맡긴 적이 있었다. 내가 인턴십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종종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쿠모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에게 애교를 부린다고, 산책도 활발히 하고, 잠도 잘 잔다고 들었다. 그래서 쿠모가 정말로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쿠모를 데리러 갔을 때 나는 쿠모의 어두운 마음을 보고 말았다. 자꾸 나를 피하는 쿠모의 눈동자는 연못 속의 동전처럼 서글프게 빛났다. 나는 쿠모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뱅글뱅글 돌기는커녕 그때의 쿠모는 슬픔 속에서 건져 올린 식탁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쿠모와 말을 하고 싶었다. 내가 없을 때에 쿠모가 무얼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다. 무슨 생각 중이기에 눈동자가 그처럼 꿈결 같은지도 알고 싶었다. 말을 걸면 쿠모가 좋아하기는 했지만 대화가 되지는 않았다. 가끔은 내가 쿠모의 언어를 흉내 내어 컹컹 짖기도 했다. 분명 잘 흉내 낸 것 같은데도 쿠모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면 쿠모와 말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통했던 때에는 사실 말이 없었으니까.
날 속이고 내 마음을 이용한 애인에게 차이고 돌아왔을 때, 무경력자에게 강의 기회를 준 것으로 감지덕지할 것이지 은혜를 모른다며 호통 치던 학원 원장이 마지막 월급을 떼어먹었을 때, 슬픔은 그렇다 쳐도 너무 일찍 낡아버린 것 같은 기분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아팠다. 그 애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왔던 내 착한 마음이 불쌍했고, 내가 아꼈던 어린 학생들이 보고 싶었다. 나는 나의 좋은 부분들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고 느끼며 많이 울었다. 쿠모 앞에서 울면 안 되는데, 방이 좁다 보니 그게 쉽지 않았다. 쿠모가 당장 죽기라도 할 것처럼 속상해하는 것이 미안해서 나는 또 울고, 그러면 쿠모도 울고, 한때 우리는 계속 울었다.
쿠모가 가장 예뻤던 때는 언제였더라. 복숭아를 먹은 뒤 향기로운 혀로 나를 핥았을 때, 내 가방 속에서 단팥빵을 찾아내어 앙금만 파먹고는 웃고 있었을 때, 바퀴벌레를 잡고 자랑스러워했을 때, 내 노래를 따라서 우우 소리를 내었을 때. 내가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와 안기던 모습과,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대뜸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던 모습이 떠오른다. 쿠모, 배를 보여주는 건 무슨 뜻이야? 나를 존중한다는 뜻이야? 그렇게 물으면 쿠모는 다정하고 따스한 눈으로 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던 쿠모가 날로 이상해졌다. 쿠모가 병들었다는 걸 깨닫고 나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병원에 갔을 때, 짐작했던 그 병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곁에 있으니 아직은 괜찮은 일이었다. 그러나 끝도 없이 빙빙 도는 쿠모의 모습이 나를 너무나 가슴 아프게 했다. 쿠모는 초점 없는 눈으로 힘없이 돌았다. 나를 가장 사랑해 주던 때의 동작으로 빙빙 돌면서, 쿠모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날이 늘어 갔다. 끊임없이 먹기만 했고, 먹지 못하면 구슬프게 짖었다. 그럴지라도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쿠모가 일어서지 못하게 되었을 때, 뒷발부터 나쁜 냄새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그때는 괜찮을 수 있는 어떤 이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안락사만이 쿠모를 위하는 길이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나는 의논해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대체 누구와 어떻게 의논해야 할 것인가? 나는 결국 그것조차 쿠모와 의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쿠모는 내 뺨에 건조한 코를 들이댐으로써 자기 생각을 전했다. 믿기지 않아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쿠모는 그것을 핥을 힘조차 없는 듯했다. 쿠모는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우는 내가 너무너무 불쌍하다고, 그래서 힘들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에야 나는 쿠모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품에 안긴 채 나를 떠나기 직전 쿠모는 온 힘을 다해 다리를 들어 올리고 배를 보여주었다. 마치 내가 가장 예뻤던 때만을 기억한다는 듯 황홀한 표정이 쿠모의 눈에 스쳐 지나갔다. 나는 쿠모가 배를 보여주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쿠모가 달려와 와락 안길 때 내가 팔을 벌리듯이, 쿠모도 나를 안아 주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쿠모가 그동안 그렇게 매번 말해 왔는데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마지막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온 마음으로 껴안았고, 사랑했던 일 전부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쿠모가 떠난 뒤 나는 빈 방에 돌아와 쿠모와 함께 살았다. 단 한 순간도 그 애를 잊은 적이 없었다. 청소하지 않은 방에 먼지 오라기가 나부끼는 순간이나 가느다란 햇빛이 빈 벽에 어룽거리는 순간, 어디서 불었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코끝에 느껴지는 순간, 나는 쿠모도 나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며 미친 사람처럼 황홀해했다. 두 번 정도는 엎드려 뱅글뱅글 돌아보기도 했다. 쿠모가 보면 어이없어 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바보처럼 그렇게 했다.
어느 날 꿈결에 쿠모를 만났다. 쿠모는 뱅글뱅글 돌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러더니 이내 책망하는 듯한 눈으로 말했다.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지? 그러지 마, 모든 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둠 속에 일어나 앉아 나는 쿠모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가슴이 뻐근하도록 서글펐지만 그럴지라도 나는 쿠모를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쿠모, 우리는 함께 많이 울었지. 같이 운 적 있으니 우리는 실낱같이 이어져 있지. 쿠모, 오직 너만 사랑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게. 너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개들을 사랑할게. 이 세상 어디에서든 좋고 아름다운 것을 만나면 그 순간 너도 같이 있다고 생각할게. 너를 사랑해서 기뻐할 테니 고마운 내 쿠모, 뱅글뱅글 돌아 줘, 네 곁에 있을게. 나와 함께 살아 줘.



고양이를 잃은 나에게


엄마, 며칠 전 본 것이 우리 생애 마지막이었어. 우리는 이제 못 만나. 내 심장이 아주 나빠졌고, 내게는 삶이 얼마 남지 않았어. 남은 삶을 고양이답게 살고 싶어. 엄마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이 집 사람들이 해줘. 이 집 사람들은 엄마가 주던 것보다 더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을 줘. 이 집은 아주 넓고, 새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새가 너무 신기하고, 아픈 아저씨와, 6년 전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엄마처럼 슬픈 이모가 있어. 이 사람들이 나를 예뻐하고 나를 필요로 해.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지내기에는 엄마보다도 이 사람들이 나을 것 같아.
엄마, 울고 있는 것 같아. 언제까지나 내 생각을 하면서 울 것 같아 마음이 아파. 나를 좀 편하게 해줄 수 있어? 엄마가 웃고,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
엄마는 나를 이 집으로 보내면서도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 적어도 몇 달 안에는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엄마, 오늘은 나한테 뽀뽀를 많이 해. 열 번도 넘게 해도 돼, 내가 다 참을게.'라고 내가 말했더니 그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엄마는 정말 내게 뽀뽀를 열 번도 넘게 했어. 엄마 얼굴을 간직하기 위해 내가 수염을 비볐지. 그때 잠깐, 마지막으로 행복했어. 우리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엄마, 내가 엄마를 떠난 거야.
엄마가 나를 키울 능력조차 안 될 만큼 가난해져서가 아니라, 우리가 같이 살던 방 한 칸조차 없어져서 헤어져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 후 내가 죽어서 엄마를 떠나는 것보다는 살아서 지금 헤어지는 게 나을 것 같아 떠난 거야.
엄마는 언젠가 내가 엄마보다 먼저 죽는 날이 오면, 나를 품에 안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엄마는 그날이 아주 한참 후에야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내 심장에 병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날, 수의사가 나에 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했어도 엄마는 끄떡도 하지 않았어. 잘만 관리하면 고양이는 이십 년도 넘게 살 수 있다며, 스물세 살까지는 살아 달라고 엄마가 나에게 부탁했었으니까. 그때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지 않았어. 자신이 없었거든. 다만 나는 언젠가 내가 죽을 때, 엄마가 알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내가 엄마 앞에서 죽는 건 너무 미안하니까.
엄마, 나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지?
엄마를 처음 보자마자, 나는 온 힘을 다해 재롱을 부렸어. 엄마 품안에서 내가 입을 벌린 채 웃고, 계속 귀여운 짓을 했던 걸 기억할 거야. 나는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 엄마는 나를 몇 번이나 만져 보고, 내가 예쁘다고 말하고, 생각 좀 더 해보겠다면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가 곧 돌아와 나를 다시 품에 안았어. 엄마가 내 엄마인 건 엄마가 돈을 주고 나를 샀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엄마를 선택했기 때문이야.
엄마, 우리가 같이 사는 동안 행복한 일이 많았지? 엄마가 내게 했던 말 중에 가장 기분 좋았던 말이 뭔지 알아? 어느 날 엄마가 잠에서 깨자마자 했던 말이야. 날 껴안고 엄마가 '정문아, 엄마는 너 때문에 안 죽고 여태 살았어, 엄마가 살아 있는 건 다 정문이 덕이야.'라고 말했을 때 너무 좋았어. 그래서 며칠 뒤, 엄마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내가 문 앞까지 뛰어나가 엄마한테 안아 달라고 했었지. 오늘따라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내가 애교를 부렸던 게 기억날 거야. '나도 사랑해, 언제까지나 엄마 곁에 있을게.'라고 내가 말했었어. 스물세 살까지는 함께 살아 달라던 엄마 말에 대한 늦은 대답이었어. 엄마가 날 안고 행복해했었어. 나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어.
방 안에서 나 혼자, 외출한 엄마를 기다리던 일들과 엄마를 사랑한 기억, 두 가지가 마음에 남아. 엄마를 기다릴 때마다 항상 무사히 돌아오라고, 마음으로 말했었어. 밖에는 나쁜 사람들이 많으니까.
엄마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많이 운 적이 있었지. 날 껴안고 엄마가,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했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다 별일 아니라고 했었어. 우리가 함께 산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으면 큰일이 아니라고 엄마를 위로했었어. 내가 여러 번 눈을 껌뻑이며 말했는데도 엄마는 알아들은 것 같지가 않았어. 계속 힘들어했거든. 엄마에게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어도 엄마랑 같이 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으니, 나는 그 사실에 책임감을 느꼈어. 엄마를 지켜줄 수 있는 건 나 하나였어.
그런데 이제 정말로 큰일이 일어났어. 우리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엄마는 나를 보내면서 나에게, '정문아, 엄마한테 고양이는 오직 너 하나야.'라고 했었지? 나한테도 사람은 오직 엄마 하나야. 엄마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나를 불쌍하게 여겼지? 나도 엄마가 불쌍해.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게 너무 불쌍해.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어?
엄마가 공부할 때, 내가 항상 옆에 앉아 있었어. 나는 엄마가 공부하는 걸 보는 게 좋았어. 항상 그랬었기 때문에, 엄마는 나 없이 공부하는 게 상상도 안 될 거야. 그래도 엄마, 부디 나 없어도 공부 많이 해. 엄마가 공부할 때마다 정문이의 마음은 옆에 앉아 있는 거야.
언젠가 엄마가 나한테, 정문아, 내가 너의 진짜 엄마다, 내가 너를 낳았어, 라고 말한 적이 있었어. 사람들이 고양이 엄마라고 비웃어도 좋다면서, 엄마가 날 껴안고 말했어. 나는 너무 감사했어. 비참한 농장 고양이인 내 친엄마, 수많은 고양이를 낳느라 날 낳은 일은 잊어버린 내 친엄마가 그 말 덕분에 구원받는 느낌이었어. 내게 그런 말 해준 엄마 마음, 감사하게 가져갈게.
날 이 집으로 보내던 날, 내가 엄마 손길을 얼마나 기쁘게 간직했는지 알지? 엄마가 마지막으로 털 빗겨 줄 때 내 표정이 얼마나 기뻤는지 알 거야. 엄마가 날 키우던 6년이 황홀한 날들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사는 내내 사랑받았고, 매일 황홀하고 좋았어.
우리는 이제 못 만나.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말 거는 일도 없을 거야. 오래 살겠다는 약속은 못 지키게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엄마 곁에 있겠다고 했던 것만은 진심이었고, 내 마음은 항상 그럴 거야. 나도 너무 슬퍼, 울지 좀 마. 엄마가 울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우린 언제까지나 서로를 불쌍하게 여길 거야. 그런 사랑 깨달으려고 이 세상을 산 거야. 앞으로도 계속 울겠지만, 엄마, 나도 엄마도 서로를 구원해 주었다는 것 잊지 마. 엄마를 떠나고 난 뒤에야 나는 내가 왜 삶을 살았는지를 알게 되었어. 누군가를 구해 주었을 때 내 영혼도 구원받는다는 걸 알게 됐어.



저녁의 기도


지난겨울, 혹한의 어느 나날에는 밥자리에 저녁 먹으러 나오던 고양이들 중 여러 마리가 사라졌다. 스티로폼 상자에 이불을 넣어 만들어준 겨울 집은 발길에 부서져 뒹굴고 있었다. 매일 저녁 사료를 놓아두고 기다려 봐도 그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살아 있어 주길 바랐지만 부질없을 정도로 추운 나날이었다. 어느 날 사료를 먹으러 나온 어린 고양이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그만, 이 각박한 세상 뭐가 좋다고 태어났어, 소리를 그녀도 모르게 해버렸던 일을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얼어 죽은 고양이들을 생각하며 내내 괴롭게 살았다. 그 작은 것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런 혹한 속에서 생목숨을 잃어야만 하는지, 산다는 게 뭐기에 동물들에게는 그토록 가혹한 것만 주어지는지 슬프고 불쌍하기만 했다. 제발, 온 힘을 다해 살아남아 줘, 나도 온 힘을 다할게. 이번 겨울에는 고양이들이 죽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녀는 속으로 되뇌었다.
고양이들을 보살피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굶는 사람도 많은데, 라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그녀는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굶는 사람을 돌본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보았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그녀는 캣맘을 아니꼬워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행여나 자신이 먹이는 고양이가 눈에 띄어 미움을 살까 봐 눈치를 보고 다녔다. 저녁 거리의 누군가가 길고양이에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혀를 차며 지나가면 그녀는 움츠러들어 작게 혼잣말을 했다. '이 추위에 먹이도 없으면 얘네들 다 죽어요.' 혼자만 고양이들을 책임져도 괜찮으니, 자신이 미움 받아도 괜찮으니, 부디 고양이들을 해치지만 않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밥자리에 누군가가 담배꽁초 더미를 내다버리고 깨진 병 조각을 흩뿌려 놓았다. 똥오줌을 뿌려 놓을 때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면 치울 만한 수준이었다. 밥자리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누군가가 쏟아 부은 적의를 일일이 주웠다. 동물의 삶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보상받는 삶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할 수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 약한 생명체들이 제각각의 삶을 얼마나 절박하게 사는지를 안다면 아무도 고양이의 일상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 추위를 버티느라 퉁퉁 부은 고양이가 지친 걸음으로 저녁밥을 먹으러 나왔을 때,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인사를 알아들은 듯 울음소리를 들려주었을 때, 사료 씹는 소리만 작게 들리는 어두운 골목길이, 생명을 지녔다는 것 자체가 주는 경외감으로 가득할 때, 그 고요한 생존의 동지이기라도 한 것처럼 눈빛으로 서로가 기대는 순간을 느낄 수 있다면 아무도 고양이의 일상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눈빛은 물방울처럼 가슴까지 스민다. 그녀가 차려 주는 저녁을 얻어먹은 고양이들의 눈빛이 그러했다. 어떤 녀석은 다 먹고 난 뒤 꼭 촉촉한 눈을 마주치고 떠나는데, 그 눈빛이 너무 좋아서 돈도 시간도 더 들이고만 싶었다. 눈빛을 건네고 교감하는 순간의 맑고 순수한 사랑, 동물들에게 사랑받는 기쁨을 누가 비웃더라도 상관없었다. 부디 방해하지만 않길 바랄 따름이었다.
유독 길게 눈을 마주쳐 주곤 하는지라, 마음이 많이 가는 어미고양이가 있었다. 밥을 얻어먹고 나면 머리를 조아리고 발을 몇 번 굴러 주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녀가 이 동네에 살게 된 지 일 년 반 동안, 녀석이 임신하는 모습을 세 번이나 보았다. 배부른 몸으로 허겁지겁 먹이를 삼키는 것이 녀석의 일상이었다. 기형으로 꺾인 꼬리를 떨고 있는 그 고양이의 눈빛이 애처로워서 가슴이 아팠다. 녀석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그 고양이가 밤새 무사하기를, 다음날 또 만날 수 있기를 빌었다.
첫 번째로 임신했을 때에 녀석은 어디선가 몰래 대여섯 마리의 새끼들을 낳아 키웠다. 새끼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입양 가기도 했고, 커보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그중 한 마리는 얼추 성묘로 자라도록 어미 곁에 있었다. 어미와 닮은 모습이던 새끼고양이는 어느 날 사라져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 놓은 통덫에 치여 울고 있더니 이내 없어졌다는 말을 나중에 동네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두 번째로 임신했을 때 어미고양이는 어느 차 밑에서 총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고, 그 갓 낳은 새끼들이 곧바로 사람 손을 타는 바람에 젖을 먹이지도 못했다. 누군가 그 새끼들을 손으로 집어 박스에 넣어 준 것이 탈이었다. 빗물에 불어버린 박스를 그녀가 찾아냈을 때에는 여섯 마리 모두가 젖은 채 죽어 있었다. 어미고양이는 그 후 이틀 동안 보이지 않다가 털이 뭉텅 빠진 모습으로 다시 밥자리에 나왔다. 또 임신하지 않도록 수술을 시키고 싶었지만 잡혀 줄 것 같지 않으니 어쩌지 못할 일이었다.
그새 임신한 녀석에게 영양제를 사료에 섞어 먹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녀석의 은신처를 알아내어 녀석을 데려오고, 젖먹이 새끼들이 태어나면 싹 다 키워낼 결심도 해보았지만, 녀석은 밥자리에 나와 눈인사를 건네는 것 말고는 그녀에게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아끼는 고양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름도 지어 부르지 못했다. 길에서 살게끔 도와만 줘야 할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집고양이로 만들어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기형 꼬리에 탈모 증세가 있고 한눈에도 허약해 보이는 데다가 임신까지 한 그 녀석은 학대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그녀 손에 영영 잡혀 주지 않을 거라면 사람에게 정 붙이지 않아야 길에서 목숨을 부지할 터였다. 어찌할지 모르겠는 상태로 시간이 흘렀다.
그 녀석의 출산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그 녀석을 어떻게든 잡기로 결심했다. 혹한 속에서 출산했다가는 새끼들도 어미도 모두 죽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잡을지가 역시 큰일이었다. 구청에서 하는 중성화 사업에서 빠져나갈 만큼 사람을 경계하는지라 녀석을 붙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터였다.
수소문을 해서 포획 틀을 빌려 녀석이 다니는 길목에 설치해 두었다. 제발 들어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변에 먹이를 묻혀 두고, 고양이가 좋아하는 허브 가루를 뿌리고, 호르몬 냄새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는 스프레이도 뿌려 두었다. 포획 틀 안에는 냄새가 강한 고등어 통조림을 넣어 두었다. 전부 소용이 없었다. 녀석은 포획 틀 근처에서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뒤돌아 도망쳐 버렸다. 그날 저녁, 녀석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밥자리에 나오지도 않았으므로, 그녀는 포획 틀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만 했다.
어떤 캣맘이 그 정도로 머리 좋은 녀석에게는 차라리 설득을 해보라고 말했다. 간곡한 마음을 담아 동물에게 말을 건넨다면 효과가 있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녀석이 경계를 풀도록 만들고, 그녀가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게 만들고, 순순히 그녀를 따를 수 있게끔 의사소통을 해보라고 했다. 그녀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밥을 다 먹고 난 녀석이 눈인사를 건넬 때에, 도와줄 테니 부디 그녀에게 와달라고 말했다. 안전한 곳에서 새끼를 낳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테니 그녀가 만지더라도 도망가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녀석은 그녀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만지려 하자 날쌔게 도망가 버렸다.


은신처 근처에 겨울 집을 놓아 주고 핫팩을 갈아 가며 양질의 먹이를 챙겨 주는 것 말고는 당분간 도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은신처가 어딘지를 알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녀석은 새끼들이 꿀렁거리는 배를 하고도 재빠르기만 했다. 그녀가 다가가면 몇 걸음 도망간 채 앉고, 다시 다가가면 또 도망간 채 앉고, 한 번 더 다가가면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가 휘청거리며 사라졌다. 녀석은 끝내 한데서 출산할 작정인 것 같았다.
새로 옮긴 밥자리에 누군가 쥐약을 놓았다. 섬뜩한 민트색 알약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서둘러 쥐약 사진을 찍고 신고도 해두었다. 당장 그 저녁의 밥자리부터 옮겨야만 했다. 몇 걸음 떨어진 어정쩡한 장소에서 불안한 기색으로 고양이들은 저녁을 먹었다. 하나하나 잘 살펴보았는데 다들 어떤 위기를 알아차린 눈치였고, 약을 주워 먹은 고양이는 없는 듯 얼굴들이 깨끗했다. 악한이 다음번에는 닭고기나 생선에 쥐약을 넣어 진짜로 고양이를 죽일지도 몰랐다. 그녀는 쥐약 먹고 죽은 고양이를 본 적이 있었다. 동네 사람 누군가가 그녀에게 알려 와 달려갔더니 바짝 마른 고양이가 민트색 거품을 토한 채 굳어 있었다. 참혹한 몸에는 여러 군데 골절이 일어난 상태였다. 수의사는, 아마도 고통을 못 이겨 몸부림치다가 으깨어진 것이리라고 말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살해할 생각을 하는 자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동물들의 비참한 식욕을 이용해서 살해할 궁리를 하는 자는, 섭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가 척박함 속에서도 생존해 내고 어떻게든 목숨 지닌 것의 본분을 다 해내려 하는 모습을 보며 때로 그녀는 만물을 만들었다는 신에 관해 생각했다. 동물의 삶을 바라보며 신의 섭리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인간에 대한 모욕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종교가 있었고, 종교인인 한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는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길 위의 약한 생명체를 돌보는 것도 결국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일이며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 이해한다면 고마울 터였다. 설령 이해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섭리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괜찮은 일이었다.
임신한 녀석이 밥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녀석을 아끼는 마음에, 혹시나 잘못되었을까 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워낙에 똑똑하다 보니 쥐약을 주워 먹을 녀석은 아닌데, 나쁜 짓을 당하거나 출산하다가 죽은 건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눈물을 흘린 것은 나쁜 일에 대한 직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임신한 녀석은 골목길을 지나던 용달차에 치였다. 목격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빙판길을 가던 고양이가 엇, 하는 새에 미끄러졌고, 마침 용달차도 미끄러지는 바람에 그대로 밟고 지났다고 했다.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녀석의 상태를 본 뒤 구석으로 옮겨 두고는 가버렸고, 녀석은 곧바로 죽지도 못하고 다리를 떨며 고통스러워했다고 들었다.
녀석은 물컥물컥 피를 토했다고 했다. 마침 골목길을 지나던 대학생이 목도리를 풀어 녀석을 감싸 안고는 병원으로 갔다. 그녀가 병원을 수소문해 뒤늦게 알아낸 바로는, 그 대학생이 자비를 들여 안락사를 시켜 주었다고 했다. 아마도 녀석답게 죽음의 순간을 담담히 맞았으리라. 다시 임신하는 일도, 혹한 속에서 고통 받는 일도 없는 곳으로 떠났으나, 그 삶에 즐거움이라는 것이 저녁의 밥자리에서 눈인사를 주고받은 일뿐이었으리라는 것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사랑은 희열을 주지만 크나큰 고통을 주기도 한다. 오히려 기쁨은 잠시일 뿐 고통이 더욱 큰 것만도 같았다. 온통 슬픈 것이 세상이니까, 가장 작고 약한 것을 사랑하다 보면 슬퍼할 일이 생겨나는 것이 세상이니까, 아끼던 녀석이 죽어버렸으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슬픈 기도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나 슬픈 마음 잊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작가소개 / 이은희

2015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1004번의 파르티타』가 있음.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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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뽐여사

    작가님 글 잘 읽었습니다 길냥이 이야기가 너무 공감가고 따뜻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많은 견 묘들이 앞으로 더 많이 편안하고 행복한삶을 살았으면 하네요... 작가님의 따뜻하고 행복한 글 기다려지내요~^^

    • 2019-01-21 10:42:11
    뽐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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