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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앤솔러지 미리보기-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5호 : 태양이 사자자리에서 빛나면 - 김멜라
715 태양이 사자자리에서 빛나면 김멜라 사람은 은혜를 갚으며 살아야 한다고, 어릴 때 봤던 전래동화에서 그랬다. 비록 그 은혜를 갚기 위해 동화 속 까치는 단단한 종신에 떼 지어 머리를 들이받는 살벌한 지불 방식을 택하지만, 그래서 그걸 본 어린 나는 티브이 화면 속 즐비한 까치들의 사체에 심리적 외상과도 같은 두려움에 빠졌지만(아아, 은혜는 저토록 무시무시한 거구나, 나는 되도록 받지도 주지도 말아야겠다.) 사는 동안 그 누구도 ‘은혜’와 무관할 수 없으며 알게 모르게 우리는 타인에게 신세를 지며 살아가고 그렇게 얽힌 서로의 처지와 사정이야말로 삶의 구체적인 양상이라는 것을 나는 배워갔다. 의 ‘소설가의 방’에 머물며 특히 더 많이 배웠다. 내가 ‘소설가의 방’에서 글을 쓴 건 2018년과 2020년 여름이었다. 두 해 모두 나는 우연찮게 태양이 사자자리에서 타오르는 한여름에 호텔 객실에 머무르며 소설을 썼다. 아마도 그 무렵부터 나는 가차 없는 이 자본주의 시대에 단지 글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큰 혜택을 받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 같다. 몇 쪽짜리 집필 계획만 앞세운 무명 작가에게 자그마치 한 달간 먹고 잘 수 있는 숙식을 무료로 제공하기가 쉬운 일인가. 아직 책 한 권 펴낸 적 없는 풋내기 소설가였던 나에게. 프런트에서 잠시, 그 ‘은혜받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내게 주어진 에세이 주제에 관해 설명해야겠다. 나는 의 작가 레지던스 1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산문 집필을 제안받았다. 짧은 소설과 에세이 중에서 좀 더 내 경험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픈 마음에 수필을 쓰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글의 공통 주제가 있었다. 체크아웃, 작품이 끝나는 순간에 관하여. 주제를 받아 들고 나는 소설 한 편을 끝낼 때 내 마음이 어떠한지 돌이켜봤다. 뿌듯했을까? 허탈했나? 아니면 문장 하나하나마다 어딘가 미진하다는 마음에 괴롭고 아쉬웠나. 문득 파자마 차림에 퀭한 얼굴로 쓰디쓴 커피를 홀짝이며 자괴감에 빠진 소설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헝클어진 머리에 며칠간 햇빛을 못 본 창백한 낯빛, 이제 난 망했다고 우는소리를 해대는 나약하고 고립된 글쟁이. 이 상투적인 소설가의 모습은 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소설이 안 써진다고 엽총으로 자기의 삶과 글쓰기를 끝낸 헤밍웨이 형 작가도 아니고, 자기의 본업은 주부라 말하며 취미 삼아 수백 편의 추리 소설을 쓴 애거사 크리스티 형 작가도 아니다. 그럼 나는 어떤 작가일까? 체크아웃, 체크아웃. 퇴실하려면 먼저 입실부터 해야 하고, 그 체크인 과정에는 나의 신분을 보여줄 증표가 필요하다. 한 편의 소설을 끝내는 마음도 그렇다. 기어서 나가든 뛰쳐나가든 소설 밖으로 나가려면 우선 어떻게 소설 안으로 들어가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되짚어야 한다. 나는 왜 쓰는가. 무엇을 쓰고, 그걸 쓸 때 작가인 내 몸과 마음에선 어떤 일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8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4호 : 층간소음 - 김솔
714 층간소음 김솔 나는 에 마련된 ‘소설가의 방’에 2017년 8월 14일(월) 14시 이후 입실해서 9월 25일(월) 12시 이전에 퇴실하라는 일정을 통보받았다. 곧이어 객실 이용 안내서가 전달됐다. 1. (소설가라면) 객실에서 집필 활동에 집중하고, 지인이나 애완동물을 불러들이지 않아야 한다. 금연은 의무다. 2. (소설가니까) 객실 열쇠를 분실해서는 안 된다. 3. (소설가를 포함해 누구라도) 객실 이용 안내는 객실 안에 비치된 ‘디렉토리 북’을 참조해야 한다. 4. (소설가 또한) 화재 등 위급 시 대비해 안내문을 참고해야 한다. 5. (소설가 중에는) 객실 내 비치된 금고를 사용할 수도 있다. 6. (소설을 쓰다가) 객실 청소를 원할 땐 ‘Make up’, 방해받기 싫으면 ‘Do Not Disturb’ 카드를 걸어둘 수 있다. 7. (소설가에게도) 2~3일에 한 번씩 객실 청소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단, 점심시간은 피해야 한다는 조항을 준수해야 한다. 8. (소설 쓰는 일 이외의) 다른 문의 사항은 프런트(0번)로 연락해도 좋다. 그 당시 나는 상암동에서 동대문 근처의 회사까지 시내버스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는 두 목적지 사이에 있었으니 퇴근길에 들러 서너 시간 남짓 글을 쓰고 귀가할 작정으로 ‘소설가의 방’ 프로그램에 신청했다. 어린 아들을 재운다는 핑계로 저녁 아홉 시쯤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여섯 시 반 출근길에 나설 때까지 거실의 책상 위에서 글을 쓰는 게 일과였던 내게 그 결정은 자칫 창조적 리듬을 파괴할 위험이 컸다. 하지만 나는 두 권의 장편소설 『보편적 정신』과 『마카로니 프로젝트』 출간을 준비해야 했고. 메질을 많이 할수록 문장이 단단하고 매끄러워진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작업실을 얻게 된다면, 더군다나 그곳에서 끼니나 사용료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면(고故 이외수 선생은 작업실에 철문을 설치하고 자신을 가둔 채 아내가 가져다주는 세끼를 축내면서 장편소설을 완성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책 전체 문장을 외울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나는 허풍이 아니었다고 굳게 믿는다.) 한 달 반 만에 두 편의 소설을 퇴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장편소설 원고를 절반쯤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내가 호텔에서 신선놀음하는 동안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게 될 아내에게 지레 미안해져서, 등단 후 처음 찾아 온 행운을 포기하려 했을 때 선정 통지서의 이런 문장을 읽었다. 위 사업에 대한 사업수행이 어려울 경우 본 결과 알림일(2017. 7. 25.)로부터 30일 이내에 사업포기 의사를 예술위원회 사업담당자에게 통보를 해 주시기 바라며 지정된 기간 내 포기처리가 된 사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불이익은 없습니다. 단, 30일 이후 사업포기를 할 경우 다음 해 해당 사업에 대한 선정 대상에서 제외됨을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40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3호 : 절대 체크아웃하지 않는 방 - 한정현
713 절대 체크아웃하지 않는 방 한정현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호텔에는 어떤 문이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사실 나만의 호텔이 하나 있다. 그 호텔의 문은 허공에 있을 때도 있고 길바닥에 붙어 있을 때도 있고 벽에 둥둥 떠 있을 때도 있다. 그 문은 언제든지 내게 붙어 있고 또 아예 붙어있지 않을 때도 있다. 가끔은 아예 사라져서 문의 존재를 잊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문제는 문 자체다. 문이 있는 이유는 사실 ‘열기 위해서’다. 호텔의 문이라고 다를까. 문의 용도를 생각해보면 전혀 다르지 않다. 그 의미는 다를지언정 용도는 같은 것이다. 열지 않은 문은 사실 그냥 벽에 붙어 있는 조형물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게다가 일단 체크인을 했다면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열지 않는 문으로는 절대 너머로 넘어갈 수도 없고 당연하지만 아무 것도 볼 수도 즐길 수도 없다. 그러니까 호텔이든 소설이든 영화든 뭐든 일단 문을 열어제끼고 보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일어나야 하니까.(안타깝게도 공포 영화에서는 문을 열었다하면 주인공만 살아남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물론 우리가 잘 아는 현실의 호텔에서는 그 문을 여는 것은 순전히 개인의 자유다. 일단 결제한 호텔방이 어떻든, 문 너머의 세상이 어떻든 받아들이겠다거나 지독히 모험이 그립다거나 한다면 문을 여는 것이고 안온한 집안이 더 좋고 그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를 모르겠다면 절대 체크인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고 그저 지나가는 것이다. 자 그럼 나만 아는 나의 호텔에서의 경우는 어떨까. 문을 열어젖혔다. 체크인 후 그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런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별로 유용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실제 그렇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 호텔의 그 문은 사실 문 이상의 것이었다. 내가 연 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물론 나의 호텔 이외의 세상이 지루해서라거나 다른 세상이 궁금해서는 전혀 아니었다. 나는 생각보다 내 일상에 매우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다. 산책을 나서도 익숙한 동네를 몇 번이나 돌 때도 많다. 무조건 새로운 것보다는 새로운 정서를 느낄 때가 더 새로움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소설가에게 경험이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반대다. 경험해보지 않았을 때 소설을 더 잘 쓰는 경우도 있다. 수시 때때로 여행을 가면서 호텔을 바꿔보는 것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의 호텔을 만들고 그 문을 연 것은 호기심보다는 어떤 책임감이었다. 소설이라는 문을 열고 지금 이 세계와 다른 세계에 들어가보고 싶었던 건 일종의 책임감이었다. 문 뒤에 무엇이 있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본 대가를 치르겠다는 책임감. 사람마다 문 너머의 세상은 다 다를 텐데 내가 만든 나의 호텔의 경우, 그곳엔 일종의 ‘역사’와 ‘사랑’이 있었다. 역사와 사랑의 호텔이라니! 호캉스도 좋고 바캉스도 좋지만 나의 경우 역사와 사랑의 호텔이 더 적합한 휴식이었던 모양이다. 그것도 숨겨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4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2호 : 장기투숙자에게 인사하기 - 박서련
712 장기투숙자에게 인사하기 박서련 얼마 전에 모처에서 우먼 임파워링을 테마로 연 행사에 다녀왔다. 뒤풀이 자리에는 시나리오 작가, 싱어송라이터, 웹툰 작가, 영화감독 등 창작자들이 특히 많았는데, 어쩌다 ‘통조림’ 이야기가 나왔다. 알다시피 통조림은 원고 의뢰처 또는 의뢰인이 작가를 숙소에 감금하고 목표량의 원고가 나올 때까지 체크아웃을 시켜주지 않는 행위(?) 혹은 의식(?)을 의미하는 은어다. 다른 업계 분들에게는 그 말이 다소 생소했던 모양이다.(내게는 그들이 그것을 생소해한다는 사실이 생소했다.) 우연히도 나는 그 자리의 유일한 소설가였기에 해명은 내 몫이 되었다. “정말 그런 게 있어요?” “예,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이 그렇게 쓰인 소설로 알고 있어요.” “그럼 돈은 누가 내죠?” “아무래도 원고 의뢰하신 쪽에서······ 요즘은 그렇게 하는 곳 없다고 알고 있지만 셀프 통조림을 시도하는 작가는 종종 있어요.”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이 부러워하기도 하고 끔찍해하기도 하는(그야 통조림이라는 일의 성격이 원래 그러니까) 것처럼 보였고 화제는 곧 바뀌었다. 나는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발언 타이밍을 잘 못 잡는 편이다. 외국의 한 심리치료 모임에서 그러하듯이 발언권 지팡이를 건네받은 사람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소심한 내게도 충분히 말할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질 테니까. 이건 내가 그 자리에서 마저 하지 못한 말을 아직까지도 곱씹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서울의 달빛 0장』은 원래 장편소설로 쓰일 예정이었지만 ‘0장’이라는 부연을 단 채 단편소설로 발표되었다는 말, 그 사건이 통조림의 대표 사례로 남은 이유는 아무나 통조림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의미가 되지 않겠냐는 말(김승옥이 그 소설로 초대 이상문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증거), 또······ 쑥스럽지만 저도 통조림 비슷한 걸 경험해본 적이 있긴 하다는 말. * 나는 2019년 1월을 에서 보냈다. * 체크아웃에 대해 말하려면 체크인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체크인 없이는 체크아웃도 없고, 체크인을 한 이상 체크아웃을 영원히 미룰 수는 없을 테니까. 나는 언제나 쓰기를 되기being로 인식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에게 있어 쓴다는 행위는, 내가 쓰고 있는 인물과 점점 동기화되는 현상이라는 의미다. 내가 지금껏 몰랐던 사람이며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내면에 점차로 침입해 간다는 뜻이다. 이 진입을 체크인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비유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동시에 그 인물을 내 마음의 방들 가운데 하나에 체크인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63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1호 : 이른 체크아웃 시간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 송지현
711 이른 체크아웃 시간과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송지현 체크아웃에 대한 단상 여행 중 제일 싫은 순간은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이다. ‘여행이 끝나는 게 아쉬워서’ 라든가 ‘현실로 돌아가야 해서’ 같은 이유는 아니고······ 그저 체크아웃 하는 시간이 너무 이르기 때문이다. 나는 잠을 많이 자는 사람이다. 그냥 많이 자는 게 아니다. 원한다면 밥도 안 먹고 24시간 동안 잘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정말이지 술도 많이 먹는 사람이다. 그냥 많이 먹는 게 아니다. 원한다면 끼니마다, 매번 숙취에 시달리면서도, 또 마실 수 있다. 내가 일찍 일어나며 매일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러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대로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러니까 온전히 놀 것을 결심하여 여행을 떠날 때면, 늘 술을 많이 마시고 잠을 오래 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체크아웃 시간은 나같은 과숙면자와 알코올러버에게 늘 너무 이르다. 숙취에 시달리며 잠이 덜 깬 상태로 허겁지겁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와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보통 숙소에 매번 무언가를 두고 나오고······. 예술인들에게 질문 이 글의 테마는 체크아웃이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은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 솔직히 이 에세이조차 여기서부터 꽉 막히는 바람에 나는 계속 마감을 미루며 며칠째 편집자를 괴롭히고 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침달 정채영 편집자님. 어쨌든 이제는 진짜 써야 한다. 그리고 소재가 떨어졌을 때는 역시 주변 사람을 인터뷰하는 게 최고다.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은 대체 어떤 순간이지? 일러스트레이터 p씨: 며칠 동안 마지막 한 문장이 생각 안 나다가 갑작스레 딱, 방점이 찍히고 완성되는 느낌 없어? 뭐, 없다고? 사실 나도 그래······. 그냥 마감일되면 더 고치고 싶어도 얼렁뚱땅 보내는 거지. 포토그래퍼 j씨: 배고파서 음식 막 먹다가 배불러지면 숟가락질 느려지잖아. 그 정도의 느낌으로 작업에 대한 기분이 느릿느릿해지고, 아 이얘기는 다 모아진 거구나 하는 순간이 오는 듯? 언제 오는 건지는 아직 의문이야. 그냥 배불러서 숟가락 내려놓는 느낌? 소설가 p씨: 한글창 끌 때. 시인 k씨: 너 마감 에피소드 엄청 많지 않아? 나는 누군가가 재촉해야만 쓰는 슬픈 운명이며 마감 때마다 모두를 걱정시킨다고 써. 마감 에피소드가 너처럼 화려한 사람 또 있을까? 그런가? ‘작품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 바로 ‘마감’인가? 단순히 마감 에피소드를 쓰면 되는데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바람에 오랜 시간 고민한 건가? 마감 에피소드 1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30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10호 : 음악적인 결말 - 민병훈
710 음악적인 결말 민병훈 작품이 끝나는 순간은, 그 소설이 내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스스로 독립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순간이다. 그것을 바라보며 낯설고 생경한 느낌을 감각하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새로운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게 소설이 끝나는 순간은, 새 소설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때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언제나 어떤 음악들이 있었다. * 2019년 가을 베를린에 한 달간 머물렀을 때 너무 많은 우연이 쏟아졌다. 정처없이 걷다가 지도에는 없던 세컨드숍을 만났고, 비를 피하기 위해 달려간 나무 아래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간을 장악하려던 시도를 포기하고 계획에 대한 강박을 버리자 매일 새로웠다. 사실 베를린에 도착한 후 열흘이 지날 무렵부터는 한국에 가고 싶어 울적했다. 내가 여기 왜 왔지······. 여기 사람들은 옷도 시커먼 것만 입고······. 유럽에 간 건 처음이라 신경이 날카로웠고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들을 신경 쓰는 만큼 그들은 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각자가 남보다 자신에게 집중했고, 그러지 않을 땐 타인을 존중했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할 필요도, 눈치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어느 순간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나아가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쨌거나 여러 우연을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베를린 필하모니Philharmornie Berlin에서 공연을 본 것도 그런 우연 중에 하나였다. 당시 나는 첫 소설집인 『재구성』을 준비 중이었다. 책에 들어갈 원고를 캐리어에 챙겨 갔다.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 원고를 손에 들곤, 길 건너 불 꺼진 자연사 박물관을 멍하니 보다가 다른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오 년간 여러 지면에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서 보니, 그간 지나간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 것처럼 느껴졌고, 마냥 즐겁거나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책으로 출간된다는 것은 이제 그 시간들이 하나의 물성으로 고정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현실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잘 끝내고 싶었다. 이제 다른 시간으로, 다른 소설로 나아가야 위해서. 슈프레Spree강은 그런 추상적인 생각을 머릿속으로 전개하기에 어울렸다. 그리 넓지도 좁지도 않은 운하를 따라, 해가 질 때면 사람들이 모여 걸터앉아 강물을 바라봤다. 나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밤이 될 때까지 매일 강가를 걸었다. 항상 어딘가로 출발했고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렇게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이 바로 베를린 필하모니였다. 나는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주 듣지도 않았을뿐더러 그 세계를 알기 위한 엄두도 나지 않는다. 다만 마침 건물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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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09호 : 유구와 다나 - 이지
709 유구와 다나 이지 내 잘못은 아니다. 언제나 거의 모든 게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이번엔 특히 더 그렇다. 『녹을 때까지 기다려』라는 제목의 소설집을 택배함에서 꺼냈을 때 나는 기쁨보다 먼저 올라온 당혹감에 여러 변명을 생각했다.(이 책은 기후위기나 빙하에 대한 책은 아니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작가가 디저트를 소재로 쓴 ‘달콤한’ 소설집이다.) 그 이유는 가볍고, 산뜻하고, 아름답고, 가끔은 지적이기도 한 다른 네 작가의 소설에 비해 내가 쓴 「라이프 피버」는 제목처럼 뭉근하고 뜨끈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톨렌’을 소재로 한 이 단편은 열정적인 자발적 디아스포라에 대해 다루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맞나? 싶었고 종국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 편집자 P의 야심이 돋보이는 어여쁜 핸디 북을 들고 나는 근심에 휩싸였다. ‘이렇게 극사실주의작가가 되어 가는 건가? 역행해서 근대적 가족주의에 머무는 건가? 그래서 이게 내 마지막 발표작이 될 건가?’ 실은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으면서 상당히 작가적인 포즈에 젖어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게 다 다나 씨 때문이야.” 등장인물에게 앙탈을 부리기에 이르렀다. 귀엽게 말해서 앙탈이지 작가가 자신의 인물에게 이러는 건 반칙이다. 물론 다나는 말이 없다. 그건 마음이 넓거나, 내 소리에 수긍해서가 아니라 대꾸할 가치가 없어서다. “다나 씨가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나는 녹아 없어지는 말랑하고 투명한 젤리 얘기를 쓰려고 했다고. 제목도 첫 문단도 완성이 된 상태였어.” 다나는 머플러를 한번 휘릭 두르고는 일어나 미련 없이 뒤돌아가 버린다. 그 걸음걸이는 반듯하다.(다나는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 그렇지. 그녀는 떠나는 캐릭터였지. 그렇지 않다 해도 소설 속 캐릭터들은 온전히 자신의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내 말대로 움직여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무엇이든 좋아요. 원하는 걸 쓰세요. 소재는 거들 뿐이죠.” ‘디저트’라는 말랑하고 산뜻하고 녹기 쉬운 소재로 앤솔러지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말랑하고 산뜻하지만 녹지 않을 그런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의식 없이 결심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내가 디저트에 꽤 적합한 인간 유형이라는(잘못된) 믿음, 그리고 전작 단편 「우리가 소멸하는 법」의 끝나지 않은 얘기를 녹아버리는 젤리에게 기대 써보겠다는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그들을 소환한 건 아니다. 「우리가 소멸하는 법」의 후속을 쓰려는 이유는 다분히 유구 때문이었다. 분명히 다 쓴 소설인데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해서 무언의 압박을 해오는 등장인물. 통상 소설을 탈고하면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발을 뻗고 잠들곤 했는데, 이 소설은 쓰고부터가 고난이었다. 출구 없는 림보에 빠진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상세보기 -
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08호 : 쓰지 않은 결말 - 이민진
708 쓰지 않은 결말 이민진 오늘 완당을 먹으러 갔다가 아빠의 입맛을 떠올렸어요. 일요일 점심마다 엄마에게 잔치국수나 칼국수를 끓이라고 하셨잖아요. 텔레비전에서는 이 방영됐고, 우리는 간밤의 일을 뒤로하고 교자상에 둘러앉았죠. 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국수를 먹는 우리가 부러 우스꽝스럽게 분칠한 출연자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인생은 빈 술잔 들고 취하는 것.’ 아빠의 애창곡은 , 애주가인 아빠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사죠. 기억은 무대와 비슷해서 조명에 따라 과거는 다르게 연출될 수 있어요.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물어야 할 건 대상에 관한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해서예요.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색안경을 끼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특정한 각도에서만 응시하는 게 아닌지, 그런 질문들. 전 오랫동안 붉은 조명 하나만 켜둔 채 아빠를 무대에 세워두었죠. 마치 불타오르는 것처럼. 허기, 갈증, 믿음, 배신감, 적개심, 애잔함······ 아빠에게 품었던 복잡한 감정이 소진될 때까지요. 잔불에 후회와 미련의 씨앗마저 타버린 지금 제 안에는 딱히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게 느껴지지 않아요. 아이러니하죠. 아빠와의 관계에서 기대와 의지가 없어진 덕분에 다른 이들과 동등한 조건으로 아빠를 보게 된 게. 지금 제가 서 있는 곳은 용서와 조금 다른 위치예요. 작년 10월 말, 아빠의 병상은 4인실 오른쪽 창가에 있었어요. 자연광 아래서 본 아빠는 큰아버지 같았어요. 어릴 적에는 큰아버지와 아빠가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늙고 체중이 빠지니 판박이였죠. 그날 아빠와 저는 17년 만에 만난 거였어요. 하지만 대화를 나누진 못했죠. 아빠가 내내 잠들어 있었으니까요. 일부러 프로포폴을 주사해서 재우고 있다고, 언니가 아빠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설명했어요. 깨어있는 매 순간이 고통이라니, 차마 깨울 수 없었죠. 전 두 시간 넘게 간이침대에서 아빠를 지켜보다가 고모와 교대했어요. 면회가 보호자 외 1인만 가능했거든요. 고모가 가면 연락 달라고 언니에게 당부하고서 병원 내 카페에 자리 잡았죠. 그 무렵 저는 편집자에게 받은 교정지를 검토 중이었어요. 2월에 원고를 보낸 후 8월에 웹으로 발표한 소설인데 12월에 출간을 앞두고 있었죠. 어딜 가든 원고를 챙기는 건 습관이에요. 원고를 살필 여유가 없을 걸 알면서 그날 아침에도 무의식적으로 가방에 넣었죠. 제가 소설가로 활동하는 걸 아빠가 아셨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언니가 아빠에게 말했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진 모르실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을 단순하게 설명하면 병실에서 언니와 아빠의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면서 아빠의 지난날을 헤아린 것과 비슷해요. 고깃집에서 찍은 사진이었죠. 불판 옆에 놓인 생일 케이크를 보면서 아빠는 웃고 있었어요. 아빠 곁에는 가족 대신 가족 같은 친구들이 있었고요.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웃었을까? 잠시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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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07호 : 비밀엽서 - 정은
707 비밀엽서 정은 누구에게나 비밀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장 잘 말해준다. 미국의 큐레이터인 프랭크 워렌Frank Warren은 2004년 11월에 엉뚱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는 자기 집 주소가 적힌 엽서 3,000매를 인쇄해서 한쪽 면은 비워두고, 집 주소가 인쇄된 다른 쪽에는 안내문을 적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당신의 비밀을 익명으로 말해주세요.” 그리고 엽서를 워싱턴 D.C. 거리에 무작위로 뿌렸다. 곧 프랭크의 우체통이 익명인이 보낸 비밀엽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엽서는 워싱턴 D.C.뿐만 아니라 밴쿠버, 텍사스, 뉴질랜드 등 세계 곳곳에서 왔다. 비밀엽서Post Secret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익명의 사람들이 보낸 엽서엔 이런 문구들이 적혀있었다.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여름휴가 후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야. 내 여동생은 암에 걸렸고, 나는 그녀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이전에 나를 알던 사람들은 내가 죽은 줄 안다. 채식주의자들도 가끔 고기를 생각해, 내가 그렇거든. 나는 내 개가 생각하는 그런 내가 될 수 없을까 봐 두려워. 공개된 엽서 중에는 잡지의 텍스트를 오려 붙여서 완성한 문장도 있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필체까지 감춰야했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해서 익명으로 엽서를 띄운 것치곤 사연들이 대부분 사소했다. 안도감마저 들 정도였다. 남들도 다 똑같구나. 나한텐 치명적인 비밀이지만 남들한테는 사소할 수도 있겠구나. 그 치명적이면서도 동시에 한없이 사소한 비밀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작가의 주된 일 중 하나다. 대학교 신입생 때 라는 제목의 강의를 들었다. 첫 수업 시간에 교수님은 자신의 책장을 둘러보고 거기에 없는 책을 쓰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랍 속에 숨겨두고 싶은 글, 엄마가 절대로 읽지 않길 바라는 글을 쓰라고 덧붙이셨다. 언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글쓰기 수업이 떠오른다. 엄마가 읽지 않기를 바라는 글을 쓰라는 명제는 그때부터 나의 직업윤리가 되었다. 적어도 원고료를 받고 파는 글이라면 남에게 보여주기 싫을 정도의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남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할 글이 아니라 내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글을 써야 했다. 보여주기 싫을 만큼 부끄러워야 글이 잘 써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여겼고, 항상 이런 글을 써도 될까? 하는 두려움에 쫓겨서 썼다. 그 마음자리가 나의 작업실이고 책상이었다. 끊임없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가 피하고 싶은 것과 대면하는 시간은 괴롭지만, 비밀이 텍스트로 발화되어 나와 거리가 생겼을 때 비로소 그것을 마주할 힘이 생긴다. 살다 보면 매력적인 제안을 갑자기 받을 때가 있다. 그중엔 처음엔 매력적인 제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면 늪이나 폭탄으로 판명된 제안도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매력적인 제안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경우도 있다. 그중의 하나가 몇 년 전에 A 선생님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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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프린스 소설가의방 706호 : 비결 - 김덕희
706 비결 김덕희 이 편지가 언제 발견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누구인지도 지금의 저로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씁니다. 편지라도 쓰는 것 말곤 달리 할 게 없습니다.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과거에 이 방에서 6주간 지내다 나간 소설가이고 지금은 이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여름이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네요. 가까이 명동 거리에서는 매일같이 사람이 북적이는데도 저는 며칠째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더위가 싫고 북적이는 것도 싫고 더운 곳에서 북적이는 건 쳐다보는 것조차 싫습니다. 저는 그저 시원한 실내에 앉아 사색하고 그 사색이 공상과 망상으로 날뛰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편지도 그러던 어느 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누군지 모를 당신을 이렇게 몇 줄의 글로 만나려고 하니 설레기까지 합니다. 반갑다고 말해도 괜찮을까요? 안부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지금’은 어떠한지요. 당신의 지금이 한겨울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추위가 매섭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가 당신에게 조금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 테고, 당신은 추위의 한가운데서 더위를 상상하겠죠. 저는 당신이 추위 속에서 상상해낼 지독한 더위가 궁금합니다. 그러나 저의 호기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당신의 상상력이 자극되기만 바랄 뿐입니다. 당신은 분명히 소설가일 것이고 소설가는 상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지금이 몇 년도인지, 어느 계절인지도 모릅니다만 말한 대로 당신이 소설가라는 건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당신이 읽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지금이면 당신도 잘 알게 된 그 방식으로, 저는 오직 소설가만 이 편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뒀으니까요. 호텔 객실을 이용하는 일반적인 이용자들은 물론, 청소부나 안전진단 요원 같은 사람들조차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에 편지를 감췄지요. 그런 뒤 소설가만이 관심을 가질 만한 단서들을 배치해뒀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바로 조금 전까지 무수한 방법으로 그것을 검토했습니다. 이를테면 최근 일주일 동안 한두 사람씩 초청해서 이 방에 편지가 숨겨져 있으니 찾아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세어보자면 열두 명이네요.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명석한 사람들입니다만 아무도 찾지 못했습니다. 바퀴벌레를 봤다고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해충 방제 전문가 세 명이 와서 꼬박 두 시간 동안 샅샅이 점검하더군요. 그래도 편지는 발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감쪽같이 숨긴 이 편지를 당신은 소설가이기 때문에 찾아낸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신과 저만 알고 있는 이번 퍼즐의 마지막 단계는 백미입니다. 여기서 그 방법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대고 싶지만 기록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건 저로서는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티끌만 한 소재로도 태산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욕심 부리는 게 우리 소설가 족속의 기질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번
작성일 2024-11-11 작성자 문장지기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8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