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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룡, 「소설, 때때로 맑음」

  • 작성일 2015-03-22
  • 조회수 1,354





“ 나는 부잣집 구경을 하게 되면 ‘그런데 책은 어디 두셨나요?
라고 묻곤 한다. ”

- 헤르만 헤세「독서의 기술」중에서 -



이재룡, 「소설, 때때로 맑음」






“여자에게 버림받는 남자는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처럼 유년의 장소로 은신한다.” 서른 살의 남자가 도망치듯 찾아간 곳은 부모의 집이다. 짐도 없이 빈손으로 고개를 숙인 채 초인종을 누른 아들을 본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차린다. “너 우울증에 걸렸구나.”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고백한다. “서른 살에 부모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사회적 성공의 수학적 대척점에 위치한다.” 부모의 집에 그대로 보존된 유년기의 방, 유년기의 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서른 살의 작가 모습이 그의 첫 소설 『백치의 반전 Inversion de l'idiotie』에 그려졌다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마흔 살의 모습은 『누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를 기억하는가? Qui se souvient de David Foenkinos?』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방금 마흔 고개를 넘었다. 마흔은 행복이 횡단보도를 건널지 말지를 망설이는 나이이다. 나는 돈을 거의 벌지 못했다. 나의 저작권 수입은 인적 없는 왕국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책임감 있는 남자로서(나는 거의 프로급의 테니스 선수인 딸 빅토리아를 슬하에 두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전업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생각한 것이 스무 살 때 했던 일을 정확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타 연주를 가르치는 일이다. 사회적 몰락으로 치자면 거리의 거지보다 조금 윗길에 자리 잡는 퇴보인 셈이다.” 작가의 연대기를 짧게 정리하면, 스무 살에 기타 강습으로 연명하며 소설가를 꿈꾸었고 서른 살에 소설가로 입신했다가 마흔 살에 다시 스무 살로 퇴행한 것이다. 그런 작가가 열한 권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라는 이력을 쌓고 올해 한국을 찾아왔다.




▶ 작가_ 이재룡 - 문학평론가. 번역가, 숭실대 불문과 교수. 1956년 강원도 화천 출생. 지은 책으로 『꿀벌의 언어』가 있으며 역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정체성』『욕조』『해를 본 사람들』『외로운 남자』등이 있음.


▶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소설, 때때로 맑음]이라니, 슬쩍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소설, 때때로 흐림]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서 그럴까요. 이 산문 연재를 시작할 때 지은이도 이런 글을 썼지요. “대체로 흐린 날이 이어지다가 때때로 햇살 한 줄기가 책갈피에 비치면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한다.”
『누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를 기억하는가?』의 화자는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 자신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 [버드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습니다. 누가 지금 나를 기억할까?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소설, 때때로 맑음』(현대문학, 2015)

▶ 음악_ piano-classics n225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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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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