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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산토끼사냥』중에서

  • 작성일 2014-03-20
  • 조회수 1,443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 혜은이 <제3한강교> 중에서-


김도연, 『산토끼사냥』중에서


산 중턱의 무덤 앞에서 진표는 카세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요에 맞춰 고고를 추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들과 낯선 여자애들도 함께 눈을 밟으며 스텝을 맞췄다. 마당 넓이만큼 눈을 치운 무덤 앞에서. 그 한가운데에서 모닥불이 타올랐다. 저 한참 아래에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명당자리였다. 진표는 왜 산으로 올라와 춤을 추는지 알 것 같았다. 대낮에 춤을 추며 놀 만한 빈집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마을에서 어렵게 놀러 온 여자애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었고 그래서 친구가 어렵게 찾아낸 자리인 듯싶었다. 또 캄캄한 밤에 집에서 추는 춤보다 좀 색다른 맛도 있었다. 산을 덮은 흰 눈과 그 눈에 덮인 무덤. 타오르는 불. 그리고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마을. 마치 허공에서 고고의 스텝을 밟고 있는 듯했다. 마치 낯선 나라의 사람들이 되어 종교 의식을 치르는 기분마저 들었다. 여자애들도 더할 나위 없이 예뻤다. 무릎을 약간 구부린 채 발을 내밀어 스텝을 밟을 때마다 사타구니가 찌릿찌릿할 정도였다. 진표는 그 여자애들의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훔쳐보며 춤을 췄다. 음악이 디스코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혜은이가 부르는 <제3한강교>였다. 가끔 무덤 옆 소나무 가지에서 눈이 와르르 떨어졌다. 여자애 중 한 명이 아까부터 좀 다른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진표는 느끼고 있었다. <제3한강교>의 매력은 노래 중간쯤 모두가 호흡을 맞춰 동시에 “헤이!”하고 외치는 데 있었다. 그렇게 노래하고 춤추며 놀고 있는데 그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건전지 여분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점점 처지기 시작한 노래가 결국 민요로 변하고 말았으니, 글로 옮기면 이렇다. 이-밤-이- 가-면-은- 첫-차-를- 타-고- 행보오오0- 그리고 끝이었다. 누군가 산을 내려갔다가 올 수도 없는 거리였다. 진표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애의 눈길과 가끔 마주치며 잘 마시지도 못하는 독한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 작가_ 김도연 – 소설가. 1965년 강원도 평창 출생. 1996년 《경인일보》신춘문예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십오야월』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등이 있음.
▶ 낭독_ 백익남 – 배우. 연극 <농담>, <피리부는 사나이> 등에 출연.
문형주 – 배우. 연극 '당통의 죽음', '부활', '꿈속의 꿈' 등에 출연.

배달하며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해하기 불가능한 장면이겠지만 예전에는 이랬어요. 물론 좀 되바라진 아이들 모습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눈 쌓인 산중턱 무덤 앞에서의 고고춤이라니 상당히 자연친화적이었죠. 하긴 그랬죠. 인터넷도 없고 MP3도 없고 디스코텍 갈 돈마저 없으니 건전지 끼우는 카세트와 사람들 없는 산이나 들판 외에는 방법 없었죠.
지금은 푸짐하게 나이 들어버린 혜은이도(이렇게 표현해서 혹시 서운해 할지도 모를 혜은이씨에게 제가 팬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야겠군요, 그리고 ‘헤이’가 아니고 ‘헛’ 이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젊음과 열정의 아이콘이었어요. 특히 <제3한강교>를 불렀을 때는 말이죠. 전설이 되어버리기는 산토끼사냥도 마찬가지이죠.

문학집배원 한창훈

▶ 출전_ 『산토끼사냥』(내 인생의 책)

▶ 음악_ tune ranch /institional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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