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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중에서

  • 작성일 2013-03-14
  • 조회수 2,551


최진영, 「끝나지 않는 노래」 중에서



깊은 관계를 원하던 때도 있었지. 근데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니 마음 내 마음 다 다르고 니 깊이 내 깊이 다 다른데. 다른 게 화가 나서 싸우고 볶고 그만 끝내자 그랬지. 멍청하게. 멍청한 짓이지. 누구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말을 혼자 지껄이면서 봉선은 눈물을 훔쳤다. 지긋지긋하다고 도망친 집. 채워지지 않는 마음. 남자의 침묵이 그리웠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 되었나 싶다가도, 아니, 나보다 좋은 인생이 어디 있나 싶다가도, 엄마 사랑은 못 받았어도 남자 사랑은 많이 받았지 싶다가도, 그게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 아닌 줄 알았던 그게 진짜 사랑이었을까 싶고, 사랑은 그냥 말이고 글자지. 좋고, 애틋하고, 흥분되고, 미안하고, 원망스럽고, 밉고, 부끄럽고, 샘나고, 보고 싶고, 그런 것의 다른 말. 보고 싶은 수선이, 우리 엄마. 엄마를 떠올리면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고. 무섭고 불쌍하고 미운데 자꾸 생각나고. 이기적인 것보다 더 나쁜 건 이중적인 거야. 이기적인 건 최소한 정직하거든. 우리 엄만 단 한 번도 이중적이지 않았어. 엄마 때문에 이해하는 방법 대신 인정하고 체념하는 법을 배웠지. 그거, 어마어마한 재산이야. 좋은 사람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 되는 데 더 많은 용기와 외로움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지. 내가 나쁜 년 해보니까 그거 하난 알겠더라. 안 그래? 다들 착한 척만 하면 나쁜 말은 누가 해? 누가 화내고 누가 야단치고 누가 관계를 끝장내지? 엄마는 늘 나빴어. 난 엄마 이해 안 해. 그래 난 썩을 년에 미친년이야. 나쁜 년. 헤픈 년이야. 나는 엄마 따위 절대 안 해. 자식새끼 있어 뭐해. 그딴 거 있어봤자 고생밖에 더 해? 이러나저러나 듣는 건 원망뿐이지……. 에이씨, 지랄맞게 보고 싶네. 엄마, 수선이, 우리 엄마.




작가_ 최진영 - 1981년 태어나 2006년 실천문학신인상으로 등단. 2010년 장편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끝나지 않는 노래』등.


낭독_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 배달하며


이제 저도 조금 나이 들어 후배들이 생기고, 더러는 한 작가가 탄생하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기도 합니다. 문학상 공모 당선자에게 소식 전하는 일은 대부분 문예지 편집자나 문학담당 기자가 맡지요. 흐뭇한 풍경입니다. 때로 그 신비로운 전화기가 심사자에게도 들려집니다. 최진영은 제게 그런 기쁨과 영광을 안긴 작가입니다. 짧은 통화였지만, 읍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무는 농로로 귀가하는 처녀의 모습이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아마 이 인상은 십중팔구 제멋대로일 테지요. 이후 그는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두 편의 장편소설은 세상을 향해 가시 세운 인물들이 웅크려 안은 독한 생의 내력과 처연한 언어들에 바쳐져 있습니다. 이 작가야말로 세상의 바닥을 제대로 아는 자라는 생각이 들지요. 저 벋나가는 언어의 절박함을 보세요. 끊어질 듯 당겨지는 시위 같지 않나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출전_ 『끝나지 않는 노래』(한겨레출판)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한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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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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