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현석, 『범도』를 배달하며
- 작성일 2023-12-07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1,349
두 권으로 된 이 소설의 1부 제목이 ‘포수의 원칙’이다. 포수의 원칙은 짐승의 질서 속에서 짐승과 같이 사는 것이다. 자기 몫의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생명의 몫을 인정하는 것이다. 같이 산다는 말 속에 들어 있는 뜻이 그것이다. ‘여우도, 늑대도, 범도 그 이상을 사냥하지는 않’는다. 자기 몫 이상을 탐내지 않는 것, 자기 욕심을 위해 다른 생명의 몫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다른 이의 몫을 보장해줄 줄 모른다. 현대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취하고 멈출 줄 모른다. 아니,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 이상을 탐하지 않으려면 자기 몫이 얼마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런 감각을 잃어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지나치게, 그 이상으로 욕심내고, 필요가 다 채워졌는데도 취하고, 필요가 없는 데도 사냥한다. 짐승들이 다 아는 걸 사람이 모른다. 내가 내 몫 이상을 지나치게 취하려고 하면 다른 생명이 자기 몫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모른 척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짐승의 원칙을 배우는 것인지 모른다. ‘내 몫만큼 사냥을 하며 이 산에서 짐승의 하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람의 세상에 짐승의 질서를 불러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추천 콘텐츠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 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 관리자
- 2024-06-27
- 관리자
- 2023-12-21
- 관리자
- 2023-11-23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