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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우산」

  • 작성일 2014-09-10
  • 조회수 3,466


박연준, 「우산」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이따금 한번씩은 비를 맞아야
동그랗게 휜 척추들을 깨우고, 주름을 펼 수 있다
우산은 많은 날들을 집 안 구석에서 기다리며 보낸다
눈을 감고, 기다리는 데 마음을 기울인다


벽에 매달린 우산은, 많은 비들을 기억한다
머리꼭지에서부터 등줄기, 온몸 구석구석 핥아주던
수많은 비의 혀들, 비의 투명한 율동을 기억한다
벽에 매달려 온몸을 접은 채,
그 많은 비들을 추억하며


그러나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





▶ 시_ 박연준(1980~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4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하며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등이 있다.



▶ 낭송_ 원인진 - 배우. 연극 『날자날자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달무리』 등에 출연.



배달하며

장마가 끝났으니, 우산들은 잡동사니들을 두는 창고 같은 데 처박고, 사람들은 금세 우산 따위는 잊고 말겠지요. 우산이 동그랗게 만 척추들을 펴고, 주름을 펼 수가 있는 것은 비올 때만 가능한 일이예요. 비오지 않는 철에 우산은 벽에 매달리거나 구석에서 수많은 비의 혀들과 비의 투명한 율동을 기억하며 기다려야 해요. 20대 조카아이가 직장을 그만두고 새 일을 구하고 있는데, 실직의 벽은 드높아서 그의 처지가 비 오지 않는 계절 벽에 매달려 있는 우산이나 마찬가지예요. 딱한 노릇이지요. 이 사회에서 실직자란 용도폐기된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잉여에 지나지 않아요. 제 철의 쓰임을 위해 벽에 매달린 우산처럼 기다림의 하염없음 속에서 존재의 공회전을 하는 자들은 고통스럽지요. 우산은 너무 오랜 시간은 기다리지 못한다고 하네요. 왜냐면요, 기다림이 우산을 낡고 못 쓰게 만들 테니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외진 곳에서 헐벗은 채 기다림이란 형벌을 앓고 있는 걸까요?



문학집배원 장석주


▶ 출전_『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창비)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송승리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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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5건

  • lhs5511

    요즈음 장마가 시작되어 우산이 생각나 이 시를 읽어봤는데 기다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슬프네요. 항상 나를 위해 비를 대신 맞아주는 우산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해준 시이고 신발장 창고에 많은 우산들이 쌓여져 기다림이라는 형벌을 앓고 있다는 표현이 공허하고 이제 앞으로 우산에게 신경을 써줘야 될꺼같아요ㅎ 좋은 시 감사합니다!

    • 2017-07-09 19:48:42
    lhs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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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06김주원

    요즘 슬슬 비가 오기 시작해서 우산을 꺼내기 시작하는데, 마치 '그동안 구석에 있던 우산이 나에게 시를 쓴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시이다. 보통 비 오는 것은 시련을 뜻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하게도 우산한테는 비 오는 것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시간 이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학생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의 우산과 같다. 어른이 되어 뜻을 펼칠 날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모든 일에 슬럼프가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의 내가 이 시를 보았다면, 조금 더 빠르게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도 나의 우산을 펼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 2018-05-28 09:53:45
    10406김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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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회윤10817

    처음 이 시를 낭독하고서는 표면적인 생각 뿐밖에 없었다. 그냥 이 시는 우산의 특성을 표현한거구나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하지만 배달 집배원님의 배달하며를 읽고서는 우산의 우리의 삶에서 의미하는 바를 찾을 수 있었다. 특히 우산이 기다림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험에 빗대자면 사촌 누나가 공부를 하면서 건강이 안좋아지면서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누나는 그 힘든 기다림을 견뎌내고 결국 좋은 대학에 가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를 보고 이 시에서는 기다림의 어려움을 표현하는데, 그 어려움을 견뎌낸 누나가 존경스럽다고 느껴졌다. 또 우산이라는 우리 주변 사물을 이용해 그 물건을 탐구하여 시로 표현한 것이 독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좋았다.

    • 2018-05-28 14:48:32
    정회윤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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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훈10309

    여름이 오면 장마가 시작될 테고, 장마가 시작된다면 우산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1연 3행에서 우산이 척추를 핀다고 하였을 때 우산을 사람처럼 표한 것을 보고 참 흥미롭고 기발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산은 비올 때 말고는 별로 큰 쓸모가 없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채 구석에 쳐 박아 두고, 또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산을 찾죠. 이 시는 많은 사람도 우산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우리에게 암시해준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우산이 있습니다. 그 우산을 펼쳐야만 자신의 인생을 펼칠 수 있습니다. '우산'이라는 시는 나에게 큰 감명을 준 시였던 것 같습니다.

    • 2018-05-29 10:08:16
    서훈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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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진하 10122

    우산을 주제로 한 시가 과연 있을까?하며 의문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이 시를 읽고 우산으로도 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산은 비가 올 때만 쓰고 평소에는 창고에 박혀있다. 이 시에서는 우산이 하는 일을 정확히 설명하였다. 1연3행의 동그랗게 흰 척추는 우산을 폈다, 접었다 해줄 수 있는 철사를 의미한다. 난 이 시에서 이 흰 척추가 단순히 우산만을 뜻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시르 읽으면서 우산은 비가 올때 척추를 피듯이 사람도 자신이 계기가 있다면 혹은 목표가 있다면 지금 구부러진 척추를 펴서 당당히 사회속에서 생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목표가 생긴다면 이 우산처럼 몸을 펴서 살아갈 것이다.

    • 2018-10-31 13:32:51
    홍진하 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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