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박재삼, 「병후에」

  • 작성일 2014-03-18
  • 조회수 1,990

박재삼, 「병후에」


봄이 오는도다.
풀어버린 머리로다.
달래나물처럼 헹구어지는
상긋한 뒷맛
이제 피는 좀 식어
제자리 제대로 돌 것이로다.


눈여겨볼 것이로다, 촉 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


땅에는 목숨 뿌리를 박고
햇빛에 바람에
쉬다가 놀다가
하늘에는 솟으려는
가장 크면서 가장 작으면서


천지여!
어쩔 수 어쩔 수 없는
찬란한 몸짓이로다.


▶ 시_ 박재삼 -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文藝》에 시 「江물에서」가 모윤숙의 추천을 받았고, 1955년에는 《현대문학》에 시조 「섭리(攝理)」, 시 「정적(靜寂)」으로 신인 추천 과정을 완료하고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春香이 마음』, 『햇빛 속에서』, 『千年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추억에서』, 『대관령 근처』,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다시 그리움으로』 등이 있고, 사후에 『박재삼 시전집』이 출간되었다.


▶ 낭송_ 장인호 - 배우. 영화 <고지전>, <하울링> 등에 출연



배달하며

앓아보긴 했나? 몸이건 마음이건 앓아보긴 했나? 이렇게 속삭이며 맨 처음 봄기운의 햇빛은 내리지요. 봄기운의 바람은 이렇게 수런대며 면수건의 촉감으로 목에 감기지요.
한결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져서 달래의 향기를 닮아가지요. 그것도 ‘헹구어진 뒷맛’의 향기를 닮아가지요. 달지만은 않은, 쓴맛 매운맛이 다 가시지 않은 그러한 표정이 되지요.
진저리치며 살아남은 것이 장하여 모두가 ‘형뻘’로 보이는 갓 봄날입니다. 우리나라 시를 읽어는 봤나? 조선 피가 도는 시를 입에 녹여는 봤나? 속삭이며 스며오는 이 시를 몸짓으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솟구치고 달리고 숨 쉬고 걷다가 구르는, 그저 그렇게 읽어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합니다. 말로 어찌 이 시의 소감을 감당하겠어요!


문학집배원 장석남


▶ 출전_ 『천년의 바람』(민음사)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추천 콘텐츠

강우근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환한 집」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 관리자
  • 2024-06-14
김소연의 「내리는 비 숨겨주기」를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28
황인찬의 「겨울빛」을 배달하며

  • 관리자
  • 2023-12-14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