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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기억법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0-16
  • 조회수 620

 곧 울어버릴 것 같은 구름이 불러온 안개를 조심해

 안개는 세상의 커튼이지, 이를테면 우리의

 눈동자에 묻혀 있는 울음을 가려버릴 수 있지

 우리의 울음은 가장 아름답게 왜곡되는 렌즈

 새하얀 커튼에 둘러싸여 막을 내리지 않기 위해

 손잡고 함께 걸었지, 해질녘의 해변을 


 태양이 다 녹아 바다로 스며드는 순간 밤이 오지

 어둑한 공기와 함께 밀려오는 안개가 있어

 우리는 시인의 눈을 가졌고 이따금 이 바다 앞에선

 지난 계절 침몰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슬퍼하고

 내가 황혼의 바다를 가르키면 너는 바다, 하고 

 발음하지 않지 그저 이토록 커다랗고 새파랗게

 묘지가 생겨났구나 태양이 입맞춤 하는구나 속삭이지


 우리의 울음은 불꽃과도 같아서 해변의 캠프파이어를 하지

 남겨진 사람들은 무얼 할 수 있어 내가 물으면

 너는 눈물 한 방울을 섞어 모래성을 만들고 

 남겨진 시인들이 무얼 할 수 있어 다시 물을 때

 그 모래성을 오래토록 간직하려고 하는 네 눈빛

 내가 안개를 가르키면 세상에서 가장 큰 커튼

 하지만 가장 얄팍한 커튼이라고 네가 말하지 


 내가 다시 바다 위를 나는 새들을 가리키면

 너는 너의 렌즈로 한참동안 하늘을 담아내네

 아이들이 잠들어버린 바다를 바라보는 건 힘들어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오랫동안 기록하고

 은유의 방법으로 펜을 드는 사람들의 언어로 

 새를 섬으로 여행 가는 아이들로 말하면 희석되는 슬픔 

 너와 손을 맞잡고 이 놀이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이야


 놀이는 눈을 감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하고 

 시인들은 여기 남았고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고

 태양이 부서지는 파도에 입을 맞추고 손을 뻗어서

 넘실거리는 아이들의 혼을 쓰다듬어주는 걸 보고 있어

 우리는 눈동자에 맑고 선명한 울음을 새겨넣지 

 누구나 가져본 적 있는 이 울음을

 언젠가 와 본 적 있는 황혼의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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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의 눈

밤새 시를 썼어 열대 우림에 관한 시였어 노트북 한쪽에는 우림의 사진이 십 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어 울창해서 너무 울창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 등장할 때마다 떨었어 나의 손 떨림이 자판을 두드렸어 때로는 몰아치는 마음이 나를 시의 방향으로 밀기도 했어 창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물방울의 발자국이 창에 새겨지고 장마의 발목이 두꺼워졌어 이제는 아무도 장마라고 부르지 않는 순간을 위해 시를 썼어 이곳에는 1년 내내 비가 온다고 했어 그렇다면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시를 썼어 나는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걸 못 했어 머금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밤새 시를 썼어 사진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우림은 다 가본 것만 같았어 나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파문을 몸에 새겨가고 끝도 없이 안개가 흘러나왔어 넝쿨이 나의 손목을 휘감아서 내가 저 우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어 우림 중에서도 구름이 너무 많은 곳은 운무림이라고 한댔어 나는 마치 옅은 구름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창밖에서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순간의 정적 고요해지면 나는 사진 속 우림과 눈을 맞추었어 녹색의 정사각형이 내 눈에서 한없이 커져가는 시간이었어 계속해서 시를 썼어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방의 습도는 올라갔지만 나의 눈동자는 맑아졌어 우림과 눈을 정교하게 맞출수록 빗소리가 커지고 내 눈에 고여 있던 모든 걸 쓸어갔어 그래서 우림으로 떠나는 시를 썼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밟고 저 멀리까지 달리는 시였어 열대야가 끓어오르면 사람들은 이게 또는 그게 시가 아니라고 했어 꿈이라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시를 썼어

  • 모모코
  • 2024-07-03
아스팔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귀를 기울였지. 길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검은 길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울퉁불퉁한 표면을 곧게 깔아놓은 건 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너를 닮은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넘어져서 얼굴이 쓸려도 아프지 않았어. 무르팍이 깨지지도 않았지. 아, 여긴 꿈이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안쪽이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나는구나. 맨발을 내려다보며 이 길 위에서 내가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소리가 들리는 길은 처음이야. 울고 있는 길도 처음이지. 너는 분한 일이 있으면 울고야 마는 아이. 앞을 생각하다가 터져버린 울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것들 위에서 미끄러지고. 베개에 고개를 묻고 운 적이 있어. 너와 함께 울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 본 적은 없어서. 아스팔트에서 눈을 뜨고서 알아차린 것들. 달구어진 길에 엎드려서 진동을 느끼고.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깔아두었을까. 깔아두며 앞으로 나갔을까 고민하는 동안. 너의 발끝에서 질질 흘러나왔을 아스팔트를 쓸어내린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마음을 쥐어짠 뒤에 나오는 잔여물. 그러니까 울퉁불퉁한 눈물을 쓰다듬으며. 표정으로 포장된 심장. 검게 그늘 들이찬 얼굴 쏟아부으며 딱딱해진 길. 나 밤새 너를 생각했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스팔트 뜯어내며 흘려보내는 한 마디. 너를 위해 우는 동안 실컷 미끄러졌어. 만나본 적 없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면 몰래 우는 소녀를 생각하며. 울음을 밑창에 끼우고 달리는 너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아스팔트는 나의 이야기를 먹고 부풀어 오른다. 조금씩 말랑해지다가 힘을 주면 뜯어져서 바닥이 보이고. 마침내 포장되어 있던 길의 안쪽을 만나고. 길게 펼쳐진 길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 끝도 없이 달려가는 네 마음처럼. 다만 나는 귀를 기울일게. 말캉한 길. 너의 가장 내밀한 표정을 가만히 담아내는 상상. 알고 있지. 이 모든 건 내가 만든 상상의 안쪽. 나는 여전히 네 뒷모습을 보고 걸어가겠지만. 꿈에서도.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있어. 악착같이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소녀를. 결승선보다도 뛰어가는 방법을 골몰하는 너를.

  • 모모코
  • 2024-06-30
에니아이오스* (下)

오늘의 너는 어떤 창틀에 도착하게 될까. 나는 사랑하는 너에게 무수한 창을 남기고 갔다. 일기장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나의 계절들. 너는 너머를 들여다보듯이 나의 어제를 살피는 사람. 내가 열대 우림의 풍경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너는 설원의 얼굴을 만난 적이 없어서. 멋대로 혹은 마음껏 머릿속에서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빚을 테지. 눈이 휘몰아치고 눈앞이 온통 새하얘지고 눈밭 위에서 굴러다니는 개들의 눈빛을 보고 네가 모르는 감각. 하지만 끝내 네게 건네주고 싶었던 감각. 너는 울창한 곳에서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찻잎을 보내 주었고. 나는 눈사람처럼 시간을 뭉쳐 너에게 보냈다. 일기장을 펼쳐 두 눈에 이야기를 새겨 넣고. 너는 너의 일기장에 다시금 새겨둔다. 언젠가 이걸 널어놓으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가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마치 나의 순간들이 네게 그랬듯이. 너의 곁에 서 있지는 않지만 나는 늘 함께 있다, 기나긴 겨울밤을 닮은 기록의 형태로. 말하자면 창틀은 프레임. 창밖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컷. 서로를 꼭 껴안은 컷들은 장면이 되어서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단지 그걸 기록하고. 너는 기억하고. 나는 더 이상 설원에 없지만. 오랫동안 방에 머무는 찻잎의 열대 과일 향기처럼. 너의 눈동자에서 나는 영영 상영된다.-* 로버트 비버스가 제작한 영화의 사본은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테메노스’라는 공간에서 2004년부터 4년마다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한 번의 상영회마다 작품을 전부 상영하지 않고, 일부 주기를 선택하여 상영한다.

  • 모모코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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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바다

    저는 어떻게 보면 글이 혼란스러운 편이라 읽는 사람들에겐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는 글을 써서 요즘에 고민이 많은데요 모모코님 글을 보면 시 안에 모모코님이 담고 싶은 마음을 확실하게 넣는 것 같아 글을 읽는 사람들에겐 설득력을 넣어주면서도 모모코님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와 문체들이 예쁘게 표현되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개인적으로 [은유의 방법으로 펜을 드는 사람의 언어로]라는 부분은 정말 시인을 다 표현하는 구절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잘 봤습니다 :) 늘 응원할게요!

    • 2023-10-18 22:31:03
    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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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난바다 아고 제가 슬럼프가 심해서 ... 계속 무어라 답해야 할지 고민하다 그새 새로운 달을 맞해버렸네요. 몇 번이고 읽었어요. 댓글 감사드려요. 저는 서정시를 싫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독자에게 구체적으로, 또 따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적 서사를 원하는 것 같아요. 그걸 난바다님의 댓글에서 다시금 깨닫네요. 예쁜 마음 보내주어 고맙습니다. 저도 난바다님의 창작을 늘 응원할게요.

      • 2023-11-09 23:16:34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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