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래빗 헌팅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3-28
  • 조회수 1,310

- 홀덤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패를 포기하여 판이 종료되었을 때, 확인하지 않은 패를 볼 수 있는 것을 래빗 헌팅이라 힌다. 토끼를 따라서 포기한 패를 줍다 보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토끼발을 사서 허리춤에 차고 자꾸만 열리는 것들을 구경한다
진짜 토끼털은 아니지, 실낱같은 토끼 이야기와 너무 많은 털날림에 파묻힐 것 같고
구두가 딛고 있는 땅이 움푹 꺼져버린다 영화 인셉션처럼 아니야 아니지 마치 영화 파프리카처럼
자꾸만 따라가게 되는 여정의 끝은 어디일까 꿈결같은 시간 속에서 찾아야 하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
이곳은 꿈이 확실하므로 뛰어내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지방 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물렁한 복숭아 조각을 하얀 커튼 뒤로 숨겨둔다
진짜 단단한 복숭아 조각은 어디에 있을까 중얼거리며 잠긴 문을 열어본다 그림자의 형태는 울렁거리며 자꾸만 바뀐다

시계만 쳐다보는 토끼를 따라서 굴속으로 기어 들어갔지 그곳에는 전자 기타음이 팽창하는 중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밴드를 하고 싶었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어 기타를 연주하다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고
그냥 유튜브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무한 반복되는 펑크 록 쟤는 그런 카드야, 쉽게 버린 카드와 꿈속에서도 교복을 입고 있는 나
끝까지 채워져 있는 단추 구김이 없는 마이에 빳빳한 양말로 늘 다 아는 척을 했다 기둥이 무너진 지붕 같은 눈썹
기타도 없으면서 앰프는 어떤 게 좋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 사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집에 가서 검색만 했는데
떨어지는 선율 위에 발을 올려 보았지만 저 멀리까지 뛰어가 버린 토끼 길가에는 환각 버섯의 뱉어내는 구름만 가득하다

회중 시계의 초침에 매달린 토끼의 엉덩이를 쫓고 싶었지
나는 어딜 가고 있었더라 그래 단단한 복숭아 조각을 찾고 있었지
이미 검게 변한 카드를 주울 때마다 커졌다 작아지는 몸집 실패라는 이름의 패를 뒤집으며
토끼가 남기고 간 발자국 위로 발을 겹쳐본다 내가 가지고 있던 조각들은 모두 물렁해서 일찍이 포기했지
포기하는 게 알맞았다고 속삭이는 같은 얼굴의 소녀들로부터
인조 털이 양볼에 가득 차오를 때면 일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떨어진 카드를 주워야만 했다
기타를 연주할 수 없어서 무반주 배경음을 길 위에 올렸지 가는 길마다 그림자는 구부러지고 춤을 추다가도 도망가려 한다

나는 자꾸만 토끼를 따라 가려고 하고 갈 수 없는 곳을 향하는 발끝은 이지러진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거야 쉽게 물러지는
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 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커튼 뒤에서 빛나는 조각들 쉽게 숨지 못해서 자꾸만 이마를 보인다
본래 종료 종이 울리기 전에도 패를 놓쳐버리는 게 헌터의 운명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

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추천 콘텐츠

우림의 눈

밤새 시를 썼어 열대 우림에 관한 시였어 노트북 한쪽에는 우림의 사진이 십 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어 울창해서 너무 울창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 등장할 때마다 떨었어 나의 손 떨림이 자판을 두드렸어 때로는 몰아치는 마음이 나를 시의 방향으로 밀기도 했어 창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물방울의 발자국이 창에 새겨지고 장마의 발목이 두꺼워졌어 이제는 아무도 장마라고 부르지 않는 순간을 위해 시를 썼어 이곳에는 1년 내내 비가 온다고 했어 그렇다면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시를 썼어 나는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걸 못 했어 머금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밤새 시를 썼어 사진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우림은 다 가본 것만 같았어 나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파문을 몸에 새겨가고 끝도 없이 안개가 흘러나왔어 넝쿨이 나의 손목을 휘감아서 내가 저 우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어 우림 중에서도 구름이 너무 많은 곳은 운무림이라고 한댔어 나는 마치 옅은 구름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창밖에서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순간의 정적 고요해지면 나는 사진 속 우림과 눈을 맞추었어 녹색의 정사각형이 내 눈에서 한없이 커져가는 시간이었어 계속해서 시를 썼어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방의 습도는 올라갔지만 나의 눈동자는 맑아졌어 우림과 눈을 정교하게 맞출수록 빗소리가 커지고 내 눈에 고여 있던 모든 걸 쓸어갔어 그래서 우림으로 떠나는 시를 썼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밟고 저 멀리까지 달리는 시였어 열대야가 끓어오르면 사람들은 이게 또는 그게 시가 아니라고 했어 꿈이라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시를 썼어

  • 모모코
  • 2024-07-03
아스팔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귀를 기울였지. 길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검은 길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울퉁불퉁한 표면을 곧게 깔아놓은 건 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너를 닮은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넘어져서 얼굴이 쓸려도 아프지 않았어. 무르팍이 깨지지도 않았지. 아, 여긴 꿈이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안쪽이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나는구나. 맨발을 내려다보며 이 길 위에서 내가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소리가 들리는 길은 처음이야. 울고 있는 길도 처음이지. 너는 분한 일이 있으면 울고야 마는 아이. 앞을 생각하다가 터져버린 울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것들 위에서 미끄러지고. 베개에 고개를 묻고 운 적이 있어. 너와 함께 울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 본 적은 없어서. 아스팔트에서 눈을 뜨고서 알아차린 것들. 달구어진 길에 엎드려서 진동을 느끼고.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깔아두었을까. 깔아두며 앞으로 나갔을까 고민하는 동안. 너의 발끝에서 질질 흘러나왔을 아스팔트를 쓸어내린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마음을 쥐어짠 뒤에 나오는 잔여물. 그러니까 울퉁불퉁한 눈물을 쓰다듬으며. 표정으로 포장된 심장. 검게 그늘 들이찬 얼굴 쏟아부으며 딱딱해진 길. 나 밤새 너를 생각했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스팔트 뜯어내며 흘려보내는 한 마디. 너를 위해 우는 동안 실컷 미끄러졌어. 만나본 적 없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면 몰래 우는 소녀를 생각하며. 울음을 밑창에 끼우고 달리는 너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아스팔트는 나의 이야기를 먹고 부풀어 오른다. 조금씩 말랑해지다가 힘을 주면 뜯어져서 바닥이 보이고. 마침내 포장되어 있던 길의 안쪽을 만나고. 길게 펼쳐진 길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 끝도 없이 달려가는 네 마음처럼. 다만 나는 귀를 기울일게. 말캉한 길. 너의 가장 내밀한 표정을 가만히 담아내는 상상. 알고 있지. 이 모든 건 내가 만든 상상의 안쪽. 나는 여전히 네 뒷모습을 보고 걸어가겠지만. 꿈에서도.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있어. 악착같이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소녀를. 결승선보다도 뛰어가는 방법을 골몰하는 너를.

  • 모모코
  • 2024-06-30
에니아이오스* (下)

오늘의 너는 어떤 창틀에 도착하게 될까. 나는 사랑하는 너에게 무수한 창을 남기고 갔다. 일기장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나의 계절들. 너는 너머를 들여다보듯이 나의 어제를 살피는 사람. 내가 열대 우림의 풍경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너는 설원의 얼굴을 만난 적이 없어서. 멋대로 혹은 마음껏 머릿속에서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빚을 테지. 눈이 휘몰아치고 눈앞이 온통 새하얘지고 눈밭 위에서 굴러다니는 개들의 눈빛을 보고 네가 모르는 감각. 하지만 끝내 네게 건네주고 싶었던 감각. 너는 울창한 곳에서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찻잎을 보내 주었고. 나는 눈사람처럼 시간을 뭉쳐 너에게 보냈다. 일기장을 펼쳐 두 눈에 이야기를 새겨 넣고. 너는 너의 일기장에 다시금 새겨둔다. 언젠가 이걸 널어놓으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가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마치 나의 순간들이 네게 그랬듯이. 너의 곁에 서 있지는 않지만 나는 늘 함께 있다, 기나긴 겨울밤을 닮은 기록의 형태로. 말하자면 창틀은 프레임. 창밖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컷. 서로를 꼭 껴안은 컷들은 장면이 되어서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단지 그걸 기록하고. 너는 기억하고. 나는 더 이상 설원에 없지만. 오랫동안 방에 머무는 찻잎의 열대 과일 향기처럼. 너의 눈동자에서 나는 영영 상영된다.-* 로버트 비버스가 제작한 영화의 사본은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테메노스’라는 공간에서 2004년부터 4년마다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한 번의 상영회마다 작품을 전부 상영하지 않고, 일부 주기를 선택하여 상영한다.

  • 모모코
  • 2024-06-1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