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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나란히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3-26
  • 조회수 1,244

우리는 타고나길 등지느러미가 없고 양볼이 부풀어 오른 존재들
물이 차오른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자면서 꿈의 건너편으로 도망치는 일을 하는
자몽빛 스커트가 불어오면 저절로 망가질 수 있었다 애쓰지 않아도 먼저 깨지곤 했다
지난 밤에 빨아 먹었던 꿈은 무거웠어 잉어가 내 몸통 위에 올라온 것처럼
고요하게 산산조각나는 매트리스와 나와 너의 것이 아닌 드레스 그리고 낡은 어항
다시 창밖으로 빛이 저물면 우리는 몸에 새겨진 점의 개수를 세면서
우리를 길러낸 모든 발자국을 되돌아보며 바닥까지 잠수한다

난주 금붕어의 성격은 키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사람을 잘 따르는 종이라고 한다
너는 붉은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짚고서 도감을 읽다가 볼을 긁적인다
난주는 물 밖을 벗어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다고 말할 때
유리 어항에 맺힌 어둠이 우리의 이마에 옮겨붙고
그럼 우리 엄마는 얼마나 좋은 수조를 가지고 있었길래
우리는 이곳에 자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조를 거치거 왔길래
상상이 가지 않을 만큼 달콤한 이끼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묻는 일은 하지 않는다

구제 옷에 붙어 있는 귀신보다 무서운 건 구정물이라고 했어
터질 것 같은 물방울을 건네며 하는 말에 잉어가 그려진 드레스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네가
나를 끌어안는다 어항은 얕아서 금세 바닥에 닿을 수 있지 그러나
우리의 몸집에 비해 깊은 곳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가장 무거운 꿈을 끌어안으면 어느 순간 도착해 있는 이곳에서
비늘 사이에 끼어 있는 슬픔을 털어내기 위해 헤엄을 친다
팔뚝의 점을 이으면 나타나는 별자리는 물살을 타고 흩어지고
자꾸만 재생되는 깨지는 소리 벽지에 녹아든 비린내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

빨간 피부가 부풀어 불독처럼 보이는 난주들 가지런히 누워서 시간의 모서리를 베어물고
배가 불러올 쯤에는 아침이 올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입을 뻐금거리며
학교 다닐 때 있잖아 담임이 나보고 금붕어 같은 자식이라고 했지 자꾸만 중요한 걸 잊게 되어서
나는 그 선생님을 왜 좋아했을까 따위를 말할 때마다 속눈썹 사이로 엉겨붙는 찌꺼기
이젠 익숙해 지나온 날을 등진 방향으로 호흡하는 아가미에 익숙해지기
손톱 아래로 때처럼 끼어드는 마음을 털어낸 뒤에 유영하기
반지하 원룸 창문 조금 흔들리지만 아무도 망가뜨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망가지지 않을 유리를 보수하기

오래된 스커트를 겹쳐 입으면 그나마 드레스를 입어본 기분이 들어
수반에서 잠이 든 계절을 서로의 꼬리에 새겨본다 몸에 찍힌 점와 같이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면 잉어가 될 수 있을 거라도 생각했지 우리는
뜨거워지며 자주 길을 잃는 난주의 눈동자를 잊지 않을 것이다
가끔은 너와 내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는 말에 안심할 수 있고
투박한 비늘을 찢고서 내일 아침에는 거대한 관상용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잠수는 끝나지 않는다 갈라져가는 입술과 구부러지는 꿈

추천 콘텐츠

우림의 눈

밤새 시를 썼어 열대 우림에 관한 시였어 노트북 한쪽에는 우림의 사진이 십 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어 울창해서 너무 울창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 등장할 때마다 떨었어 나의 손 떨림이 자판을 두드렸어 때로는 몰아치는 마음이 나를 시의 방향으로 밀기도 했어 창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물방울의 발자국이 창에 새겨지고 장마의 발목이 두꺼워졌어 이제는 아무도 장마라고 부르지 않는 순간을 위해 시를 썼어 이곳에는 1년 내내 비가 온다고 했어 그렇다면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시를 썼어 나는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걸 못 했어 머금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밤새 시를 썼어 사진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우림은 다 가본 것만 같았어 나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파문을 몸에 새겨가고 끝도 없이 안개가 흘러나왔어 넝쿨이 나의 손목을 휘감아서 내가 저 우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어 우림 중에서도 구름이 너무 많은 곳은 운무림이라고 한댔어 나는 마치 옅은 구름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창밖에서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순간의 정적 고요해지면 나는 사진 속 우림과 눈을 맞추었어 녹색의 정사각형이 내 눈에서 한없이 커져가는 시간이었어 계속해서 시를 썼어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방의 습도는 올라갔지만 나의 눈동자는 맑아졌어 우림과 눈을 정교하게 맞출수록 빗소리가 커지고 내 눈에 고여 있던 모든 걸 쓸어갔어 그래서 우림으로 떠나는 시를 썼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밟고 저 멀리까지 달리는 시였어 열대야가 끓어오르면 사람들은 이게 또는 그게 시가 아니라고 했어 꿈이라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시를 썼어

  • 모모코
  • 2024-07-03
아스팔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귀를 기울였지. 길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검은 길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울퉁불퉁한 표면을 곧게 깔아놓은 건 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너를 닮은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넘어져서 얼굴이 쓸려도 아프지 않았어. 무르팍이 깨지지도 않았지. 아, 여긴 꿈이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안쪽이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나는구나. 맨발을 내려다보며 이 길 위에서 내가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소리가 들리는 길은 처음이야. 울고 있는 길도 처음이지. 너는 분한 일이 있으면 울고야 마는 아이. 앞을 생각하다가 터져버린 울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것들 위에서 미끄러지고. 베개에 고개를 묻고 운 적이 있어. 너와 함께 울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 본 적은 없어서. 아스팔트에서 눈을 뜨고서 알아차린 것들. 달구어진 길에 엎드려서 진동을 느끼고.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깔아두었을까. 깔아두며 앞으로 나갔을까 고민하는 동안. 너의 발끝에서 질질 흘러나왔을 아스팔트를 쓸어내린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마음을 쥐어짠 뒤에 나오는 잔여물. 그러니까 울퉁불퉁한 눈물을 쓰다듬으며. 표정으로 포장된 심장. 검게 그늘 들이찬 얼굴 쏟아부으며 딱딱해진 길. 나 밤새 너를 생각했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스팔트 뜯어내며 흘려보내는 한 마디. 너를 위해 우는 동안 실컷 미끄러졌어. 만나본 적 없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면 몰래 우는 소녀를 생각하며. 울음을 밑창에 끼우고 달리는 너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아스팔트는 나의 이야기를 먹고 부풀어 오른다. 조금씩 말랑해지다가 힘을 주면 뜯어져서 바닥이 보이고. 마침내 포장되어 있던 길의 안쪽을 만나고. 길게 펼쳐진 길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 끝도 없이 달려가는 네 마음처럼. 다만 나는 귀를 기울일게. 말캉한 길. 너의 가장 내밀한 표정을 가만히 담아내는 상상. 알고 있지. 이 모든 건 내가 만든 상상의 안쪽. 나는 여전히 네 뒷모습을 보고 걸어가겠지만. 꿈에서도.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있어. 악착같이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소녀를. 결승선보다도 뛰어가는 방법을 골몰하는 너를.

  • 모모코
  • 2024-06-30
에니아이오스* (下)

오늘의 너는 어떤 창틀에 도착하게 될까. 나는 사랑하는 너에게 무수한 창을 남기고 갔다. 일기장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나의 계절들. 너는 너머를 들여다보듯이 나의 어제를 살피는 사람. 내가 열대 우림의 풍경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너는 설원의 얼굴을 만난 적이 없어서. 멋대로 혹은 마음껏 머릿속에서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빚을 테지. 눈이 휘몰아치고 눈앞이 온통 새하얘지고 눈밭 위에서 굴러다니는 개들의 눈빛을 보고 네가 모르는 감각. 하지만 끝내 네게 건네주고 싶었던 감각. 너는 울창한 곳에서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찻잎을 보내 주었고. 나는 눈사람처럼 시간을 뭉쳐 너에게 보냈다. 일기장을 펼쳐 두 눈에 이야기를 새겨 넣고. 너는 너의 일기장에 다시금 새겨둔다. 언젠가 이걸 널어놓으려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가닿을 거라는 믿음으로. 마치 나의 순간들이 네게 그랬듯이. 너의 곁에 서 있지는 않지만 나는 늘 함께 있다, 기나긴 겨울밤을 닮은 기록의 형태로. 말하자면 창틀은 프레임. 창밖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컷. 서로를 꼭 껴안은 컷들은 장면이 되어서 나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단지 그걸 기록하고. 너는 기억하고. 나는 더 이상 설원에 없지만. 오랫동안 방에 머무는 찻잎의 열대 과일 향기처럼. 너의 눈동자에서 나는 영영 상영된다.-* 로버트 비버스가 제작한 영화의 사본은 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테메노스’라는 공간에서 2004년부터 4년마다 꾸준히 상영되고 있다. 한 번의 상영회마다 작품을 전부 상영하지 않고, 일부 주기를 선택하여 상영한다.

  • 모모코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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