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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2-05-23
  • 조회수 372

지구 위로는 빙하가 뒤덮이고

우리는 봄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꿈 속의 집

뒤틀린 나무 기둥과 썩어가는 통나무 집

미련한 두 사람이 사는 집

 

끝없이

무너지는 집

 

밤마다 얼어 붙은 하늘 위로 커다란 코끼리가 지나갔다

얼음에 새겨진 발자국은 금이 갔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크게 휜 엄니가

심장에 박힌 아이스크림 같았다.

 

머리는 유리 같은 모래알로 가득 차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파도 같은 소리가 났고

계절이 죽어가는 꿈을 꾸며 우리 고리의 끝을 생각했다.

 

고개를 들어 연대기의 종말을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야, 바닥이 내려앉고 있잖아.

슬레이트 지붕을 뜯어 고치는 너를 보며 말한다

 

고통의 지속은 환상통의 탄생

마지막 계절 끝에 봄이 돋아나는 느낌, 나는 먼 곳에서

빙하가 물러나는 소리를 들었다.

 

스튜에 집어넣은 재료가, 얼마나 많은데

상한 음식도 입에다 집어넣고

 

꿈 속의 집을 떠나는 꿈을 꾸면

 

문드러진 것들 위로 그늘이 차기 시작한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지, 얼음이 녹으면

넘치는 물에 빠져 죽겠다고 생각했다.

 

지독한 배탈을 앓고도 너의 품에서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

 

이 시는 아주 좋아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된 시랍니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 추악해질까 아름다워질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요... 한 문장으로 담아내자니 아주 극단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살짝 우스워 보이기도 하네요.
저는 항상 전자였어요. 이 오랜 생각을 담아 시도 여러 편 썼네요. 저는... 제 생각을 소리치고 싶기도 했고요, 추악해진 화자 자체를 애정하기 때문이기도 했어요. 이번에도 어리석은 녀석을 녀석으로 시를 쓰고 싶었네요. 오랜 사랑을 하게 된다면 미련과 착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반대 입장의 친구는 이 시를 읽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아는 상태임에도 사랑하는 이의 품을 찾는 것이 '인간답다'고 느껴 마음에 든다고 말하더라구요. 상상치도 못한 반응이었답니다.
글틴에서 활동하는 분들은 또 어떠실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읽는 분들께서 마음껏 개입하도록 말을 얹지 않자는 주의였건만 어쩐지 이 글은 시를 쓰는 동안 했던 생각들과 함께 올리고 싶어서요. (역시 공개된 곳에 제 글을 올리는 건 너무 부끄럽지만) 용기 내어 글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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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의 눈

밤새 시를 썼어 열대 우림에 관한 시였어 노트북 한쪽에는 우림의 사진이 십 초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어 울창해서 너무 울창해서 앞이 보이지도 않는 풍경이 등장할 때마다 떨었어 나의 손 떨림이 자판을 두드렸어 때로는 몰아치는 마음이 나를 시의 방향으로 밀기도 했어 창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물방울의 발자국이 창에 새겨지고 장마의 발목이 두꺼워졌어 이제는 아무도 장마라고 부르지 않는 순간을 위해 시를 썼어 이곳에는 1년 내내 비가 온다고 했어 그렇다면 장마가 아니라 우기라고 부르는 게 맞다는 말을 들었어 누가 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시를 썼어 나는 구름처럼 흘려보내는 걸 못 했어 머금거나 토하거나 둘 중 하나였으므로 밤새 시를 썼어 사진은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세상의 모든 우림은 다 가본 것만 같았어 나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파문을 몸에 새겨가고 끝도 없이 안개가 흘러나왔어 넝쿨이 나의 손목을 휘감아서 내가 저 우림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어쩌나 싶었어 우림 중에서도 구름이 너무 많은 곳은 운무림이라고 한댔어 나는 마치 옅은 구름층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어 창밖에서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 순간의 정적 고요해지면 나는 사진 속 우림과 눈을 맞추었어 녹색의 정사각형이 내 눈에서 한없이 커져가는 시간이었어 계속해서 시를 썼어 한 문장을 완성할 때마다 방의 습도는 올라갔지만 나의 눈동자는 맑아졌어 우림과 눈을 정교하게 맞출수록 빗소리가 커지고 내 눈에 고여 있던 모든 걸 쓸어갔어 그래서 우림으로 떠나는 시를 썼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땅을 밟고 저 멀리까지 달리는 시였어 열대야가 끓어오르면 사람들은 이게 또는 그게 시가 아니라고 했어 꿈이라고 했어 그렇지만 나는 밤마다 시를 썼어

  • 모모코
  • 2024-07-03
아스팔트에 얼굴을 묻고 울다가

귀를 기울였지. 길도 울고 있는 것만 같아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검은 길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울퉁불퉁한 표면을 곧게 깔아놓은 건 네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너를 닮은 것들은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넘어져서 얼굴이 쓸려도 아프지 않았어. 무르팍이 깨지지도 않았지. 아, 여긴 꿈이구나. 완전히 내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안쪽이구나. 생각하다가. 나는 꿈에서도 너를 만나는구나. 맨발을 내려다보며 이 길 위에서 내가 자꾸만 넘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소리가 들리는 길은 처음이야. 울고 있는 길도 처음이지. 너는 분한 일이 있으면 울고야 마는 아이. 앞을 생각하다가 터져버린 울음, 나는 만나본 적 없는 것들 위에서 미끄러지고. 베개에 고개를 묻고 운 적이 있어. 너와 함께 울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힘껏 달려 본 적은 없어서. 아스팔트에서 눈을 뜨고서 알아차린 것들. 달구어진 길에 엎드려서 진동을 느끼고.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깔아두었을까. 깔아두며 앞으로 나갔을까 고민하는 동안. 너의 발끝에서 질질 흘러나왔을 아스팔트를 쓸어내린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마음을 쥐어짠 뒤에 나오는 잔여물. 그러니까 울퉁불퉁한 눈물을 쓰다듬으며. 표정으로 포장된 심장. 검게 그늘 들이찬 얼굴 쏟아부으며 딱딱해진 길. 나 밤새 너를 생각했어. 단단하게 자리 잡은 아스팔트 뜯어내며 흘려보내는 한 마디. 너를 위해 우는 동안 실컷 미끄러졌어. 만나본 적 없는 길을 걸으며. 넘어지면 몰래 우는 소녀를 생각하며. 울음을 밑창에 끼우고 달리는 너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잘 이해하고 싶다는 다짐으로. 아스팔트는 나의 이야기를 먹고 부풀어 오른다. 조금씩 말랑해지다가 힘을 주면 뜯어져서 바닥이 보이고. 마침내 포장되어 있던 길의 안쪽을 만나고. 길게 펼쳐진 길을 끌어안을 수는 없지. 끝도 없이 달려가는 네 마음처럼. 다만 나는 귀를 기울일게. 말캉한 길. 너의 가장 내밀한 표정을 가만히 담아내는 상상. 알고 있지. 이 모든 건 내가 만든 상상의 안쪽. 나는 여전히 네 뒷모습을 보고 걸어가겠지만. 꿈에서도. 꿈속에서도 생각하고 있어. 악착같이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소녀를. 결승선보다도 뛰어가는 방법을 골몰하는 너를.

  • 모모코
  • 2024-06-30
에니아이오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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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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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해주

    안녕하세요, 미도리노모노님. 시 잘 읽었어요. 아름다운 시네요. “꿈 속의 집”이라는 공간을 형상화해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끝없이 무너지는 집” “얼어 붙은 하늘 위로 커다란 코끼리가 지나갔다” “머리는 유리 같은 모래알로 가득 차서” 등 인상적인 표현도 참 많고요. 다만, “고통의 지속은 환상통의 탄생”이라는 표현은 다소 막연하게 읽힌다는 점, 꿈꾸는 화자가 “너의 품”에 있는 공간이 보다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으면 한다는 점은 퇴고할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말미에 덧붙인 시에 대한 이야기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시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보다 시가 아름답네요. 그래도 종종 나눠주세요. 다음 시도 기대하겠습니다.

    • 2022-06-06 19:30:57
    조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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