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세상의 끝, 세상의 시작 - sekai now owari의 노래를 중심으로 훑어보는 한 해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2-31
  • 조회수 561

한 해의 끝자락에서하나의 의식처럼 행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이를테면 편지를 쓴다거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시집을 준다거나 연말 보고서를 쓴다거나그렇지만 그건 일들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단단한 결심히 필요하고올해도 부지런히 용기를 내었다열 통이 조금 넘는 편지를 십 일 정도에 걸쳐 배달하였다내가 사랑하는 구제 옷가게에서 구매한 크리스마스 스웨터들을 입어가며그리고

 

나의 영원한 -그러니까 영원한 건 없는데 영원하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마녀 Y에게 편지를 준 것을 마지막으로, 12월 25일에 모든 배달이 끝났다집으로 오는 길부터 잠들기 직전까지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앨범 'tree'를 반복해서 들었고 나는 이런 기분들이 문득 익숙하게 느껴졌다이제야 다 끝낼 수 있겠다는 감정안심해도 좋다는 감각환한 불빛들 사이에서.

 

작년에도재작년에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tree 앨범을 들었다나는 잊고 있었다편지가 되었건 보고서가 되었건 그런 활자로 이루어진 고백들 외에도내가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었다는 게 존재했다는 걸그리고 어쩌면 세카이노 오와리의 노래를 듣는 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겠다는 것도.

 

한 해를 떠나 보내기 위한 내 일련의 의식儀式 중 유일하게 의식意識하지 않은 게 있었다는 걸.

 

이건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이어폰을 가지게 된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 계속해서 행해온 일 같기도 하다그리고 나는 그 어린 겨울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나 생각해 보게 된다나는 tree의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음이 틀림없고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여러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무려 tree의 수록곡 중 3곡이나 내 시의 제목이 되어주었으므로내 사고의 토대가 되어 은연 중에 나의 가장 큰 시적 특징이 -동화적인 아름다움과 환상성그래서 김희준과 이민하 시인을 정말 사랑한다...- 되어준 건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のカーニバル

불꽃과 숲의 카니발

 

ミイラってる

미라 남자도 춤을 춰

 

今宵かれたカーニバル

오늘밤 내가 초대받은 카니발

 

魔法使いはったんだ

마법사가 내게 말했어

 

この秘密にしておくんだよ

이 사랑은 비밀로 해둘게,

 

さもなければこのない

그렇지 않으면 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해져.”

 

 

나는 아주 오랫동안 부끄럽게도 그리고 우습게도 나의 생이 초록보다는 회색빛 재가 가득한 숲이라고 생각했고그 숲은 섬에 있다고도 믿었다재가 되어버린 마음은 모두 내가 가졌던 과도한 사랑들불꽃에서 왔다고도그러니까 불꽃이라거나 숲이 춤을 추는 그런 노래가 좋았다이런 노래로 시작하는 앨범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종소리가 짧막하게 삽입된 the bell이 실질적으로 첫 번째 트랙이기는 하다.- 내가 늘 꿈결같은 사랑을 쌓아 왔던 장소인 유원지를 배경으로 하는 노래인 것도 좋았다짝사랑하던함께 사랑하던한때 사랑했던그 모든 사람들과 갔던 곳이 유원지였으니까사랑이 있는 그곳에서는 마법사든 카니발이든 무엇이든 믿을 수 있었다눈 앞에 있는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진짜가 될 것만 같았다.

 

 

真夏月夜Tokyoりて

너는 한여름의 달이 빛나던 밤에 Tokyo의 거리에 내려왔어

 

かぐやという名前との不思議らしがまる

카쿠야 히메라는 이름의 그대와 신비로운 동거가 시작됐어

 

YOKOHAMA花火大会禁止場所めたね

요코하마의 불꽃축제출입금지의 장소에서 바라봤었지

 

には場所がないのといてたんだ

"나는 돌아갈 장소가 없어"라며 울었었지.

 

나는 사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은하거리의 악몽'을 가장 사랑하는 줄 알았다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방황하는 동안 그 노래의 가사들을 마주하는 게 정말 힘들었고 나는 또 어디로든 떠나버리고 싶었다마치 최승자의 시 '내 청춘의 영원한속 화자처럼이곳이 아닌 어디로든그러니까 사실 나는 은하거리의 악몽보다도 '문라이트 스테이션'을 사랑했음을 어느 날 깨닫게 되었고블로그 이름도 한때 문라이트 스테이션으로 두었던 적 있다학교에 가지 않고어중간한 신분으로어두운 방구석에서 세카오와의 콘서트 영상을 봤다문라이트 스테이션의 라이브 영상에는 누군가 별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지나치게도 개인이었던 관중들은 후카세의 목소리 하나로 하나가 되고세카오와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음악을 깊게 헤엄치고하늘에는 거대한 열차가 공연장에는 큰 나무가 있고······. 나는 문득 달리고 싶었다무라카미 하루키는 -또 다른 한 때 나의 블로그 이름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다 보면 지평선 너머 저 멀리까지 단숨에 달려갈 수 있을 것만 같다고 했다진짜 그런 기분.

 

 

マーメイドラプソディー めく不自由なダンスホールに もう一度会いにてね

머메이드 랩소디 반짝거리는 부자유한 댄스홀으로 다시 한번 더 만나러 와 줘

 

ここで貴方っているわ

여기서 널 기다리고 있어

 

今宵純白のダンスをるから

오늘 밤 순백의 댄스를 출 테니까

 


머메이드 랩소디작년 이맘 때 쯤 이 노래를 듣고 시를 썼는데이때부터 나의 물 사랑이 시작된 것 같다나의 시는 꽤 습도가 높은 편인데다시금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여기서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한창 정형시에서 산문시로 좋아하는 호흡이 바뀔 때였는데아마 생애 처음은 아니고 두세 번째 쯤으로 썼던 시였을 거다나는 그게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서수정하고 싶은 게 보일 때마다 수정했고돌아보니 그건 내가 찬찬히 성장했다는 증거였다그러니 장장 1년 동안 붙잡고서 퇴고를 한 시가 되었는데나는 그 사실을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많은 시를 써내더라도정말 후카세의 '머메이드 랩소디같은 시를 쓰지는 못할 것이다나의 시는 본질적으로 물에 잠겨 있는 언어를 지녔고세카오와 그리고 후카세의 노래는 물을 끼얹는 언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순간순간 물을 마주하며 터지는 기포몸 아래로 쏟아지는 물의 흐름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물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금 하는 언어 말이다.

 

최근에 대산대학문학상 결과가 나왔다비슷한 시기에 재단 측에서 청소년문학상 작품집을 보내주기도 했다그럼에도 나는 무엇보다 관심이 가는 쪽은 대학문학상의 동화 수상작이었다작품의 제목이 '벨루가와의 여름'과 '비가 오면 우리는'으로 기억하는데특히 표제작인 '벨루가와의 여름'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자신은 여전히 없지만 계속해서 써왔던 시나 평론보다도 동화 수상작의 공개가 기다려졌고솔직히 오직 동화만이 내 흥미를 끌었다.

 

더불어 최근에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그림을 그렸고, Y와 함께 각자 캔버스를 두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Y는 내 그림을 보고 그림책에 어울린다동화책의 삽화 같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 같다사실 나는 요즘 동화가 정말이지 좋다그러나 고민이 되는 지점은 내가 과연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느냐는 것인데몇 주 전 어느 시인의 낭독회를 갔다그 자리에는 아동 문학 작가님이 계셨다멀리서 온 학생인 나를 챙겨 주셨고나는 반 쯤 진담으로 서울역에서 Y에게 그런 카톡을 했다. '나 이런 일이 있었는데역시 어린이와 청소년을 곧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아동 문학이라는 게 나오는 것일까...'


사실 나는 아동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유년의 결핍을 채우고 싶어서 동화에 관심을 가진다이번 수상작의 경우에도병실에 있는 친구를 위해 서울에 있는 아쿠아리움에 가 벨루가를 만나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병실이라거나 아쿠아리움이라는 점에서 나는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은 걸지도 모르겠고사실 이래도 괜찮은 걸지 많은 고민을 했다.

뭐 어때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독자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없음 -당연히 어린이들을 존중하려는 마음은 지닌다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유년이기에... 그러나 나는 좀처럼 동물이라거나 아이들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 못해서 괴로울 때가 있다.-에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도 ''에서 시작되었다리더이자 보컬 후카세는 젊은 날 여러 방황을 하고 괴로운 시기를 보냈던 것 같다그가 병으로부터 고통 받을 때, '여기까지 떨어졌으면 뭐든 할 수 있겠지'하고 '무언가를 시작해보자'라고 생각해 시작한 것이 밴드라고 한다그리하여 그 밴드를, '세상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던 좌절의 순간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의미로 世界わり세상의 끝을 세상의 시작이라고 명명하였다.

 

나는 십 대의 중반과 끝에서 여러 번 '정말 끝나버렸다'그런 기분을 느꼈으나 나의 느낌과는 무관하게 새로운 날은 찾아왔다.

나의 열아홉, 2023년은 그런 해였다나의 한계를 가늠할 수 있었던 해낭떨어지까지 달려가 본 한 해그러나 그런 일을 해 보았음으로 나의 가능세계를 알 수 있었던 해나는 낭떠러지 끝에서 어떤 유원지를 본 것 같기도 하다또는 달빛이 내려앉는 역을어쩌면 인어가 노니는 물가를 본 것 같기도나의 이십 대는 어떨까그건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사랑스러운 시대일 거라고 믿는다


추천 콘텐츠

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 모모코
  • 2023-12-31
어떤 풍경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제주 4.3을 다루는 나의 시 리뷰하기

1.어리고 이상하고 외로웠던 나를 품어준 서울, 그리고 생의 대부분을 보낸 부산을 제외하고서 좋아하는 도시를 골라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아마도 제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제주는 내게, 단순히 아름다운 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놀랍게도 대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 한 번도 제주에서 살아본 적은 없으나 아주 사랑스럽게 바라보곤 한다. 나와 꽤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 또한 제주 출생이었는데, 그는 제주 4.3에 대해 목소리를, 꽤 큰 목소리를 자주 내곤 했다. 이전까지 나는 좋아하는 문우 언니들의 어깨 너머로 4.3을 바라보았다. 잘 알지도 못해 말하지도 못했으나, 그를 알고 나서 나 또한 제주 4.3에 분노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내가 더는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된 지금까지도. 단순히 그를 사랑했기에 제주까지 사랑하며 목소리를 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동안에, 진심으로 제주의 역사와 그 아픔에 공감하게 되며 깊은 곳까지 빠져들게 되었다. 그 깊은 곳의 씁쓸하고 아릿한 맛을 본 뒤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으나 유난히 제주 4.3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 역사 선생님께서 제주 4.3에 대한 영상을 틀어주셨을 때 남몰래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랑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랑들이 지녀온 역사에 관하여 수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평화기념관을 가는 버스에서, 내내 많은 감정들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 그가 분노하던 얼굴과 매년 4월마다 sns에 게시글을 올리던 모습, 그가 아니더라도 문우 언니가 이따금 말하던 것들. 그리고 나는 기념관에서 마주했다. ‘백비’를. 백비는 아주 커다랗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비석이다. 처음 백비를 마주하였을 땐 단순히 그 크기에 압도당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 비석이 지닌 의미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이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지닐 때까지 기다리며, 여전히 백지의 상태로 있을 ‘백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이고 머물러 있었다.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아주 작은 단어로서 무척이나 큰 세계를 직조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인을 꿈꾸는 나로서 이 세계는 어떤 단어로 명명할 수 있을지,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건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대답하지 못했으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11월 9일,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평화기념관에 이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 않아 무척 아쉬워했을 만큼 좋아하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제주 4.3을 세 명의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한강 작가가 이야기한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작가는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 물었을

  • 모모코
  • 2023-12-24
진리에게

https://youtu.be/kzUZABVj5UQ?si=BYMzpaFKlQkEe8l_(위 노래와 함께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진리에게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네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지. 언니, 나는 이 편지를 진부하게 시작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진지하게 시작하고 싶어. 나를 향한 언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 편지가 만약 내 한글 파일이 아닌 원고지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미 습기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지우개질에 가루가 되어버렸겠지. 몇 번이고 백 스페이스 키를 누르며 지어진 이야기. 오직 도로시를 위한 이야기.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도 아주 오래도 걸렸지. 언니, 그러니까 한때는 설리였고 누군가에겐 알 수 없는 여자였고 또는 영원한 별이거나 복숭앗빛 공주인 최진리 언니.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 우리는 비록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 만난 적도 없으니. 그럼에도 내가 최진리 당신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언니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단단한 사랑과 연대의 감정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그러니 감히 당신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적어도 이 편지 속에서는. 언니에게는 권누리 시인의 <한여름 손잡기>라는 시 속 구절을 선물하고 싶지. ‘여름이 구르는 건 누군가 열심히 발로 차고 있기 때문이다. (...) 규칙 없는 궤도, 뜨거운 공기, 나는 한때 그 애가 여름을 굴리는 걸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언니를 알게 된 건 2014년 여름이었으니까,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면 한여름 속에서 언니의 손을 잡는 것 같아. 2013년 발매한 ‘핑크 테이프’ 앨범의 대표곡 무대였지, TV 속에서 어쩌다 발견하게 된 거야. 언니가 활동하던 걸그룹 f(x)는 다소 독특한 곡으로 여전히 회자 되고 있지. 처음에 나도 그 통통 튀는 곡 속에 빠져들게 되었어. 다른 걸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엠버 언니라거나 크리스탈 언니의 목소리가 시선을 끌기도 했어.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언니에게 시선이 닿았지. 언니는 아이돌이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것에 경각심을 지니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고등학생이 되어 아이돌 시장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어. 우상이라 내세워지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어떤 폭력을 겪고 있는지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f(x)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조심스러워. 무료하던 한여름을 채색한 건 그룹 f(x)였고, 그 중심에 언니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 그렇지만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 불편함마저 언니가 선물해준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언니를 알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 내가 그 여름날 f(x)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최진리라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그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신념으로서 배우는 것도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언니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덕질’을 해보았지. 나와 먼 곳에 있다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물론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으니, 이렇게 깊게 생각하진 못했을 거야. 그저 내가 가

  • 모모코
  • 2023-10-25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
  • 카임

    반가운 밴드 이름이 있어서 들어왔어요!! 저도 세카이노 오와리를 정말 좋아해요. 적어주셨던 tree 앨범도 좋아하고요! 뭔가.. 근본곡들이 다 모여있는 앨범이란 느낌....ㅎㅎ 저도 후카세의 일화를 듣고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저에겐 무어라 부를 만한 병이 없지만, 그래도.. 이따금 축축해지는 시기에는 세카이노 오와리의 노래가 정말 위로가 되더라고요. 저 역시도 18살 때까진 은하거리의 악몽이 최애곡이었는데 요즘엔 magic이 좋더라고요!!.. 세카이노 오와리를 좋아하면 누구나 은하거리의 악몽을 지나쳐가게 되나봐요....ㅎ.ㅎ 아무튼..! 모모코 님이 계속 tree 앨범을 듣고, 동화를 좋아하고, 시와 평론을 쓰시면서 지내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사랑스러울 20대를 응원할게요. 잘 읽었어요!

    • 2024-01-16 00:13:00
    카임
    0 /1500
    • 모모코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4-01-19 12:35:29
      모모코
      0 /1500
    • 0 /1500
  • 모모코

    안녕하세요, 수필 게시판은 늘 벌벌 떨면서 찾아오게 되네요. 대개 화자를 고정해 두고 그의 시선을 '너'에게 돌리는 시나, 타인의 창작물에 대해 제 생각을 나불거릴 수 있는 감상문과는 다르게요. 정말 제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수필이라는 건 늘 제게 가장 어려운 장르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한 해의 끝에서 몇 편의 글을 적었고, 그게 생각해보니 수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여기에 올려봅니다. 게시판에 도배하듯이 올린 건 죄송해요. 다만 저는 내년이면 글틴을 졸업하게 되니까, 그 전에 제가 줄곧 마음에 품고 있던 세 편의 글을 올리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긴 고민 끝에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박서련 작가님의 굉장한 팬이기도 해서 ㅋㅋㅋ 팬심으로 멘토링 받는 것도 있긴 한데, 그냥 십 대의 후반을 함께한 이 사이트에 제 가장 솔직한 면모를 풀어놓아야 이십 대를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글들은 여기 올리기 위해 퇴고를 몇 번 했는데 좀 거칠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자주 즐겁고 자주 행복하며 건강, 건필하시는 2024년 보내시길 바라요.

    • 2023-12-31 14:21:11
    모모코
    0 /1500
    •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