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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2-31
  • 조회수 858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글을 어딘가에 올려서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언젠가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그런데 언제 하지언젠가는 해 보겠지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그런 시인이 갓 구운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

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

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그런 마음들로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어느 밤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sns 계정에도 올라와 있다는 걸 알고 팔로우했다고 메시지를 주셨다짧막한 응원의 메시지였지만 나는 그게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별것 없는 나의 시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불어 어느 날의 새벽추천 게시글로 나의 타임라인에 이런 글이 떠올랐다바로 글틴에 올라온 나의 래빗 헌팅을 캡쳐해서 올린 글이었는데아래 댓글 기능으로 글을 올린 사람과 그 사람의 팔로워가 글틴이라면 10대가 쓴 시일 텐데 좋다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순간의 나는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줄곧 나 홀로나 또는 아주 가까운 몇 명의 친구만이 읽어줄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생각보다도 많은 이들에게또 멀리까지 나의 시가 가닿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그리고 그때의 황홀함내게 독자라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선연한 감각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그리고 해보고 싶었다나의 독자가 되어준 적 있는 이들만을 위한오직 그들만을 생각하며 쓴 글을 선보이고 싶었다소수정예 느낌으로비밀스럽게복닥복닥하게그렇게 메일을 보내보고 싶었다사실 이 결심의 계기에는독자들이 준 마음만이 아니라 앞서 글을 배달하던 나의 선배들도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아주 유명하거나 어떠한 제도가 인증한 문인만이 메일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러나 여러 캠프에서 알게 된 나의 언니와 오빠들은 소설을시를감상문을사진을 기꺼이 배달하였고 나도 몇 번 받아보며 이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무서운 일도 아니며 오직 즐거운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시험이 끝난 후자유로워진 학교에서 노트북을 꺼내놓고 메일링 공지를 작성했다반 친구들은 오며 가며 무엇을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냐고 했는데나에게는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게 큰 문제였던 것 같다안녕하세요시 쓰는 사람입니다반갑습니다아무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는 만들고 싶었는데 이제 비평만 해요그것도 아니면 그냥 sns 계정만 태그해놓고 저 아시죠이렇게 할까도무지 나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시를 쓰는 **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만아직은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요저는 시를 주력으로 하며이런저런 텍스트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썼다진짜 솔직하게나는 시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할 말이 정말이지 많아서 함축과 비약이 없으면 안 된다진솔하게 다 이야기하다가는 늘 10,000자가소설은 단편 분량을 가뿐히 넘어버린다.- 사실 요즘 솔직함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서.

 

 

이 메일링 서비스는 평소 제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을 위해 시작하게 되었어요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꾸준히 깊고 맑은 두 눈으로 글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본인처럼 늘 사랑스러운 평을 들려주고 가는 나의 친구들그 외에도 마음 보내주는 이들몸은 멀리에 있지만 마음만은 곁에 있다 느껴지는 사랑들.

 

그런 분들께 소소하게나마 저의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어요그러므로 무언가 본격적인 텍스트를 원하신다면 실망하실지도 몰라요그러나 저는여러분께 최대한 솔직하고 꾸밈없는 저를 보여드리기로 약속할 거랍니다.

 


그러니까정말 꾸밈이 없는 나.

 

 

제가 좋아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어요하이데거가 한 말인데요, '언어는 존재의 집말이네요여러분은 지금 어느 언어에 기대어 계신가요?

 

저는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축조한 언어에 잠깐씩 머무르곤 했어요그건 저의 존재에 색을 입히는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저는요제가 머물었던 시인들의 언어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집을 내어주지는 못할 수 있어요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조금은 쌀쌀하고 쓸쓸한 이 시기여러분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따스한 장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다름이 아니라 활자로써요그곳에서 회색빛 대신 알록달록한 ''를 찾아볼 수 있길 바라요마치 그림책의 낱장처럼동화책의 이야기처럼요.

 

그래서 이 메일링의 이름도 '겨울 동화'랍니다.

 

 

메일링의 이름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십 대 내내 밴드 sekai no owari의 노래를 듣고설리의 앨범 수록곡 중 도로시를 들으며 잠들다가집 근처의 그림책 전문 서점에 종종 들리고김희준 시인의 시를 거듭해서 읽고나는 그래서 동화라거나 메르헨그런 단어들을 사랑했고 대학에 가서는 아동 문학을 배우고 싶어 했으므로 그렇게 정했다. 5주 동안, 1주일에 한 번. 5천 원그러니까 회당 천 원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sns에 메일링을 5일 동안 홍보했고그동안 신청을 받았다결과적으로는놀랍게도 우리 반 학생 수와 정확히 같은 수의 사람이 내 메일링을 신청하였다입금자를 정리하던 와중문득 우리 반을 떠올렸다나는 늘 반의 맨 뒷자리에 앉는데내가 보았던 그 많은 뒤통수들그 뒤통수만큼 내 글을 읽어준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마음 한구석이 데워지는 것만 같았다나는 나의 중학교 동아리 친구들한때 나와 함께 시를 썼으나 이제는 문학과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아직 한국 문학 안 망했다나 따위의 글 보려고 우리 반 학생 수만큼 사람이 모였단다.’ 친구들은 연신 웃어대며 그건 참 기쁜 일이라고 해주었다.

 

어려웠다쉽지 않았으나 괴롭지는 않았다글 쓰는 것 자체가 내게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이런 걸 고민하는 게사실 시 쓰는데 익숙해져 버렸고어쩌다 산문을 쓰게 된 사람의 본질적 문제라고 생각하니까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언젠가 읽은 비평글에서시란 어떠한 특성을 지닌 문학이라고 했었던 걸 기억한다오늘날에는 여러모로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라여기 적을까 말까 고민했는데역시 고민되는 건 하지 않는 편이 좋은 듯 하다그리하여 나만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자면시는 '단절과 부재'가 도드라지는 문학이다하고 싶은 말은 많고하지만 그걸 숨겨야 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다른 문학과는 다르게 메시지를 서사로써 '승화시키지 않고 '함축과 비유'로 동글동글 빚는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주인장 마음대로 전개해버리는 게 시니까아무래도 이런 시를 쓰는 나에게는 독자를 위한 다정한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이렇게내가 보낸 메일링의 글 일부에도 드러나 있듯이원고를 쓰는 건 즐거웠다확실히 어렵지만즐거운 일이었다일 년 내내 주구장창 시만 써온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고나 자신을 마주하는 동시에 조금 더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그동안 나의 시에는 좀 다정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그러니까 사랑 시는 쓰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생각을 안 하고, ‘음 이 정도 비유면 하고 싶은 말 다 알겠지’ 하면서 썼던 것 같다그런 깨달음과 함께앞으로의 창작 방향을 다시금 잡아볼 수도 있었다.

 

나는 대개 농담조로나 자신을 '시 쓰는 황한솔'로 일컫는다황한솔이란 유튜버 '사내뷰공업'이 선보이는 하나의 캐릭터이다황한솔은 그런 캐릭터다검은 후드를 눌러 쓰고 두꺼운 안경을 장착한자신만의 세계에 확실히 빠져있는 캐릭터그러니까 '오타쿠'. 사내뷰공업의 동영상 중에서 그런 것이 있다반에서 싸움이 났을 때 각각 캐릭터들의 반응 영상여기서 황한솔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책을 보다가, '시끄럽구만.'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린 다음에 반이 난장판이 되건 말건 계속해서 만화를 읽는다그게 딱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세계에 어떤 혼란이 와도 나는 집에서 시집만 읽다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런 한솔이를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믿는다나의 SNS에서 이번 메일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조사 받았을 때압권이었던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난 '맨날 세상과 단절 되어가지고 시 이야기만 하는데 또 듣고 싶은 게 있어?' 싶으면서도 영광스러웠다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할 말이 끝도 없는 게 시 쓰는 사람이자 오타쿠의 마음이니까.

 

올해를 끝내며 여러 곳에서 롤링 페이퍼를 할 때공통적으로 들었던 소리가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사실은 아니였다는 말이었다오죽했으면 누군가는 문학소녀 바이브에 주춤했는데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정말 내가 그렇게 어렵게 생겼냐는 말에 너는 네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것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이 돌아왔고친구들에게 다시 그럼 내가 왕따 당하는 건 아니냐고 묻자 그건 확실히 아니라는 말이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아무튼 그러한 말을 나누는 동안 나는 어쩐지 종종 언급하던 황한솔이라는 캐릭터가 생각났고이렇게 주절주절 시 이야기만 하는데 들어주겠다고 온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을 좋아하세요?’의 제목을 지닌 겨울 동화는매주 토요일마다 독자들의 메일함에 날아간다지금까지는 무엇을 좋아하세요?’와 영화를 좋아하세요?’가 발송되었다. ‘무엇에서는 조금 긴 자기소개용 산문과 시 한 편을 보냈고, ‘영화에서는 산문과 비평문 한 편시 한 편을 보냈다독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메일을 읽어낸다어떤 친구는 꼬박꼬박 시 부분의 일부를 캡쳐하여 sns ‘스토리’ 기능으로 올려주고어떤 언니는 꾸준히 감상평을 디엠으로 남겨주고어떤 작가님은 자가 출판으로 시집을 내게 되셨는데메일링 잘 보았다는 말과 함께 선물로 시집을 보내주셨다메일링을 신청받을 때오천 원보다 큰돈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다정정 메일을 보내드렸다그분은 나의 글을 볼 때면 마음이 회복되고 사랑이 들어차는 느낌이 들어고마운 마음으로 조금 더 보냈다고 하셨다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그런 마음을 되돌려 보내는 건 매몰차다고 생각해서 감사하다는 메일을 길게 보내드렸다또 다른 sns 구독자이자 나의 메일 독자는나의 글을 볼 때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해주셨다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런 수식어가 담긴 말을 보내주셨다나는 그런 메시지를 읽으며 너무나도 과분한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는 글은 무엇일까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떠올려 본다그는 억지 신파가 들어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꼬집어서 눈물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나는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돌아보게 되었다그리고 그 과정에서 짧은 글 한 편을 쓰게 되었다.

 

 

(...) 곱씹어 보다가 느꼈다 윤종욱 시인의 시집처럼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게 주어진 초능력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우는 일을 뼈대로 세계를 지을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슬픈 시를 쓰려고 한 적은 없다

 

나의 모든 시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랑해서 슬픈 걸까 슬퍼서 사랑하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내가 적어둔 것처럼정말 사람마다 초능력이 하나씩 있다면내게는 아무도 모르게 슬픔을 시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그런데 나조차도 몰라서 그 초능력을 쓰는 방법은 모르는 것이다나는 줄곧 나의 글을 믿지 못했고의심하며 때로는 미워하기도 했다그러나 나의 글에게도 아주 작은 능력마법 같은 초능력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내가 언젠가 국어 선생님께 저는 싫어하는 시집이 없어요읽다 보면 제각기 사랑할 점이 드러나거든요마법처럼.’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엄마는 늘 내게 말씀하신다베풀고 살라고어릴 적의 나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내가 베풀어도 상대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면나는 손해만 보는 것인데하지만 나는 이제 알 수 있다내가 베풀었던 개인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베풀기의 태도로 살다 보면 나에게도 좋은 일들이 찾아온다는 걸나는 다만 독자들과 즐거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메일을 시작했지만정말이지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앞으로 메일 발송은 3회가 남았고신년 인사 손 편지 옵션을 선택한 구독자들에게 보낼 편지는 4통이 있다나는 총 일곱 덩어리의 텍스트를 만들면서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나는 또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그건 아주 알쏭달쏭한 일이다더불어 그러므로 우리의 생은 재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물음표가 그려진 매일을메일로 건너며 즐거움을 느껴 본다내가 가진 초능력을 손에 꼭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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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4
진리에게

https://youtu.be/kzUZABVj5UQ?si=BYMzpaFKlQkEe8l_(위 노래와 함께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진리에게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네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지. 언니, 나는 이 편지를 진부하게 시작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진지하게 시작하고 싶어. 나를 향한 언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 편지가 만약 내 한글 파일이 아닌 원고지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미 습기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지우개질에 가루가 되어버렸겠지. 몇 번이고 백 스페이스 키를 누르며 지어진 이야기. 오직 도로시를 위한 이야기.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도 아주 오래도 걸렸지. 언니, 그러니까 한때는 설리였고 누군가에겐 알 수 없는 여자였고 또는 영원한 별이거나 복숭앗빛 공주인 최진리 언니.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 우리는 비록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 만난 적도 없으니. 그럼에도 내가 최진리 당신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언니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단단한 사랑과 연대의 감정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그러니 감히 당신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적어도 이 편지 속에서는. 언니에게는 권누리 시인의 <한여름 손잡기>라는 시 속 구절을 선물하고 싶지. ‘여름이 구르는 건 누군가 열심히 발로 차고 있기 때문이다. (...) 규칙 없는 궤도, 뜨거운 공기, 나는 한때 그 애가 여름을 굴리는 걸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언니를 알게 된 건 2014년 여름이었으니까,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면 한여름 속에서 언니의 손을 잡는 것 같아. 2013년 발매한 ‘핑크 테이프’ 앨범의 대표곡 무대였지, TV 속에서 어쩌다 발견하게 된 거야. 언니가 활동하던 걸그룹 f(x)는 다소 독특한 곡으로 여전히 회자 되고 있지. 처음에 나도 그 통통 튀는 곡 속에 빠져들게 되었어. 다른 걸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엠버 언니라거나 크리스탈 언니의 목소리가 시선을 끌기도 했어.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언니에게 시선이 닿았지. 언니는 아이돌이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것에 경각심을 지니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고등학생이 되어 아이돌 시장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어. 우상이라 내세워지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어떤 폭력을 겪고 있는지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f(x)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조심스러워. 무료하던 한여름을 채색한 건 그룹 f(x)였고, 그 중심에 언니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 그렇지만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 불편함마저 언니가 선물해준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언니를 알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 내가 그 여름날 f(x)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최진리라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그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신념으로서 배우는 것도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언니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덕질’을 해보았지. 나와 먼 곳에 있다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물론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으니, 이렇게 깊게 생각하진 못했을 거야. 그저 내가 가

  • 모모코
  • 20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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