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풍경은 흐르지 않고 고인다 –제주 4.3을 다루는 나의 시 리뷰하기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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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리고 이상하고 외로웠던 나를 품어준 서울, 그리고 생의 대부분을 보낸 부산을 제외하고서 좋아하는 도시를 골라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아마도 제주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제주는 내게, 단순히 아름다운 섬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놀랍게도 대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단 한 번도 제주에서 살아본 적은 없으나 아주 사랑스럽게 바라보곤 한다. 나와 꽤 오랜 기간 마음을 나누었던 상대 또한 제주 출생이었는데, 그는 제주 4.3에 대해 목소리를, 꽤 큰 목소리를 자주 내곤 했다. 이전까지 나는 좋아하는 문우 언니들의 어깨 너머로 4.3을 바라보았다. 잘 알지도 못해 말하지도 못했으나, 그를 알고 나서 나 또한 제주 4.3에 분노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내가 더는 마음을 나누지 않는 사이가 된 지금까지도. 단순히 그를 사랑했기에 제주까지 사랑하며 목소리를 냈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 동안에, 진심으로 제주의 역사와 그 아픔에 공감하게 되며 깊은 곳까지 빠져들게 되었다. 그 깊은 곳의 씁쓸하고 아릿한 맛을 본 뒤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나고 부산에서 자랐으나 유난히 제주 4.3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 역사 선생님께서 제주 4.3에 대한 영상을 틀어주셨을 때 남몰래 울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 사랑의 역사, 그리고 그 사랑들이 지녀온 역사에 관하여 수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평화기념관을 가는 버스에서, 내내 많은 감정들이 교차함을 느꼈다. 그와 보냈던 시간들, 그가 분노하던 얼굴과 매년 4월마다 sns에 게시글을 올리던 모습, 그가 아니더라도 문우 언니가 이따금 말하던 것들. 그리고 나는 기념관에서 마주했다. ‘백비’를. 백비는 아주 커다랗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비석이다. 처음 백비를 마주하였을 땐 단순히 그 크기에 압도당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 비석이 지닌 의미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이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지닐 때까지 기다리며, 여전히 백지의 상태로 있을 ‘백비’.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이고 머물러 있었다.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아주 작은 단어로서 무척이나 큰 세계를 직조하는 것. 그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인을 꿈꾸는 나로서 이 세계는 어떤 단어로 명명할 수 있을지,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건 쉽지 않은 고민이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대답하지 못했으므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11월 9일, 한강 작가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평화기념관에 이 작품이 전시되어 있지 않아 무척 아쉬워했을 만큼 좋아하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제주 4.3을 세 명의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나는 이 작품에 대해 한강 작가가 이야기한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작가는 ‘몇 년 전 누군가 다음에 무엇을 쓸 것이냐 물었을 때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바란다고 대답했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의 내 마음도 같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하였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나의 개인적인 사랑의 경험만이 사랑에 대한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타인을 따뜻하고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들을 사랑하고 있는 증거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곱씹으며 탐구 주제를 정해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주 4.3에 대해 이야기하기. 사실 이전까지 이태원 할로윈이나 청소년 자살, 세월호처럼 학생으로서 언젠가 겪을 수도, 겪어볼 수도 있었던 사건에 대한 시는 몇 번 써본 적이 있었다.
특히 세월호와 바다에 대한 시는 언젠가 합평 시간에 호평을 받기도 했고, 문우들은 내가 가장 가까운 것에 대해 감동적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점을 알면서도 나는, 두려웠다. 함부로 제주 4.3에 대해 말해도 괜찮을지. 21세기에 태어난, 육지 사람으로서 어떤 말을 얹어도 될지. 그러나 이번 수학여행에서 내가 눈에 담은 풍경들 그리고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마주하며, 용기를 얻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내가 제주 4.3을 떠올리며 쓴 세 편의 시를 기록하고 이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2.
눈송이의 행방
온다, 속눈썹을 뒤덮는 하얀 비명들이
어느 밤 아빠는 사라졌다고 했다 어디로? 눈보라 속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엄마의 눈꺼풀에 새하얀 눈이 고였다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다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건 누구나 알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속솜하였다* 계속
지난밤 오빠가 사라졌다고 했다 언니의 눈썹에는 폭풍우가 내려앉았다 소리가 없었다 온도가 낮았으므로, 흘리는 족족 얼어가는 눈 그리고 물, 하얗게 질린 소리들이 세상을 덮는 동안 언니는 잠잠하게 발을 올리면 깨져버릴 것 같은 풍경들 속에서 다만 가만하게
오라방은
눈보라 속
으로
뛰어든 게
아니야
손에 쥐면 녹아내릴 것 같은 단어들이 입가에서 부서졌다 천천히 녹기도 전에 조각난, 주워 담을 곳은 없었다· · · · · · 해가 떠도 밤, 섬은 밤이었다 하얀 밤이었다 육지의 방향으로 소란스러웠으며 비명이 가고 고함과 경보 소리가 왔다
한 번 쌓인 속눈썹을 터는 일은 어려웠다 고목의 주름대로 상처대로 파고드는 눈송이 같았다 우리는 눈을 감았고 들판과 땅굴이 지르는 비명을 되감으면 섬은 밤이었다 겨울밤이었다
오빠는 밤에 있을 거다 아빠도 밤에서 앉아 계실 거다 집에 남은 우리는 걸었지만 계속해서 겨울밤이었다 그 속에서 제복 입은 사람들 엄숙하게 선언했다 이 계절은 없는 겁니다 일제히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 속솜하였다 계속
지난 계절의 반대 방향으로 목을 꺾었다 속눈썹이 하얗게 새어가는 동안 잊은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봄이 오면 지난겨울의 눈은 어디로 가는가 눈두덩이에 하얀 비명을 올리고 눈을 감던 밤은 누가 기억할 수 있는가 헤매었다, 계속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제주 방언.
첫 번째 시다. 나는 평소 물 또는 물과 관련된 사물을 비유로써 잘 다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하여 한강의 소설을 떠올리며 시를 쓰게 되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려운 소설이다. 소설 속 이미지가 파편적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이는 작가의 역량 부족이 아니라 의도적인 부분으로 아마 난도질 당한 4,3 이후의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위해 연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다. 더불어 이 소설에서는 초판 표지에 새겨진 것과 같이, 눈을 핵심 소재로 사용한다. 눈은 살아남은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계절의 변화이자 동시에 고통이다. 나는 이것을 모티프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언젠가 제주 4,3과 관련된 뉴스에서, 제주4.3 연구소장과 여성학자가 나눈 대화를 접한 적이 있다. 제주 현대사의 가장 끔찍한 폭련인 4.3에 대해, 연구소장은 “폭력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더 짙어진다”며 “4.3을 겪은 이들은 여든이 돼고 아흔이 돼도 후유장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4.3을 직접 겪은 이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말하면 안된다’는 것이 고착화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장은 4.3 희생자 유족들을 직접 만나 증언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말을 꺼낸다’는 행위가 가진 힘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리하여 이 시는 한강의 소설 속 이미지와 ‘입을 다물라’는 제주 방언 ‘속솜하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제주4.3을 겪지 않았지만, 다큐멘터리와 기사를 접해보며. 감히 고통을 맛본 이들의 마음을 시로써 노래하고자 했다. 괜히 상처에 대해 노래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언젠가 내게 시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그랬다. 우리는 상처를 직면함으로써 오히려 나아질 수도 있다고. 그 상처의 아주 깊은 면까지 살펴보고, 치유됨을 느낄 수 있다고.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썼다.
3.
그물
언제나 섬에서 시작해, 너의 방을 닮은.
나는 늘 그 물에 잠겨 있다. 밤마다 짜낸 물들이 발목을 감싸는 방에. 마룻바닥의 무늬는 저 아래로 가라앉고 쌓아 두었던 이야기가 모두 떠밀려 내려오는. 불면을 나의 비늘에 매달고 아가미를 열어, 초침 소리가 손발에 엉킨다. 나는 늘 그물에 잠겨 있다.
이불 아래로 활자들이 밀려온다. 너의 일기장은 해안으로 밀려오는 물거품처럼. 아름다웠으나 쉽게 가라앉았다. 힘이 없는 숨. 도무지 제대로 걸어갈 수 없는 숨이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천장을 맴돌고 있어. 그해 4월에 잠겨 있는 섬처럼.
살아남은 우리가 흘린 그 물로. 당신들이 흘리고 간 핏물로.
가라앉는 섬. 일기장을 뒤집어 탈탈 털었어. 모두가 코를 막고 잠수할 때 너의 발자국을 찾고 싶어서. 네가 적어낸 단어들은 너무나도 쉽게, 내 울음에 녹고. 다시 늘어지다 그물이 되어버리고. 아주 조용하고 눅눅한 섬.
그물에 걸린 물고기는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 나의 등은 여전히 푸르렀고 새벽의 공기에서는 짠 냄새가 났다 상처의 가장 속살까지 파고드는. 비늘에서는 헤엄칠 수 없는 밤이 또옥 또옥 떨어져가고 나는 너의 방, 너의 섬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꿈을 꾼다.
다시 눈을 떠도 섬에서 시작해. 그물이 아주 많은.
두 번째 시다. 앞서 쓴 시의 ‘물’ 이미지를 이어받아 작성하였다.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제주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나의 방과 기억을 섬으로 은유하여 시를 전개하였다.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던 한강 작가처럼. 나 또한 이것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시이기를 바라며 썼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치열하고도 쌀쌀한 마음. 그럼에도 내일로 가겠다는 의지와 그 속에 섞여 든 그리움과 슬픔. 그런 복잡한 감정을 글로써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이 작업을 하며 정말로 문학과 시, 시인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어린 나는 그저 나의 괴로움과 사랑을 읽어낼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기 위해 시를 쓰기 시작했지만, 평생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 지금으로서는 진지한 이유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같이 눈을 맞더라도 볼이 좀 더 빨개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피부가 더 잘 반응하는. 예민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므로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인보다 예민하고, 조금 더 예리하므로. 내가 반응했던 것들을 기억하고, 함축과 비유의 방법으로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시인 이유는, 시는 이미지와 리듬을 주축으로 돌아가는 장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 특성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4.
성산으로
4월에는 유채가 지천이었다 애인을 따라 돌담을 따라 걸으면 나무보다는 길바닥에 열린 꽃잎이 보였다 꽃잎은 봄이 오기도 전에 죽어버린 나비를 끌어안고 있었다 무덤보다는 이불처럼, 애인은 언젠가 우리가 죽으면 나란히 묻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섬에서 죽은 나비는 어떤 계절을 건너왔을까 함부로 더듬을 수는 없었다 애인은 섬사람이고 나는 아니었으므로 아마도 젖은 나비의 날개만큼 애인의 어깨도 무거웠을 거라는 것 애인은 자꾸만 나란히 묻히고 싶다고 했다
계절을 견뎌낸 나비는 봄의 향기를 맡고 앞으로 걸어갔다 유채는 아름다웠으나 죽은 나비를 거름 삼아 자라났고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떨어진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밖에서부터 날아온 나비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나도 나비의 행렬에 끼어도 되는지 묻지는 않았다
애인이 나의 손을 맞잡았으므로
성산의 꽃밭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나비가 날아다녔다 바깥으로부터 불어온 나비들은 즐겁게 떠들고 웃음소리가 굴러가는 길거리에서 우리는 가끔씩 멈추어 섰다 애인은 우리가 죽으면 나란히 묻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아주 나중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마지막 시다. 나는 세 편의 시 중 이 시를 가장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배치한다. 가장 나의 내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이 시는 앞서 말한 ‘그’를 떠올리며 쓴 시이기도 한데, 직접 제주4.3을 겪은 사람이 아닌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것도 제주도민이 아니라 육지 사람으로 살아가는 화자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정말로 나 자신을 많이 투영한 시이기도 하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자 나의 시에 많은 영향을 준 권누리 시인. 그의 시집 속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썼다. ‘그러니까 이제 더는 아무도 죽지 마.’ 더는 제주4.3과 같은 일이 없길 바라며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다 ‘아주 나중’에, ‘나란히’ 죽자는 소망을 담아 썼다. 세 편의 시는, 배치한 순서대로 시간이 지나간다. 그러니까 첫 번째 시로부터 세 번째 시까지 읽었을 때, 마침내 오늘날에 닿는다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그렇게 적어둔 적이 있다. ‘시라는 건 아마도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과거를 담아내고, 현재를 노래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하는 문학이라고.’ 시를 쓰며, 그리고 보고서를 쓰며 나는 이런 나의 말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더불어 나는 끝까지 시를 등지지 않고, 시를 써 나가는 시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5.
사피어-워프 가설. 인류학자인 사피어와 언어학자인 워프가 만든 가설로, 언어가 우리 사고의 원형이 된다는 내용이다. 또한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밝혔다. 나는 이를 진지하게 신뢰하고 있고, 그래서 문학을 사랑한다. 언어로서 직조해내는 예술을. 우리의 사고의 원형이 되어줄 수 있는 예술을, 이번 탐구를 진행하며 나는 조금 더 문학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며, 나의 진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사랑만이 아니라 용기를 얻어간다. 이번 글에서는 제목처럼 누군가의 마음에는 지나가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고여서’ 남아 있는 풍경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풍경’들은. 내가 직접 경유해온 풍경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풍경 또한 포함한다. 나는 내가 지닌 모든 풍경들을 돌아보며, 나의 존재를 확연하게 인식하고 어떠한 용기를 얻은 것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랑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시인이 되겠다고. 나의 시는 제주 4.3을 다루고 있지만 투쟁적인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한강의 소설처럼 사랑에 대한 시라고 느끼는데, 이는 수학여행 동안. 그리고 백비 앞에서 다짐한 것의 연장선이다. 백비는 여전히 폭동, 사건 등으로 불리었던 제주 4.3의 올바른 이름을 기다리며, 또 감히 그 4.3의 아픔을 언어로써 나타낼 수 없어 아무것도 없는 비석으로 세워 두었다. 시인과 평론가, 문인은 직접적으로 ‘그 올바른 이름’을 제시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아픔을 어루만지며, 그리고 직면하면서 공감하며 감히 용기 있게 언어로 나타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문인으로서 한평생 어떤 마음으로서 글을 써나가야 할지 깨닫게 되었다. 그건, 나의 진로만이 아니라 내 인생 자체에 단단한 기둥을 세워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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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모코
- 2023-12-31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 모모코
- 2023-12-31
https://youtu.be/kzUZABVj5UQ?si=BYMzpaFKlQkEe8l_(위 노래와 함께 읽어주세요. 고맙습니다.)진리에게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네기까지 아주 오래 걸렸지. 언니, 나는 이 편지를 진부하게 시작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진지하게 시작하고 싶어. 나를 향한 언니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 편지가 만약 내 한글 파일이 아닌 원고지에 쓰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이미 습기와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지우개질에 가루가 되어버렸겠지. 몇 번이고 백 스페이스 키를 누르며 지어진 이야기. 오직 도로시를 위한 이야기. 그래서 누구에게도 보낼 수 없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도 아주 오래도 걸렸지. 언니, 그러니까 한때는 설리였고 누군가에겐 알 수 없는 여자였고 또는 영원한 별이거나 복숭앗빛 공주인 최진리 언니.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어. 우리는 비록 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지. 만난 적도 없으니. 그럼에도 내가 최진리 당신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이 언니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단단한 사랑과 연대의 감정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 그러니 감히 당신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적어도 이 편지 속에서는. 언니에게는 권누리 시인의 <한여름 손잡기>라는 시 속 구절을 선물하고 싶지. ‘여름이 구르는 건 누군가 열심히 발로 차고 있기 때문이다. (...) 규칙 없는 궤도, 뜨거운 공기, 나는 한때 그 애가 여름을 굴리는 걸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언니를 알게 된 건 2014년 여름이었으니까,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면 한여름 속에서 언니의 손을 잡는 것 같아. 2013년 발매한 ‘핑크 테이프’ 앨범의 대표곡 무대였지, TV 속에서 어쩌다 발견하게 된 거야. 언니가 활동하던 걸그룹 f(x)는 다소 독특한 곡으로 여전히 회자 되고 있지. 처음에 나도 그 통통 튀는 곡 속에 빠져들게 되었어. 다른 걸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엠버 언니라거나 크리스탈 언니의 목소리가 시선을 끌기도 했어. 그렇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언니에게 시선이 닿았지. 언니는 아이돌이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것에 경각심을 지니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고등학생이 되어 아이돌 시장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어. 우상이라 내세워지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어떤 폭력을 겪고 있는지 어릴 적에는 잘 몰랐으니까. 그래서 f(x)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조심스러워. 무료하던 한여름을 채색한 건 그룹 f(x)였고, 그 중심에 언니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 그렇지만 마음 한편이 편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 불편함마저 언니가 선물해준 감각이라고 생각하면, 언니를 알게 된 계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 내가 그 여름날 f(x)를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최진리라는 이에게 관심을 기울이지도, 그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신념으로서 배우는 것도 없었을 테니까. 아무튼 언니를 알게 된 이후로 처음으로 ‘덕질’을 해보았지. 나와 먼 곳에 있다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물론 그때는 초등학생이었으니, 이렇게 깊게 생각하진 못했을 거야. 그저 내가 가
- 모모코
- 2023-10-25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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