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쓰다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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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가정 시간 우리는 '사랑'과 부모가 됨에 따른 것을 배웠다. 3월의 마지막 가정 시간 "다들 조별로 사랑 노래 하나 생각하렴. 다음 시간에 사랑 노래 부를거야." 선생님의 말씀에 가사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왜냐 우리반 28명 중 3명을 제외한 모두가 내향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다들 노래 부르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것은 나도 똑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주제인 '사랑'을 가지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아는 사랑 노래하고는 뮤지컬 <이프덴>의 <Alaways Starting over>과 강성희의 <언젠가는>, 박애리의 <쑥대머리> 마지막으로 뮤지컬 <서편제>의 <살다보면>, 애국가 뿐이었다. 과연 친구들이 위 노래를 알까 걱정을했다. 역시나 내 걱정대로 위 노래 중 <애국가>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보에 <애국가>를 넣었지만 선생님께서 "부처님 사랑, 예수님 사랑, 나라 사랑 노래는 하면 안된다."라고 말을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다들 웃으면 한편으로 '큰일났다'라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여러 고민을 하던 중 최종 고른 곡은 동요 <숫자송>이었다. 다들 이 노래가 왜 사랑 노래인지 궁금해했다. 이 노래가 사랑 노래인 이유는 가사 "사랑해 널 사랑해 오늘은 말할거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조는 이 노래를 부르고 창피한 모습으로 자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다행히 마지막 조도 동요 <참 좋은 말>을 불러서 창피함은 한결 나았다.
그러나 나는 위 수업에 궁금증이 생겼다. 왜 친구들이 선택한 노래는 왜 다 밝고 활짝 핀 꽃같은 노래인 것인가? 처음 조가 불렀던 <칵테일 사랑>도 그렇고 우리 조가 불렀던 <숫자송> 도 그렇고 마지막 조가 부른 <참 좋은 말>도 그렇고 왜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 노래는 다 밝은 것인가? 또 사랑의 반대인 이별은 왜 다 슬픈 노래인 것일까? 나는 그 질문이 생겼다. 이 질문 때문이가 난 사랑 노래, 이별 노래가 싫다. 사랑 시와 이별 시 모두 싫다. 연애 소설 두 손들고 활짝 뛸 정도로 싫다. 나는 사랑이면서 슬프고 이별이면서 기쁜 그런 작품이 좋다.그래서 난 사랑의 양면성을 보여준 앞써 친구들이 몰랐던 노래가 훨씬 좋았다. 내가 몰라서 그런 것인지 아님 현실을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은 확실히 사랑을 경계한다.
일단 '사랑'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겠다. 사랑이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내가 주의 깊게 본 것은 귀중히 여기는 것과 아끼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꼭 밝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사람을 깊게 파고 파면 사람의 본성을 볼 수 있는데 그 본성이 꼭 착한 마음 선선설이 아닌 선악설같은 악한 존재일 수 있기 때문이다.이는 사회 문제인 데이트 폭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말도 있듯 사랑은 모진 것을 모질다 말해 줄 수 있는 그런 것도 포함 되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밝을 수만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가 부모에게 모진 것을 지적받으면 "사랑을 받아 즐거워"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 보통은 "아 씨 내가 뭘 잘못해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이 행위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고 우울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부모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동생이 위험한 행동을 하면 " 야, 너 미쳤니? 내려와."라고 말하고 동생은 "야!"라고 말하고 울 때가 있다. 나는 사랑해서 말하는 것인데 동생이 느낄 때는 기분이 나쁜 것이었다. 그러니 사랑은 무조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쉽게 사랑에 빠졌을 때 "세상이 핑크 빛으로 보여"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사랑의 부정적인 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이 방어 수단을 만든 것이라 생각이 간혹든다. 이 때 감정을 써내려가면 무조건 기쁘고 활기차고 행복한 사랑시만 적게 된다. 나는 이것이 너무 싫다. 사랑의 양면을 보지 못하고 결국 사랑에 헛된 이상만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세상의 양면을 보지 못하고 오직 순수한 것만을 추구한 것이 과연 옳은 시고 노래고 소설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 생각한다
이 세상은 깨끗하고 순수하다 생각하지 않다.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짐이 있고 끝없는 참사는 매년 계속된다. 우리는 이를 사랑으로 이기려고 하지만 사실 사랑이 우릴 더 아프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사랑을 쓰다보면 결국 몽땅 연필이 되어버린 내 모습만 볼까 두려워 나는 사랑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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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살면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어요." 상담 선생님께 이 말을 하니 선생님이 많이 당황하셨다.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야?"라고 역으로 질문하셨다. 대부분의 독자들도 17살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친구를 만났다는 것에 놀랄 것이다. 여기서 놀라는 포인트는 친구와 혼자가 아니라 처음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17살이 되기 전, 늦어도 12살에는 친구를 스스로 혼자 만나야 사회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 관점에서 볼 때 사회화가 잘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내가 17살이 되도록 친구를 혼자 만나지 못한 것은 내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친할머니의 영향도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할머니가 내게 친구의 단점을 계속 말하며 친구를 골라 사귀어야 한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아빠 친구 OO이는 이 짓거리 때문에 아직 결혼도 못 갔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이 말을 한 번만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자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제가 되었다. 나는 그로 인해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었지만, 완전한 친구, 즉 의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 번도 친구들과 혼자 만나서 논 적이 없다.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정확히 내가 원인 불명의 기침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더 작아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분에 친구를 사귈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있을 때 편했던 친구는 중2 때 만난 S(의 S와 동일인물이다.)라는 친구다. S는 나와 매번 맨 앞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그와 나는 많이 친해졌고, 그는 내가 중2 때 갑자기 시작된 기침 때문에 시끄러웠을 것 같은데도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괜찮아? 몸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물으며 걱정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S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져서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필요한 것은 서로 알려주며 지냈다. 그래서일까? 중3에 올라가서 반이 달라졌음에도 우리는 만나면 재미있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게 친구구나."라고 생각했다.이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나와 S는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새로운 환경과 친구들 때문에 더 위축되었으며 기침이 더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 나타난 친구가 바로 K(의 K와 동일인물이다)다. 그는 내게 먼저 와서 말을 걸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저절로 K에게 많은 의지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이야기를 하며 서로 모르는 문제를 연구하며 잘 지냈다. 그러나 올 6월부터 감기가 들어 기침이 심해졌다. 잦은 조퇴와 건강 악화로 인해 자퇴를 결심하게 되었다. 자퇴하기 전 K에게 이 소식을 미리 전할까 고민했지만, 시험 기간이라 분위기가 흐려질까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자퇴 날 개인톡으로 연락했다. 그러자 K는 나에게 "나도 너 덕분에 학교생활 잘 적응했어. 네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등 나에게 좋은 말과 감동적인 말을 해주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을 다시 다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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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스스로가 빛나는 것을 모른다. 그 이유는 별이 빛을 내고 폭발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특히, 많은 부담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빛나는 사람이다.나는 지난 6월부터 기침이 심해져 9월 10일 자퇴 서류를 작성했다. 자퇴서를 쓴 후, 선생님께서 "지난 6개월간 함께한 친구들에게 인사할래, 아니면 톡으로 남길 거야?"라고 물으셨다. 친구들을 보고 인사하면 감정이 북받쳐 울 것 같아 톡으로 남기겠다고 선생님께 말했다. 그래서 고마움과 감사함 그리고 미안함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썼다.편지에는 기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또한 영어독서,국어 부장과 팀장 역할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포함되었다.이 편지를 쓰면서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을 다잡지 못한 채 반톡 화면을 뚜러져라 바라보며 눈물이 날려는 날 참았다.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의 따뜻한 택스트들로 이 마음은 약간 괜찮아지려고 했다.톡을 올린 지 5분 정도 지나자, 중학교 동창이자 2학기 학급 반장이 반톡에 메시지를 남겼다. "그동안 고마웠어, 희찬아." 이 말을 시작으로 몇몇 친구들이 메시지를 보냈다. 과학 탐구 실험 조의 친구는 "그동안 학교 생활 수고했고, 앞으로도 힘내길 바랄게"라고 했다. 특수반 친구는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 친구였던 친구도 "우리 반을 위해 노력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이후 개인톡으로 몇몇 친구들이 나를 위해 메시지를 보냈다. 대부분의 내용이 "우리 반을 위해 힘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앞날을 응원할게"라는 내용이었다.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친구는 수학부장 K였다. (K는 의 K와 동일인물)K 덕분에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결석이나 조퇴 시 필기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줘서 아픈 것을 덜 참아도 됐다. 그래서 K에게 개인톡으로 "K야, 너 덕분에 학교 생활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할 수 있었어. 그리고 네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줘서 너무 고마워. 나는 해준 게 없어 미안해.그리고 고마워."라고 전했다. K는 내 메시지를 보고 5분 후에 답장이 왔다. "나도 너 덕분에 학교 생활 잘 적응했어. 내 사소한 질문에도 항상 진지하게 들어줘서 고마워. 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었어." 나는 이 문자를 보고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친구들에게 피해만 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많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퇴를 서둘렀던 지난 죄책감이 미웠다.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짊어진 무게와 운명 때문에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지나치게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폭발할 때 빛난다. 우리는 언제나 빛나는 별이며, 삶을 살아가는 길 중에 폭발이 있을 뿐이다.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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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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