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일기
- 작성자 qkrthal
- 작성일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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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수 513
주님,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매일 밤 하는 나의 기도였다. 이 기도가 시작된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반가워. 나는 이채하라고 해. 사이 좋게 지내자.”
채하는 밝고 사랑스러운 학생이었다.
“시온아, 너는 내 영원한 베프야”
채하와 나는 정말 베프였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어느 날부터 채하가 이전 학교에서 강제전학을 온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유는 학교 폭력.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 채하를 믿고 싶었기 때문에.
“시온아 너는 나 믿지?”
“그럼. 니가 누굴 괴롭힐 사람은 아니니까.”
“만약에 소문이 진짜라면?”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교실에는 새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소문의 주인공은 나였다. 어느새 나는 친구들을 뒷담화 하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채하에 관한 소문은 소리 소문없이 사라졌다. 오직, 내 소문만 남았을 뿐.
“유시온이 너네 장난감 취급하는 거 알아?”
“유시온이 그러던데 너 엄청 남자 밝힌다며?”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이 사실이 되어있었고, 그 소문의 중심에는 이채하가 있었다. 인간의 본성은 배신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았다.
급식시간, 교실에 혼자 남겨진 아이
물건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아이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아이
그게 나였다.
이채하는 반 친구들끼리 다 같이 모여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처음에는 다들 예쁘다는 말과 우리 반 우정 영원하자 등 좋은 말들만 달렸다. 근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댓글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
- 얼굴 커서 유기견 밖에 안 보이네ㅋㅋㅋㅋ
- 와 진짜 모자이크 해주고 싶다.
나는 어느새 아이들 사이에서 ‘유기견’으로 통했다. 누구도 나를 그렇게 부른 적은 없었지만, 나를 칭하는 별명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애써 무시하며 버텼지만 점점 나라는 확신만 생길 뿐이었다. 신경을 안 쓰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내 일과는 SNS로 시작해서 SNS로 끝나기 일쑤였다.
어쩌다 가끔 고민 끝에 내가 SNS에 사진을 올리면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렸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들처럼. 정신없이 달려들어 마구 웃으며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학교에 가면 이런 아이들을 직접 마주해야 한다니. 나는 점점 학교생활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
“우리 딸이 이제 드디어 사춘기가 왔나?”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다.
“엄마 나 왕따 당하는 것 같아.”
“원래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부모님은 나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고 결국 나는 스스로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선생님. 저 왕따 당하는 것 같아요.”
“일단 알겠어, 시온아 선생님이 확인할게.”
그리고 며칠 뒤, 3명의 학생이 교무실에 불려왔다.
“저는 지영이한테 들었어요.”
“어? 나는 민서한테 들었는데.”
“나는 이채하….”
누구도 내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모두 남 탓하기 바쁠 뿐.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침대에 누워있는 날이 많아졌다. 마치 물먹은 솜처럼. 그제야 엄마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시온아, 방 문 좀 열어봐. 왜 학교가기 싫다는 건데?”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결석이 잦아지자 담임선생님한테 먼저 전화가 왔다.
“학교폭력위원회에 건의해보자. 선생님이 도와줄게. 힘들 때는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구해야지.”
내 대답은 침묵이었다.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에. 이미 그럴 힘조차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나를 포기해 버렸다.
띵동-
한밤중에 초인종이 울렸다.
“시온아. 친구 왔다. 잠시 나와 봐.”
‘친구? 나한테 친구가 있었나?’
인터폰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나를 괴롭히던 무리의 가해자. 이채하였다.
“니가 여긴 무슨 일인데”
이채하는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대체 담임한테 뭐라고 했길래 학폭위 얘기가 나와?”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아?”
“니가 이러니까 애들이 널 싫어하는 거야.”
쏘아붙이는 말들에도 나는 화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SNS에 올라오는 저격글.
화장실 칸막이에 적혀있는 헛소문.
가방에 들어있던 썩은 우유.
이게 다 내 탓이라고?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데?”
“잘못? 그딴 거 없어. 그러니까 누가 나대래?”
이채하의 눈에는 죄책감이라곤 보이지 않았고, 내게 경고아닌 경고를 하고 돌아갔다.
내방, 내 침대. 이곳에 누워있는 시간이야말로 온전히 나만의 것. 침대에 누워 벽에 걸린 시계의 똑딱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야 온전한 내 시간이다.’
띠링-
그 순간 또 울리는 SNS알림. 이제는 보고싶지 않지만 또 보게 된다.
[이채하님이 게시물을 올렸습니다]를 보자마자 내 얘기구나 싶었다. 게시물에 올라온 사진은 내가 없는 반 단톡방에서 내 얘기를 하며 웃고 있는 대화창이었다. 게시물 제목은 한 명만 모르는 대화였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배경에 얼굴만 가려진 사진을 보고 외모 평가를 하고 있었다. 내 사진이었다.
- ㅋㅋㅋㅋㅋ너무 못생겼어..
- 유기견 요즘 안 보이던데 죽은 거 아님?
- 아닐 걸 얼마 전에 내 스토리 염탐 하던데.
- 뭐야 그럼 쪽팔려서 학교 안 오는 건가ㅋㅋㅋㅋ
- 아 요즘 유기견 없으니까 학교 갈 맛이 안 나네.
SNS는 작은 감옥이었다. 이제는 방에서도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나를 욕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나는 애들이 하는 내 얘기를 훔쳐보는 일들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내 일기장의 고민은 늘어만 갔다.
“시온아,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부모님은 내 방 문을 좀 더 자주 두드리셨고, 그럴 때마다 문을 걸어 잠그는 날이 많아졌다. 그때부터였다. 그림자가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대낮, 침대에 누운 나의 그림자는 짙고 길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처음에는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림자는 어느새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유일하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였기에.
‘요즘 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너도 알잖아. 난 이제 더 이상 일어설 힘이 없어.”
‘시온아 너는 할 수 있어. 내가 있잖아.’
“너랑 둘만 있는 게 좋아. 이제는 사람들이 무서워.”
‘넌 아무 잘못도 없어. 다 걔네 잘못이고 나쁜 애들은 걔네잖아. 죽긴 니가 왜 죽어. 그치?’
“고마워.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는 건 너 뿐이야.”
내게 기댈 수 있는 건 그림자의 목소리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학교 폭력의 기억이 중2, 중3이 되어도 계속 나를 따라다녔지만, 이겨내 보고 싶었다. 다시 시작해보고 싶었다.
“시온아, 잘 지냈어?”
하지만, 내 꿈은 중3이 되고 산산조각이 났다. 정말 세상에 신이 있는 게 맞을까?
중3이 되고 학폭 가해자인 이채하와 같은 반이 된 것.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그때, 귓가에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나를 믿고, 너를 믿어. 너는 아무 잘못 없어.’
그림자의 목소리는 어쩌면 나의 마음속 용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하지도 않은 소문으로 따돌림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내가 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타인은 더욱 막대할 것이다.
왕따 사건 후로 나는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그리고, 과거를 놓아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쿵쾅거리던 심장이 차분해졌다.
“나야 뭐, 잘 지냈지 넌?”
내 대답에 이채하는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나 요즘 힘들어, 왕따 당하는 거 같아”
이채하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자꾸 사라지는 교과서,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상한 음식들, 자기를 저격하며 올라오는 SNS글들.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을 얘기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내게는 어딘가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림자가 내게 늘 했던 말이 있다. ‘잘못은 언젠가 돌려받게 되어있다.’ 우리는 이걸 권선징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가해자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세상. 나는 그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매일 일기장을 붙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서만은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그 권선징악이 실제로 일어나는 걸 보니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가해자들이 벌 받는 세상이 아니라 가해자가 없는 세상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더 힘들어지기 전에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해.”
나는 가해자를 구하고 싶었다. 내 대답에 이채하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학교폭력위원회…? 집에 가서 고민해볼게”
대화가 끝나고 우리는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잠들기 전까지 일기장에 나의 감정들을 쏟아냈고, 더 이상 그림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 *
이채하는 집에 도착해서 자신이 왜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어딘가 익숙한 말이었다. 잠시 생각해 보니 문득 중1때 시온이 생각났다. 그때 자신이 했던 행동들과 함께. 지금의 내가 중1때 시온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때 시온이는 학교폭력위원회에 신고 안 했는데…. 왜 나한테는 신고를 권유하는 거지?’
‘나 때문에 시온이도 이렇게 힘들었겠구나….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던거지?’
나는 전에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잘못? 그딴 건 없어. 그니까 누가 나대래?’
내가 했던 말이 이제는 내가 듣고 있는 말이 되었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인 것 같고 미안한 마음에 한없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지금이라도 다시 바로잡자.’
결국. 고민 끝에 난 스스로 교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선생님, 저 할 말이 있어서요…”
“채하? 니가 여기 무슨 일이니?”
이채하는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진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사실…. 1학년 때 시온이 괴롭힌 거 저 맞아요.”
그 후 이채하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나는 걱정 반 궁금 반인 마음으로 이채하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났을까? 나는 엄청난 말을 듣게 되었다. 이채하가 학교폭력위원회에서 자신의 1학년 때 일을 고백했다는 것을.
그럼에도 교실의 따돌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폭탄돌리기를 하듯. 가해자와 피해자만 바뀔 뿐이었다. 이제는 점점 반 아이들이 민서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민서는 나의 학폭 가해자 중 한 명이었다. 이 문화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따돌림을 하던 아이들은 내게 다가왔다.
“시온아, 김민서 이상하지 않아? 진짜 싫어 너무 별로야. 그렇지 않아? 너도 이제부터 우리랑 다니자.”
시온은 정말 황당해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임도 만들어서 자주 만나자! 우리 작년부터 아는 사이였잖아!”
반 아이들이 시온에게 자꾸만 속삭였다.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나는 절대 동조하지 않을 거야. 너희들과 나는 달라.’
황당해하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던 시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반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우리가 친구? 난 너네 같은 친구를 둔 적이 없는데? 너네 마음대로 뭔 친구야. 친구는 무슨.”
반 아이들은 당황하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시계 초침은 여전히 앞으로 가고 있었고, 적막한 교실에는 똑딱이는 소리로 가득찼다. 그 때,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로 걸어갔다. 바로 1학년 때 자신의 가해자였던 김민서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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