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합가 지옥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1-16
  • 조회수 1,182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회사가 망해서 실업자가 되었다고 했다. 이 일로 친가에서는 아빠를 미운 오리 새끼로 본 것인지 아빠가 실업자가 된 이후 발길이 멈췄다. 그래서 난 친가 식구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친할머니,친할아버지가 주지 않았던 사랑을 엄마, 아빠가 체워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우리 동네 아저씨,아주머니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20명도 되지 않는 교실 친구들과 사이 좋게 지내며 그 속의 몸이 아프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서 나는 모범생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내가 준 사랑이 하늘에게 다았는지 하늘도 우리를 도왔다. 아빠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성공했고 3학년 때는 동생 희돌이도 태어났다. 매일,매일이 천국이었다.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천국으로 살던 어느 날 우리집 집 전화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전화기 넘어에는 고압적이고 우아한 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준이니? 나 네 친할머니 영선이야." 나는 너무 당황했다. 내 심정이 얼굴로 나왔는지 엄마는 내게 달려와 전화기를 가져갔다. 그러고는 "희준아 방에 들어가 있어."라고 말하셨다. 나는 엄마 말에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책상에 앉아 국어 공부를 했다. 그런데 문 밖에서 들려오는 엄마의 큰 목소리 때문에 난 국어 공부에 집중 할 수 없었다. 연수가 망가졌을까? 갑자기 내 심장이 벌렁 벌렁 뛰기 시작했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또한 간뇌가 망가졌는지 식은 흘렀으며 대뇌는 판단을 하지 못했고 중뇌가 고장났는지 눈이 감겼으며 소뇌가 마비 되었는지 내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여 쓰러졌다. 눈 앞은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순백의 천장이 보였고 그 옆에서 들려오는 삐 삐 삐 기계음 그리고 엄마의 눈물의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래 내 몸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내 옆에서 "미안해, 엄마가 정말 미안해."라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난 그런 엄마를 소리 없이 보고 있었다. 이런 엄마의 사과는 받아드릴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난 인정했다. 그 날 저녁 엄마와 아빠가 통화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 달에 있을 친할머니라는 사람의 생일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의 큰 소리가 내 중추 신경계를 마비 시킬번 했지만 항생제 때문인 것일까? 나는 잠에 들었다.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4학년 말 쯤 우리 가족은 친할머니라는 사람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엄마는 싫어하는 눈치였고 아빠는 좋아하는 눈치였다. 난 할머니 집에 가기 싫어하는 엄마도 가기를 좋아하는 아빠도 모두 이해 할 수 있었다. 왜냐 가족이니까 그럴 것이다. 싸웠으니까 그럴 것이다. 난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생일잔치에 가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빠의 엄마, 나의 할머니니 할 수 없이 갔다. 그래서 그런지 막 즐거워 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었다. 싫어하면 아빠가 상처 받으니까. 동생은 할머니에 대하여 좋은 추억만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래도 난 너무 싫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하니 할머니가 우리를 마중 나오셨다. 할아버지도 함께 마중 나왔다. 그리고 "어서와 희준아, 희돌아 그리고 내 새끼들." 인자한 미소로 우리를 안아 버렸다. 나는 안아 버린 팔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내 할머니니까. 엄마도 언제 오기 싫었는지 모를 만큼 환한 가식의 미소를 보여줬다. 나도 엄마처럼 가식의 미소를 뛰어줬다. 그 때 동생 희돌이는 불편했나 보다. 막 찡찡 울어댔다. 그러자 할머니는 "좋은 날 재수 없게 울고 지랄이야."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분노했지만 아무도 이 말에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을 보아 그냥 넘어갔다. 할머니 생신 상에는 많은 음식들이 올라왔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잡채,홍어무침, 보쌈등이 올라와 있었다. 너무 맛이 없었다. 달고, 짜고, 맵고 너무 자극적이었다. 이는 엄마도 아빠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이 것보다 싱겁게 먹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음식에 말을 붙이지 않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할 수 없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척 해야만 했다. 이를 보고 나와 가족들이 맛있게 먹었다 생각했는지 집에 갈 때 음식을 여러가지 싸 주셨다. 또한 나에게 십만원이라는 큰 돈을 주며 "넌 공부를 잘해서 꼭 1등만 해야 한다."라고 말을 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에 가는 길 아빠는 "너무 행복했다."라며 눈치 없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네가 좋았으면 됬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갑자기 우리에게 "그 무당 말이랑 다르잖아 내가 ㅇ 들어간 사람들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잖아.우리 다시 합가하자." 그러자 엄마는 "네 아들 그 사람들 때문에 죽을뻔했어! 그리고 네 엄마는 널  버렸어." 큰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그만!"이라 외췄다.  그러자 무음의 정적이 흘렀다.. 그렇게 조용히 우리는 집으로 갔다.


집으로  들어가서도 아빠의 합가 타령은 계속 되었다. 아마도 망해서 못받았던 사랑을 지금이라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엄마는 이런 아빠의 행동에 진저리가 나간 것 같았다. 결국 엄마가 나에게 "희준아 넌 할머니 어떻게 생각해?" 난 이 질문에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역질문했다.  그러자 엄마는 "잘 모르겠어.희준이에게는 할머니고 아빠에게는 엄마니까."  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 때문에 지금의 내 신경계가 탄생했지만 희돌이에게는 이것을 대물려 주고 싶지 않아." 그러더니 엄마는 인자하고 따뜻한 진실의 미소를 뛰었다.


 5학년이 되고 지금까지 지낸 작고 아담한 시골 생활을 정리하고 할머니가 있는 차갑고 매서운 도시 마을로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니 드디어 할머니의 만행이 시작 되었다. 살면서 할머니는 엄마에게 "네 년 팔자에 백호살이 들어서 내 아들이 실업자가 됬던거야! 그래도 우리 아들 팔자가 괜찮아서 너랑 네 자식들이 사는거야."라고 나와 동생이 듣는 앞에서 말했다. 엄마는 화가 엄청 났지만 계속 참고 나에게 나중에 와서 하소연을 했다. 또한 나는 할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억압을 받기 시작했다. 친구를 함부로 만날 수 없었고 음식 하나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이런것을 아빠에게 엄마와 내가 말하면 아빠는"참아, 노인네가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며 우리를 피했다. 이 상황을 회피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엄마의 화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나로부터 발생했다. 나만의 비행기를 만들어 여러 손님을 만들어 비행기에 탑승 시키는 비행을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현실에서 벗어나 세상을 만드는 캡틴 즉 글을 쓰는 작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이를 할머니가 본 것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하라는 공부는 않고 지금 글을 써? 넌 박사나 교수 아니면 판사가 되야지!"라고 화를 냈다.  나는 "할머니 저는 글로 하늘을 만들고 승객도 만들고 그들을 목적지인 결말에 도착 시키는 캡틴이 될거에요. 하늘에 있는 저는 땅에 발 붙이라는 할머니의 말은 안들려요!"라고 처음으로 내 의사를 말했고 대들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역시 정신병자 아들이야. 망상증에 빠졌구나."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내 몸은 이상 행동을 보였다. 식은 땀이 막 흐르고 심장이 막 뛰고 숨이 안 쉬어졌다. 뇌가 마비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본 엄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애 한태 무슨 말 짓거린거에요!" 그러자 할머니는 "야! 이 정신병자야! 어디서 내 고막을 부쉴라고 해! 이 살인자야!" 라고 말하고 엄마는 "희준이 죽이는 당신이 진짜 살인마야!"라며 소리쳤다. 난 결국 이 소리들 때문에 신경계가 부셔졌다. 마비 됬다. 내가 들은 마지막 소리는 엄마의 "희준아,희준아"부르는 소리와 할머니의 "정신도 약한 놈"이라는 소리였다.


 눈을 떠보니 어느 흰 백색의 공간이었다. 그 곳에는 그동안 내가 그렸던 비행기 탑승객들이 있었다. 백발의 노인,안경을 쓴 여인,학생,다방 아줌마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그들이 나에게 "조금만 더 힘내." 라고 말해 줬다. 말을 듣고 난 뛰었다. 내 비행기 안을 막 뛰었다. 그러면서 여러 신경들을 부셨다. 고통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뇌에 도착했다. 하지만 뇌는 부시지 않았다.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위해서 살고 싶었다. 엄마의 누명을 벗고 내 비행기를 더 탄탄하게 만들고 싶고 동생 얼굴도 한번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난 작고 가녀린 신경을 자극했다. 할머니와 떨어지고 싶어서 자극했다. 그리고 비행기 조종석을 지나 하늘을 향해 몸을 던졌다.


 땅에 도착하니 병원이었다. 그 옆에는 유일한 나의 가족 엄마와 동생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잡고 울었다. 엄마는 우는 나를 보고 "엄마가 미안해. 내가 그 때 너와 함께 도망갔어야 했는데.네가 상처 받았을 때 도망 갔어야 했는데." 나는 그런 엄마를 안아 주었다. 그때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엄마는 이런 나를 걱정했다.


이 기침은 1달이 지나도 머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이런 나를 보고 "우리 집안에 백호살 낀 년이 들어와서 망하게 생겼네 둘째 놈이나 믿어야지.장손 어찌 저 년의 피를 받은 것인지."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이런 말에 분노했지만 그래도 참았다.나는 나만의 하늘을 비행 하면서 버텼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며 안쓰러웠는지 나를 대리고 어린시절 신경계 마비로 다녔던 정신과를 갔다. 병원에서는 날 기침 틱이라 말했다.또한 어릴적 있었던 불안이 더 커졌고 우울증까지 왔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항우울제와 아빌라파이 5mg짜리를 먹게 되었고 저녁에는 캡배이와 아빌라파이 5mg짜리를 먹게 되었다. 이를 본 할머니는 "저런 것도 손주라고 쯔쯔 밖에 보여주기 민망하네 배는 볼록 나오고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니 참."라고 말했다. 더 이상 할머니의 언행에 난 참지 못했다. 나도 내 정신줄을 잡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내려오는 분노가 그대로 밖에 표출 되어 할머니에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토해냈다. 그러자 엄마가 나에게 다가와 "희준아,희돌이 대리고 방에 들어가 있어." 라고 말했다. 난 엄마의 말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쨍그랑, 쨍그랑 문 밖에서는 물건 던지는 소리와 함께 접시가 깨지는 소리,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아빠의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내 신경계가 일을 못할 것 같았다. 불안해 미칠것 같았다. 정신을 잃을번 할 때 동생 희돌이의 울음소리가 내 고막을 거칠 때 난 정신을 잡을 수 있었다. 나에서 이 일을 끝내지 않으면 희돌이에게도 이 악순환이 대물림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희돌이를 달랬다. 진정으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고 싶었다. 기침이 더 나왔지만 이 순간 만큼은 실신이 되는 한이 있어도 정신을 차려야만했다. 그게 나와 엄마 그리고 희돌이를 위한 길이니까.


 한 두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와 희돌이를 대리고 이모집으로 갔다. 1년간 지옥 같았던 생활이 정리 되었다. 이모 집에 도착해서 엄마는 "이제 선택은 네 아빠에게 달렸어 지금까지 고생 많았어 희준아." 라고 말했다. 그 소리를 듣고 긴장이 풀렸는지 기절을 했다. 


 깨어난 이후에도 내 기침은 더 심해졌다. 큰 소리가 두렵고 기침 때문에 18일 남은 학교 생활을 쉬게 되었다. 아빠의 선택은 우리였다. 아빠는 자신을 버렸던 할머니,할아버지와 다시 벽을 치고 살겠다 다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로 6학년 시작 전 가게 되었다. 가끔 집 전화로 발신자 표시가 되지 않은 번호가 걸려온다. 그 전화는 돈이 없다고 아들을 버리고 돈 있다고 아들이라 하는 엄마, 며느리에게 정신병자,살인자라 말하는 시모, 그리고 손주에게 별볼 것 없는 놈이라 말하는 할머니일 것이다. 이렇게 전화가 오는 날이면 기침이 더 나온다. 그래서 난 내 맘을 진정시킬 수 있는 나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운전한다.

추천 콘텐츠

봄날을 먹을까요?

"형,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그 때 들어가지만 않았어도." 희준이는 울면서 형 희정이에게 말을 했다. 희정은 어떤 표정도 희준이가 읽을 수 없게 얼굴을 뒤돌렸다. 그리고 종착지 없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희준은 떠나가는 희정을 잡으려고 했지만 미안함과 죄책감이 그의 발을 잡아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희준은 떠나가는 희정을 보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지만 희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길을 갔다. 희준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을 듣고 엄마 준선이 방으로 뛰어들어 왔다.그녀가 희준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희준은 놀란 동태 눈을 하고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기침을 계속했다. 그런 희준의 모습을 보고 준선은 그에게 달려갔다. "희준아, 괜찮아?" 준선의 말에 희준은 눈물을 흘렸다. 눈물방울이 눈에서 몸으로 내려갈 때 동안 그는 계속 기침을 했다. 그의 호흡은 점점 그를 잡아 먹었고 그 때문에 희준은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이런 희준의 모습에 준선의 마음이 무너졌다. 준선은 희준을 다독이며 그에게 호흡기 벤토리 에보힐러를 줬다. 희준은 호흡기 덕분에 기침이 조금 사그라 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니 준선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미안해, 엄마 잘못이야." 준선의 말은 희준의 마음을 부셨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서 서로를 무너뜨렸다.서로가 서로에게 무너졌을 때 울음의 정적도 깨졌다. 그들은 아침밥을 먹고 각자의 자리를 향해 출근 준비를 했다. 준선은 교회갈 준비를 했고 희준은 학교갈 준비를 했다. 희준은 늘 그랬듯이 학교를 불안한 심정으로 갔다. 그의 마음은 모친인 준선도 잘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예수님이 너와 함께 있을거란다. 오늘도 하나님의 축복을 믿으렴"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의 불안은 잠들 생각을 하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그러면서 기침은 더욱 강해졌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희준은 늘 불안했다.그럼으로 기침이 계속 나왔다. 기침의 원인은 불안이었고 불안의 원인 안에는 희정과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희준은 학교를 그만둘 생각을 했다. 매일 학교 가는 길이 무거웠고 힘들었다. 매일이 죄책감의 무게로 가득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죄책감을 덜라고 했지만 덜리지 않고 더욱 크게 물들었다.그가 죄책감으로 몸이 물든 이유는 1년 전 그가 중3 시절 베스트 프랜드 성현, 상준이 가족과 여행을 갔을 때 일어났다. 그들은 뻘이 있는 서해안의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희준과 희정 그리고 성현,상준은 갯벌에서 조개,소라 등을 잡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불행은 행복과 가까운 시간에 일어나는 법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해루질을 하기 위해 16살 먹은 아이들과 희정은 부모들에게 허락을 받았다. 허락을 받고 해루질을 하러 갯벌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모두들 즐거워 했다. 해삼도 잡고 골뱅이도 잡고 신바람이 났다. 그 때문일까? 그들은 물이 밀려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16먹은 희준,성현,상준,17먹은 희정까지 모두 휴대폰 어플을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잡고 잡기

  • 송희찬
  • 2024-10-02
언젠가 엄마를 다시 만나

"지구한테 어떻게 그래? 엄마가 제일 예뻐한 아이잖아. 우리 가족이라며." 눈을 떠보니 치료실에 앉아 있었다. 치료제 향기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꿈일까 생각하여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엄마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보다. 나는 꿈인 것을 직감하고 내 다리를 보았다. 내 다리는 꿈인데도 빌어먹게 다리가 망가져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이를 갈았다. 얇은 이들 넘어 잇몸까지 갉아지는 느낌이었다. 입에서는 피맛이 났다. 나는 그래도 꿈인줄 알고 계속 갈았다. "어머, 지구야 이 그만 갈아."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할 수 없이 이를 가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안겨 엄마에게 갔다. "한지구 보호자님 지구 일어났어요." 간호사가 엄마에게 말하며 나를 넘겼다. 엄마는 전화하던 휴대폰을 잠시 주머니에 놓았다. 그리고 나를 안고 병원비를 계산하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에 나오면서 나는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겨울의 추위가 내 빰을 흘러내리니 이 고통은 꿈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해줬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태연한 척을 했다. 내가 아픈 것을 들키면 엄마의 마음이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웃으면서 엄마의 품에 안겼다. 평소 다니던 길이 오늘따라 달라 보였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는 떨려 있었고 내 뺨에 엄마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엄마에게 "울지마."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나의 언어는 엄마에게는 외국어라 알아 듣지 못했다. 우리는 익숙한 거리를 어색한 분위기로 걸어갔다. 엄마가 몇 걸음 걸었을 때인가? 탕후루 가계 옆에서 갑자기 나의 몸에 몸을 움추리면서 말을 했다. "지구야, 조금 있으면 봄이니까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만나자." 엄마의 말은 내 귀에 스며들었다. 그러나 엄마는 기쁘지 않은가보다. 엄마의 눈에서 뜨거운 물이 내 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달래기 위해서 나는 성대와 몸을 일체화 하는 운동을 했다. 엄마의 몸이 내 운동으로 진동했다.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엄마의 몸은 진동했다. 나와 엄마는 하나의 유기체로 이어져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몸은 분리됬다. 나는 안아서 편하게 왔지만 바람을 너무 많이 맞았는지 피곤했다. 그래서 천천히 발을 내 방으로 갔다. 방은 어두웠고 나는 누웠다. 바닥은 겨울이라 차가웠지만 길바닥보다는 따뜻했다. 나는 몸이 나른해졌다. 눈이 감겼다. "잘자라, 지구야." 엄마의 목소리와 함께 나는 잠에 스며들었다. 잠 속에 이동을 하니 엄마와 나의 유기 관계는 높아졌다. 엄마의 불안이 내게도 느껴졌다. 나는 이 불안을 알 것 같다. 내가 이 느낌을 왜 알까?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물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또 다른 엄마의 기억을 만나게 되었다. 길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머릿 속에서 폭발했다. 그렇다. 나는 죽음으로 버려진 아이다. 길가에서 생활은 어느 삶보다 위험하다. 이름도 없고 그저 1호, 2호 등 숫자로 불렸다. 나는 그 중 3호로 불렀다. 내가 3호로 불린 이유는 엄마 배 속에서 제일

  • 송희찬
  • 2024-08-10
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