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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6-29
  • 조회수 61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입 주변이 밝아졌다.나는 처음에 몰랐다. 그러나 아빠가 내 몸을 치더니 "할머니 돌아가신게 웃을 일이야!"라고 버럭 소리쳐서 알았다. 나는 모르겠다. 날 평생을 공격한 사람의 죽음에 슬퍼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다들 슬퍼해서 그런지 나도 슬피 우는 척을 했다.

 할머니의 장례와 매장이 끝나고 나는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웠다.침대에는 배게와 이불 끼끼가 놓여져 있었다. 나는 끼끼를 안고 울었다. 이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마음 한 편에 있던 기쁨이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분노의 감정이 피어났기 때문이다.나는 가슴을 막 두드렸다. 답답하고 기쁨이 겹치는 이 감정 너무 이상했다. 그 때 손을 내민 친구가 바로 끼끼였다. 끼끼는 내 등에 손을 대고 함께 감정을 공유했다. 나를 토닥거리며 나는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춘기 시절을 보냈고 입시 전쟁에 빠져들었다. 이 때 느낀 감정은 복합적이고 신비로웠지만 나는 이를 다스릴 여유가 없었다. 시험이 매일이었고 그 시험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차 끼끼와 감정이 멀어졌다. 끼끼를 통해 복합적 감정을 다스릴 시간이 없었다. 어찌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매마르고 이를 치유하고 다스릴 능력 역시 지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끼끼는 먼지에 휩사였고 나는 그저 감정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누나 정신차려"희철이가 향수에 빠진 나를 일으키는 소리였다. 나는 희철이를 꽉 안았다. 매말랐던 감정에서 기쁨과 슬픔이 일어났다. 나는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눈이  두게인 이유는 감정을 복합적으로 소비하라는 것이 아닐까. 희철이가 내 등을 쳤다."괜찮아" 그 때 내 마음을 끼끼가 와서 만져주는 것 같았다."지워진 감정만큼 더 성장하고 익어갔네. 지워진 마음만큼 더 어른이 되었구나" 끼끼가 내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마음 속 깊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런 끼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우리 희철이에게 천사가 되어줘"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희철이를 놓아줬다. 희철이는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누나 없어도 엄빠 말 잘 들어야해"라고 말을 했다. 흔적이 있던 나의 집을 이제 지웠고 희철의 웃음과 함께 나는 모든 추억을 두고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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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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