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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전쟁

  • 작성자 다은047
  • 작성일 2024-05-23
  • 조회수 293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전란이라는 소용돌이가 세상에 휘몰아친 시대. 두 날붙이가 서로 진동을 하며 맞붙었다.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강철들의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다. 아니, 애초에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살 수 있을지는 불분명했다. 그야 이곳은 한 번의 실수와 순간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장이었으니까. 그래, 죽음. 죽음은 누구나에게 평등했다. 우리 같은 기사들에게도, 착실히 살고 있을 평민들과 비참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노예들, 심지어는 한 나라를 통솔하는 왕조차도 예외는 없었다. 그 앞에 신분이라는 벽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천명이 다하면 죽는 게 바로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의 섭리였다.

-'나아가라, 긍지 높은 기사들아!'

 저 멀리에서부터 지휘관의 외침이 들렸다. 눈앞에서는 검을 든 상대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감각의 영역을 확장했다. 몸을 구성하는 근섬유를 전부 한계까지 끌어올린 상태로 내 미간을 향해 날아오는 검날을 옆으로 쳐 냈다. 지금껏 새하얀 백지와도 같았던 머리가 처음으로 맑아졌음을 느꼈다. 나와 눈앞에 있는 상대. 둘에게 다가올, 부정할 수 없는 미래가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보이는 미래는 언제나 같았다. 내가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함성소리가 내 귀를 어지럽힌다. 상대의 병장기가 또다시 내 머리를 겨냥하며 휘둘러진다.

-'싸워라, 우리의 영광을 위해!'

 고개를 오른쪽으로 급격히 돌리며 날아오는 검격을 피해냈다. 저도 모르게 신체가 미세하게 떨렸다. 당연했다. 방금 하나의 죽음을 잠시나마 마주한 것이기에.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어깨에 눈먼 화살 하나가 박혔다. 한순간의 방심이었다. 섬뜩한 피륙음과 함께 고통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호흡이 가빠진다. 무서웠다. 나는 여기서 죽는 걸까. 그건 싫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다. 나는 살아서 가족들을 끌어 안고 싶었다. 얼굴을 마주 보며 다녀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죽음을 두려워 말라, 기사의 명예를 다하라!'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들어간다. 심장이 터질듯 거세게 요동친다. 나는 이런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전쟁은 이런 게 아니었단 말이다. 언젠가 상상했던 영웅적인 전쟁과는 달리 현실에서의 전쟁은 온갖 더러운 모략들이 판을 쳤다. 며칠 전까지는 함께 웃고 떠들던 전우들이 이제는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다. 정작 전쟁을 주도한 소수들을 대신하여 무고한 다수의 사람들이 사지로 뛰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역겨워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그대들의 죽음을 기억하겠다! 그러니 계속해서 싸워라, 긍지 높은 기사들이여! 명예로운 죽음이 그대들을 인도하고, 우리에게 영광을 줄 것이다!'

 명예? 웃기지 말라지. 전장을 그저 보고만 있는 자들이 감히 명예를 입에 담을 수 있을까. 게다가 긍지라는 것은 그저 그럴듯하게 꾸민 수식어일뿐,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 그리고 영광을 받는 것은 목숨을 바쳐 싸우는 우리가 아닌, 소수의 기득권층이겠지. 으득하고 이를 악물었다. 어깨죽지에 박힌 화살을 단숨에 빼냈다.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나는 살아남고 싶어."

 그래 일단 지금은 살아남는 거에만 집중하자. 나는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절하게 싸우는 전우들이 보인다. 누구는 뚫린 복부를 부여잡으며 싸우고 있었고, 다른 누구는 외팔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안타까운 한탄만 쏟아졌다. 저들이 이승에 남기고 갈 것이라곤 쇠붙이에 찔려 죽은 그들의 시체와 뼈만 남은 무덤. 그리고 허울뿐인 이름뿐이었다. 그래, 그것이 전부다.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죽으면 우리에게 기다리는 것은 명예도, 영광도 아닌 우리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할 가족들뿐일 텐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잡았다. 그리고 적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선 눈앞에 적을 죽여야만 했으니.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른다. 여태지 들려오던 지휘관의 소리나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귀에 문제가 생긴듯 했다. 추운 겨울임에도 주변이 따스하다.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구멍이 나고, 베이고 잘려나간 흔적들이 가득했다. 검을 잡은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지쳤다는 뜻인가. 숨이 거칠어진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모든 걸 내려놓을 순 없기에 이를 악물고 오른손으로 무기를 들어 찔렀다.  생명이 사그라진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이를 죽였다.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가족을 죽였다. 허나 같잖은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그래, 이게 바로 전쟁이다.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괴물이 되어가는 것. 그것이 곧 전쟁이었다.

 이가 빠드득하고 갈리는 소리와 함께 내가 반대편 손을 들어 올렸다. 전신이 비명을 지른다. 근육들이 버티지 못하고 찢겨나간다.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시야를 방해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싸웠다. 그야, 나는 기사이기 전에 한 가정의 아버지였으니까. 내가 죽으면 도대체 그 누가 내 아이들을 돌봐준단 말인가. 입에서 검은 피가 울컥하며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뿐이다. 생명을 담보로 한 것치곤 양호한 편이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나는 적들을 베어 나아갔다. 위선적인 지휘부는 역겹고, 앞을 가로막는 적들도 이제는 신물이 났으며, 계속해서 목숨을 위협받는 이 전장도 싫었지만, 그래도 나는 전투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왜냐하면 살고 싶었으니까. 살아서 다시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나에겐, 나에겐 그게 전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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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 그리고 흐르는 세월

나는 오래된 벤치 위에 걸터앉았다. 사방에 쌓여있는 낙엽들과 녹색으로 가득 차 있는 한적한 공원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건 당연지사. 후읍, 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확실히 나이가 드니 이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도 고역이었다. 마치 인생이라는 이야기에 죽음이라는 결말이 아른거리는 것 같다고 할까.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온다. 느껴지는 것은 오직 늙음만이었다. 그래, 이게 바로 세월이구나.고개를 돌려 벤치 옆에 있는 나무를 보았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소나무 한 그루. 나는 그 나무를 알았다. 알지, 알고야 말고. 마지막으로 본 적이 너무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할 수도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한눈에 보자마자 알겠더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 나무는 나의 가족이자 친구이며 동반자였으니까. 나무의 모습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니, 사실은 내심 부러웠던 걸지도 몰랐다. 그야 이토록 추레하게 늙은 나와는 다르게 저 나무는 아무런 변함이 없어 보였으니. “뭐, 그래도 보기 좋긴 하구나.” 혼잣말을 되뇌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수많은 기억의 파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다름 아닌 학창 시절의 기억이다.내가 고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였다. 당시에 나는 친구를 사귀는데 소질이 없었다. 맞다, 그랬었지. 거기엔 아마 내 내향적인 성격 또한 한몫했을 거다. 딱히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친구는 없었고, 그렇기에 나 역시도 다른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는 청춘이라 부를 고교 생활 3년을 마땅한 친구 하나 없이 홀로 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힘들었다거나 속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뭐, 어쨌거나. 나는 하교 후 시간이 남아돌 때면 하루도 빠짐없이 공원으로 달려가 벤치를 사수하곤 했다. 그곳에 앉아 독서를 하기도 하고, 가끔은 누워서 낮잠을 자곤 했다. 딱히 문제가 될만한 건 없었다. 비가 오면 옆에 있던 나무가 우산이 되어 주기도 했고, 햇빛이 너무 강할 때면 그늘이 되어 주기도 했다. 내가 유일하게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옆에 있어 주었다. 그곳에 나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아무런 걱정이 없었지, 내게 너무나도 과분한 생활이었어.” 시간이 흘러, 내가 사회에서 청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자 그때부턴 인생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었다. 일찍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멸시당했다. 상사는 나를 보고 일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머저리라고 비난했고, 후배들은 그런 내가 상사에게 까이는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때문에 오랜 시간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을 보냈다. 내가 이러려고 지금껏 살아온 건가, 내 지난 생애는 아무 쓸모가 없나, 하고 자괴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그건 내가 늘

  • 다은047
  • 202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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