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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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개들의 전쟁
개들의 전쟁 정수남 1 소문대로 여름이 되기 전에 ‘주식회사 동영’은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했다. 명단이 발표되자 사원들은 먼저 자신의 이름부터 살폈다. 개 같은 세상···. 명단에 오른 사원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소문은 비단 어제오늘 나돌던 게 아니었다. 음성 공장을 매각한다는 설이 나돌 때부터 떠돌던 소문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재작년부터 재벌급 제지회사와 대형제약회사가 동일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예견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본사 재정부에서 금융을 비롯한 자금 업무를 맡았던 백 차장이 회삿돈을 몰래 빼돌렸다가 발각되어 쇠고랑을 찬 뒤부터는 더 흉흉해졌다. 빼돌린 금액이 처음엔 이십팔억이라고 했으나 올해 들어와서는 어느새 일백억이 넘는다는 소문이었다. 몇 달 전에 시행된 구조조정은 정리해고를 위한 전조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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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책들의 전쟁
[작가가 읽은 책] 책들의 전쟁 김응교(시인) 『창조된 고전』(하루오 시라네 엮음, 소명출판, 2002)이라는 책은, ‘고전’(古典, The classic)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서문에서, 미국의 교육에서 고전을 결정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지적한다. 미국 교육에서 강조하는 고전이란, 첫째는 젠더의 문제로, 여성 문학은 거의 없고, ‘죽은 백인’(dead white meals)만 등장한다. 둘째는 민족성(ethnicity)의 문제로 미국에는 소수민족이 존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럽계 백인 문학’만이 고전으로 대우받는다. 셋째는 글로벌리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대학교 교양이나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유럽 작가는 들어 있어도, 아시아ㆍ아프리카ㆍ중근동ㆍ남미의 작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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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나의 미술유람기⑥] 식민과 전쟁 뒤에 오는 것들
[나의 미술 유람기⑥] 식민(植民)과 전쟁 뒤에 오는 것들 유종인(시인, 미술평론가) 베트남의 중부 휴양도시 다낭(Da Nang)에 들어갔다. 다낭 항(港)은 접안 시설이 취약해 배는 항구 외곽에 머물고 통선을 타고 들어갔다. 화물과 어선이 동시에 정박하는 고적한 항구의 선착장 주변엔 갯메꽃이 바닥을 기어 다니듯 피어 있었다. 배 바닥에 물이 스며드는 통선에서 본 항구의 언덕이 마치 바다를 바라고 선 왜장녀의 가슴처럼 느껴진다. 그 가슴 양편에는 해수관음보살상과 식민 시절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흰색 교회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항구의 한쪽 나무그늘 밑엔 해신(海神)을 모신 작은 전각에서 향 연기가 희미하게 흩어졌다. 다낭은 월남전쟁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열대 바닷가 휴양도시의 분위기가 완연했다. 훼(후에)시(市)의 카이딘 황제릉을 찾아갔다. 간간이 원숭이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