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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의 밥 자리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25
  • 조회수 467

  평소와 다름 없던 평범한 주말을 지세웠다. 배가 아파서 급하게 찾아온 7세 남아, 독감에 걸려 힘들어하는 9세 여아, 고열로 고생하는 65세 할아버지 그리고 두드러기가 온 몸에 퍼진 할머니까지 주말 저녁에만 해도 많은 환자들이 왔다.  이들에게 있어 우리 병원은 천국이다. 특히 영유아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은 소아과를 다녀야 하는데 저녁과 주말에 여는 소아과도 없고 대학 병원도 소아과 의사들이 없으니 그들에게 있어 우리 원은 사막 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 중 하나이다. 내가 24시 병원을 차린 이윤 최소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밤에 눈을 키우는 그런 사람들이 없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던 중 오늘 의사 협회 대표에서 연락이 왔다.  "김백철 원장님 이종시 의협 대표입니다." 처음에는 따뜻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내게 다가왔다. 나는 갑자기 의협에서 연락이 와서 당황을 했지만 최대한 침착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그러자 이종철 의협 대표는 내게 신기한 충격을 주는 말을 했다. 


 그 충격적인 말은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종시는 내게 큰 언행으로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의대 정원을 늘리면 원장님도 돈벌이가 옛날보다 줄어들게 될거에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 그의 말에 전적으로 따를 수 없었다. 그러나 호응은 대충 해줬다. " 그렇긴 하지만 옛날보다 소아과 의사들도 늘어나고 야간에 생기는 병원이 늘어난다면 환자들이 밤을 무서워 하지 않겠군요."그러나 이종시는 나에게 어의 없는 말을 했다 생각했는지 무시하는 말투로 "무슨 원장님이 슈버이처에요? 헌신과 사랑? 요즘 간호사들도 나이팅게일이 없는 것처럼 의사도 슈바이처 없어요." 나는 순간 그 말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없어요. 환자를 깊게 생각하면 그 의료인이 슈바이처고 나이팅게일이지. 우리 원에는 그런 선생님들 많아요." 그러자 그는 더 이상 소리를 키우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의 옹아리는 계속 입에 올렸다. "슈바이처도 나이팅게일도 모두 밥은 먹을 수 있어야죠. 원장님처럼 그렇게 일하면 사직 하는 우리는 뭐가 되요. 최소한 밥 자리는 지켜야죠." 나는 그의 작은 옹아리에 크게 놀랐다. 작았던 옹아리는 산보다 더 큰 파장을 만들었다.  나는 속으로 참을 인을 석번 외쳤다.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그런 내 마음을 이종시는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내게 작지만 강한 목소리를 이어갔다. 결국 난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가 파업하면 아픈 아이들은 어떻게 하죠? 어르신들은, 병자들은 누가 치료하나요?" 이 물음에 이종시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전화가 끊난 후 나는 다른 간호사와 의사들에게 이 일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정은 쌤아,  형주 쌤아 의협에서 연락이 왔는데 사직 동참할거니?"  정은 쌤과 형주 쌤은 무음의 대답을 눈으로 주고 았다. 그렇게 한참 둘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은 쌤이 입을 열었다. "원장님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형주 쌤이 입을 열었다. "저는 노동자의 단체 교섭권을 사용을 해야 겠어요. 전 파업할게요. 거의 지난 20년간 노력의 결과를 제대로 보장 받고 싶어요." 나는 그런 형주 쌤이 미웠지만 미운 표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작은 미소와 함께 그를 보내줬다. "그래, 네 권리니 주장을 해야지. 지난 20년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어. 초등학교 때부터 의대 집중반에 들어가 힘들게 싸웠으니까." 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보내준 것 같았다. 내가 그를 막는 것은 그의 권리를 침해하고 내 주장을 강요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기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은 쌤도 말을 꺼냈다. "슈바이처가 되는 것도 좋지만 저도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나는 그녀 또한 이해를 한다. 나도 고등학생 딸아이가 있는 것처럼 정은 쌤에게는 이제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초5 막내와 중2 첫째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의 선택을 응원한다. 그러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까지 이 병원을 닫으면 많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밤은 이제 다시 무서움의 계절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집에 들어가니 마누라와 딸이 있었다. "여보, 당신은 저거에 참여할거야?" 의사 사직에 대하여 뉴스를 보며 지현이가 말을 했다. 이를 본 수정이는 "아빠도 이번에 푹 쉬면서 미래를 생각하자." 라고 말을 했다. 나는 묵묵히 물을 한잔 마시고 지현이와 수정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내 의견을 목으로 박았다. "난 협회에서 이 일 끝날 때 까지 월, 수만 빼고 쭉 병원에 나갈거야." 그 말을 들은 수정이는 놀라며 말을 했다. "아빠, 밥 자리는 지켜야지. 슈바이처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될 것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생명을 담보로 오는 우리의 미래가 과연 행복할까?" 그러자 수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지현이가 "여보 김쌤과 황쌤은?" 이라 물었다. 나는 목을 저으며 "둘은 참여해."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지현이가 푹 앉으며 내게 옹아리를 계속 했다. 나에 대하여 걱정하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지키고 중요시 생각 하는 것은 가족과 내 명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밤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불편한 밤의 그 누군가가 내 가족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 길을 이어갔다.


 시위가 시작 되고 협회에서는 계속 휴원하라는 전화가 계속 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 시위를 하는 우리 병원 선생들과 의사들 그리고 협회를 미워하지 않는다. 밥 자리도 생존이랑 이어지고 아늑한 밤도 생존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난 누구도 비판하지 않는다. 슈바이처 선생같은 의사가 되려면 모든 이들을 이해하고 생명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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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괴물

엄마가 오늘도 코를 훌쩍인다. 요즘들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비염 다시 생겼나보다."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그런가봐"라 말하고 나를 피해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한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붉어지고 나를 외면한 것도 아마 내 몸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여느 가족의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 좋은 부모, 좋은 시부모, 좋은 조부모였다. 나는 이런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호감이 계속 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자 꼬셨다. 그 당시 엄마도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고 아빠 사업도 확장이 되고 있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 준비하고 빠르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서는 매일이 꽃날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길은 나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근사한 노인이었다. 행복한 가정,돈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할머닌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본인 손에서 놀아나야 속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이사 1주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내게 "이거 입어."라고 옷을 주셨다.그러나 이 옷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이어서 할머니에게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할머닌 "싫음 입지마."라 하시며 옷을 쓰래기통에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할머니!"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버렸다. 이를 본 엄마가 할머니에게 "반품해 올까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직도 거지근성 못 버려가지고 그러니 집안이 그 꼴이지"라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할머니에게 나는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엄마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엄마는 "그만하고 참아. 할머니에게 무슨 말 버릇이야."라고 날 말렸지만 할머닌 나에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라며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그리고 손에 방망이를 드시고 내 다리를 때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해서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를 보고 "그만해요."라 말하고 문을 크게 닫고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이 상화이 재미라도 있는지 막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박수무당이 굿하는 것 같았다. 신이 들어온 것일까? 악귀에 빙의된 것일까? 할아버지는 마냥

  • 송희찬
  • 2024-06-2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감정을 넣는 기계 간호사

오늘도 우리 병원에는 손님이 많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갑고 힘들다는데 아마 코로나 19가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듯 했다. 요즘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단순 우울증도 있지만 딜루전과 가성치메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다들 정신이 약해서야."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연두쌤이 엑팅아웃이 온 환자를 말리고 휴개실에 잠시 들어왔다.. "수쌤 요즘 환자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파 미치겠어요."라고 말을 한다. "잡소리는 일 끝나고 하자 연두쌤아" 나는 잡소리 하는 연두쌤을 뒤로 하고 섹션에 들어가 사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연두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환자를 감정으로 보면 안되는데:::그렇다고 감정 없이 다루는 것도 않되고 참:::"라며 말을했다. 이를 들었는지 보호사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일이 끝나고 퇴근 할라고 옷을 갈아 입고 준비할 때 연두쌤이 휴개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연두쌤 의 말이 신경쓰여서 그녀에게 작게 말을 했다. "연두쌤아 환자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마 , 너만 피곤해져. 나이팅게일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위인이 됬지만 그녀의 좋은 판단력이 동력이 되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거야." 연두쌤은 이런 내가 당황스러운지 땀을 삐죽 흘리며 연두 쌤은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빨리 보내기 바빴다. 역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어린 것 같다.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내가 말한 말을 알게 되겠지. 집에 들어오면 아들놈이 우리 집에 와 공부하고 있다. "민찬아, 엄마 왔어, 밥 먹자." 그러자 민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보고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저렇게 우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무시했다. "수민찬 너가 좋아하는 피자 사 왔어." 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아들의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민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이나 먹어놓고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니 참 이기주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피자 2조각을 접시에 담아서 2층 방 문 앞에 살며시 뒀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니 치즈가 늘어남에 따라 내 빈 자리가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젤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방에 잠을 자러 갔다. 오늘도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 밀려왔다. 내가 전담으로 맞고 있는 민지 씨는 딜루전을 가지고 있는 환자시다. 민지 씨는 나를 본인의 아들을 괴롭힌 천하의 못되고 싸이코 같은 년이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면 계속 손을 빌고 "우리 아들에게 제발 사과 해 주면 않되요? 아이가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는 그 말들을 듣고 흘렸다. 흘리지 않으면 내 정신력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내가 엄마였어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든다. 아이가

  • 송희찬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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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위 소설은 현재 의사 협회의 시위를 주제로 다룬 글이지만 그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고 정치적 색도 피어나지 않아 글틴에 글을 올려요.

    • 2024-02-25 17:19:49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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