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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 아니 아픔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1-30
  • 조회수 287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오늘 아침 테레비전 뉴스에서 메인으로 1020 세대의 보호병동 입원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메인으로 보도했다. 엄마는 이런 뉴스를 보고 "으이그, 나라가 어찌 돌아가려고 어린 아가들이 아파." 라며 중얼거렸다. "이것들 모두 덜 힘들어서 그래 나때는 말이야:::." 아빠는 라때는 말이야로 엄마에게 큰 목소리로 공격했다. "아들, 누구 말이 맞니? 고등학생이면 이정도는 알것 아니니." 엄마는 아빠에게 공격 당한 것이 싫었는지 나에게 눈빛으로 SOS를 쳤다. 하지만 난 엄마의 구조 신호를 무시하고 학교로 재빨리 발을 옮기려고 방에 들어가 책가방을 가지러 갔다. 그런데 중 2짜리 동생놈이 7시 50분인데도 눈을 닫고 있었다.  "야, 정태식 학교 가야지."  나는 동생을 깨웠지만 동생은 일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야! 학교 가야지!" 엄마의 우렁찬 고음에 눈을 부비며 두꺼웠던 입을 열었다. "나, 아파." 나는 그 말을 듣고 태식이 머리에다 손을 올렸다. 그런데 머리는 뜨겁지 않았다. 나는 꾀병을 부리는 동생놈에 배짝을 손으로 쳤다. "일어나. 이 놈아." 태식이가 짜증이 난 것일까?  나에게 성질을 냈다. "형이 알긴 뭐 알아." 나는 그런 태식에게 "형, 간다. 꽤병 작작 부리고 학교나 가." 라고 다정하게 말하고 문 밖을 나섰다.  


 학교를 가는 길 버스 안에서 내 베프 영수를 만났다. 영수와 함께 우울증을 가지고 있어 수시로 학교에 빠지고 있는 경석이도 탔다. 경석이는 지난주에도 머리를 계속 책상에 박아 구급차를 타고 조퇴했었다. 나는 그런 경석이가 너무 싫었다. 본인이 괴롭다는 이유로 본인을 학대하는 사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영수에게 오늘 있었던 뉴스에 대하여 알려주며 경석이를 비꼬는 말을 했다. "야, 요즘 정신병자들이 왜이리 많냐? 우리 반에도 있고. 진짜 그것들 모두 덜 힘들어서 그래." 그러자 이를 듣고 있던 영석이는 내 폰에 나온 뉴스에다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그 내용 역시 나와 비슷했다. '약해 빠졌으니 그렇지 하루에 스쿼트 1000개민 해봐라. 그럼 힘들어서 못배기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낄낄 웃었다. 그런데 그 때 내 눈과 경석이의 눈이 마주쳤다. 나는 나도 몰래 눈을 피했다. 그러자 영수는 "야, 쫄?" 이라 날 놀렸다. 나는 웃으며 영수의 어깨를 쳤다. "똥이 무서워 피하냐, 더러워 피하지."  영수는 내가 이렇게 말해도 날 계속 놀렸다.


 학교에 들어가서 선생님은 오늘도 머리에 상처가 가득있는 경석이를 보더니 입을 툴툴거렸다. "다들 오늘도 열심히 수업 듣고 경석이는 날 따라와."  경석이는 침울한 모습으로 교무실에 갔다. 그 모습이 마치 오늘 집에서 아프다 꾀병 부리는 우리 집 동거인이 생각났다. 그 때 영수와 반 친구들이 막 떠들기 시작했다. "왜 웃어?" 내가 영수에게 물으니 영수는 내게 휴대폰을 건내며 "너도 해봐."라고 말을 했다. 영수의 휴대폰 안에는 경석이를 놀리는 그런 내용들이 많았다.  심지어 대부분의 교내 학부모들까지 이 곳에 있었다. 제외 된 사람은 바로 경석이의 부모님과 경석이였다. 그 곳에는 우리 부모님도 있었다."아픈 아이를 왜 일반 학교에 보내는지 모르겠어요." "이기적인 것 같네요."와 같은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 곳에 있었다. 영수는 계속 "야, 얼른 너도 와서 참여 해 " 라며 날 꼬득였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지 않고 귀찮았다. 이유도 없이 그냥 하기 싫었다. 왜 그럴까. 경석이의 모습에서 우픔

 학교를 끝네고 학원을 가려고 하는데 엄마에게 톡이 와있었다. "태석아, 네 동생 지금 이상해. 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그래서 저놈 기분좀 좋게 해주려고 그런데 외식하자. 그러니 어여 와." 나는 그 톡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경석이와 우리 동생놈이 계속 내 눈알 앞에서 지구처럼 뱅뱅 돌았다. 


 집에 들어와서 나는 바로 책가방을 놓으려 내 방으로 갔다. 그런데 평소라면 암막 커튼이 열려있고 일어나 있어야 할 동생놈이 이불을 덮어 쓰고 자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커튼을 치고 이불을 걷어 찼다. 그리고 동생 등짝에 손을 톡 쳤다.  "야, 꾀병 그만해." 그런데 동생의 침대에서 꾸리꾸릿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침대가 축축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바로 태식이가 내 침대에 오줌을 눴다는 것을. 나는 순간 걱정 되어 태식이를 일으켰다. "야,정태식 괜찮아?" 그리고 태식이가 베고 누웠던 배개가 축축히 적셔진 것을 봤다. 눈물일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태식 무슨 일이야. 말을 해. 어떤 새끼야. 우리 동생 눈에서 눈물 쏙 빠지게 한 놈." 그러자 태식이는 다사 누웠다. "그냥 냅둬." 쥐 죽은듯 작은 소리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내 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빠에게 이 소식을 말했다. 그러나 아빠는 그냥 무시했다. 엄마 또한 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냥 외식을하러 태식이를 강제로 집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이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동생을 밖으로 나오게 했으니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순간 이는 그저 착각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등의 빛깔은 붉은 색 동생은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길을 건넜다.  차들은 막 쌩 쌩 달려오는데 이를 무시하며 길을 건너가고 있었다. 엄빠는 발만 둥둥 거리고 나는 동생을 향해 뛰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큰 트럭이 나와 태식이에게 달려왔다. 엄마, 아빠는 깜짝 놀라 소리만 쳤다. 다행히 트럭 운전사가 우리를 빨리 봐서 사고는 면했지만 동생은 쓰러졌다. '태식아. 정태식." 엄빠는 엠불런스를 불렀고 동생과 나를 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병원에서 동생의 상태를 듣고 의사는 우울증이 공격적으로 나타났다했다. 엄마와 아빠는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애가 뭐가 모잘라서." 엄마는 계속 중얼거렸고 아빠도 상황을 받아드리기 힘든 모습이었다. 물론 나도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동생을 위해서라면 치료를 해야한다. 그래서 엄빠에게 같은 반 경석이의 이야기를 해줬다. 말을 하다보니 경석이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그러나 엄마, 아빠는 "개랑 네 동생이랑 다르잖아." 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엄마, 아빠와 같은 생각을 가지며 경석이를 공격했으니까.


다음날 학교에 가는 길에 오늘도 영수와 경석이를 만났다. 영수는 또 어제 사이트를 보여주며 말을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해. 누구에게나 아픔은 찾아올 수 있잖아."라고 말했다. 영수는 그런 나를 보고 "진지충"이라 놀렸다. 나는 그런 영수를 무시했다. 그리고 경석이의 눈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미안해, 내가 네 기분을 몰라줘서."그러자 경석이가 내게 다가왔다. 영수는 그런 경석이에게 "뭘 봐."라고 시비를 걸었지만 나는 그런 영수에게 "닥쳐."라고 말을하며 씁쓸한 미소를 허공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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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괴물

엄마가 오늘도 코를 훌쩍인다. 요즘들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비염 다시 생겼나보다."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그런가봐"라 말하고 나를 피해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한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붉어지고 나를 외면한 것도 아마 내 몸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여느 가족의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 좋은 부모, 좋은 시부모, 좋은 조부모였다. 나는 이런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호감이 계속 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자 꼬셨다. 그 당시 엄마도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고 아빠 사업도 확장이 되고 있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 준비하고 빠르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서는 매일이 꽃날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길은 나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근사한 노인이었다. 행복한 가정,돈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할머닌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본인 손에서 놀아나야 속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이사 1주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내게 "이거 입어."라고 옷을 주셨다.그러나 이 옷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이어서 할머니에게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할머닌 "싫음 입지마."라 하시며 옷을 쓰래기통에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할머니!"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버렸다. 이를 본 엄마가 할머니에게 "반품해 올까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직도 거지근성 못 버려가지고 그러니 집안이 그 꼴이지"라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할머니에게 나는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엄마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엄마는 "그만하고 참아. 할머니에게 무슨 말 버릇이야."라고 날 말렸지만 할머닌 나에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라며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그리고 손에 방망이를 드시고 내 다리를 때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해서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를 보고 "그만해요."라 말하고 문을 크게 닫고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이 상화이 재미라도 있는지 막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박수무당이 굿하는 것 같았다. 신이 들어온 것일까? 악귀에 빙의된 것일까? 할아버지는 마냥

  • 송희찬
  • 2024-06-2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감정을 넣는 기계 간호사

오늘도 우리 병원에는 손님이 많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갑고 힘들다는데 아마 코로나 19가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듯 했다. 요즘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단순 우울증도 있지만 딜루전과 가성치메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다들 정신이 약해서야."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연두쌤이 엑팅아웃이 온 환자를 말리고 휴개실에 잠시 들어왔다.. "수쌤 요즘 환자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파 미치겠어요."라고 말을 한다. "잡소리는 일 끝나고 하자 연두쌤아" 나는 잡소리 하는 연두쌤을 뒤로 하고 섹션에 들어가 사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연두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환자를 감정으로 보면 안되는데:::그렇다고 감정 없이 다루는 것도 않되고 참:::"라며 말을했다. 이를 들었는지 보호사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일이 끝나고 퇴근 할라고 옷을 갈아 입고 준비할 때 연두쌤이 휴개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연두쌤 의 말이 신경쓰여서 그녀에게 작게 말을 했다. "연두쌤아 환자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마 , 너만 피곤해져. 나이팅게일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위인이 됬지만 그녀의 좋은 판단력이 동력이 되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거야." 연두쌤은 이런 내가 당황스러운지 땀을 삐죽 흘리며 연두 쌤은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빨리 보내기 바빴다. 역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어린 것 같다.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내가 말한 말을 알게 되겠지. 집에 들어오면 아들놈이 우리 집에 와 공부하고 있다. "민찬아, 엄마 왔어, 밥 먹자." 그러자 민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보고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저렇게 우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무시했다. "수민찬 너가 좋아하는 피자 사 왔어." 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아들의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민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이나 먹어놓고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니 참 이기주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피자 2조각을 접시에 담아서 2층 방 문 앞에 살며시 뒀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니 치즈가 늘어남에 따라 내 빈 자리가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젤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방에 잠을 자러 갔다. 오늘도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 밀려왔다. 내가 전담으로 맞고 있는 민지 씨는 딜루전을 가지고 있는 환자시다. 민지 씨는 나를 본인의 아들을 괴롭힌 천하의 못되고 싸이코 같은 년이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면 계속 손을 빌고 "우리 아들에게 제발 사과 해 주면 않되요? 아이가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는 그 말들을 듣고 흘렸다. 흘리지 않으면 내 정신력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내가 엄마였어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든다. 아이가

  • 송희찬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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