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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1-17
  • 조회수 637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모든 슬픔은 잃음에서부터 오는 것 같다. 그 슬픔이 때로는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야." "시간이 약이야."라는 등의 말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무책임한 위로를 전한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나면 "이제는 잊어야지." "언제까지 슬퍼할래? 살 사람은 살아야지." 등의 말로 그 사람을 죽인다. 아빠한테 나는 무책임한 말을 하고 본인을 공격하는 불효녀였을까? 왜 이제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엄마, 아빠 이번주 토요일, 일요일 시간 빼요. 여행가게." 이 말을 부모님께 전하자 엄마는 "우리 딸, 어디 가는데 이리 기대되게 만들어." 라며 신나하는 눈치였다. 반면 아빠는 그닥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옆집 박영감이랑 토요일날 한잔 마시기로 했는데" 아빠는 약간의 짜증 섞인 말로 말을하여 내 마음을 후벼팠다.  아빠는 어릴 때부터 엄청 무뚝뚝했다. 내가 피아노 콩쿨에서 상을 받아오면 엄마는 "우리 딸 너무 장하다." 라며 부담스럽게 칭찬을 했지만 아빠는 "뭔 개집에가 드세. 피아노 당장 접어!"로 나에게 상처를 줬다. 하지만 난 아빠의 진심을 안다.  피아노 콩쿨에서 상 받은 다음날 아빠는 옆 집 박아저씨와 막걸리를 마시며 "우리 딸이 이번에도 대상을 탔어."라고 자랑질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도 아빠의 가시가 있는 말도 속과 반대 되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엔 얼마나 박아저씨에게 자랑을 할까? 라는 귀여운 생각이 머리를 장식한다.


 햇볕이 쨍쨍하니 놀러가기 좋은 날이다. 나는 차를 타고 엄마,아빠를 모시러 갔다. 남편과 7살,8살짜리 아들놈들은 내가 본인들만 두고 여행을 간다고 하니 입술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왔다. 내가 웃는 모습으로 "엄마 다녀올게." 라 말하니 작은 놈이 "엄마, 미워"라 말하고 울기 시작했다. "형석아 울지마. 엄마가 다음번에 돈 많이 벌어서 우리끼리 미국 한번 가자." 그러자 큰 놈의 북어처럼 올라온 입도 찡하게 울던 작은 아이의 울음도 멈췄다. 그리고 손을 흔들며 "엄마 잘 갔다와." 라 소리쳤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들 뜬 마음을 가지며 엄마, 아빠 집으로 갔다. 


 아빠는 이번에도 툴툴거렸다. "아, 박영감이랑 막걸리 마셔야 하는데." "여보, 그냥 재미있게 가요. 술 건강에도 좋지 않은 것을 왜 먹어요." 엄마 아빠의 투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웃는 얼굴을 내밀었다. "김여사 난 괜찮아. 우리 빨리가자."  그러면서 아빠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작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계속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바다로 출발했다. 엄마는 너무 기뻤는지 평소보다 더 많이 말을했다. 아빠는 툴툴거리면서 미소는 지우지 않았다.  아빠도 행복한 것 같다. 아빠가 멀정할 때 아빠의 미소를 보는 것은 신기하고 오랜만인 것 같아 반가웠다. 우리의 여행은 새롭고 즐거울 것 같았다. 우리의 앞날에는 항상 아침이고 저녁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해가 된 기분이고 사람들은 해바라기 되어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다음번에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늘로 끝이났다.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는데 어떤 트럭이 불안 불안하게 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운전을 못하는 초보 운전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저 '피해가겠지'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 차는 점점 속도가 쌔지면서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제발 우리 차만 피해서'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신은 우리의 간절함을 이용하기만 한다. 정착 들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트럭의 빛은 점차 내게 가까워지듯 하더니 나를 지나 우리 엄마, 아빠가 타 있는 뒷자석에 부디쳤다. "안돼!" 그리고 차의 충격의 파도로 의해 나 또한 쓰러졌다.  피 냄새가 진동하고 다급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 눈이 감겼다.


 눈을 떠 보니 아들들과 남편이 내 머리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차가운 느낌의 흰 색 천장이 날 감싸 돌았다. 아이들은 내 모습을 보더니 울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다. "여보,여기 어디야? 무슨 일이야?" 남편은 내가 겪은 일을 아주 생생하게 서술을 해줬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엄만? 아빤?" 그러자 남편이 우울한 목소리로 "장인어른은 아침에 생명의 고비를 넘겼고 장모님은:::"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리에 뭐가 쨍하게 내리쳐진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말을 해!" 그래도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아빠도 일어나고 나까지 퇴원했다. 나는 아빠에게 다가가서 "아빠 미안해. 나 때문에 엄마가." 그러자 아빠가 평소처럼 무뚝뚝한 목소리로 "엄마가 왜? 그 여편네 또 어디 고스톱 노름하러 갔냐?" 나는 아빠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빠, 엄마 죽었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아빠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아직까지 엄마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 하기 힘드니까. 아빠는 나에게 소리치고 어두운 얼굴을 하며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그때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주인공은 박 아저씨였다. 박 아저씨는 나를 꼭 안아줬다. "힘들지? 시간이 지나면 그 눈물도 마르니까 일단 아버지에게 집중해. 아버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이 힘들거야." 그리고 박 아저씨는 아버지의 방에 들어갔다. 그 날 이후 박 아저씨와 그의 부인 옥 여사님도 아버지에게 매일 왔다. 그리고는 아버지에게 말동무를 해주며 위로를 해줬다. 하지만 아버지는 점점 갈수록 어두워졌다. 심지어 나를 엄마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여편네야, 이거 사왔어. 입어 봐." "아빠. 왜 엄마 사이즈의 옷을 사왔어." "당신 벌서 치매 온거야? 나 당신 남편 황경수잖아."  아버지의 이상증새에 나는 점차 미쳐갔다. 시간이 지나면 마르겠다는 말은 아버지에게 부작용만 남긴 약이었나 보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가 내게 "여편네야 오늘도 외박해! 언제까지 나와 헤어질거여!"  말하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 땡겼다. 이를 본 내 아이들은 눈물을 솓았다. 남편은 아빠를 말렸다. 그떄 박 아저씨가 우리 잡 비번을 누르고 들어왔다. "황영감 정신차려. 당신 딸이야." 그러자 아빠는 "내 마누라 어디있어!" 소리쳤다. 그 모습은 마치 마트의 어린 아이인 것 같았다. 내가 충격을 먹고 있으니 옥 여사님이 나와 아이들을 대리고 옥 여사님 집으로 갔다.


 옥 여사님은 내게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마루야 이런 말 하기는 조심스러운데 아버지 정신병원에 가보는 것 어때? 아버지가 널 네 엄마 김 여사로 생각하는 것 같아."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내 앞을 핑 돌았다. 그리고 옥 여사님께 가서 큰 소리로 울었다. 내가 운 이유는 아마 엄마에 대한 상실도 있겠지만 아버지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함유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옥 여사님은 내 눈물을 닦으셨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야. 독하게 마음 먹어. 네가 독해야 너도 살고 네 남편과 아이들도 산다." 나는 그 말을 위로 삼아 눈물을 닦았다.


 며칠 후 아빠를 대리고 정신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아빠는 헤리성 우울증과 망상장애라고 했다. 나는 아빠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해 입원시켰다. 아빠를 입원 시키고 난 후 나는 남편 품에 기대어 크게 울었다. 무뚝뚝했던 아빠가 저렇게 변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싶지 않았다. 난 엄마지만 아직 부모가 필요한 나이인데::: 이제 이 평화로운 세상에는 내가 지지할 수 있는  내 하늘이 없어졌다. 아빠는 물론 좋아질 것이다. 아침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아는데 난 왜 이를 믿지 못할까? 


그때 남편이 내게 한마디를 했다.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지나면 네 아픔도 장인어른의 병세도 모두 좋아질거야." 이 무책임한 이 말 하나가 날 검은 늪으로 빠지게 했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었다. 이제야 아빠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시간이 약이라 하지만 매어지지 않는 슬픔이 있고 모두 좋아질거라 말하지만 점점 아파지는 마음의 비참함이 더 검고 깊은 늪에 빠지게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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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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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8-10
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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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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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본례 이 작품은 버림과 가정 학대에 대하여 쓸 소설이었는데 어쩌다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일어나는 아버지의 변화와 주인공의 변화 그리고 시간이라는 약을 재촉하면서 먹여 생기는 부작용을 쓴 소설이 되었네요.

    • 2024-01-18 12:07:47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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