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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포기 하지 않기 위한 시인의 수필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1-04
  • 조회수 663

 내가 시를 즐겁게 쓴게 언제였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인이 된 지금 난 매일 출판의 고통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분명 나는 어릴적 신동이라 불렸는데 지금은 왜 이 모양일까? 정말 한심하다. 비평가들에게는 매일 똑같은 감사평에 똑같은 비판을 받는데 왜 내 작품은 개선 되지 않을까?  정말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내 비평 글을 보는 것 조차 두렵고 무섭다. 비평 글을 볼 때마다 난 스트레스성 두통인지 모르는 그런 두통으로 병원에서 처방 받은 세토팬정을 먹는다. 그럼 이 고통이 잠시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청소년시기 청소년 문인 사이트였던 윌텐에서 만난 정수를 만나는 날이다. 정수는 내가 요즘 시 쓰는 활동을 멈춰서 무척 당황해 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내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만나길 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내가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모두들 나를 바라보며 내 글에 대하여 비난을 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수가 정말 사정 사정 하여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나간 밖은 진짜 할 말 없이 고요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 보는 것을 빼면 말이다. 투명한 유리를 내 몸에 두르고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길 고양이 한 마리, 까마귀,닭둘기까지 모두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아마 동물원의 원숭이들이 이 기분일 것 같다. 역시 아직 밖에 나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까? 발을 한 걸음, 두 걸음 옮길 수록 점점 내 몸은 떨려가고 내 뇌는 마비가 오고 말았다. 운동 신경과 뇌가 일치 하지 않았다. 머리는 아파오고 나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다시 도망갔다.


 집으로 도망가서 나는 정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정수씨 제가 나가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아프네요. 나중에 만나요." "괜찮아요?희진님? 제가 병문안 갈께요. 어디에 사시죠?" "괜찮아요." 하지만 정수는 내 말을 계속 캐물어 내가 사는 아파트 주소를 알아냈다. 나도 참 알려주기 싫었는데 몸이 귀찮아서 말해주다니::: 나는 진짜 한심하다. 나는 또 세토펜을 먹고 침대에 누워 내 시집 관련 유튜브 평을 보았다. 유튜브 제목에는 {비정상 작가가 쓴 비정상 시집{그래도 나는 사랑하고}에 대한 비평} 라고 써져 있었다. 아마 이 유튜버도 이상한 나를 깔아 내리려고 이런 글을 썼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난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정신병동에 입원을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이유는 나도 몰랐던 나의 어린시절의 상처가 조울증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엄청 엄격했었다. 특히 나와 언니의 차별이 너무 심했다. 내가 시 쓰기로 상을 받아오면 언니는 매일 시샘을 하기 바빴다. "그까지 글 내가 써도 너 보다 좋은 등수를 받겠다."  나는 이 말에 매번 화가 났지만 매번 참았다. 하지만 어느 날은 이 화가 치밀어 올라 엄마에게 화를냈다. "엄마! 내가 잘해서 받은거야." "여자가 그리 쌔면 나중에 결혼 못해. 백호살 낀 년을 둘째로 낳은 내가 죄인이다. 죄인."그리고 엄마는 몽둥이를 들며 나를 막 때렸다.나는 무척 아팠다. 내 몸에도 내 맘에도 멍이 크게 들며 나는 점차 사라져갔다. 그냥 가족의 분위기에 맞춰 행동을 했고 내 독립금을 모았지만 조울증이 찾아와 할 수 없이 내 스스로 정신병동에 입원을 했다.


그 때의 선택을 지금 난 후회하고 있다. 내가 그 때 정신병동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비평가나 개인 방송 크리에이터들에게 의해 조롱을 받지 않았을탠데. 후회와 눈물이 교차하며 내 배게는 오줌을 싼 것 처럼 축축하게 젖어버렸디. 띵 동. 초인종 소리에 나는 무거운 다리를 열고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희진님. 몸은 괜찮아요?" "네, 어서와요." 정수는 매우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상으로 모셨다. 내 뇌는 엄청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한 시라도 빨리 내 구역에서 내보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내 손님이니 그냥 애써 내 뇌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정수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혹시 뭐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것 없어요." 내가 이렇게 건성 건성 대답하면서 손을 떨고 있으니 정수는 내 상태를 알아차린 것 같다.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러운데 혹시 불안하세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순간 놀랐다. 무당인가? 신력이 있는 작가인가? 라 생각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정수는 알아차렸는지 나에게 "병원은 갔어요? 같이 갈까요?"라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부담스럽고 싫었다. "괜찮아요." 그러자 정수는 무언가를 아는 사람처럼 나에게 "우리 같이 병원가요. 저도 병원 가야해요."라 말했다. 나는 이 말에 할 수 없이 큰 마음을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진정으로 불편했다. 길고양이의 움직이는 소리, 트럭의 운동 소리, 아이들의 뛰는 소리가 다 나를 비난하고 지켜보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사실 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겠지만 나에게 그들이 가는 발길은 " 저 사람 정신병 걸렸던 시인 맞지?' 라는 대사가 저절로 딸아오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내 몸이 비틀거렸다. "괜찮아요? " " 아, 괜:::찮아:::요" 그러자 정수는 할 수 없이 그녀를 정신과로 대리고 갔다."정수씨 왜 정신과를?"


 "미안해요. 사실 옛날 윌텐에 올렸던 글을 읽고 이 분 위험하다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약간 사회 불안 장애를 가지고 있으신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마음대로 내 허락 없이 정신병원에 대리고 온 것은 나를 모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슨 당신이 의사라도 되요?"  그 때 어떤 남자가 왔던 이 정신과의 의사였다. "저는 여기 정수의 오빠이자 이 병원의 원장인 정진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제 돈은 들어가지 않을거죠?" 라 말했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내 이야기를 듣고 사회 불안 장애 진단을 내렸다. 나는 그 것에 대하여 분노 했지만 어차피 내가 약을 먹지 않으면 내가 사회 불안 장애가 아니라고 증명 할 수 있으니 안먹으려고 했다. 그러자 정수가 내게 "우리 매일 만나서 이야기 하자. 약을 먹으면 이게 효과적일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렀다. "난 약을 먹고 싶지 않아. 난 사회 불안 장애가 아니야." 그러자 의사가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약을 먹어야 금방 괜찮아져요. 그리고 우리 영상 하나 만들어요." 그 영상은 바로 악플에 대하여 엄증 대응을 한다는 영상이었다. 이 영사의 효능은 쓸대 없고 이유 없는 그런 사람들을 줄여주고 그에 따른 평을 하던 평론가도 없어질 것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에 잠시라도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용기내어 해 보겠다고 했다.


하루, 하루 내 이야기를 유튜브 영상으로 풀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내 병을 인정하고 대중에게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마음은 떨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더 강하게 느껴졌지만 마음은 편해졌다.이 것을 하루, 하루쌓아가니 나를 욕하던 영상들이 서서히 죽었고 나를 정신병자라 비난했던 평론가들은 죽고 내 작품에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줄 평론가들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컴퓨터를 켜서 시를 작성해 보기로 했다. 그 것이 오늘의 나의 다짐이다. 다시 출판사에 연락을 해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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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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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8-10
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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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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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이번 소설은 제 이야기의 조금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감상글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관련을 보셨거나 제 수필을 보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저는 틱 기침 증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11월 저는 틱을 조롱하는 개인 방송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때를 기억하면 아직도 힘들지만 글로 승화 시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요즘 소설에 잠깐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소설에 자신과 확신이 없을 뿐더러 내가 썼던 이야기가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비슷한 내용이 겹칠 수 있다는 생각이 제 머리를 지배하여 다른 글티너 분들께 조언을 구해본 결과 제 이야기를 써 보기로 했습니다. 지금의 슬럼프를 빨리 이겨내고 좋은 글로 오겠습니다

    • 2024-01-11 05:18:00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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