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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는 비명 -영화 ‘키리에의 노래’를 보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1-30
  • 조회수 553

*노래와 함께 글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OST 반복 재생 횟수와 함께 자라났다한 뼘을 늘릴 때마다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들그 풍경으로부터 다가오는 놀라움이나 슬픔 또는 어떤 분노들십 대 중반의 나는 사소한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그 사소한 것들을 과하게 확장 시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그러한 피곤한 사고방식 속에서 거의 2또는 3주에 한 번은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보았다나의 등굣길과 하굣길에는 영화의 OST가 한가득 묻어있는 건더 말할 것도 없다이후에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여러 작품을 접했으나 역시 릴리 슈슈의 모든 것만큼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영화는 없었다그건 예민하고 덜 여문 마음 위로 흐르는 음악보다도 아름다운 건적어도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으며 십 대의 마지막 페이지가을에 들어선 때였다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이 개봉한다고그 작품의 제목은바로 키리에의 노래라고이후 조금씩 영화의 정보를 마주하며이건 나의 이십 대를 책임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소년 소녀들보다 조금 성장한청년들의 이야기가 노래와 함께 전개될 때나는 과연 무슨 감상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다른 영화를 보느라 키리에의 노래를 놓아주어야 했다그렇지만 일반 극장 상영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수학여행 일정 도중 받아본 예매 시작 소식에 급하게 자리를 잡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동일본 지진으로 인하여 약혼자인 키리에를 잃은 나츠히코’, 그리고 키리에의 동생이자 행방불명된 언니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루카’, 그리고 십 대의 자신을 버린 채 변장을 한 채 돌아다니는 루카의 친구 잇코’. 지진 이후 뿔뿔히 흩어졌던 세 사람이 우연히 도쿄에서 다시 만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나는 이러한 줄거리가 이와이 슌지 감독답다고 생각하였는데앞서 즐겨본 릴리 슈슈의 모든 것부터 대개 그의 작품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별것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몇 줄 되지 않는 분량으로 요약할 수 있다그럼에도 내가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는아마 변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사실 대다수의 사랑이나 슬픔청춘의 방황유년의 막막함과 같은 소재들은 이미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사용되었고독창적인 서사를 적어내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이와이 감독은 하나의 주제를 물어 채고자신의 방법대로 보통 아날로그적인 촬영법을 더하여 영상미를 살리는 방식으로끈질기게 주제를 변주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도 주인공이 겪는 폭력에 집중하면서그 위로 환하게 들어오는 조명과 느슨한 선율과 아름다운 목소리의 OST를 끼얹었다. ‘키리에의 노래’ 또한 이와 비슷하다언니와 고향을 잃고 그 충격으로 목소리까지 잃은 루카가 키리에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를 때만 목소리가 나오는 것그리고 이를 응원하는 잇코와 나츠히코에도 각각의 아픔이 있는 것감독은 이 개인의 아픔을 조명하는 동시에 군데군데 루카가 버스킹을 하는 장면을 넣어 커버 곡이나 OST를 삽입한다더불어 광각렌즈 등을 사용하여 의도적인 왜곡으로 독특한 앵글을 자아냈다감독은 한국에 방문하여 이에 대해 일부러 아날로그 카메라 렌즈 느낌을 살리려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렇듯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확연히 다른 점도 있다먼저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심리적 재난 영화다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무척이나 한적하다조용한 시골 마을의 학교도입부에서 보여주듯이 고요한 바람만이 풀과 주인공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가는 들판그리고 이와 대비되는 주인공과 그 주변 아이들의 심리그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어둡다서로를 괴롭히고나의 가수이자 우상인 릴리 슈슈가 내뿜는 기운 에테르가 더럽혀졌다 생각하고끝내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반대로 키리에의 노래는 전형적인 일반 재난 영화이다동일본 대지진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사랑과 사람을 잃고 절망하는 나날들을 배경으로 한다그러나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는 다르게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이겨내려 한다단순히 릴리 슈슈의 노래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키리에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루카는 자신의 목소리를 쥐어 짜냄으로써 노래를 부르고그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삶의 이유를 찾아간다. CD 플레이어로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여 들으며다음 신보 소식을 기다리기만 했던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주인공들과는 다르다루카는 직접 노래한다그리고 직접 사람들 앞에 서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선보인다영화의 한 줄 평에 루카의 목소리가 비명과 같이 들린다며정신이 없다는 말과 함께 낮은 별점을 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그의 평을 존중하지만나는 오히려 루카의 노래가 비명 같이’ 다가오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언니를 포함한 가족을 잃고 홀로 도쿄까지 오게 된 루카의 지난날들루카는 고목처럼 굵고 단단하게시간의 나이테를 겹겹이 입고 있을 것이다그러나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며그 부분은 아직은 메우지 못하고 드러내고 다닐지도 모른다그런 루카가 망설임 끝에 부른 노래는가히 나무의 상처 끝에서 새어 나오는 진액과 같다날카로운 물체에 베인 손가락으로부터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노래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루카의 매니저를 자처하는 잇코 또한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잠시 잠적하지만다시 루카의 곁으로 돌아와 함께 웃고 울겠다고 맹세한다마지막으로 루카를 찾아낸 나츠히코 또한 약혼자를 잃었다는 슬픔을 이겨내고사랑했던 이의 동생을 돌보겠다는 마음으로 희망을 얻는다두 영화는 모두 주인공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재난 영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구체적인 종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이 취하고 있는 태도 또한 다르다나는 이 점에서 키리에의 노래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아래로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끼기보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자주 지니기 때문이다나의 이십 대는 십 대와는 조금 다른 형식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리하여 나는 심리적 재난을 지나왔고이로부터 졸업했으며 어쩌면 다른 환경적인 재난을 만날 수 있겠지만기꺼이 키리에의 노래’ 속 주인공들처럼 이겨내겠다 다짐하였다.

 

그러나 아쉬운 점 또한 존재하였다이 영화가 파편적이라고 느껴진 것이다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감독판보다 1시간 적은 분량으로 개봉한 탓일까하고 싶은 이야기는 충분히 전달 되지만등장인물 개인의 서사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선보이고 싶었던 면모가 뒤섞이며 조화롭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이 불협화음’ 또한 루카의 노래 같기도 해서 어울린다고 생각했지만아무리 되새겨보아도 이것은 감독의 역량 부족이라는 감상을 지울 수 없었다이와이 감독은 보통 소설로부터 영화를 만들고내가 이 글에서 다룬 두 영화 또한 감독과 다른 이가 함께 집필한 소설로부터 출발했다그리하여 담고 싶었던 장면들이 너무 많았을지도 모른다방대하고 섬세한 문장들을 두 시간 내로 담기에는 어려웠던 건 아닐까싶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비교하자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주제인 학교 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씬은 그렇게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대신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가 드러나는 롱 쇼트와 등장인물 간의 사이를 유추할 수 있는 미디엄 쇼트가 자주 등장한다하지만 키리에의 노래에서는 사람들이 잘 아는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는 그날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고 개인과 그 개인 간의 관계는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강했다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영화이거나 아예 동일본 대지진을 기억하고자 제작된 영화였으면상관이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이와이 감독은 평소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를 카메라로써 탁월하게 담아내고그 묘사들을 마주하며 우리는 실컷 공감하며 스스로를 쓰다듬는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는 방황하는 학생들의 결과 중 하나로 서로를 돌아가며 괴롭혀 모두를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드는, 학교 폭력이 발생하였음을 알 수 있어 자연스러운 사건의 발생이라고 느낄 수 있다그러나 키리에의 노래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상처 입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동일본 대지진을 가져온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인과관계의 부족과 내면 묘사의 생략으로이번 영화에서는 나 자신을 쓰다듬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관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내내 키리에의 명의로 발매된 루카의 노래를 찾아 들었고앞으로 몇 번이고 이 앨범을 반복 재생하며 수많은 계절들을 보낼 것을 예감하게 되었다십 대의 끝자락에 접어들어 더는 한 뼘씩 자라나지는 않겠지만여전히 나의 마음은 자라날 구석이 있다고 믿는다나는 키리에의 노래를 보며 적지 않은 실망을 했지만그럼에도 나 자신이 왜 실망하였는지 기록할 수 있어 기쁘다그리고 이와이 감독이 여전히 여러 청춘들에 대해 말하길 멈추지 않는 것 같아 즐겁기도 했다이십 대의 겨울, ‘릴리 슈슈의 모든 것과 키리에의 노래’, 그리고 또 다른 작품을 나란히 놓고 더욱 자라난 마음으로 이와이 감독의 영화적 세계관과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그날이 올 때까지나는 키리에이자 루카가 뚝뚝 흘리며 비명 대신 부르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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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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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28
수중에서 기록하는, 사랑 그리고 슬픔의 일지 –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퇴고)

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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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영화 '괴물'에 대해서는 정말 나의 작은 감각 촉수까지 살려 글로써 새기고 싶다! 생각했는데요, 이 글은 그냥... 편안하게, 막힘 없이 느낀 대로 썼습니다. (두 글 모두 각자의 이유로 애착이 가지만요!) 물론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잠시 고민하는 지점은 있었긴 해요. 늘 고민하는, 추상적이지도 피상적이지도 않은 상황에 적절한 단어를 알맞는 문장에 넣는 고민을 했어요. 문득 가지고 있는 단어들로만은 부족하다고도 느껴서... 이런 점은 비문학이나 평론집을 많이 읽으면 되는 부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구요. 아무튼, 드디어 11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날이 추운데 글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세요 >.< 추신)!! 요즘 전에 쓴 글들을 퇴고하고 있는데, 현 멘토님께 처음 보여드린 진은영 시집 감상글을 읽다 보니... 부족한 점과 보완할 점이 많이 보여서 정말 놀랐어요! 그때는 조금 어렵게 느껴졌던 멘토님의 댓글도 이제 이해가 되어서 참고해 수정했어요...ㅎㅎ 그런 제 성장이 너무나고 기쁘게 느껴졌고, 늘 곁에서 도움 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 싶었여요. 저는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라 집에서 머물 때가 많고, 그러다보니 좋은 어른들을 만날 기회도 거의 없어 제 글은 늘 저 홀로 보거나 몇 없는 문우들 (대개 소설을 쓰는)에게 보여줘요. 그래서 멘토님의 존재가 제겐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요. 감사합니다!

    • 2023-11-30 17:56:36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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