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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담아낼 수 있다면, 분명 마음의 모양이겠지 - 불교 사상을 중심으로 안미옥의 ‘온’ 읽기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11-08
  • 조회수 618

작고 부드러운 마음들을 담기에는 어떤 그릇이 제격일까마음에도 질감이 있다고 해볼까그렇다면 너무나도 보드랍고 섬세한 입자들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타인은 물론나의 두 손으로도 쉽게 만질 수 없는잘 놓쳐버리고 흘러 내려가는마음들그러니까 일상적인 언어로는 좀처럼 표현할 수 없는그런 마음들조금은 추상적이고 조금은 아리송하게 다가오지만분명히 미세한 마음들은 우리 가슴에 있다나는 그런 마음을 담기 위해 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오직 시만이 우리의 여린 마음을 담아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그러나 우리는쉽게 털어놓지 못할 마음을 시라는 그릇 속에 찬찬히 털어낼 수 있다함축과 비약이라는 찰흙으로 구워진 그릇그 위에 이미지와 리듬이라는 유약을 입힌 그릇그것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가끔은 추상적이고가끔은 또 아리송하게 다가오는시는 마음과 물성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다시는 비유와 묘사로써 비약이라는 질감을 빚어낸다이 질감 위에서 마음은마음대로 자신의 무른 면을 숨길 수 있다또한 자신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함축된 행간 사이에서 마음은가장 선연하게 반짝일 수 있다그것이 내가 시에 대해 느끼는 바이자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그릇도 여러 가지 모양이 존재한다이를테면 동화 여우와 두루미에 나온 것처럼나의 입에 가져다 대기에는 너무 좁고 당신의 입가까지 가닿기에는 너무 납작한 그릇도 있을 것이다시 또한 그러하다그리고 나는 그 그릇들을 나쁜 그릇이라 칭하진 않을 테다저마다 그릇을 빚어내는 장인시인들의 손길이 깃든 소중한 그릇이니다만 사람마다 더 와닿는 그릇이 있을 뿐이다그리고 대개 사람들에게 더욱 잘 맞는 그릇이 있을 것이라 믿기도 한다그 짙은 믿음은안미옥 시인의 시를 읽음으로써 도착한 것이다안미옥 시인의 시집 중 특히나 을 읽으며 말이다.

안미옥 시인의 은 그의 첫 번째 시집으로간결한 시집의 제목이 눈에 띈다마치 그릇 위에서어떤 모습은 드러내고 어떤 모습은 감추어 가며 당신들에게 다가가겠다는 느낌으로더불어 표지의 알록달록한 무늬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서로 겹쳐가며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는 것이 마치 사람들의 마음이 충돌하는 지점 같기도 하다시집 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것이다바로 유독 마음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잦다는 것시집에 수록된 시들 중 총 20여 의 시에서 마음이 한 번 이상은 쓰이고 있다자신 있게 마음을 내보인 시인의 시는 어떨까실체가 없으며 끝도 알 수 없는 마음은세계나 우주와 같이 시를 쓸 때 꺼려지기도 하는 단어이다아름답지만자칫하면 나의 시 또한 실체가 없어지며 끝도 없어지는흐릿한 시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안미옥 시인은 시집 표지의 선명한 색들처럼생생하면서도 간결한 마음의 풍경을 그려낸다실체가 없는 마음쉽게 흘러가 버릴지도 모르는 작은 마음들을안미옥 시인은 자신만의 그릇에 담아내어 마치 손에 잡힐 것처럼 만들어내는 일에 뛰어나다.

 

안미옥 시인의 시는구체적이지는 않다확실한 시적 서사를 제시하거나 친절하게 화자의 상황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대신적절히 생략된 문장과 연과 연 사이의 여백 속에서 독자들이 화자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도록 한다나는 이 산뜻하고도 우리에게 잘 와닿는 불친절함이마치 불교의 유식 사상을 떠올리게끔 한다 느꼈다유식 사상은 대승 불교의 핵심 사상으로오직 의식뿐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현상 세계는 의식의 장난에 불과하고의식을 떠나 객관적 실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이다이 의식은 곧 마음이며유식 사상을 믿는 유가행파의 주요 관심은 객관적 세상의 존재 여부에 있지 않다바로 우리의 마음에 있다유식 사상가들은 현상 세계의 일보다 인간의 오감에 따른 의식과 그 내면의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강조한다유식 사상을 경유하여 표제작 을 살펴볼까우선 안미옥 시인의 시는 고백의 형태를 빌려 전개된다독백보다는 조금 더 자신을 위한솔직하면서도 속삭이는 듯한 문장들은 어쩐지 절간에서 두 눈을 감고 향냄새와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떠올리게끔 한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없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다는 고백과그리고 이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시의 1연에서 알 수 있다날지 못하는 새의 이름녹슨 나사깨진 창문에 비치는 얼굴을 등장으로써새는 극히 일부 종을 제외하면 날 수 있고녹슨 나사와 깨진 창문에는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없다이렇듯 혼란스러운 현상 세계는결국 의식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화자는 없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그러므로 세계는 없는 것들로만 가득한 어지러운 세계가 된 것일 테다화자는 계속해서 창밖을 보지 않기로 했다거나, ‘나는 하류로 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무너지고 있는 집과 죽은 비둘기떼’, ‘뒤집힌 우산들에 대해 말한다그러나 시는 후반부에 가서 전복된다화자는 나는 이제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수미상관을 맺는 고백을 한다이후 화자의 세계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소문들만 들려오며 없는 것들만 보이던 세계로부터화자는 끊어지지 않는 볕의 세계로 간다화자는 큰비를 맞을 준비를 하며아마도 자신을 괴롭게 하며 멈추게 있게 하던 원인인 소문에서 가장 먼 곳으로’ 가겠다 한다마침내 화자는 자신이 원하던 하류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이렇듯 은 화자의 마음먹은 상태를 알리는 고백에 따라 시적 분위기와 세계가 확연하게 바뀐다우리의 삶도 아마 그러하지 않을까유식 사상 또한 그렇다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불교의 핵심 사상인 제법무아 사상처럼정해진 ’, 정해진 은 없다세계는 고정적이지 않다오직 마음에 의해 유동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이렇듯 안미옥 시인의 그릇은다소 불교적으로 읽힐 수 있다세계는 마음을 중심으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이 화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니까다른 시를 살펴볼까.

 

 

톱니

 

어린 나는

무너지는 마음 안에 있었다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새가 울면

또다른 새가 울었다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상한 마음도 다시 꺼내볼 수 있을까

도마 위에 방치된 생선이나

상온에 오래 놔둔 두부처럼

상한 것은 따뜻하고

상한 것은 부드럽게 부서진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감당할 수 없는 일로 남아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빛이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을 찢으며 들어간다

어린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

 

손바닥이 열려

흐른다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덜 자란 나무는 따뜻할 수 있다

한번 상하고 나면 다음은 쉬웠다

 

 

안미옥 시인의 시는 마음을 담아내기 탁월한 그릇인 이유는바로 이 시 톱니에 있다돌아가는 톱니를 보고 무너지는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을 시작한다그 다음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도마 위에 방치된 생선이나상온에 오래 놔둔 두부처럼상한 것은 따뜻하고상한 것은 부드럽게 부서진다는 문장들톱니로부터 가깝지 않아 독특하면서도일상적인 사물의 물성을 빌려와 무너지는 마음을 나타낸다이렇게 잘 담긴 안미옥 시인의 그릇 속 마음에서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바로 앞서 언급한 불교의 제법무아 사상이다제법무아는 한 마디로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의미이다여기서 라는 것은 나라는 개인뿐 아니라모든 인간을 넘어서 일체 모든 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세상에는 고정된 된 것은 없다그렇다면 이 시의 첫 문장인 ‘ 어린 나는무너지는 마음 안에 있었다가 새롭게 다가온다어린 나는나라는 존재는 분명 살아 움직이는 확연한 존재이지만 항상성을 지니지 않고 언제나 변하는 존재이다.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무너지고 무너지면서’ 어린 나는 변화하였다그리고 화자는 무너지는즉 변화하는 것에 대해,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이후의 시는 묘사에서 변주가 있을 뿐 시적 서사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서는 큰 변주가 없는데이는 화자가 자라나며 어느새 깨달은 것을 나열하기 때문인 듯하다대표적인 구절,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우리는우리의 마음은 고정적인 실체를 가지지 않으므로 쉽게 주저’ 앉는다어느 날이면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한 이유는마음이 덜컥하며 주저앉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정된 것이 없어 떠나버린 것들바뀌어 버린 것들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일은감당할 수 없는 일로 남기 때문에하지만 화자는 그런 절망을 맛보면서도 ‘ 아침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무엇을바로 마음이자 그로부터 비롯된 세계가이 세상의 모든 일들사건들과 감정들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마음을 만들어내니까부지런히 작동하는 마음이 있으니 아침은 분명 온다고 믿는 것이다.

 

한편 이 시집 에는 드물게 마음이 들어가지 않는 시들이 존재한다그러나 마음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을 뿐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며마음을 그려내며 계속해서 노래한다아래의 시를 볼까.

 

 

선잠

 

나아졌다고 생각했다달라진 것이 있다고어색하고 웃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의자에겐 유독 닳는 다리가 있다나사가 다 빠져버리는 날이 올 것이다나쁘다고 말하면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어 있듯이날은 흐리고.

 

잠 속에 있었다놀이터에는 그네만 있다빈 화분들이 골목길에 나와 있다하나의 출구를 닫아야 했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도날아가지 못한 잎은 남는다나쁜 일을 말하면 더 나쁜 일이 될 것 같아말을 아끼는 사람이 될 때불 꺼진 전등이 머리 위에 있고.

 

감은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 있다감은 눈을 떠도 깨어나지 못했다두 발이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간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감춘 것이 없는데옆얼굴을 무는 개잘린 그림자를 보게 되는 날이 많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깨어 있는 사람이 없었다햇빛이 이곳에 고여 있다.

 

 

안미옥 시인의 시는 대개 제목이 간결하면서도 조금 엉뚱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이는 앞서 말한 함축과 비유가 섞여 들어갔기 때문이다. a부터 b, c까지 말하지 않고 a에서부터 대략 h를 말하는 것그 행간 사이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독자들은 불교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따라 수행하듯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게 된다이번 시는 어떨까선잠선잠이란 깊이 들지 못하거나 흡족하게 이루지 못한 잠을 사전적 의미로 지니고 있다깊숙한 곳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겉도는 이미지숨 가쁜 리듬과 호흡그런 유약이 발라진 채 구워진 그릇이것이 선잠」 시편이다화자는 잠 속에서’, ‘감은 눈을 떠도 깨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이도 저도 아닌 채 겉도는 상황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이자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존재중생이다정말 잠에 취해 비몽사몽한 것인지아니면 말이 그렇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이 어린 중생은 잠에 취한 상황을 가져와 혼란스러운 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한다이 세계는 역시 유식 사상이 아래의 세계로, ‘나쁘다고 말하면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는 세계다. ‘나쁜 일을 말하면 더 나쁜 일이 될 것 같.

정해진 실체가 없어 계속해서 흐르는 세계그리고 마음이 마음을 지닌 화자는 감은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 있다’ 느낀다그렇게 화자는 부정적인 마음을 지니고 부정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이때 감춘 것 없는 화자의 옆얼굴을 무는 개에 집중해보자내가 화를 냈을 때 옆얼굴을 무는 개이 개는 단순히 나의 화난 몸짓에 놀란 것일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를 넘어 불교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면불교에서 주장하는 연기설로써 읽어낼 수 있다면연기설은 모든 현상과 사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의존관계를 벗어날 수 없어생성과 소멸은 항상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이 세계의 모든 마음들은유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내가 분노하면 저 개도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안미옥 시인의 시편에서 우리는마음이 세계를 만들어내며 그 세계는 유동적이라는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만들어진 세계는 다른 이들의 것과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마음이 되는지 아는 사람은 없는 세계에서우리는 살아남을’ 마음을 먹고 실체가 없는 세계 속에서 머뭇거리고 머뭇거리는 일을 반복한다. (네가 태어나기 전에) ‘끔찍하구나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시집)라고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싶’(파고)은 마음안미옥 시인은 부드럽게 흐르며정해지지 않고 물처럼 다가오는 오늘이 오는 시간을 신기해한다. (밤과 낮그리고 계속해서 시를 써나간다. ‘뭉개지면서 우리는 자라고 있다’(매일의 양파)면서쉽게 물러지고 뭉개질 수 있는 마음들을 시라는 그릇에 담아낸다그리고 그 그릇을 들어 기꺼이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으므로. (밤과 낮



*참고 자료- 아래 자료를 참고 및 근거로 하여 작성함.

1. 씨마스 (박찬구 외),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

2. 불교 신문, '연기법'이란 무엇인가

3.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 '불교'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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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28
수중에서 기록하는, 사랑 그리고 슬픔의 일지 –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퇴고)

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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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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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9 21:13: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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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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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09 21:15:01
      김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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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안녕하세요, 많은 일을 겪으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중이에요. 저는 멘토님의 코멘트를 늘 몇 번이고 읽는데요. 그중에서도 제가 생각한 단어를, 왜 그곳에 어떤 이유로 사용했는지 파고 들어가는 물음을 던지시는 코멘트가 인상 깊었어요. 좀 더 내가 생각한 것을 드러내야겠구나,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아직은 나만의 사유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건 어려워서요. 오늘은 불교 사상을 빌려와 제가 하고 싶은 말에 구체성을 더해봤어요. 저는 원래 어떤 작품을 접하고 그때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감상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멘토님의 마음이 담긴 피드백을 읽다 보니 욕심이 생겨 요즘엔 '잘' 쓰고 싶기도 해요. 제게 본업이자 본진인 시를 쓸 때...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은 괴롭게만 다가왔는데, 취미의 일부인 비평감상글은 잘 쓰려 하는 시도까지 즐겁게 다가오더라구요. 제게 비평감상글의 매력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늘 고마운 마음입니다.

    • 2023-11-09 00:04:20
    모모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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