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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는 창문마다 감상이 밀려온다 - 다양한 작품을 경유하여 읽는 '여름의 빌라'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3-01-19
  • 조회수 1,350

 

‘인간을 잘 아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밝힌 백수린의 소설은 참으로 감각적이다. 단편 소설집 <여름의 빌라>를 읽다 보면 인상주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드뷔시나 라벨의 음악 같은, 안온음계가 가득하여 상대적으로 음정의 권력 관계가 뚜렷하지 않아 불안정하고 목적지가 없는 느낌을 주는 클래식 음악 말이다.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명확한 결론을 드러내거나 교훈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 읽은 뒤 '그래서 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만 해도 그렇다. 주인공은 마지막 페이지에 나오는 문장과 같이 이야기의 끝에 도달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다. 그저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 소설의 내용이 되는 편지를 썼다 말한다.

 

그러나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때로는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일까, <여름의 빌라>를 펼쳐 들게 된다. 인상주의 음악 또한 불안정한 느낌을 주어도 특유의 아름다움과 음계 덕분에 많은 이들이 찾아 듣는 것처럼 말이다.  더불어 주인공의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 뚜렷한 서사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므로, 백수린의 소설은 잘 직조된 스웨터와 같기도 하다. 감정이란 가로줄과 사건이란 세로줄을 엮어 촘촘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그 사이에서 만나게 된 이야기들은 다른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하고, 나는 이에 대하여 말하고 싶다.

 

그의 소설을 '여성 서사'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을 듯하다. 한 편의 소설을 제외한 모든 단편의 주인공이 여성이다. 더불어 그 여성 옆에 주인공을 자극하는 여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여길 수 있겠다. 나는 무수한 여성들 간의 관계 중, '피로 이어진 관계'에 대하여 집중했다. 그리하여 떠올린 것이 임승유의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이다.

 

표제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을 비롯한 시집 속의 시에서는, 여성의 욕망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눈치 보지 않고 한 여성 속에 있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여름의 빌라> 속 단편 <흑설탕 캔디>와 <아직 집에는 가지 않을래요>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뜨거운 마음은 할머니와 손녀 관계에서, 엄마와 아이 관계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남에 더욱 시집을 떠올리게 되었다. 시의 구절 '아이와/아이와/아이를'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피의 관계를  만날 수 있고, 아이를 낳으며 새로워지는 동시에 더 많은 사랑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이 소설집과 겹쳐 보인다.

 

또 다른 단편 <아주 잠깐 동안에>의 주인공은 사랑하는 아내를 껴안고 있어도 지독한 고독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 고독감은 어디서부터 걸어오는 것일까? 덩달아 주인공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은 '밤'처럼 넓고 긴데, 주인공은 이것과 어떻게 싸워나갈까? 이에 대한 답을 찾자면, 임신한 아내와 태어난 아이들의 이야기가 해답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두 사람을 보면 고독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태어나고, 이를 탄생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무마시킨다고. 그래서 임승유의 시집이 떠오르는 것이라고.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조혜은의 근작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이다. 공교롭게도 이 시집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집 속 작품 <폭설> 또한 눈을 품고 있는 제목이다. <폭설>의 주인공인 딸은 한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자랐다. 사랑해 마지않던 엄마는 그저 사랑하는 이가 생겼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외국으로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 주인공은 미국에 사는 엄마를 만나 한바탕 비난의 말을 퍼붓는다. 폭설 속에서 말이다. 다시 엄마의 나이가 된 주인공은 그제야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엄마가 사랑한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처음 마주한 날을 떠올리며 ‘사랑에 빠져 버린 엄마의 얼굴이 실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서술한다.

시집 <눈 내리는 체육관>에는 같은 제목의 시가 여러 편 존재한다. 각각의 시마다 부제 또한 존재하는데, 이는 유치원부터 엄마의 일기까지 다양하다. 시 속에서 화자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인 채 자신을 엄마라 부는 아이를 새삼스레 바라본다. <폭설> 속 엄마는 ‘전교에 그녀 엄마 하나’답게, 그러니 흔한 여성답지 않게 이 제도를 부수고 나갔음이 대조된다. 동시에 소설과 시 속에는 집안일을 하고 자신의 몸을 깎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여성 속에 욕망이 존재함을 조명하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두 작품 모두 ‘엄마’라는 이름이 붙어버린 여성이 겪는 일과 그 진창을 견디려고 하는 노력이 펼쳐놓는 초반부가 존재한다. 아이가 ‘엄마’가 되고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되는 대물림을 신기하게도 감정처럼 휘몰아치는 눈 속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은 작년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다. 해당 드라마의 12회 양쯔강 돌고래는 여성의 부당해고를 다룬 회차이다. 사내 부부 중 아내 직원에게 희망퇴직을 강요한 보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이 된 내용이다. 유사하게, 힘든 상황에서 남편 대신 '포기'를 선택해야 했던 여성이 소설집에도 등장한다. 표제작 <여름의 빌라>에서는 주인공 주아가 남편의 유학 때문에 아내가 학업이나 일을 그만두는 건, 한국에서 평범한 일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다른 등장인물 한스는 주아에게 너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드라마의 맥락도 그러하다. 주인공 변호사와 보험사의 반대편에는 여성 인권 변호사 류가 존재한다. 결국,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 주지만 주인공은 친구에게 류가 양쯔강 돌고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개체 수를 찾아보기 아주 힘든 종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여전히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또는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러 부조리를 겪게 된다. 두 창작물은 이 사실을 현실적으로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고, 그리고 읽고 있을 여성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단편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대개 조심스럽고, 소심하다. 이것은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포근한 햇살과 같다. 그들은 모두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지르는 경계선 앞에서 망설이기 때문에 그러한 성정을 지니게 된 것 아닐까. 그러나 망설이는 것에 멈추지 않고 온몸으로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길 애쓰며 자신만의 세계를 천천히 확장하는 것이 배울 만한 부분이다. 나의 욕망, 타인에 관한 몰이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처럼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주변에 가득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나의 따스한 마음을 무너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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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30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피투성 또는 피투성이 존재들을 위하여 – 정재율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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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28
수중에서 기록하는, 사랑 그리고 슬픔의 일지 –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퇴고)

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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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백수린 작가의 작품을 안온음계가 가득한 음악, 인상주의로 묘사해주신 점이 참 적절하면서도 멋진 시적 비유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집과 이어지는 시집, 드라마 등을 함께 언급해주셨는데, 여성 노동의 측면, 어머니의 감정, 생명에 대한 관심사 등을 공통점로 찾으신 점에서 다양한 장르의 서사를 소화하는 모모코님의 역량을 잘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 내 여성의 역할과 그로 인한 사회적 성취의 좌절과 수행성 등은 백수린 작가가 자주 반복해서 쓰는 문학적 주제인데, 이를 잘 파악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나 전통적인 어머니의 상을 뒤집어 제시하여 모녀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내거나 그 안에서 섹슈얼리티를 읽어낸 독해는 정말 꼼꼼하네요. 모모코님의 따르자면, 이 인상주의적인 문학이 결과적으로 어떤 여성의 이해와 연대의 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 지도 포함해주신다면 글이 더욱 입체적이게 될 것 같습니다.

    • 2023-03-22 19:58:43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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