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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악인은 없다 - 영화 '우리들'을 보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2-11-15
  • 조회수 640

<우리들>을 감상하는 내내,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아는 동생의 하루하루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한 영화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 모두가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가 맞물리며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날 때가 많아 안타까웠다. 가령 주인공 두 사람의 담임 선생님은 다수의 반 아이들에게 유쾌한 사람이지만, 이선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없는 사람이다. 지아의 할머니와 선의 엄마 또한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만, 사는 것이 바빠 가끔은 아이에게 무심하고 매정한 사람이 된다. 지아와 선 또한 ‘잘 지내고 싶은 마음’에 서로와, 그리고 보라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과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무엇보다 현실적이었다. 절대적인 악인은 없지만, ‘자신이 느끼기에 악인’인 사람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어릴 적에는 돌아보면 왜 그랬을까, 생각하게 될 만큼 사소한 이유로 다투고 서로를 미워했던 것 같다. 그때의 상황은 가물가물하고 오직 감정이 남아서 드는 의문을 <우리들>을 봄으로서 풀어낼 수 있었다. 주된 원인은 없었다. 다만 여러 환경과 우연이 겹쳐 미숙한 우리들을 괴롭혔던 것 같다. 그러나 지아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이나, 먹고 살기 바빠 선이에게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없는 부모를 보며 좋은 어른의 부재가 아이의 성장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덩달아 따돌림, 생일파티, 무리 –조금 성장한 뒤 한 성별만 모이는 상급 학교에서는 이것이 의미가 없지만 초등학생 때에는 무척이나 중요했던 것 같다.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끼리‘무리’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거나 아지트를 만들거나... 지금 보기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 이곳에 큰 소속감을 느끼며 목숨 거는 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어릴 적 무척 내향적이었던 나는 학기 초에 무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홀로 남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있다. 영화에서 나온 것과 같이, 체육 시간이나 버스를 탈 때 짝이 없으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완전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특별한 조미료 없이, 무언가를 있는 모습 그대로 그려내는 창작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 간의 관계와는 별개로, 나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았던 장면은 선이가 문구점 아저씨에게 혼나는 장면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 또한 친구들과 학원 앞 문구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무언가 사지 않고서 구경을 하거나 때로는 귀찮은 질문을 해도 친절하게 대답해준 주인 아저씨가 기억에 남는다. 그 문구점이 열지 않아 다른 곳에 갔을 때, 필통의 색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영화 속 아저씨와 똑같은 방식으로 혼을 냈던 주인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부끄러워 한동안 문구점에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 기억이 왜 떠올랐냐면, 나는 지금도 그 친절한 아저씨가 운영하는 문구점에 자주 들리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학교 근처의 교보문고와 화방도 오랜 단골이다. ‘문구 덕후’인 나, 책을 좋아하는 나, 손으로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나는 어쩌면 친절한 어른들 덕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영화는 특정 시기에 보면 참 좋다. <우리들>은 언제 보아도 좋을 듯 하지만,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서 있는 지금 이 영화를 만날 수 있어 진심으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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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 또는 피투성이 존재들을 위한 시 – 정재율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를 읽고 (퇴고)

만약 한 아이가 넘어져 무르팍이 깨졌다고 하자. 새빨개진 무릎에서는 피와 흙이 뒤섞이고, 통증이 밀려온다. 아이는 당연히 울음을 터뜨릴 테다. 이때 보호자는 아이에게 왜 우느냐는 질책은 하지 않되 과장된 반응을 보여서도 안 된다. 다만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상책이다.* 넘어지고 말았을 때 밀려오는 부끄러움, 다쳤을 때의 아픔과 두려움, 그리고 누군가 이 고통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이의 몸속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너무 크게 부풀어 올라 흘러넘치거나 딱딱하게 굳어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게. 적지도 많지도 않은 반응으로 아이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비단 아이를 돌볼 때만이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에도 필요하다. 타인이 지닌 고유한 감각을 함께 알아가려고 하되 너무 깊이 빠져들거나 겉돌지 않을 것.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하기 위한 철칙일지도 모른다. 정재율 시인의 첫 시집 『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는 넘어진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말하고자 한다. 시인만의 단단하고 확고한 시선이 아름답다. 그런데 이때‘넘어진 이들’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표현의 명료함과 아름다움의 골조를 찾아보기 위하여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을 파고들어 보자. 피투성(被投性), 피가 범벅이 된 피-투성이가 아니다. 한자 그대로 피被라는 접두사에 던질 투投가 합쳐진 단어, 하이데거가 제시한 표현이자 하나의 개념으로 우리는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는 뜻을 내포한다.‘그곳에-있는''현존재', 그러니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성질이 바로 피투성이다. 우리는 자의와 관계 없이 이 세계에 탄생했으므로‘던져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때론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어렵다는 결론’(『몸과 마음을 산뜻하게』,「부표」)에 도달해 그냥 살아가기로 한다. 시집 속 「초판본 시집」에서 화자에게 ‘친한 선생님’이 ‘선택당한 거 아니에요? 별 수 없죠 계속 쓸 수 밖에 없겠다고’ 말한 것과 같이. 그런데 하이데거의 피투성과 정재율의 시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피투성은 기분 중에서도 불안을 통해 자각된다는 점에 집중해 보자. 특정 대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가 아닌, 막연한 불안 말이다. 이를테면 ‘친한 선생님’에게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묻는 것처럼, 우리는 살아가며 생의 순간 하나하나에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 이렇게 의문을 던지고 한없이 헤매는 과정은 필연적인데, 하이데거는 이 과정에서 인간은 불안을 얻으며 자신의 피투성을 강하게 인식한다고 한다. 던져진 세계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언젠가 ‘그곳’을,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는 또 하나의 사실. 실 가닥이 복잡하게 꼬이듯 사고가 전개되며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까지 가닿게 된다. 우리가 마주한 아주 무거운 과제이자 언젠가 마주하게 될 현실, 죽음. 자신의 죽음을 예리하게 의식하는 행위를 하이데거는 죽음에 대한 ‘선구적 각오성’이라고 일컬었다. 이렇게 세계에 내던져진, 한 마디로 낳아지고

  • 모모코
  •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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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28
수중에서 기록하는, 사랑 그리고 슬픔의 일지 –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퇴고)

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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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절대적인 악인은 없지만, 자신이 느끼기에 악인인 사람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는 모모코님의 이 한 문장에서 이 영화의 의미가 잘 축약되는 것 같아요. 소녀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무리를 이루며 누군가를 은근히 배척하고 사랑하는 친구의 싸늘한 눈빛 한 번에 온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영화 속 감정 등은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 같아요. 저 역시도 이 영화를 보며 두고왔지만 잊어버린 적 없던 과거가 모두 낱낱이 발굴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는 일에 지쳐 자녀에게 무심한 보호자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었다는 감상은 특히나 이 영화의 중요한 특징 같아요. 어른을 어린이들을 상처주는 완벽한 악인으로 그리지 않음으로써, 나를 상처주는 잔인한 그 많은 악인들이 절대적인 악인이 아니라는 데에서 오는 깨달음에서 어린이는 어른이 되기도 하잖아요. 영화의 내러티브적 특징을 잘 짚어주셔서 저 또한 영화를 다시 곰곰히 살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예전 글에서 모모코님의 감상평이 첨예하지 않아 걱정이라는 우려를 보여주셨는데, 영화 속에 나오는 선과 악에 대한 중의적이고 복잡다단한 결을 잘 살펴주신 것 같아요. 책도 영화도 모두 좋아하시는 것으로 사료되는데, 그것들이 모모코님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또 만나요.

    • 2023-01-14 05:04:36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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