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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과 비평범을 너머, 너와 나를 넘나드는 사랑 - 이희영의 '보통의 노을'을 읽고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2-11-15
  • 조회수 891

보통

  1.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세간에는 시집의 첫 시와 마지막 시와 중간 페이지를 읽고 좋다면 그 시집을 사도 좋다는 팁이 있는데, 나는 이 팁을 시집만이 아닌 모든 갈래의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사용한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먼저 읽어 냈던 <<보통의 노을>>의 페이지는 가장 처음과 마지막 부분이었고, 아주 쾌활한 ‘최지혜’ 씨의 손에 이끌려 패딩을 구매하고, 끝에 가서는 새로운 계절이 와도 ‘그것’만은 용서 할 수 없다는 독백과 함께 앞서 등장한 패딩이 언급된다. 이희영 작가의 다른 작품 <<페인트>>를 읽을 때에도 느꼈다. 촘촘하게 엮인 등장 인물들의 인간성 그리고 관계성 사이 위에서 무엇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은 다양한 요소들이 너울거리고 있다고. 그 너울거림은 가히 아름답고 마음에 아주 오랜 울림을 준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벌써 이 년 전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보통의 노을>>을 읽고서 그 감상과 감동을 다시끔 떠올릴 수 있었다. 역시 이희영의 청소년 소설은 재미 있구나, 싶었고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더욱 기다려졌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교내 작가 초청 행사 때문이었다. 지정 도서는 <<페인트>>였으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 중학생 때 읽은 적이 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내가 이끄는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으로, 발제부터 모임 내에서 진행할 컨텐츠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한 기억이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미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사서 선생님께 말씀 드리자.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추천해주셨다. 내심 좋았다. 영화 상영회에서 GV를 진행 할 때, 그 감독의 다른 작품을 꼭 알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먼저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해하고 가는 것이 좋은 것과 같다. 나는 이 행사를 진심으로 더 즐기고 싶었고, (질문이나 행사 진행 자체를) 더 잘 하고 싶었다. 욕심과 흥미로 가득 찬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책이 <<보통의 노을>>이었다. 나는 <<나나>>와 <<보통의 노을>> 중 한 가지를 택하여 읽을 기회를 주셨는데,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나나>>를 펴낸 소설Y 시리즈에는 천선란의 <<나인>>과 박소영의 <<스노볼>>이 있다. 나는 <<나나>>를 읽어 본 적 없지만, 다른 두 책은 모두 읽어 본 적 있었으며 그닥 흥미롭지 않았다. 그리고 <<보통의 노을>> 쪽의 제목이 흥미로웠다. 도저히 무슨 내용일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는 점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평범하다

  1.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다.

-

 

소설의 도입부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인공과 그의 어머니 ‘최지혜’씨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이 주인공, ‘평범’하지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의 이름은 ‘최노을’이며 아들이 어머니를 대하는 데에 아주 거리낌이 없다. 노을과 지혜의 나이 차는 열여덟 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 노을을 임신한 지혜는 아버지 없이 그를 잘 키워냈고, 그런 지혜의 정성 덕분인지 노을은 잘 자랐다. 그 뿐인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 존재가 아니다. 그는 상가에서 중국집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그 중국집은 배달을 하지 않는 역시나 ‘평범’치 않은 가게이며 가게 주방장의 딸내미 성하와는 성애적인 감정이 하나도 없는 편안한 친구처럼 지낸다. 학교에서 붙어 다니는 친구는 동우라는 조용한 녀석 단 한 명 뿐이며,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는다. 독자가 이 사실을 알기까지에는 책의 절반을 읽어내야 한다. 이거, 특별한 사건이나 갈등 없이 최노을의 비평범성에 대해 나열하다 끝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때 즈음에야 몰아치기 시작한다. 노을이 아름답게 지는 것은 폭풍 전야를 예고한다는 말과 같이, 나름대로 잘 살아가던 노을에게 사건들이 들이닥치는데 어째서인지 죄다 사랑과 관련이 있다.

성하의 오빠 성빈은 지혜를 좋아한다. 이 호감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존경에 비롯된 것이 아닌 성애적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노을은 꽤나 골치 아파한다. 어머니에게 좋은 짝이 생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음에도 소중한 어머니가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두 사람의 나이차, 그리고 절친의 혈육이 어머니의 파트너가 되는 상황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동우는 자신에게 성빈을 소개시켜 줄 것을 부탁한다. 두 사람의 오작교가 되어 줄 요량으로 흔쾌히 수락했던 노을은 상상치 못했던 상황을 직면하게 된다. 동우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노을이었다. 역시나 ‘평범’하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머리를 따라주지 않는다 말하는 동우를 성하와 노을 모두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동우의 커밍아웃 다음 날 출근한 중국집에서 성하의 아버지로부터 ‘여느 중국집과 다르게’ 배달을 하지 않는 이유를 듣게 된다. 그 이유의 골조는 성하 아버지의 깊은 상처이며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은 뒤 자신은 성빈의 마음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열여덟의 겨울, 굵직한 사건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릴 절친한 친구 성하와 함께 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왜 사람들이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를 피우고, 쓰기만 한 술을 마실까 궁금했는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곧잘 일어나니까. 손에 들린 것이 캔 커피가 아닌 팩 소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151p.)

 

우선, 나는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평소 한국 단편 소설 그리고 일본 근현대 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는 청소년 소설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 151p의 내용과 같은 솔직한 청소년의 속마음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다. 나와 동떨어진 삶을 사는 청년의 깊은 고뇌 따위가 아닌 당장 옆 남자 고등학교에 한 명 즈음은 있을 법한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니, 나에게는 무척이나 즐겁고 매우 색달랐다. 요즈음 나에게 특히나 와닿기까지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더 넓어진 나의 세상 속에서 부쩍 인간은 사회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고 있다. 사회라는 커다란 시계 속에 나라는 작은 톱니바퀴를 끼워 넣은 채 회전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남들처럼’ 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말하길 좋아하고 잘 하길 원하며 유난히 다양한 사랑을 해 왔던 나는 평범의 기준과 필요에 대해 수없이 고민해으며, 이 고민의 골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또래의 남자 아이가 나름대로 고민하고, 마음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낸 이 소설은 어떤 응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 속에 스며든 서사는 우리에게 평범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동시에, 평범하지 않은 이들에게 안부 인사를 건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통의 인생이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 같지 않을까? 이미 잘 닦인 길 말이야. 쭉 달리다 톨게이트로 빠져나오면 되는 길. 톨게이트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쉽게 방향을 바꿀 수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잖아. 편리하고 빠른 만큼 이미 길에 올라섰으면 큰 선택지가 별로 없어. (143p.)

 

다음으로, 책을 읽고 난 뒤에 나는 <<보통의 노을>>을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라고 결정 었다. 혹자는 ‘아니 이 때까지 비평범성 평범함 보통 운운하더니, 제목도 보통의 노을인데, 주제가 어떻게 사랑이 될 수 있느냐?’ 라고 말할 수 있다. 허나 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이 책의 주제는 사랑이 맞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떠올랐다. 프랑스 시민 혁명 전후를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인간 군상과 개인이 지닌 고심을 그려낸 소설이지만, 결국 레미제라블을 읽으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혁명이니 고통이니 고난이니 할 것이 아니다. 등장 인물들 사이에서 복잡한 형태로 행해지는 용서와 사랑이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이자 핵심 요소이다. <<보통의 노을>>도 다를 바 없다 여겼다. 작가는 독자에게 평범과 그에서부터 비롯되는 편견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작품 속에서도 비평범성을 띄는 것을 끊임없이 노출시킴으로서 보통의 것이 과연 무엇인지 상기시킨다. 여기서 독자들은 개개인마다의 답을 낼 것이며, 미혼모나 퀴어와 같은 비평범성을 띄는 존재들을 배척했던 순간으로 물든 자신의 삶을 반성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가 원하는 ‘종착점’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앞서 <<레미제라블>>을 읽어낸 방식과 같이 등장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노을과 성하와 동우, 노을과 지혜, 지혜와 성빈, 성빈과 그의 부모, 성빈의 아버지와 아버지가 후원했던 청소년⋯ 이들의 관계성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나 그 뒤에는 숭고한 사랑이 있다. 아가페적이든, 에로스적이든, 필리아적이든, 孝를 기반으로 하였든, 牲을 기반으로 하였든 사랑이다. 이 사랑은 작중 동우의 대사처럼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며 타당한 사고가 가능한 존재들끼리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사랑이다. 아픈 사랑이되 나쁜 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어찌하여 가장 주요한 요소가 되는가? 바로 사랑은 ‘달리는’ 힘이 되는 동시에 ‘달리는’ 자들을 향한 가장 따뜻한 응원이자 아름다운 찬가이기 때문이다. 143p의 성하의 대사와 같이 삶을 사는 우리는 죄다 길을 걷고 있다. 이것이 잘 닦인 – 평범한 – 편리한 고속도로인지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나 수없이 돌아가는 산길 –평범하지 않은= 길인지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속도로 자신만의 도로 위에서 달리고 있는 것이다. 生이라는 외롭고 괴로운 도로 위를 걸을 때 도로변의 절경이나 휴게소가 되어 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소설 속에서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거짓 없이 그려내어 이를 뒷받침한다. 더군다나 나이와 성별을 넘어 대담하고 더욱 아픈 사랑을 하는 사람들, 21세기 한국에서 홀로 아이를 키워낸 사람과 가족과 친구 없이 홀로 살아온 사람⋯ 이 평범하지 않은 등장 인물들을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게 했던, 힘을 주었던 것은 자신이 지닌 사랑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이해심 덕분이었다.

 

우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주었다. 남에게 상처 주지 않고 정직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라면 그것이 정답이고 행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 세워 놓은 평균은 또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145p.)

 

결국 나의 평범과 보통에 대한 기준은 한 사회가 지어 놓은 평균값 그 주변에 머무는 일이라는 사전상의 정의와 별반 다르지 아니하고, 편견은 그 평균의 범위를 벗어났을 때 받게 되는 부당하지만 당연한, 아이러니하면서도 일상적인 일이라 생각하므로 독서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할 수 있었다. 평범하지 않은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받아들일 것. 대신 존재에 대하여 함부로 말을 얹지 않을 것, 동시에 그 특별하고 흔히 볼 수 없음을 높이 살 것, 그리하여 존재와 그 존재가 지닌 마음을 존중하고 사랑할 것.

비범하다

  1. 보통 수준보다 훨씬 뛰어나다.

반대말: 평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한 번도 사랑을 나누어 본 적이 없는 이에게는 지루한 영화가 될지 몰라도, 사랑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주 감명 깊을 그 영화 말이다. 이 책은 나처럼 평소 평범과 비평범에 대하여 고민했던 친구, 그리고 어떤 형태가 되었든 진심을 다해 사랑을 나누어 본 적 있는 친구라면 아주 인상 깊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허나 아직 그런 경험이 전무한 친구에게는 먼저 우리 사회에 팽배한 보통의 존재가 아닌 것들에 대한 편견을 인지하고, 그 보통과 편견의 존재 자체에 대해 사유하는 기회를 가져다 줄 책일 것이다. 이렇게 개인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파동을 주는 문학이 정말로 좋다. 이러한 사고를 하는 과정에서 문학 그리고 소설 자체가 지닌 매력에 한 번 더 푹 빠질 수 있었으며, <<보통의 노을>> 자체에도 애정을 두게 되었다.

 

작가 정유정은 모든 작가는 자기만의 테마를 지닌 채 평생 그것을 변주하며 이야기를 쓴다는 말을 했다. 이희영은 <<페인트>>에 이어 <<보통의 노을>>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정유정이 말한 바와 같이 친족 관계라는 긴밀한 사이를 테마로 하여 끊임없이 놀라운 변주를 선보인다. <<페인트>>에서는 개인-개인이 뭉쳐 가족이 형성되고, 형성된 가족-가족 사이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보통의 노을>>에서는 가족-가족이 뭉쳐 형성된 집단-집단 즉, 한 사회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족을 여러 방면으로 풀어낼 뿐만이 아니라 가족애만을 내세우는 구시대적인 소설이 아니기에, 언제나 깊이 있는 동시에 가볍고 물 흐르듯 읽어낼 수 있는 소설이기에 이희영 작가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보통의 노을>>, 우리가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노을’이 보통의 것인지 아닌지 한 눈에 보이겠지만 그것이 별 대수겠는가? 누군가 정립해 놓은 평균값보다 서로의 마음을 살피며 헤아림과 존중으로 세계를 살피며 살아갈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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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모코
  • 2024-05-28
수중에서 기록하는, 사랑 그리고 슬픔의 일지 – 진은영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읽고 (퇴고)

어떤 기억 속의 마음들은 흘러가지 않고 고인다. 기록함으로써. 우리는 흔히 시간이 ‘흘러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무척 알맞은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사실 하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정신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며. 이런 기분들은 마치 우리가 급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으로 안내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거나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거나 고마워하는 그런 마음들.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골조이자 연료가 되어준다. 한 사람이 믿고 행동하며 내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단단한 뼈대이자 동시에 원동력이 되어주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급류, 휘청이다가 물처럼 지나가는 시간에 마음을 놓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마음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내가 지닌 마음이 시간처럼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어린 나는 내가 무엇이든 적어두고 싶었다. 정신없이 지나가며 휙, 휙 바뀌는 기분과 감각들을 심장 깊숙한 곳에 새겨두고 싶었다. 그렇게 새겨둔 순간의 감각, 그리고 기분 위로 마음이 ‘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인다’고 하면 흔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나는 오래도록 ‘남아 있는’, 떠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떻게? 기왕이면 문학의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바로 진은영 시인이 있었다. 초등학생일 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을 읽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그때는 마음의 물성이니 고이고 흐르니 그런 사유는 할 수 없었지만,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 슬픔과 사랑이라는, 흔하기도 하며 나와 친숙한 이 감정들을 어떻게 이리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지? 나 또한 그런 시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겨울이었다. 그리고 많은 계절을,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꼭 쥔 채 건너왔다. 그 사이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힘든 일도 있었고,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굳게 먹은 그, 열셋 겨울의 결심,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마음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시인이라는 꿈을 안고서 뛰어든 험한 급류에 서 있을 때. 나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진은영 시인의 신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집으로! 나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집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몇 번이고 읽었고, 이는 내게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 시인의 시집 중에선 표지를 닮아 유연하게, 그리고 분홍빛으로 흘러가는 시집 『훔쳐 가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그 『훔쳐 가는 노래』 못지않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시집이 바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다. 지금부터는 내가 왜 이토록 진은영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지, 또 이 시집을 읽고 그렇게 감명받았는지, 나의 마음들을 기록하려 한다. 다름 아닌 감상문, ‘문학의 방법으로.’ 나는 진은영 시인의 시를 읽으며, ‘물 위를 떠도’는 (

  • 모모코
  •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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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모모코님 안녕하세요. 용기를 내시기를 잘하신 것 같아요. 첨예함이 없다 하셨지만, 전혀 그렇지 않게 느껴집니다. 평범하고 잔잔하게 고속도로처럼 흘러가는 듯 보이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비범한 일들과 각자들의 투쟁들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을 깊게 잘 이해하신 것 같아 제게도 모모코님이 느끼셨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특히나 성과 사랑의 문제가 이 작품을 추동 하며 진행되고 있는데, 그 안에는 우리 사회에서 비규범화되어 있는 종류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모코님이 이 소설의 주제를 사랑으로 꼽아주셨던 것은 다양한 사랑과 관계와 상처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자 하는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잘 공명하는 듯 합니다. 편견을 허무는 사랑의 발명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에 대한 존중이 타인을 별나고 이타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어려운 과제는 우리 자신 또한 그 편견과 사랑에 연루된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평범과 비범이라는 키워드로 작품을 엮어내셨으니 이런한 관점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가벼운 단상이라도 좋으니 언제나 마음 편하게 이 게시판을 찾아주세요. 그럼 또 글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 2023-01-14 04:53:53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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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색 눈 토끼

    제 글에는 첨예함이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큰 고민이자 업로드를 망설였던 이유인데요, 독서 감상문에 가까운 글이더라도 한 번 올려보면 좋을 듯 하여 용기 내어 올려봅니다 > // < 무척 즐겁게 읽었던 소설에 관한 감상입니다. 이 게시판에 글은 처음 써보네요. 잘 부탁드려요.

    • 2022-11-15 11:52:04
    흰색 눈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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