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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든 아이에게

  • 작성일 2023-03-31
  • 조회수 1,114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자루 든 아이에게

김다혜

안녕? 지금쯤 넌 낯선 편지에 의문이겠지. 내가 누구인지는 천천히 알려 줄게. 같이 보낸 사진들과 함께 이 편지를 읽어 줘. 내가 사진 뒷장마다 숫자를 적어 두었으니 순서대로 보면 될 거야.

맨 앞에 있는 사진 보여? 우리 가족이야. 여객선 터미널에 막 도착하고 찍은 사진이지. 왼쪽에 서서 얼굴 찌푸리고 있는 애가 바로 나야. 왜 저렇게 못나게 찍혔는지 몰라. 아마도 햇살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나 봐.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가족은 남해안으로 여행을 떠났어. 그런데 밖에 나오자마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지 뭐야. 혹시 작년 여름이 얼마나 더웠는지 기억해? 그런 더위는 정말 난생처음이었어. 숨이 턱 막히고, 땀이 줄줄 나서 눈이 따가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안도로 가는 배를 탄 후부터는 덥지 않았어. 배 뒤꽁무니에 길게 이어진 하얀 포말이 너무나 시원해 보였지. 사진을 봐 봐. 마치 푸른 바다 위에 길을 새긴 것 같지 않아?

안도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섬이었어. 파도가 스칠 때마다 자르르 떠는 자갈밭이 귀를 간질였어. 구멍 송송 난 돌 틈을 지나다니는 갯강구도 신기했고. 눈길이 닿는 것마다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고 언제나 한자리를 지켰을 섬의 시간을 상상하게 했지.

우리 가족은 그런 보물 같은 섬을 찾은 걸 만족스러워했어. 민박집에서 준비한 갖가지 음식들과 결이 거친 나무 평상, 널찍한 마당 그리고 바로 앞 해수욕장까지. 가장 마음에 든 건 역시 바다였어. 짐도 풀지 않고 모래사장에 뛰어들었으니까. 햇볕에 달궈진 모래 때문에 화상을 입을 것 같았지만 말이야.

그때, 눈앞에 웬 여자애 하나가 나타난 거야. 바로 너였어. 넌 발밑이 뜨겁지도 않은지 맨발로 해변을 걷고 있었어. 나는 낯선 섬에서 마주친 너에게 호기심이 생겼어. 너도 나를 바라봤지만, 어깨의 검은 자루를 고쳐 멜 뿐 걸음을 멈추지는 않더라. 그리고 네가 지나친 순간, 바다 짠 내음이 바람을 타고 넘어왔어. 그건 네 자루 속의 고둥 향이었지.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야.


이제부터는 너도 아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안도의 방파제 사진 봤어? 거긴 내가 너를 두 번째로 만난 곳이기도 해. 아직도 기억이 나. 그날은 바닷물이 끓어오르기라도 할 것 같은 날이었으니까. 기다란 방파제 위에는 웬일인지 말라 죽어가는 불가사리들이 올라와 있었지. 내가 그 불가사리들을 다시 바다에 던져 주고 있을 때, 멀리서 네 목소리가 들려왔어.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네가 인상을 찌푸리며 뛰어오고 있었어.

“기껏 건져 놓은 걸 다시 바다로 던지면 어떡해?”

“그냥 두면 죽을까 봐…….”

“일부러 이렇게 두는 거야. 이 불가사리는 바닷속 포식자라서 다시 방생하면 안 돼.”

너는 내게서 불가사리를 낚아채 방파제 위에 아무렇게나 던지고는 사라졌어. 실은, 나 그때 조금 민망하고 화가 났었어. 왜냐하면 여기 있는 동안 너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거든. 하지만 네 쌀쌀맞은 모습에 그런 생각이 싹 가셨지. 다시는 너랑 마주치고 싶지 않았어.


다음 날 아침까지도 내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어. 민박집 할머니는 그런 내게 손주들이 쓰던 거라며 줄낚시 도구를 빌려주셨어. 처음 해 보는 건데도 운이 좋았는지 꽤 낚을 수 있었지. 반나절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새 양동이 안이 꽉 차더라. 나는 엄마 아빠에게 자랑하려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어. 민박집 할머니께도 나눠 드릴 생각이었거든. 그러다 갈라진 콘크리트에 그만 신발이 걸려 넘어지고 만 거야.

철퍼덕 소리와 함께 양동이에 있던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어. 얼른 일어나 팔딱대는 물고기들을 다시 옮기려 했지만, 양동이 안은 이미 물이 엎질러져 텅 비어 있었지.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그때, 네가 불쑥 나타나 양동이를 들고 바다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어. 그러고는 물을 채워 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물고기들을 하나씩 주워 담았지.

“보건소로 가야겠는데.”

네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어. 그제야 나도 바닥에 쓸려 엉망이 된 무릎이 보였어.

“……됐어. 엄마한테 봐 달라고 하면 돼.”

나는 방파제에서의 일이 생각나 퉁명스럽게 대꾸했어. 그러자 네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지 뭐야.

“왜 웃어?”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구나. 미안, 나도 예전에 똑같은 실수를 한 적 있어서 다급한 마음에 소리쳤나 봐.”

네가 먼저 손을 내밀었어. 망설이다 그 손을 잡고 쭈뼛쭈뼛 일어나자 네가 대뜸 이렇게 물었어.

“여긴 며칠 동안 있어?”

“……곧 있으면 떠나.”

너는 아무 말 없이 주머니를 뒤적거리고는 내게 흰 자갈 하나를 건넸지.

“선물이야. 모양이 꼭 강아지 같아서 챙겨 뒀던 거야.”

“……고마워.”

나는 네가 준 자갈을 한참이나 들여다봤어. 깨진 모양이 정말로 꼬리를 치켜든 강아지를 닮아서 웃음이 나오더라. 그 덕분일까? 보건소로 가는 동안 너와 더 나눈 대화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그 뒤로 나는 내심 너를 다시 마주치길 바랐어.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지. 저녁을 먹고 평상에 누워 악보를 보고 있을 때였어. 내 손은 지루한 음표 대신 낮에 붙인 반창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어. 불규칙적으로 부서지는 파도가 왠지 나를 부르는 소리 같아서 악보에 집중할 수 없었거든.

“아직도 악보 숙지 다 못했니?”

엄마의 핀잔에 나는 악보를 아예 얼굴 위에 얹고는 중얼거렸어.

“아, 밤바다나 보러 가고 싶은데…….”

“곧 콩쿠르인데 어쩌려고 그래?”

“놀러 온 거잖아. 그만 좀 해.”

“너한테 들어가는 레슨비가 얼마인지 알아? 여기 애들은 그런 거 꿈도 못 꿔.”

“하…….”

나는 대회 준비가 얼마나 힘든지 알지도 못하면서 매일 혼내기만 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어. 그래서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지.

“차라리 이런 데서 혼자 살면 소원이 없겠네. 학원이랑 레슨도 없고 얼마나 좋아. 잔소리 안 들어도 되고 말이야.”

“여기서는 더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데 네가 무슨 수로?”

“이 섬사람들은 뭐 대단해서 여기서 사나? 보니까 별거 없던데 나도 해녀나 하지 뭐.”

엄마와 내가 티격태격하고 있던 그때, 갑자기 돌담 너머로 네 목소리가 들렸어.

“할머니, 계세요?”

너는 굳은 얼굴로 마당을 둘러보다가 평상에 앉아 있는 우리 가족을 보고 고갯짓하며 인사했어. 내가 너에게 손을 흔들어야 하나 머뭇거리는 사이, 마침 민박집 할머니가 너를 맞으러 나오셨지.

“아야 심부름 왔냐.”

“네, 여기 뿔소라랑 성게요. 할머니가 갖다 드리래요.”

“할매가 뭔 일이다냐. 밥 안 묵었으믄 묵고 가.”

“괜찮아요. 건넛집 할아버지네도 들러야 해서요.”

너는 그렇게 내게 눈길 한번 안 주고 떠났어. 그 후, 민박집 할머니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

“저 애기가 상군해녀 할매네 손녀여. 여그 온 지는 한 3년 됐는가? 한참은 즈그 엄마 찾드만 할매가 물질하다 크게 다치고 나서부턴 일도 잘 도와주고 제법 섬 애기 같아졌제.”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내 머릿속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어. 혹시 방금 내가 엄마와 나눈 대화를 듣고 네 기분이 나빴을까? 제발 네가 못 들었길 바랐지.


드디어 마지막 사진을 이야기할 차례네. 맞아, 바로 네 사진이야.

해 질 무렵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닷가에서 혼자 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어. 멀리서 검은 자루를 등에 멘 네가 돌 틈 사이를 살피는 모습이 보였어. 너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막 딴 고둥을 자루 안으로 넣고 있었지.

나는 내 또래의 아이가 예쁜 조개껍데기를 줍는 건 봤어도, 할머니를 도와 고둥을 따는 건 처음 보았어. 붉게 물든 바다를 등지고 파도 가운데 선 네 모습이 물결과 어울려 너무 반짝여 보이는 거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사진으로 담고 말았어. 때마침 고개를 돌린 너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에 말이야. 그리고 네 굳은 표정을 보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

“찍어서 어디에 올리려고?”

너의 화난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어.

“아니, 난 아무 데도 안…….”

“이리 내놔.”

네가 갑자기 손을 뻗기에 나는 뒷걸음질 치며 카메라를 숨겼어. 하지만 봐줄 생각이 없는지 두 손이 끈질기게 따라붙었어. 얼마쯤 실랑이를 벌였을까? 네가 카메라를 낚아채려 하자 나는 반사적으로 너를 밀쳐 버렸어. 그 바람에 너는 모래 위에 엎어지고 말았지.

“왜 남의 물건을 멋대로 뺏으려 해?”

내가 큰 소리로 외치자 너는 차갑게 되물었어.

“넌 왜 내 사진 멋대로 찍어? 너희 동네에서도 그렇게 허락 없이 막 찍어?”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너는 그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어.

“여기 놀러 와서…… 너처럼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많이 봤어.”

“…….”

“너에게는 떠나면 그만일 여행지겠지만, 나나 이곳 사람들에겐 집이야.”

그 말을 끝으로 너는 다시 멀어졌어. 네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옷에 검은 자루가 스치며 바스락 소리를 내었지.

너랑은 그게 마지막이었어.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네가 사라질 때 나던 자루 스치는 소리가 자꾸만 들리는 것 같아서 그때마다 벌떡 일어나 피아노를 쳐 댔어. 매일 밤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피아노를 칠 수밖에 없었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진심으로 매달려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난 단지 귓가에 맴도는 자루 소리를 어떻게든 피아노로 지우고 싶은 건 줄 알았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

사실은 너무 창피했던 거야. 안도에서 내가 했던 말과 행동들이 말이야. 내 무심함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견디기 힘들었어. 그래서 더욱 혹독하게 피아노를 쳤던 것 같아.

준비하던 피아노 대회는 어떻게 되든 별로 상관없었어. 그런데 뜻밖에도 입상했지. 예전 같았으면 신이 나서 방방 뛰었겠지만, 나는 그저 시큰둥했어. 엄마 아빠는 내가 우승하지 못해 풀이 죽은 거로 생각했나 봐.

“예봄아. 콩쿠르 입상한 기념으로 엄마가 한턱낼게.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내 기분을 풀어 주려는 엄마에게 뭐라 대답했는지 알아?

“나…… 안도에 가고 싶어.”

그제야 알았어. 나는 너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 그리고 제대로 사과하고 싶었어. 어쩌면 이걸 물어보기 위해 편지를 쓴 것 같아. 내가 잘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박집 할머니가 아마 이렇게 부르셨지.

정원아. 나는 다음 여름 방학에도 안도에 가려고 해. 푸른 바다 위 하얀 포말과 반짝이는 해변, 그리고 거기 사람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거든. 이제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때에는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작가소개 / 김다혜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습니다. 제3회 밀크T 창작동화 공모전 금상을 받았습니다. 면과 면 사이, 흐릿하지만 날카롭게 존재하는 모서리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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