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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고양이

  • 작성일 2023-03-31
  • 조회수 798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우리들의 고양이

강정룡

그날, 우리는 늦게까지 운동장에 남아서 놀았다. 아예 학원까지 빼먹기로 작정하고 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피구부터 해서 야구, 축구, 거기다 우리가 즐겨 하는 ‘밀쳐내기놀이’까지 아주 진이 다 빠질 정도로 진탕 놀이에만 빠져 있었다. 늘 어울려 놀긴 했어도 그날처럼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다. 언제 시간이 다 갔는지 해가 떨어지는 것도 몰랐다. 한참 만에야 어둠살이 내리는 것을 깨달았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집에 돌아가 씻고 밥 먹고 나면 더없이 기분 좋은 피로에 젖어 바로 꿈나라로 갈 것이었다. 그리고 꿈나라에서 아쉬웠던 놀이를 계속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는데, 일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결국 우리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너무도 기이하기는 했지만,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분명한 건 그 기이한 일로 인해 우리에겐 친한 친구가 새로 생겼으며, 새로운 놀이를 하나 더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고양이 한 마리씩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문이 아닌 몰래 빠져나가는 ‘개구멍’으로 우르르 향했다. 지름길인 개구멍은 운동장을 둘러친 쥐똥나무 울타리께에 있었다. 막 개구멍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들 몸을 웅크리는데, 난데없이 어둑한 저만치서 “이히힉~ 헤헤…….”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무슨 소리야?”

우리는 빠져나가려다 말고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쭉 뺐다. 저만치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운 플라타너스 둥치 뒤쪽에 누군가 기대 있는 듯한 모습이 얼핏 보였다.

“응. 그래, 그럼. 아하하…….”

분명 혼자인 듯한데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어 우리는 그쪽으로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린 여럿이었고 한껏 동한 호기심이 무섬증을 저만치 밀어냈다. 모두 뛰는 가슴을 누르며 플라타너스 가까이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헤헷, 재밌어. 응. 응.”

어쩐지 목소리가 귀에 익은 느낌이 드는 그 순간, 플라타너스에 기댄 그 애 앞으로 화락 튀어 나갔다. 우린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그만 맥이 쏙 빠졌다.

“너……? 석희돌!”

이구동성으로 그 애 이름을 불렀다. 우리 반 왕따 희돌이였다.

“으응, 나야. 너희들이었구나.”

희돌이는 겸연쩍은 듯 히죽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껏 인 호기심이 풍선에 바람 빠지듯 새 나갔다.

“쳇, 재수 없는 짜식! 너 인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혼자서?”

우린 다그치듯 물었다. 그런데도 희돌인 넉살 좋게 웃기만 했다.

“뭐 하긴, 놀았지. 히~.”

“뭐? 인마! 이렇게 늦게까지 혼자서 놀긴 어떻게 놀아? 미친놈도 아니고, 응?”

된통 속은 기분마저 들어 분풀이하듯 우린 몰아붙였다. 그러나 여느 때완 달리 희돌이는 주눅 들지 않았다.

“글쎄? 혼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러곤 의미심장한 웃음을 우리에게 보냈다.

“뭐 이딴 짜식이 다 있어? 가만, 그러고 보니 희돌이 이 짜식, 좀 전에 뭔 이야기 나누는 것 같지 않았어?”

“그러게 말이야. 야, 석희돌! 너 방금 누구랑 얘기한 거야, 응?”

우린 연신 사방을 둘러보며 다그쳤다. 그때 난데없이 희돌이의 품 안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머리를 쏙 내밀었다.

“니야옹~.”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뭐야? 그러니까 이때까지 그딴 고양이랑 놀았다는 거야, 석희돌?”

“응, 내 고양이야. 이름은 ‘맘’!”

희돌이는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를 우리들 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맘? 키히히…… 그 고양이 이름 한번 너처럼 되게 웃긴다야. 너네 엄마라도 되는 것 같잖아. 너, 얼마나 심심했으면 그깟 고양이하고 다 논다는 거야, 응? 킬킬…….”

“그게 아니야. 맘이라는 이름은 내 마음과 똑같기 때문에 붙인 것이야. 그래서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었던 거고.”

희돌이는 고양이의 목덜미를 정성스레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저 짜식, 왕따가 되더니 아주 이상해졌어. 저따위 고양이 새끼하고 말하고 논대. 쿠히히…… 큭큭‥….”

우린 아주 대놓고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렸다. 그때였다.

“왜? 내가 희돌이와 말을 나누는 게 어떻다는 거야? 야아옹~.”

순간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 웃음을 뚝 그쳤다. 입을 벌린 채 희돌이가 안고 있는 고양이에게로 눈길을 꽂았다. 분명 고양이가 말을 한 거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고, 고양이가 말을 다 하다니……?”

“마음을 열면 고양이가 말을 하는 걸 다 들을 수 있어. 그치 맘?”

희돌이가 사뭇 진지하게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니야옹~ 그럼. 우린 한결같이 그렇게 지내 왔잖아.”

너무도 다정하게 희돌이와 고양이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얼빠진 표정으로 희돌이와 말하는 고양이를 번갈아 보기만 했다. 혹여 무엇에 홀린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연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눈에 익은 학교 건물과 운동장, 쥐똥나무 울타리며 연못까지 늘 보던 그대로였다. 단지 우리들 외엔 아무도 없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겨우 정신을 추스른 우리가 고양이 앞으로 바투 다가섰다.

“햐! 신기한데. 앵무새가 말하는 건 봤어도 고양이가 말을 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석희돌, 어떻게 말하는 고양이를 다 갖고 있다냐?”

희돌인 웃음만 지었고, 고양이가 대신 말을 받았다.

“야아옹~ 어때? 그렇게 신기하면 너네들, 우리 고양이들과 한번 어울려 볼래? 말하는 고양이 말이야.”

“뭐어? 그, 그럼 너처럼 말하는 고양이가 또 있단 말이야?”

우린 침을 꼴깍 삼키며 되물었다.

“그럼. 나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잘할지는 아직 몰라. 아마도 너희들이 얼마나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주는가에 달렸겠지.”

“조, 좋아. 한번 만나고 싶어.”

우리는 사뭇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맘은 미끄러지듯 희돌이의 품속에서 나와 어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이어 다른 곳도 아닌 우리들 모두의 가슴께를 주시하며 대뜸 “냐아옹~!” 하고 소리를 질렀다.

“헙!”

다음 순간,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 각자 가슴을 훔켜잡았다. 찰나의 느낌이었지만 뭔가 서늘한 기운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야아옹~ 냐옹~ 갸르르르…….”

우린 또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불쑥 나타났다.

“뭐, 뭐야? 이 고양이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희돌이를 뺀 우린 아주 얼이 빠져 허둥댔다.

“놀랄 것 없어. 알고 보면 이 고양이 모두는 너희들 가까운 곳에 늘 있어 온 친구들이니까. 야오옹~.”

수수께끼 같은 고양이 맘의 말에 우린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돌아다봤다. 고양이 맘은 희돌이의 어깨에서 사뿐 뛰어내려 그 고양이들에게로 다가섰다. 그러곤 일일이 목을 비비며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새로운 고양이들은 뭔가 어색한지 무뚝뚝하게 반응했다.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했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이것들 혹시 도둑고양이들 아냐? 통 말이라곤 할 줄 모르는데?”

우리들 중 누군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말했다.

“아까 분명 맘이 말했을 텐데.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희돌이가 꼬집듯 말을 받았다. 그러자 고양이 맘이 우리들 앞에 나서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래, 마음을 트려면 그게 좋겠다. 먼저 재미있는 놀이부터 하자.”

“놀이? 무슨 놀인데?”

귀가 솔깃했다.

“쉬운 놀이야. 그러면서도 엄청 재미있지. 바로 ‘뭉치기놀이’!”

“뭉치기놀이? 어떻게 하는 건데?”

“쉬워. 아까 지켜봤는데, 너희들 밀쳐내기놀이 했잖아. 그 놀이의 반대 방법으로 하면 돼. 모두가 똘똘 뭉치기만 하면 되는 거지. 야오옹~.”

우리는 밀쳐내기놀이를 떠올렸다. 놀이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커다란 원을 그린 다음 그 안으로 모두 들어가 서로 원 밖으로 마구 밀쳐 내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결국 힘이 세거나 운동신경이 재빠른 아이 하나가 남기 마련이었고, 그 아이가 일등 하는 거였다.

“그 반대라면……?”

우리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대뜸 고양이 맘과 희돌이는 운동장으로 달음박질을 했다. 그 뒤를 고양이들이 내달렸다. 우리도 이끌리듯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갔다. 운동장 한복판으로 뛰어간 희돌이는 고양이 맘의 발자국을 따라 둥그렇게 원을 그렸다. 다른 고양이들도 동그라미를 따라 신나게 뛰어다녔다. 이미 어둠이 내린 다음이었는데도 희한하게 희돌이와 고양이들의 모습만은 선명하게 보였다. 희돌이가 그린 동그라미는 마치 무대 위에 조명 불빛이 닿은 것처럼 밝게 빛났다. 희돌이가 동그라미 가운데에 섰다.

“뭐 해? 너희들도 어서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와.”

희돌이가 연방 손짓을 했다. 우린 자석에 끌리듯 그 동그라미 가운데로 들어섰다. 그러자 고양이 맘이 단단히 일렀다.

“자, 이제 너희들은 모두 한편이야. 우리 고양이들끼리 또 한편이고. 내가 제안을 했으니 우리 고양이가 먼저 술래다. 자, 간다. 단단히 뭉쳐!”

그러고는 “야아옹~ 갸르르르.” 하며 고양이들이 일제히 우리를 에워쌌다. 얼결에 우린 가운데로 우구구 몰렸다.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동그라미 밖으로 끌려 나가면 술래다!”

희돌이가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다들 동그라미 한복판으로 와락 모여들었다.

“다리 쪽이 허술해!”

별안간 한 고양이가 소리치며 누군가의 바짓단을 냉큼 낚아챘다.

“으앗!”

“아중아, 조심해!”

화들짝 놀란 우리는 반사적으로 다리가 끌려 나가는 아중이를 붙들고 뻗댔다. 팽팽한 힘겨룸 끝에 간신히 고양이의 발톱을 떼쳐 냈다. 다시 고양이들이 어지럽게 원을 돌았다. 그 찰나, 또 다른 고양이가 날렵하게 뛰어오르며 외쳤다.

“이번엔 팔이 비었어!”

고양이는 누군가의 소매를 물고 늘어졌다.

“이크! 차기야, 위험해!”

우리는 죄 차기의 팔을 붙들었다. 가까스로 버틴 끝에 다행히 차기도 무사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간 맥도 못 추고 죄 술래가 될 판국이었다.

“안 되겠어. 한데 뭉쳐 봐!”

누군가의 외침에 우린 약속이나 한 듯 바깥을 향해 둘러서서 서로의 어깨를 결었다. 흡사 어깨동무를 한 채 강강술래를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고양이들은 우리를 끌어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우리는 어깨를 결은 팔에 단단히 힘을 주었다. 빈틈을 보인 누구의 목덜미를 잡아채면 우린 이를 악물고 등허리를 잡고 버텼고, 또 다른 누군가가 허리춤을 내주면 성벽처럼 막아섰다.

“더 힘껏 뭉쳐!”

우리는 입을 모아 외쳤다. 그러곤 서로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한데 엉긴 우리 몸이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서로의 땀 냄새를 맡았고, 거친 들숨과 날숨을 함께 몰아쉬었다.

“영차! 영차!…….”

어느 순간 우리는 어깨동무를 한 채 당찬 구령을 넣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우리 모두는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졌다. 발을 구르며 구령을 맞추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한마당 춤사위 같기도 했다.

“영차! 영차! 영차!…….”

그런 어느 순간 우린 문득 깨달았다. 우리들의 왕따 희돌이도 함께 어깨동무를 한 채 추임새 같은 구령을 보태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것이 전혀 낯설지 않고 외려 든든하게 의지가 되고 있었다.

“석희돌! 간닷!”

어느 순간 또 고양이가 박차고 오르며 소리쳤다. 단숨에 희돌이의 앞자락을 와락 낚아챘다.

“안 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일제히 희돌이를 에워쌌다. 갈퀴 같은 고양이 발톱이 검질기게 옷자락을 훔켜잡고 늘어졌다.

“힘을 모아!”

우리는 그렇게 외치며 당차게 버텼다. 줄다리기 같은 씨름 끝에 결국 우리가 고양이들을 물리쳤다. 이번에도 고양이의 노림이 수포로 돌아갔다.

“휴, 다행이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우리 편을 지켜 냈다는 뿌듯한 희열이 솟구쳤다.

“고마워.”

희돌이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러고는 다시 어깨를 다부지게 겯고 추임새를 보탰다.

“이제 보니 희돌이 이 짜식, 힘깨나 쓰는걸.”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희돌이는 솟는 땀을 훔치지도 않고 더 힘차게 영차 영차를 외쳤다. 운동장 가득 우리들의 우렁찬 구령이 울려 퍼졌다.

“안 되겠어. 너희들의 승리야.”

어느 순간 고양이들이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야호! 우리가 이겼다!”

우린 환호성을 질렀다. 어느 누구도 술래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한 덩어리로 단단히 뭉친 결과였다.

“와! 진짜 신난다. 밀쳐내기놀이 할 땐 막 성질났는데, 이건 정반대잖아. 우리 또 하자.”

이번엔 우리가 고양이들을 보챘다.

“냐아옹~ 갸르르르…… 재미있었다니 다행이야. 언제든 뭉치기놀이는 할 수 있을 테고, 이젠 너희들끼리 해도 충분할 거야. 그리고 이제 우린 가야 할 때야.”

많이 아쉬웠지만 도리가 없었다. 하긴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할 수 없지 뭐. 어쨌든 재미있는 놀이 가르쳐 줘서 고마워. 근데, 너희 고양이들은 어디로 가는데?”

그 말에 고양이들이 모두 갸르르 웃으며 함께 대답했다.

“너희들이 있는 곳과 가까운 곳이지. 야옹~.”

그러더니 먼저 고양이 맘이 희돌이에게로 풀쩍 뛰어올라 가슴에 안겼다. 그러곤 이내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고양이들도 “냐오옹~!” 하며 일제히 우리들 가슴을 향해 냅다 뛰어들었다.

“어엇!”

덴 듯 놀라 우리 모두는 뒤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고양이는 순식간에 우리들 각자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우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고양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단지 맨 처음 고양이가 나타날 때, 서늘하게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았던 가슴이 이제는 쿵쾅거리며 뜨겁게 벅차올랐다. 그제야 우리 모두는 깨닫고 있었다. 진작부터 고양이들이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고양이 숫자가 우리들과 같았다는걸. 그렇게 우리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내내 그 고양이들을 생각했다.

“그 고양이들 정체가 뭘까?”

모두가 묻고 싶은 말을 누군가 했고, 잠시 사이를 두고 희돌이가 그 말에 답했다.

“바로 우리들의 고양이 ‘맘’이지.”


작가소개 / 강정룡

동화집 『수리수리마수리 우리 형』과 장편동화 『우당탕탕! 학교를 구하라』펴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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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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