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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집 열쇠점 딴딴이 아저씨

  • 작성일 2023-03-31
  • 조회수 828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악어집 열쇠점 딴딴이 아저씨

강정룡

“불이야―! 불!”

늦은 저녁, 난데없는 고함이 밖에서 터졌다. 우리 가게 ‘짱구 분식’도 슬슬 문 닫을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어머낫! 이게 무슨 소리야?”

덴 듯 놀란 엄마가 화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홀 탁자에서 숙제를 하던 나랑, 마지막 손님인 고등학생 누나 둘도 떡볶이를 먹다 말고 덩달아 엄마 뒤를 쫓아나갔다. 백조 상가 모든 점포에서 튕기듯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불이라니! 어디야 어디?”

너도나도 홉뜬 눈으로 온 사방을 휘살폈다.

“저기, 옥상께를 봐요!”

처음 불이라고 소리친 사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커먼 연기가 바람을 타고 옥상을 뒤덮고 있었다.

“헉! 저저…… 연기 좀 봐! 후딱 119에 신고해!”

누군가가 소리치자 너나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빨리 조치를 취해야 돼! 까딱 잘못하면 온 상가가 잿더미 된다고!”

상가 번영회 회장인 ‘남해 수산’ 생선 집 아저씨가 벼락같은 호령을 했다. 그 말에 몇몇 사람이 연기의 진원지를 파악하려 상가 저쪽 끝에서 이쪽 끝까지 뛰어다니며 각 점포와 옥상 쪽을 짯짯이 살폈다.

“가만? 이거 암만 봐도 열쇠점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떡집을 하는 ‘찰떡궁합’ 주인아저씨가 형사처럼 손으로 가리켰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봐도 백조 상가 맨 끝에서 두 번째 가게인 ‘악어입 열쇠점’ 옥상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로 보였다. 그 당장에 국밥집 하는 돼지엄마가 악어입 열쇠점 문을 발로 쾅쾅 찼다.

“여봐요! 딴딴이 아자씨! 문 좀 열어 봐. 큰일 났어 빨랑!”

가게 안쪽은 분명 희미하게 전등이 켜져 있는 것 같은데 출입문은 잠겨 있었다. 그때다.

왜앵 왜앵 왜앵―.

득달같이 소방차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바로 이 점포요!”

뛰어내리는 소방대원들에게 일제히 가리켰다. 소방대원 하나가 가게 문을 팡팡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봐요! 안에 사람 없어요?”

얼른 대답이 없자 문짝이 부서져라 다시 두들겼다. 여차하면 커다란 쇠집게로 문을 우그러뜨릴 태세였다. 그때였다. 열쇠점 주인인 딴딴이 아저씨가 저만치 엉뚱한 데서 스쿠터를 몰며 달려왔다.

“뭔 일들이셔?”

딴딴이 아저씨는 천하태평으로 모두를 둘러봤다.

“저 연기는 뭐요?”

“아항! 저거 때문이구먼.”

바짝 긴장한 소방대원과는 달리 아저씨는 너무도 태연하게 대꾸했다.

“긍게, 어제부텀해서 죙일 비가 내렸잖소? 우리가 나무보일러를 쓰는디, 온 집 안이 눅눅해서리 공기 좀 말리려 불을 지폈다 이 말이여. 우리 딸 한아가 고뿔까지 걸렸거든. 시방 약 구하러 갔더만 늦어 허탕을 쳤소. 가만 보니께 장작이 좀 젖어 연기가 독한 것 같으네. 흘흘…….”

“나무보일러요?”

다시 소방대원이 묻자 아저씨는 출입문 한 귀퉁이로 낸 나무보일러 아궁이를 열어 보였다. 안쪽에서 짙은 연기를 피우며 타고 있는 장작이 보였다. 연기가 밖으로 흠씬 뿜어져 나오자 가까이 다가갔던 소방대원이 캑캑 기침을 쏟아 냈다. 그제야 상가 사람들은 전후 사정을 가늠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불이 난 건 아니고, 그냥 연기란 말이지요? 어쨌든 신고가 들어왔으니 경위서를 작성해야 하니까 질문에 응해 주세요.”

또 다른 대원이 그렇게 말하며 딴딴이 아저씨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그러고는 구청 소관이지만 만약 법에 저촉될 시 철거는 물론이고 벌금까지 물 수 있다고 엄중히 덧붙이곤 돌아갔다. 사람들은 냉랭한 눈길로 딴딴이 아저씨를 죄 겨눠 봤다.

“이봐, 딴딴 씨! 당장 젖은 장작 빼. 아, 분진 온통 떡가루에 날리게 생겼잖아!”

열쇠점 바로 옆 가게인 찰떡궁합 주인아저씨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다그쳤다. 보고 있던 돼지엄마도 맞장단을 놓았다.

“아, 딴딴이 아자씨! 거 하다못해 연탄보일러로 바꾸든가 하면 안 돼요? 우리 가게까지 불 냄새 뱄다고 단골들 불평 늘어놓는단 말예요.”

맨 끝 점포이자 열쇠점 반대쪽으로 붙은 돼지국밥집인 ‘돼지엄마’ 주인아줌마가 씨근덕댔다. 백조 상가 사람들은 그 아줌마를 ‘돼지엄마’라고 불렀다.

“우린 아주 밖에다 물건도 못 내놓겠다니까. 온통 그을음 날리니 장사를 할 수가 있어야지. 아유, 지겨워!”

두 집 건너 붙은 ‘온세계 구제의류’ 옷가게 아줌마도 투덜투덜 댔다. 그러자 딴딴이 아저씨가 나무보일러 아궁이 문에 따로 난 작은 뚜껑을 젖히곤 송풍기를 갖다 댔다. 전기 스위치를 올리자 윙 하며 송풍기가 돌아갔다. 옥상으로 달아낸 함석 굴뚝에서 토하듯 새까만 연기가 뭉텅 뿜어져 나왔다.

“저, 저! 이 양반이, 온 상가 숯검정 만들 작정이야?”

‘온화 벽지’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도 방방 뛰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딴딴이 아저씨는 능청스레 대꾸했다.

“인제 걱정들 마셔. 한껏 지펴 놓았은게 연기가 덜 날거구먼. 그라고 불 걱정은 놓으셔. 우리 나무보일러 굉장히 딴딴하게 설계되어 있으니 아무 걱정 없당께.”

그 말에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다.

“에구에구 복장 터져. 딴딴히 하는 거는 하는 거고, 남한테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딴딴이 아자씨~이?”

돼지엄마가 짐짓 울상까지 지어 보였다.

“아따, 그저께 국밥 먹으러 가서 본께 구수하니 나무 연기가 스민 게 국밥 맛이 제대로든데 뭘. 나 또 탁배기 한잔하러 갈 참인 게 좀 참으셔, 돼지엄마. 응?”

딴딴이 아저씨는 어린애 구슬리듯 돼지엄마를 달랬다. 돼지엄마가 가슴팍을 마구 쳤다.

“에구구~ 숨통 막혀. 차라리 벽보고 얘기하는 게 낫지. 푸휴~.”

그러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며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았다. 아까부터 잔뜩 인상을 쓴 채 외로 꼰 눈으로 지켜보던 남해 수산 아저씨가 앞에 나섰다.

“이봐, 딴딴이 양반. 우리 백조 상가에 그쪽 열쇠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상가 이미지가 이렇게 똥칠이 되어서야 누가 찾아오겠냐고?”

“예예, 그럽죠, 회장님. 나(내)가 딴딴히 뒷손 볼 텐게 걱정 놓으셔.”

“허어! 그놈의 딴딴히는 입만 떼면 갖다 붙이기는…… 쩝! 여하튼 상가 번영회를 대표해서 경고하는데, 이런 식으로 자꾸 문제 일으키면 회의를 열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어, 딴딴 씨!”

“글씨, 염려 붙들어 매시라니깐. 우리 백조 상가 번영에 이바지하고저 하는 마음은 누구보담 뒤지지 않는 나랑께여. 딴딴히! 딴딴히! 말이지여.”

번영회 회장 아저씨가 짐짓 점잖게, 그렇지만 따끔하게 으름장을 놓았지만 넉살 좋은 딴딴이 아저씨는 눈도 하나 깜박하지 않고 받아쳤다. 결국 상가 사람들이 된통 눈총만 쏘는 것으로 소동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딴딴히’라는 말은 딴딴이 아저씨의 단골 멘트였다. 말을 주고받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늘 딴딴히라는 말이 붙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호칭조차 아주 ‘딴딴이 아저씨’가 돼 버렸던 것이다.

엄마를 따라 막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 딴딴이 아저씨가 불쑥 날 불렀다.

“야야, 우정아! 너 요새 왜 우리 한필이하고 안 어울리야? 놀러 좀 오고 그래라. 아저씨가 가오리연 멋지게 만들어 주마. 같이 날리고 놀아. 알겠쟈?”

“예에…….”

나는 가오리연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으나, 엄마가 손아귀에 힘을 꽉 주며 내 팔을 끌었다. 가게에 들어온 엄마가 다그치듯 물었다.

“우정이 너, 요새도 한필이랑 어울리는 거니?”

“엄마가 이렇게 딱 갈라놓는데 어떻게 어울려, 어울리긴?”

나는 좀 불만 섞인 투로 대꾸했다. 그게 나는 정말로 이해 못 할 일이었다. 한필이는 나와 같은 학년에다 한 반이다. 게다가 같은 상가에 가게가 있다 보니 자연스레 어울리곤 했다. 그랬는데 그걸 안 엄마가 펄쩍 뛰며 강다짐을 놓았다. 한필이랑 절대 어울리지 말라는 것이다. 하긴 백조 상가 사람들이 한필이 아빠인 딴딴이 아저씨를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건 사실이다. 엄마라고 다를 리 없었다. 상가 사람들뿐만 아니라, 상가 위쪽에 있는 백조 아파트 사람들까지도 딴딴이 아저씨를 거리를 썩 두고 대한다는 걸 애인 나까지 다 느낄 수 있었다. 딴딴이 아저씨가 그렇게밖에 대접을 못 받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백조 상가엔 많은 점포가 있지만 가게 안에서 살림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 닫을 시간이 되면 다들 셔터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한필이네는 집이 따로 없다. 그래서 그 점포에서 의식주를 해결한다. 딴딴이 아저씨는 처음부터 그 좁은 가게를 직접 2층으로 꾸몄다. 1층은 열쇠 가게로 쓰고 다락방처럼 낮은 2층은 잠을 자는 방으로 나눈 거였다. 화장실은 상가 내 공용화장실을 썼는데, 몸을 씻는 것부터 해서 온갖 빨랫감까지 화장실 수돗물을 써 대는 바람에 상가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 왔다. 그렇지만 딴딴이 아저씨가 도맡아 놓고 제집처럼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으로 수도료를 셈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어쨌든 그처럼 궁색하게 사는 딴딴이 아저씨를 동등하게 대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위아래를 막론하고 존대도, 하대도 아닌 어중간한 말투까지 거슬리게 하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무엇보다 한필이네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딴딴이 아저씨를 더 이상하게 보는 데 한몫했다. 그렇더라도 왜 어른들 일에 애꿎은 우리 애들까지 휘둘려야 하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었다.

“엄마, 근데 한필이네 엄마가 왜 없는지 혹시 알아?”

갑자기 호기심이 일어 엄마한테 물었다.

“내가 그딴 거 알 게 뭐니? 쓰잘데없는 그런 걱정할 시간 있으면 책이나 한 줄 더 읽어 인석아!”

엄마가 된통 퉁을 놓았다. 엄마한테 묻는 게 잘못이지 싶었다. 문득 아까 딴딴이 아저씨가 만들어 주겠다던 가오리연이 떠올랐다. 못 하는 게 없는 딴딴이 아저씨란 걸 잘 알기에 잠자리 들어서까지도 가오리연 생각만 났다.

다음 날, 기어코 나는 악어입 열쇠점 한필이네로 숨어들었다. 네 집 건너 있는 우리 가게 엄마 눈을 간신히 피해서다. 우리 짱구 분식 엄마의 음식 솜씨는 솔직히 맛 소문이 자자한 편이다. 언제나 엄마는 바쁘다. 학원 갔다 오면 늘 그랬듯 엄마를 도와야 한다. 솔직히 지겹기도 하다. 오늘처럼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날은 더 그렇다. 나는 한필이와 두 동생 경필이, 한아랑 나란히 앉아 딴딴이 아저씨가 만드는 가오리연을 넋을 놓고 지켜봤다.

“와! 아저씨, 정말 신기해요. 진짜 가오리 닮았어요. 난 죽어도 못 만들 것 같은데…….”

“나면서부터 잘하는 사람은 세상천지 아무도 없당게. 하다 보면 잘하게 되는 거여. 자, 느그들도 나 따라 한번 만들어 봐.”

딴딴이 아저씨는 우리들한테 큼지막한 달력 종이와 댓살을 나누어 주었다. 한필이와 나는 아저씨가 하는 대로 따라 만들어 나갔다. 경필이와 한아는 지레 포기했다.

“이봐요, 딴딴이 아저씨!”

그때 손님이 찾아와 아저씨를 불렀다.

“예예! 나가여!”

딴딴이 아저씨는 짤따란 계단을 타고 쪼르르 1층으로 내려갔다. 한필이 두 동생도 꼬랑지처럼 뽀르르 뒤따랐다. 아마 열쇠를 사러 온 것 같았다. 봉창 같은 쪽문으로 내려다보니 아저씨가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저런 모습은 자주 봐 왔었다. 딴딴이 아저씨는 무조건 돈만 벌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손님이 찾는 용도에 따라 싼 것부터 추천해 주었다. 또한 새 열쇠뿐 아니라 중고 열쇠도 자주 권해 주었다. 사람들은 딴딴이 아저씨를 거리를 두고 대하긴 하지만 열쇠를 달 일이 있으면 희한하게 꼭 아저씨네를 찾았다. 딴 건 몰라도 아저씨는 열쇠에 대해서만은 척척박사였다. 고장 난 열쇠를 수리하는 건 물론이고, 간혹 번호를 맞춰 여는 열쇠를 들고 와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고 맡기는 것도 순 손가락 감각만으로 번호를 찾아내곤 했다. 우리 동네 열쇠 가게가 몇 군데 더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아저씨네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었다.

나는 연을 만들다 말고 댓살을 휘게 해 종이에 붙이는 부분에서 너무 어려워 아저씨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문득 방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구석에 책상 대용으로 쓰는 작은 밥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액자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한필이 너, 어릴 때구나?”

“응. 학교도 들어가기 전 사진이야.”

내가 묻자 한필이가 대답했다. 다시 사진을 보다가 새로운 걸 발견했다.

“어? 이 아줌마는…… 혹시 너네 엄마?”

“맞아. 우리 엄마야.”

그렇게 말하는 한필이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덧붙였다.

“사실은…… 하늘나라로 갔어.”

“뭐어?”

처음 듣는 말이었다. 불현듯 전에 엄마와 동네 아줌마들이 떡볶이를 먹으며 한필이네를 두고 수다를 떠는 걸 설핏 들은 적이 있다. 한필이 아버지가 제대로 가장 노릇을 못 하니까 도망을 갔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입방아를 찧었었다. 나도 막연히 그런 줄로만 여겨 왔다. 한필이가 다시 말했다. 동생 둘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몸이 아파 멀리 요양원에 가 있는 걸로만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좀 더 자라면 그때 아빠가 밝힐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나한테 비밀에 부쳐 달라는 다짐을 놓았다. 나는 한 번 더 사진을 살펴보았다. 사진 속 딴딴이 아저씨는 지금보다 많이 젊어 보였다. 그러다 이상한 게 눈에 띄었다. 여름철이었는지 민소매의 윗도리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며 팔뚝에 시퍼런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한필이가 사진을 돌려세우며 화제를 돌렸다.

“야야, 우리 그러지 말고 아빠가 만든 것 갖고 날리러 가자, 응?”

“으응……? 그래.”

나는 한필이와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날, 엄마와 함께 귀가하려고 셔터를 내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묵직한 자물쇠를 채우려 했는데 아무리 해도 고리 부분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자물쇠가 왜 이 모양이야?”

엄마는 신경질적으로 다시 자물쇠를 채워 보려 했다.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안 되겠다. 우정아, 너 후딱 가서 딴딴이 아저씨 좀 불러와.”

나는 투덜대며 악어입 열쇠점으로 향했다. 그러곤 아저씨를 불러 우리 가게로 왔다.

“아니, 자물쇠가 왜 이 모양이유? 통 말을 안 듣잖아요, 아저씨!”

엄마는 내던지듯 아저씨한테 자물쇠를 건넸다.

“어디 보자…….”

아저씨는 꼼꼼히 자물쇠를 살폈다. 보고 있던 엄마가 답답했던지 다그치듯 말했다.

“아니, 딴딴이 아저씨. 아저씨가 권해서 산 건데 산 지 얼마 되었다고 벌써 고장이래요? 영 못 쓰는 걸 판 거 아녜요?”

딴딴이 아저씨는 들은 척도 않고 엉뚱한 말로 대꾸했다.

“어디, 열쇠 좀 봐여.”

엄마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건넸다. 아저씨는 열쇠를 자세히 살폈다.

“쯧쯧…… 열쇠는 거짓말 안 하는 법이여. 자, 보셔.”

딴딴이 아저씨는 열쇠 끝부분을 엄마 코앞에다 들이밀었다.

“열쇠가 왜요?”

“요기, 끄트머리가 부러져 나갔잖여.”

엄마가 묻자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열쇠 끝을 가리켰다. 덩달아 나도 눈을 꽂았다.

“진짜네. 열쇠 부러졌어, 엄마.”

내 말에 엄마는 놀란 닭처럼 눈만 껌벅였다.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나가 그토록 일렀건만…… 열쇠는 조심스레 다뤄야 한다니까. 이 자물쇠 좀 봐여. 부러진 끄트머리가 자물쇠 구녕에 쑥 박혀 있잖은감? 쯧! 이건 못써. 열쇠를 살살 다루지 않으면 이런 짝이 생긴다니께.”

아저씨의 말에 엄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가 자물쇠에 열쇠를 꽂은 채 아무렇게나 내던지곤 하는 걸 봤었다. 결국 원인은 열쇠가 아니라 엄마한테 있었던 거였다. 엄마는 애꿎은 열쇠에다 화풀이를 했다.

“나 원! 열쇠 쪼가리가 분질러져 자물쇠에 박히는 건 또 생전 처음 보네. 열쇠 공장에선 뭐 이따위로 만들어 냈는지 몰라.”

그 말에 딴딴이 아저씨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뭐든 다 쓰기 나름이지. 일단 다른 자물쇠를 빌려줄 텐께, 그건 날 줘 봐여. 나가 고치는 데까지 해 보고 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새 걸로 바꾸든지.”

엄마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딴딴이 아저씨한테 무안을 당한 게 영 풀리지 않는지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자마자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다. 내가 듣기에도 과장을 좀 보태는 것 같았다. 거기다 어제 그 나무보일러 소동까지 더해 딴딴이 아저씨를 마구 몰아세웠다. 스포츠센터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아빠가 굵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 양반, 나도 그전부터 느꼈는데 말이야. 영 거슬리게 하는걸. 그 열쇠점 때문에 상가 전체 이미지까지 망치고 있다는 소문이던데?”

아빠의 그 말에 엄마가 손바닥을 쳐대며 맞장단을 놓았다. 아빠가 수저를 탕 소리 나게 놓으며 말했다.

“언제 한번 걸리면 본때를 봬 줘야겠어!”

아빠는 우두둑하며 손가락 꺾는 소리를 냈다. 나는 아빠가 딴딴이 아저씨와 진짜 주먹다짐이라도 벌일까 봐 겁이 더럭 났다.

“아빠, 설마 딴딴이 아저씨랑 맞짱 뜨려고 하는 건 아니지? 그 아저씨 보기보다 굉장하다고. 온 팔뚝에 문신이란 말이야.”

“무어?”

아빠 엄마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날 돌아봤다. 순간 아차차 싶어 내 입을 틀어막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우정이 너, 그게 무슨 말이니? 문신이라니, 응?”

엄마가 형사처럼 캐물었다.

“우정이 너, 똑바로 말해라.”

아빠까지 매서운 눈으로 날 을렀다.

“응, 그 그게…… 한필이가 그랬어. 자기 아빠 몸에 문신했다고…….”

나는 턱도 없는 거짓말을 했다.

“근데, 절대 말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나는 왠지 한필이한테 미안해져 그렇게 덧붙였다. 엄마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랬어, 그랬다고. 이 작자 뭔가 구리더만 다 까닭이 있었어. 뒷골목 출신이라 그랬던 거야. 그러니까 그 열쇠도 다 그 작자 농간일 거야. 엉터리 열쇠 권하고선 많이 팔아먹으려는 수작이었어.”

엄마는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단정을 지었다. 아빠가 좀전의 기세와는 달리 침착하게 엄마에게 말했다.

“좌우간 그 작자 상종도 말어. 몸에 문신까지 한 걸 보면 조직들이 아직 있을지 모른다고. 일단 예의주시하다가 뭐 하나 제대로 걸려들면 그때 가서 아주 결단을 내던가 해야겠어. 그러니 우정이 너하고 당신, 그 작자 문신 있다는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명심해.”

엄마와 난 알았다고는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대로 그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어? 문신!”

“어머머! 어머머! 세상에……!”

우리 가게 단골로 오는 아줌마들한테 화젯거리는 단연 딴딴이 아저씨였다. 탁자 한구석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내가 있는 줄도 모르는 듯 입방아를 찧어 댔다.

“그럼 그게 사실이었네. 우리 애 아빠가 언젠가 목욕탕에서 만났는데, 그 작자 문신 있는 걸 딱 발견한 순간 벼락같이 탕 속에 쏙 들어가선 안 나오더라는 거야. 괜한 화 입을까 입 꾹 닫고 있었는데 인제 완전 들통 다 났구먼.”

나는 일이 점점 더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한필이한테 미안해졌다. 내가 보기에는 딴딴이 아저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딴딴이 아저씨를 노골적으로 꺼리는 눈치였다. 나는 나대로 뒤가 켕겨 줄곧 한필이를 피했다. 그런 조마조마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기어코 백조 상가 전체에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 달에 한 번, 상가 전체가 휴무로 정한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맞는 휴일이라 죄 잠에 빠져 있던 우리 집에 불한당처럼 전화가 울렸다. 그 이른 아침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엄마가 펄쩍 뛰었다.

“당신 일어나 봐! 상가에 일 났어. 글쎄 도둑이 들었대!”

그 말에 아빠가 덴 듯 놀라 몸을 일으켰다. 나 또한 잠이 확 달아났다. 그 당장 아빠 차를 타고 상가로 내달렸다. 상가 앞엔 벌써 경찰차가 와 있고 상가 사람들도 죄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 엉?”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가 아무한테나 대고 물었다.

“글쎄, 간밤에 도둑이 들었대잖아. 간도 크게 두 곳이나 털어 갔대.”

“누구네야, 누구……?”

엄마가 그렇게 묻는 순간이었다.

“이를 워째, 이를 워째. 우리네 닭 싸그리 훔쳐 갔네잉.”

닭집을 하는 ‘꼬꼬네’ 주인아줌마였다. 누군가 열쇠를 뜯고 들어가 냉장고에 들어 있던 생닭을 죄다 훔쳐 갔다는 것이었다. 요새 돼지 병 때문에 닭값이 두 곱절인가 세 곱절인가 뛰었다고 누가 맞장구를 쳐 댔다.

“또 한 집은 어디래?”

엄마 아빠가 점포 전체를 쫙 훑었다.

“야! 이 도둑놈아! 가져갈 게 없어 그래 떡을 다 훔쳐 가냐 앙!”

찰떡궁합 주인아저씨였다. 아저씨네 셔터의 열쇠도 보기 흉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경찰관 아저씨가 앞으로 나섰다.

“자자, 우선 현장 조사부터 해야 하니까 진정들 합시다.”

경찰관 아저씨는 이곳저곳 사진도 찍고 피해 규모 등을 확인했다.

“글쎄, 우리 가게도 털려고 그랬나 봐요. 자물쇠가 우그러져 있지 뭐예요.”

‘까끌래뽀끌래’라는 상호를 단 미용실 누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미용실에 뭐 훔칠 게 있다고?”

“그게 아니라니깐요. 미용 기계가 얼마나 비싼데.”

누군가가 묻자 누나가 정색을 하고 받았다. 어느 틈엔가 딴딴이 아저씨도 사람들 사이에 끼어 기웃거리고 있었다. 미용실 누나가 생각난 듯 말했다.

“내가 자물쇠를 잘 바꾸었지. 열쇠가 영 시원찮아 한길 쪽에 있는 큰 열쇠 가게에서 얼마 전에 새로 달았다니깐요.”

그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딴딴이 아저씨를 돌아다봤다. 떡집 아저씨가 씨근덕대며 나섰다.

“이봐, 딴딴 씨!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딴 집 자물쇠 채운 가게는 괜찮고, 그쪽 집 자물쇠는 털리고 나, 당신네 가게서 열쇠 한 거 당신이 더 잘 알지? 이거 어떻게 된 거냐고 앙!”

떡집 아저씨는 마치 딴딴이 아저씨가 범인이라도 되는 양 다그쳤다. 듣고 있던 꼬꼬네 아줌마도 나섰다.

“그거 참 요상하네잉. 아, 우리도 악어입 열쇠점에서 사다 단 거 딴딴 씨도 잘 알지라이? 어디 싸게 대답 좀 해 보드라고잉!”

일이 그쯤 되자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심의 눈초리로 딴딴이 아저씨를 겨누기 시작했다. 그러자 경찰관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자자, 조사는 우리가 철저히 할 겁니다. 무턱대고 사람 의심하면 안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경찰관 아저씨도 면도날 같은 눈매로 딴딴이 아저씨를 쓱 훑었다. 한참을 현장 조사를 한 경찰관이 돌아갔다.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호출할 수도 있으니, 불편하더라도 경찰서로 출두해 주길 바란다는 단서를 남기고서였다. 그렇게 경찰관은 돌아갔지만, 사람들은 그대로 물러설 기색이 통 없는 듯했다.

“이봐, 딴딴 씨!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 봐. 우리가 그쪽을 의심 안 하게 생겼는지, 엉?”

“만약 그렇다면 자수하는 게 이로울거요잉. 애들 봐서라도 말이지라.”

떡집 아저씨의 말에 꼬꼬네 아줌마가 대놓고 맞장구를 놓았다. 우리 가게는 멀쩡했지만, 지난번 그 자물쇠 건으로 꽁하고 있던 엄마도 거들었다.

“이거 고양이한테 생선 맡긴 격 아닌가 몰라. 까놓고 말해서 악어입 열쇠 안 쓰는 사람 여기 몇이나 있대요? 저기 미용실 말고 또 누가 있지요?”

사람들은 서로를 둘러보았다. 미용실까지 합쳐 두 곳 말고는 죄 딴딴이 아저씨네 열쇠를 쓴다는 말이었다. 벌써부터 벼르고 있던 아빠가 기세등등하게 딴딴이 아저씨 앞으로 다가섰다.

“자, 이걸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당신 정체를 의심스러워하는 사람 한둘이 아니오. 여기 백조 상가 사람들 죄다 당신을 배척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소? 어디 정체를 좀 밝혀 보시오.”

“아, 있는 그대로 다 털어! 딴딴이 당신, 조폭 출신 아녀? 몸에 문신도 있다며!”

아빠의 말에 이번엔 ‘우뚝우뚝 식육점’ 아저씨까지 가세했다. 딴딴이 아저씨네 열쇠를 쓰지 않는다는 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식육점과 큰길에 있는 ‘행운 열쇠점’은 듣기로 사촌지간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사촌과 같은 업종에 있는 악어입 열쇠점을 당연히 껄끄럽게 여길 거라는 것은 애인 나도 단박에 눈치챘다. 그래도 딴딴이 아저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왜소한 몸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번영회 회장인 남해 수산 생선 집 아저씨가 짐짓 차분한 얼굴로 딴딴이 아저씨에게로 다가선 건 그때였다.

“이봐, 딴딴 씨! 사람은 누구나 견물생심에 혹할 수 있어. 실수를 할 수 있단 말이지. 인간이 왜 짐승과 다른 줄 알어?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뉘우칠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죗값을 치르고 담부터라도 똑바로 살아간다면 아, 누가 뭐라고 할 건가 말일세. 인간이라면, 그걸 모른대서야 한낱 짐승과 다를 바 뭐가 있겠는가? 안 그런가?”

그렇게 번영회 회장 아저씨가 차분하면서도 위엄 있게 구슬리듯 말했다. 이제는 모두들 숫제 딴딴이 아저씨가 당연히 범인인 것처럼 몰고 갔다. 딴딴이 아저씨는 그래도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붙박인 듯 그대로 바닥만 응시한 채 꼿꼿이 서 있었다. 마침 폐지를 모으는 할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며 끼어들었다.

“내가 오지랖인지 모르지만서두 할 말은 해야겠구먼. 이보슈 열쇠점 양반, 내 늦게까지 박스 줍는 거 알지라? 어제 늦게 상가 돌다가 본께 그쪽이 이 가게 저 가게 셔터 자물쇠를 만지작거리는데 그건 뭣 때문이유? 한두 군데도 아니고 상가 전체를 돌더만?”

“예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이봐, 딴딴이! 당신 짓이라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이래도 발뺌할 거야! 앙!”

떡집 아저씨가 쐐기를 박듯 윽박질렀다. 그예 딴딴이 아저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누구도 겨냥하지 않는 두 눈에선 불길이 이글거리는 듯했다. 순간 딴딴이 아저씨가 두 주먹을 부르쥐었다.

“제발! 제발 그만들 해!”

아저씨 입에서 벽력같이 터져 나온 소리였다. 사람들은 움찔하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이어 아저씨는 거친 동작으로 윗도리를 벗어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의 양 팔뚝이며 어깨, 등짝에까지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저, 저……!”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아저씨만 주시했다.

“맞어. 나가 이런 사람이여! 한때 잘못된 길로 빠져 죗값도 치른 나란 말이여. 마누라가 왜 없는 줄 알어? 죽었어. 강도한테 당했단 말이야―!”

아저씨는 울부짖음 같은 소리를 토해 냈다. 사람들은 놀란 눈을 끔벅이며 손으로 벌어진 입을 가렸다. 다시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인제 마음잡고 새로 세상 살고 있어. 나가 왜 열쇠쟁이가 된 줄 알어? 나으 마누라를 지켜 주지 못한 죄책감이고, 당신네들 안전을 생각한 나 나름대로의 새 삶이라구!”

아저씨의 목청이 온 상가를 쩌렁쩌렁 울렸다. 딴딴이 아저씨는 거기서 그치질 않았다.

“저 할멈 말이 맞어. 나으 가게 악어입 열쇠를 써 준 당신네들한테 고마웠어. 열쇠 망가지지 말라고 어젯밤에 열쇠마다 죄 기름칠을 했어. 그게 그리 잘못된 거야? 경찰이 다녀갔으니 인제 도둑놈은 잡히겠지. 그때 보면 알겠지. 누가 도둑인지!”

그 말에 몇몇 사람이 자기네 점포에 달린 자물쇠를 확인했다. 문득 지난번 우리 가게의 망가진 자물쇠 대신 빌려준 중고 자물쇠가 떠올랐다. 온통 기름을 먹여서인지 새것처럼 번들번들 윤이 났었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말을 토해 냈다.

“다들 제발 색안경 끼고 보지 말어. 그렇게 몰지들 말라구. 그러는 당신들은 참말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 있는 거야?”

그러면서 아저씨는 찰떡궁합 아저씨 앞으로 대뜸 다가섰다. 떡집 아저씨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봐, 떡집! 당신네 가게는 순 우리 쌀로만 써서 떡을 만든다고 했지라? 헌데, 중국산 쌀 포대가 왜 그쪽 떡집에서 나오는 건감? 맞어.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어. 허나, 실수도 자주 하면 그건 실수가 아니지. 그래도 나가 아무도 모르게 숨겼어. 언젠가 조용히 말을 전하려 했지. 그러지 말라구. 나으 말이 거짓부렁인지 아닌지 감춰 둔 쌀 포대들 증거로 한번 내놔 볼까?”

그 말에 찰떡궁합 아저씨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마른침만 삼킬 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것은 곧 딴딴이 아저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일순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이 한꺼번에 떡집 아저씨한테로 쏟아졌다. 궁지에 몰린 생쥐처럼 아저씨가 눈 둘 곳을 몰라 쩔쩔맸다. 딴딴이 아저씨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온세계 구제의류 옷가게 아줌마를 돌아봤다.

“아줌마네 구제 옷은 죄 외제라며? 헌데, 헌옷수거함 양반 옷은 왜 받는 거지? 아줌마가 그 작자와 거래하는 거 내 모를 줄 알어? 그 옷이 요상하게 어떻게 죄 외제로 둔갑하느냐 말이야?”

아줌마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얼음장 같은 사람들의 눈길이 이번엔 구제 옷 아줌마한테로 몰렸다. 어쩔 줄을 몰라 허둥대는 아줌마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딴딴이 아저씨는 몸을 돌려 아까 자신을 몰아세우던 우뚝우뚝 식육점 아저씨를 가리켰다.

“이봐, 식육점! ‘한우 100프로’라는 글귀는 지우지 그래. 당신 집에 고기 대 주는 소매점, 그쪽서 칼질하는 작자랑 잘 알지. 감방에서 같이 보냈으니 말이야. 당신네 그 고기가 순 한우인지, 아닌지 당신이 더 잘 알걸?”

식육점 아저씨는 아까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시뻘게진 얼굴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그리고 딴딴이 아저씨는 뜻밖에도 엄마를 돌아봤다. 엄마가 제풀에 흠칫 놀라는 기색이 되었다.

“이것 봐여, 우정이 엄마! 다른 사람들 죄 음식쓰레기 종량제 해서 내놓아. 그깟 비용 얼마 든다고 음식 찌꺼기 하수구 구멍에다 몰래 버리는 거여? 우리 가게 앞 맨홀 뚜껑 안쪽에 한번 봐여. 당신네 가게서 내버린 음식 찌꺼기 죄 쌓였어.”

“어머머! 어머머!…….”

엄마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게 다였다. 엄마 얼굴은 떡볶이 국물 같은 색깔로 변해 있었다. 아빠 또한 손으로 긁는 척하며 낯을 가리기에 바빴다. 덩달아 나까지 벌렁벌렁 가슴이 뛰었다. 딴딴이 아저씨가 상가 사람들을 쭉 돌아보았다. 아무도 아저씨의 눈길을 똑바로 대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해 수산 생선 집 아저씨한테로 다가갔다.

“이보셔, 번영회 회장님. 당신헌테도 할 말 좀 해야겄소. 앞으로 사람 차별하지 마셔. 우리 백조 상가 번영회 단합대회에 왜 매번 나만 쏙 빼는 거여? 나도 엄연히 회원이고 회비 꼬박꼬박 물고 있단께!”

아까의 근엄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생선 집 아저씨는 가자미처럼 눈을 엉뚱한 데로 돌리기만 했다. 그때였다.

“엄마―! 엉엉…… 흑흑…….”

난데없이 누군가 울음을 터뜨렸다. 언제 와 있었는지 몰라도 한필이 두 동생 경필이와 한아였다.

“우리 엄마 안 죽었단 말이야!”

“엄마 살려내! 엄마! 엉엉엉―.”

둘은 엄마에 관한 비밀을 기어코 알아챈 것 같았다. 두 아이의 울음소리가 상가 저 안쪽까지 울려 나갔다. 그런 두 동생을 한필이가 바짝 끌어안았다. 히뜩 한필이가 날 넘어다봤다.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도저히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죄 상가 한쪽 구석으로 몰려 서 있었다. 어느 누구도 딴딴이 아저씨를 비켜 빠져나갈 생각을 못 하는 것 같았다.

작가소개 / 강정룡

동화집 『수리수리마수리 우리 형』과 장편동화 『우당탕탕! 학교를 구하라』펴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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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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