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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알 속 멧돼지

  • 작성일 2023-03-17
  • 조회수 568


[아르코문학창작기금 - 동화(단편)]



오드

초코알 속 멧돼지



빠앙. 빵! 빵빵!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려 댔다. 고개를 돌려 보니 검은색 승용차가 가던 길을 멈춰 섰다.

“너희들 왜 찻길에서 노니? 위험하게! 놀이터 가서 놀아!”

운전석 창문을 반쯤 내린 아줌마가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지나간 차가 벌써 세 대째다. 나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쳇,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뭐 놀이터에서 놀기 싫어서 이러는 줄 아나.”

이미 자동차는 우리를 지나쳐 저 멀리 가고 있었다. 민재가 장난감처럼 작아진 자동차 뒤통수를 향해 고개를 흔들며 혀를 쏙 내밀었다. 나와 민재는 도로 갓길에 앉아서 나누던 몬스터 카드를 대충 주머니에 집어넣고 일어났다. 돈을 합쳐서 산 몬스터 카드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반으로 나눌 장소가 필요했다.

“산책로 입구로 가 볼래?”

민재가 엉덩이에 묻은 흙을 손바닥으로 툴툴 떨면서 말했다.

“산책로? 음…….”

“왜? 싫어?”

“아니, 아니. 가자. 누가 먼저 도착하나 달리기 시합할까?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히드라 카드 갖는 거다. 시이이작.”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냅다 달렸다.

“이도윤, 이거 반칙이잖아!”

민재도 애가 달아서 빠르게 쫓아왔다.

“앗싸. 내가 먼저 도착했지롱.”

민재가 씩씩거리며 산책로 입구 계단에 뒤따라 도착했다. 산책로는 동네 뒷산과 연결되어 있다. 운동 기구들이 꽤 있어서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어린이는 보호자 없이 운동 기구를 사용할 수 없음’이라고 적힌 팻말이 운동 기구마다 세워져 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사는 어떤 아이가 운동 기구를 잘못 사용해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그 뒤로 엄마는 내가 산책로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야! 이도윤. ‘시이이’ 하면서 먼저 뛰는 게 어딨어? 이거 무효야 무효. 다시 해.”

히드라는 몬스터 중에 가장 크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몬스터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민재가 순순히 포기할 리가 없다.

“음…… 그럼,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 어때?”

그제야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계단을 먼저 오르는 사람이 히드라 카드를 갖기로 했다. 히드라 카드는 내 것이 되었다가 민재 것이 되었다가 엎치락뒤치락했다. 나는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민재 너 뭐 낼 거야? 난 이번에 무조건 보자기 낸다. 진짜야 진짜.”

갑자기 훅 들어간 내 교란작전에 민재가 당황한 듯했다. 나는 킥킥 웃으며 등 뒤에 숨겨 둔 주먹에 힘을 줬다. 그때 계단에서 내려오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아들끼리 여서 놀면 위험하데이. 가뜩이나 요즘 멧돼지 나온다 카던데 여서 놀지 말고 느그 놀이터로 가서 놀그라.”

하아…… 또 놀이터…… 있지도 않은 놀이터라는 말만 오늘 네 번이나 들었다. 만들어 줄 것도 아니면서 계속 놀이터로 가라고 하니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

“놀이터가 있어야지 놀이터에서 놀죠! 없어요. 없다고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러 버렸다. 할아버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봤다. 나는 일부러 쿵쿵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다.

“요즘 것들은 뭐 저래 버르장머리가 없노. 허, 참.”

민재와 나는 다시 우리 빌라로 향했다. 민재가 내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평소 같으면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칠 민재도 오늘따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터덜터덜 빌라에 도착했다. 힘없이 손으로만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갔다.

민재와 나는 같은 빌라에 산다. 내가 유치원 들어갈 때 우리 가족은 이 빌라로 이사 왔다. 내가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니깐 벌써 6년째 이 빌라에 살고 있다.

엄마는 서울에서 살다가 이런 시골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좋았다. 빌라 구석에 작은 놀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매일 놀이터에서 놀았다. 나는 놀이터에서 과자도 먹고, 그네도 타고, 숙제도 했다. 영어 학원에서 돌아올 민재를 항상 놀이터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서로 비밀이 없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놀이터에서 항상 이야기했으니깐. 빌라에는 아이들이 많이 없어서 놀이터는 항상 민재와 나의 전용이었다. 무려 6년이나 된 우리의 아지트였다.

그런 아지트에서 지난달 쫓겨났다. 최근 마을 곳곳에 멧돼지가 나타나 길가에 세워 둔 자동차를 망가뜨렸다. 길가에 주차한 자동차들을 모두 빌라 안으로 주차하자 빌라 안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놀이터를 없애 버린 것이다. 우리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나는 멧돼지가 너무 싫다. 길 가다가 만나기라도 한다면 실컷 두들겨 패 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멧돼지가 사는 산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면 좋겠다. 놀이터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멍청한 멧돼지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다. 아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멧돼지도 멧돼지지만 어른들도 밉다.

‘주차장이 부족하면 자동차를 줄이면 되잖아.’

나는 바닥에 있는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세게 찼다.

현관문을 열어 보니 흙 묻은 아빠 신발이 보였다. 잠시 후 아빠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면서 욕실에서 나왔다.

“도윤이 왔어? 엄마는 오늘 야근이래. 우리, 마트에 가서 닭튀김 사다가 먹을까?”

아빠가 내 얼굴을 보더니 한마디 더 붙였다.

“이런, 우리 아들 얼굴에 왜 이렇게 심술이 가득하지?”

“몰라. 아 진짜 짜증 나.”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빠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빠, 마트 가면 초코알 사 줄 거야?”

아빠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더니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초코알은 달걀 모양으로 된 초콜릿 과자다. 겉을 싸고 있는 초콜릿을 이로 깨면 안에서 몬스터 장난감이 나온다. 엄마는 이 썩는다고 잘 사 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초콜릿 과자가 아니라 안에 들어 있는 몬스터 장난감인데…….

이번에 초코알에서 히드라 장난감이 나오면 히드라 카드는 민재에게 양보할 생각이다. 오늘 기분이 영 별로였는데 초코알을 생각하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아빠와 나는 가로로 파란 줄무늬가 그어진 커플 슬리퍼를 신고 쇼핑몰로 향했다.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이라 해가 떨어지면 초가을이라도 춥다. 맨발로 신은 슬리퍼 안으로 차가운 바람이 숭숭 들어와 발가락을 사정없이 때리고 지나갔다.

쇼핑몰은 한 달 전에 오픈했다. 엄마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쇼핑몰이 생겨서 정말 좋다고 했다. 엄마는 허풍이 심하다. 쇼핑몰에 가려면 적어도 5분은 걸어야 하는데 말이다.

“도윤아, 산길 위험하니깐 꼭 큰길로 다녀야 하는 거 알지? 벌써 멧돼지가 세 마리나 잡혔대. 지난주에도 길가에 주차한 영수네 자동차 망가뜨려서 난리였잖아. 이젠 빌라 안에 주차하는 것도 경쟁이 치열해져서 겁난다니깐.”

아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아, 진짜! 멧돼지 짜증 나! 그 돼지 놈들 때문에 우리 놀이터도 없어진 거잖아. 산에 사는 멧돼지가 산에서 살면 되지 왜 인간이 사는 곳까지 내려와서 피해를 주는 거야. 짜증 나게!”

멧돼지 때문에 없어진 놀이터를 생각하니 다시 부아가 치밀었다.

쇼핑몰이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조용한 마을에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불빛과 밤늦게까지 들리는 음악 소리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 이제는 동네 어디에서나 보이는 쇼핑몰이 익숙하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쇼핑몰 입구는 둥그런 광장으로 되어 있다. 크고 작은 행사를 많이 해서 마을 사람뿐 아니라 다른 동네 사람들도 많이 온다. 한쪽에는 온갖 세일 상품이 매대에 널려 있다. 엄마는 쇼핑몰에 오면 사지도 않으면서 항상 매대에 있는 물건을 뒤적거린다. 3층으로 된 쇼핑몰에는 커피숍, 옷 가게, 음식점, 미용실 등 없는 게 없다. 우리 가족이 가장 자주 가는 곳은 1층에 있는 마트이다.

아빠가 마트 입구에 있는 노란 바구니를 들었다. 입구 유리문이 열리자 상큼한 과일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저녁 7시부터 할인하는 닭튀김 코너로 향했다.

“아빠, 난 지난번에 먹은 간장양념으로!”

이렇게 말하고 나는 과자 코너로 뛰어갔다. 알록달록 포장 옷을 입은 과자들이 ‘나를 데려가’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드디어 초코알이 있는 곳으로 갔다. 전설에 나오는 신비한 새가 금방 낳고 간 알처럼 초코알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콜릿 속 장난감은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알 수가 없다.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한다. 고민 끝에 가장 반짝이는 초코알을 손으로 잡았을 때였다.

“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여자 비명이 들렸다.

“도윤아, 이도윤 어딨어?”

아빠가 나를 발견하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지금 밖에 메, 멧돼지가 나타났어.”

아빠가 내 손을 잡고 쇼핑몰 입구 유리문 쪽으로 이끌었다.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로 웅성거렸다. 밖에는 시커멓고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대고 있었다. 작년 체험학습 때 본 분홍색 돼지랑은 차원이 달랐다. 몸집이 어른 남자보다 크고 짙은 갈색 털이 바늘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었다. 분홍색 돼지는 귀여웠는데 멧돼지는 무시무시했다.

‘히드라도 실제로 있다면 저렇게 무섭겠지?’

그러고 보니 등이 울퉁불퉁하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있는 몬스터 히드라 같기도 했다. 초록색 마트 조끼를 입은 직원이 공구 상자를 들고 뛰어왔다. 직원이 뛰는 움직임에 반응해서 유리문이 활짝 열렸다.

“으아우.”

사람들이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마트 직원은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리지 않도록 조치했다. 더 이상 유리문은 열리지 않았다.

“네네. 덩치가 엄청난 녀석이에요. 빨리 좀 와 주세요. 손님들한테는 그렇게 주의시킬게요.”

다른 직원이 119에 신고했다.

“여러분,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고요. 멧돼지가 흥분하면 위험하니깐 사진은 찍지 마세요. 곧 119가 도착할 겁니다.”

몇 분 뒤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차는 보이지 않고 하얀 옷을 입은 119 대원들이 한 걸음씩 조심히 쇼핑몰 쪽으로 걸어왔다. 멧돼지는 경계하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갑자기 크게 울부짖었다.

“끼이이이욱끼이이이.”

119 대원이 쏜 마취 총에 맞은 것이다. 마취 총에 맞은 멧돼지는 흥분해서 날뛰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멧돼지에게는 마취 총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매대며 광고 입간판이며 눈앞에 있는 건 모조리 머리로 박아서 부숴 버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마트 입구 유리문 쪽으로 달려왔다.

“으아아아악, 이쪽으로 온다.”

유리창에 붙어서 마트 밖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기겁하며 마트 안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쿠쿠쿵쿵.”

“으아아아앙.”

“엄마아아아아.”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넘어져서 우는 아이도 있었다.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나도 아빠 손을 잡고 마트 안쪽으로 달렸다. 아까 고른 초코알을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꽉 줬다.

“탕!”

쇼핑몰 전체가 울릴 정도의 강하고 짧은 소리가 났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멧돼지가 총에 맞았다.”

그 소리에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안도의 한숨 소리도 들렸다. 사람들은 다시 쇼핑몰 입구 유리문으로 향했다. 멧돼지가 총에 맞아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멧돼지 배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니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쓰러진 멧돼지를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휴 놀라라. 마취 총 쏘기 전에 그냥 총으로 쏴 버리지.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할 뻔했어요. 휴우.”

한 아줌마가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길게 내뱉었다.

“맞아요. 맞아.”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때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멧돼지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멧돼지가 사는 곳에 산 깎고 쇼핑몰 짓고 하니깐 녀석들이 갈 곳이 없으니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거 아니여. 아무리 짐승이라도 무조건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아니지. 아이고, 저 불쌍한 것…… 쯧쯧.”

손뼉을 치며 환호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어린아이를 안고 있던 아저씨가 말했다.

“맞아요. 산에 있는 도토리며 산나물은 죄다 캐 오고…… 이제 곧 추워지면 산에 먹을 것도 부족할 텐데 뭔가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

‘아, 멧돼지도 쫓겨난 거였구나. 원래 멧돼지가 살던 곳에서…….’

멧돼지를 보니 꼭 내 신세랑 다를 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놀던 놀이터가 없어져서 이곳저곳 어슬렁거리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쓰러진 멧돼지 눈이 슬퍼 보였다. 그 눈이 왠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갑자기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더 이상 멧돼지 배는 오르락내리락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흩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다시 물건을 골라 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더니 눈물이 하염없이 나왔다.

아빠가 내 등을 토닥여 줬지만, 눈물은 멈춰지지 않고 계속 나왔다. 멧돼지는 들것에 실리고 나는 아빠 등에 업혀서 쇼핑몰을 빠져나왔다. 손에 든 초코알을 보니 멧돼지를 초코알 속에 묻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깰 수 없는 단단하고 커다란 초코알 속에.

“아빠 멧돼지는 쇼핑몰에 왜 왔을까?”

“그러게. 우리처럼 마트에 뭐 사러 왔나. 하하.”

아빠가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나를 쳐다보던 멧돼지 눈빛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산에 먹을 것이 없어 정말 마트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죽은 멧돼지 말이야. 산에서 가족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해?”

아빠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 도윤이 죽은 멧돼지가 불쌍해 보였구나.”

아빠가 업혀 있는 내 엉덩이를 톡톡 두드렸다. 오늘 산 초코알은 속에 어떤 몬스터가 들어 있는지 모르지만 깨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빌라 입구에 도착하자 아빠 등에서 내렸다.

“도윤아.”

멀리서 주차를 끝낸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나는 엄마한테로 뛰어가 와락 안겼다. 따뜻했다. 멧돼지도 산속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가 내 손에 있는 초코알을 보며 말했다.

“요 녀석, 초코알 이 썩는다고 먹지 말라고 했는데 또 샀네?”

나는 손바닥을 폈다. 아까부터 초코알을 너무 꽉 잡고 있었는지 초코알이 다 짓물러져 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져 있었다. 그리고 깨진 틈으로 빼꼼히 나온 히드라가 내 눈을 바라보았다.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 나왔다.

작가소개 / 오드

제15회 소천아동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후끈후끈 고추장 운동회>, <초록 언덕 토끼 점빵>, <외계인 게스트하우스>가 있습니다.

《아르코문학창작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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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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