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글틴에서 맺은 문학 이야기 – 감상&비평 멘토와 멘티의 만남

  • 작성일 2018-09-01
  • 조회수 1,775

[글틴 - 인터뷰]



글틴에서 맺은 문학 이야기
감상&비평 멘토와 멘티의 만남



ㅇ 인터뷰어 : 허희
ㅇ 인터뷰이 : 최윤영(필명-최이수안)







2016년 9월부터 2018년 8월까지, 저는 글틴 감상&비평 게시판 멘토로 활동했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멘토라는 이름에 걸맞게 글틴 여러분께 많은 도움을 드렸는가에 대해서는 자신하기 어렵네요. 첫인사를 남기며 저는 이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쉽게 쓰는 감상보다는 다양하게 고민하는 비평을 지향하는 감상&비평 게시판'을 만들고 싶다고요. 양적 증가보다는 질적 성장을 목표로 한 야심 찬 포부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글틴 여러분께 지나친 부담을 준 건 아니었는지 뒤늦게 반성하게 되네요. 새로 감상&비평 게시판 멘토로 오시는 선우은실 선생님은 예리한 비평 감각과 친근한 소통 능력을 갖춘 분이니, 제가 멘토로 있던 때보다 더 역동적인 글틴 공간을 만들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멘토 임기 종료를 앞둔 저에게 글틴 운영 주체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제안이라기보다 커다란 선물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감상&비평 게시판에 작품을 올렸던 멘티와 멘토 간에 대화의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떠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멘토 임기를 마무리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이벤트가 있을까요. 저는 바로 승낙했습니다. 그리고 대담을 나눌 멘티는 최근 감상&비평에서 두 번이나 월장원을 거머쥔 최이수안 님이 섭외가 되었지요.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는데 흔쾌히 인터뷰 수락을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럼 아래에 최이수안 님과 제가 나눈 문답 내용을 옮겨 놓으려 합니다. 편히 즐겨 주세요.


*


ㅇ 일 시 :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오후 2시
ㅇ 장 소 : 서울 아르코미술관 2층 회의실  





글틴문학당에서 글틴으로


허희(이하 허) : '최이수안'이라는 닉네임은 어떻게 정하게 됐나요?


최이수안(이하 최) : 큰 뜻은 없어요. (웃음) 우선 '최이'는 아빠 성과 엄마 성을 가져온 거고요. '수안'은 제가 예전부터 필명으로 쓰려고 생각해둔 이름이었습니다.


허 : 글틴은 어떤 계기로 알게 됐어요?


최 : 작년 여름 수원에서 열린 '글틴 문학당'에 참가하면서부터요. 그때 선생님도 뵈었고요.


허 : 아, 그렇군요. 글틴 문학당을 연 목적은 여러 가지였는데, 그중에는 글틴 홍보도 있었습니다. 최이수안 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글틴 문학당을 한 보람이 있네요.


최 : (웃음)


허 : 다른 글틴 친구들의 글도 읽어 보나요?


최 : 네. 소설과 비평 게시판에 주로 많이 들어가요.


허 : 어때요? 다른 친구들이 쓴 작품들이.


최 : 잘 쓰는 친구들이 진짜 많은 것 같아요.


허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글이 있나요?


최 : 감상&비평 게시판에 있는 「패러다임의 창조(토머스 s.쿤, '과학 혁명의 구조')」라는 글이요.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허 : 소설 게시판에도 들어간다는 걸 보니, 소설 창작에 관심이 있나요?


최 : 네. 제 꿈이 소설가 겸 극작가거든요.


허 : 그러면 진로도 그쪽 공부와 연관된 쪽으로 생각 중이겠네요.


최 : 문예창작학과를 지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를 쓰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입시를 위한 짧은 소설을 쓰고 있어요.


허 : 글틴에도 소설을 올렸나요?


최 : 네. 그중 하나는 좀 '병맛 스타일'이었어요. 제가 좋아해서 쓰긴 했는데 댓글로는 혹평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또 하나 올렸었는데 퇴고를 잘못해서인지 그다지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허 : 감상&비평에서는 딱 두 편의 글을 올렸었는데, 두 편 다 장원으로 선정됐잖아요.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최 : 뿌듯했지요. (웃음)


허 : 본인의 재능이 창작보다는 비평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안 들었나요?


최 : 그렇다기보다 비평은 어떤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길잡이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는 난해한 소설 뒤에 실려 있는 해설을 읽으면서 비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고 하잖아요. 비평 덕분에 좀 더 소설에 밀착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월장원에 뽑힌 두 편의 감상&비평에 대하여


허 : 「불행한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바치는 위로의 자장가/판의 미로 감상」(2018년 5월 27일)이 처음 쓴 감상&비평이라고 하던데요.


최 :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이 작품에 별점 5점을 줬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겨 <판의 미로>를 봤는데 영화가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허 : 그 충격을 설명해 보고 싶어서 글을 썼던 거예요?


최 : 네. 이 영화에 나오는 상징적인 장면을 나름의 분석틀로 해석해 보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아 기쁜 마음이 들었고요.


허 : 모로님과 저의 피드백이 있었지요. 댓글을 보고 기분이 어땠나요?


최 : 일단 칭찬받아서 정말 좋았어요.


허 : 소설 게시판에서는 칭찬을 많이 못 받았나요?


최 : 가끔씩 칭찬을 받긴 합니다. (웃음) 어쨌든 환영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허 : 최이수안 님은 그로부터 두 달 뒤에 「나는 당신의 야동이 아닙니다/추적 60분」(2018년 7월 27일) 글을 올렸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나요?


최 : 제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피해자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 역시 언제라도 그런 입장에 처할 수 있는 거고요. 이런 참혹한 현실을 사는 여성의 심경을 글로 써보자 해서 글틴에 올렸던 거였어요.


허 :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비평은 어떤 문제에 대한 객관적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는 장르니까요.


최 : 그래도 딱히 제 감정을 배제하면서 쓰지는 않았어요. 이 글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기도 했고요.


허 : 써보고 싶은 비평문이 있나요?


최 : 야마다 무네키 작가의 소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관해서 써보고 싶어요. 제가 그 책을 정말 좋아합니다.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거든요. 읽으면서 마츠코에게 감정이입도 많이 됐고요. 이 작품을 접한 독자들은 마츠코가 유난히 힘든 가정에서 자라 유난히 나쁜 남자들을 만나 유난히 힘든 삶을 살아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마츠코 같은 사람들이 많아요. 마츠코는 모두에게 이해받기 힘든 류의 사람이고요.
그렇지만 마츠코의 말을 통해 이해할 수 없을 이야기를 가까이서 이해할 수 있게 전개한 점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시 살펴보게 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또한 제가 마츠코와 닮았다고 생각한 부분은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과,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사실은 문학을 사랑해서라기보다 뭔가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은 인정을 받든, 못 받든 그 여부를 떠나 제가 문학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버렸어요!


허 : 최이수안 님이 추구하는 문학적 목표나 방법이 그 작가의 작품과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그 작품을 좋아하긴 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다르다'는 입장인가요?


최 : 저는 항상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쓰고 싶었습니다.『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 제가 쓰고자 했던 글과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솔직히 마츠코가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는 그녀의 삶에 공감이 되더라고요. 예외적인 듯 보이지만, 거기에서 어떤 보편성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할까요. 앞으로 저도 그런 여성을 중심인물로 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다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는 여성 혐오가 적지 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과 다르게 여성 혐오 없이, 독자들이 좀 더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허 :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뭐예요?


최 : 시사 분야에서는 여성 혐오 이슈를 포괄하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습니다. 뉴스를 많이 보는 편이어서 남북 관계의 향방에도 주목하고 있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문예창작학과 입시 준비를 하는 게 맞을까?' 하고 고민 중이에요. 문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꼭 이렇게까지 해서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야 하나 하는 회의감도 없지 않아요.



시 읽기를 묻다


최 : 참, 저도 선생님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제가 선생님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을 들었거든요. 거기에서 선생님이 어떤 시를 소개하면서 "시는 본래 소통을 목적에 두지 않는 장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어요.


허 : 저는 시가 자족적인 글쓰기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그럴 때 시는 타인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아요. 한데 이게 왜 의미가 있냐 하면, 내밀하게 잘 쓴 시일수록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해지는 역설적인 접점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의식 밑에 있는 심층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걸 언어화하는 사람이지요. 따라서 시에는 암호 같은 요소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건 모두에게 있는 암호 코드이므로 잘 쓴 시에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공명하게 돼요. 시를 매개로 자신의 내면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창안하게 되고요. 한 마디로 시로 자기 소통을 발명하는 것이지요.


최 : 시를 읽을 때 은유와 같은 기법을 하나하나 따지면서 읽으세요?


허 : 처음부터 그렇게 읽지는 않아요. 다만 천천히 읽습니다. 신문을 읽을 때 우리는 굵게 표시된 소제목 위주로 보잖아요. 시는 그와는 다른 독법이 필요해요. 저의 경우 시를 우선 다 읽어 봅니다. 그러면서 이 시가 내 마음에 남는가를 따져 보는 거예요. 어떤 시집은 한두 편, 좋은 시집은 수십 편 마음에 스며들어요. 그럼 그 작품을 표시해 뒀다가 공들여 다시 읽는 거예요. 이때부터 수사법과 연동하는 시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파악해 보는 겁니다.



최 : 그렇군요. 저도 그 점을 참고해서 시를 읽어 볼게요.


허 : 저도 마지막으로 최이수안 님에게 물어볼 게 있습니다. 글틴에서 활동하면서 좋았던 점, 혹은 바뀌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요?


최 : 글틴의 장점은 멘토가 멘티에게 피드백을 해주는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운 점은 각 게시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친구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거요. 글을 올리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허 : 네. 최이수안 님을 비롯한 여러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반영해, 글틴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저는 멘토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새로 부임하시는 멘토 선생님이 그 역할을 잘해 주시리라 믿어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최 : 고맙습니다.










작가소개 / 허희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12년 계간 <세계의 문학> 신인상 평론 부문에 「감각적 경계인의 정치적 사색―김경주론」과 「잔혹한 세계 : 청춘의 테제―김사과‧윤이형‧박민규 소설에 나타난 청춘의 양태」가 당선되며 문학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문장웹진 2018년 09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2건

  • 최이수안

    올라왔네요^^ 저도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부족한 인터뷰였는데 잘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담당자님께도) 이렇게 가신다니 너무 아쉽고 나중에 또 뵙고 싶어요 그땐 제가 꿈을 이룬 모습이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앞으로 선생님 글 자주 찾아읽어보고 팟캐스트도 들을게요:)

    • 2018-09-09 00:26:16
    최이수안
    0 / 1500
    • 0 / 1500
  • 익명

    […] 감사했습니다. ^^ (더 긴 소감은 https://webzine.munjang.or.kr/archives/142601  에 […]

    • 2018-09-01 23:15:41
    익명
    0 / 1500
    • 0 / 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