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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세이2] 몇 등인지가 중요해?

  • 작성일 2016-10-01
  • 조회수 876


[연재에세이]



이야기를 통한 고민 해결 ‘몇 등인지가 중요해?’
-순위화, 등급화에서 벗어나길



김혜정



수영선수인 준호는 초등부 남자 200m 자유형 대회에 출전해 ‘또’ 4등을 한다. 아들의 입상을 바라는 엄마는 메달을 따게 해준다는 코치를 수소문해 찾아가 준호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준호는 처음으로 2등을 하게 된다. 준호의 입상에 가족들은 파티를 하게 되고, 남동생이 묻는다.
“형, 맞고 해서 잘한 거야? 예전에는 안 맞아서 4등한 거야?”
놀란 아빠와 달리 모든 걸 알고 있는 엄마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고만 한다. 코치가 준호를 때렸다는 것을 알게 된 아빠는 화를 내고, 준호 역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이상 멍투성이의 몸으로 맞으면서까지 수영을 하고 싶지 않은 준호는 연습 도중 도망을 친 후 수영 포기를 선언한다. 하지만 수영을 정말로 좋아했던 준호는 엄마 없이 나 홀로 수영장으로 돌아간다. 준호가 좋아하는 수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등을 해야만 한다.

아직도 유효한 이야기, 영화 <4등>



제목만 보고는 도저히 무슨 내용인지 짐작가지 않는 영화가 있는 반면, 제목이 내용의 모든 걸 말해주는 영화가 있다. 영화 <4등>이 바로 그런 이야기다. 운동 대회에서 메달은 3등까지만 받을 수 있기에, 4등은 아무 의미가 없다. 4등이나 꼴찌나 메달을 못 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4등은 훨씬 아쉬울 거다. 아주 조금만 잘하면, 딱 한 명만 더 이겼으면 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영화 속 준호의 엄마는 포기를 못한다. 대회가 끝난 후 준호는 함께 출전한 친구들과 웃고 떠들지만,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준호를 닦달한다. 너 바보냐고, 지금 먹을 게 입으로 들어 가냐고 화를 낸다. 준호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4등이라는 결과물은 과정을 인정하지 못한다. 새로운 코치를 만난 준호는 엄마의 소원대로 입상을 하게 되는데, 그것도 3등도 아닌 2등을 한다.
재밌는 건 엄마는 절대 2등이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2등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2등 대신 ‘거의 1등’, ‘1등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의 태도에, 이번에는 엄마가 아닌 준호가 한숨을 내쉰다. 입상만 바란다는 엄마의 말이 거짓이란 게 들통 났으니까. 이제 준호는 1등을 하기 위해 달려야 할 거다.



세상에 너무 많은 준호들


준호의 엄마를 보며 숨이 턱턱 막혔다. 아들이 코치에게 얻어맞는 것을 알면서도 입상을 위해 모르는 척 하고, 코치가 어떤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도 다시 코치를 찾아가 준호를 가르쳐 달라 부탁한다. 준호가 수영을 포기하자 동생 기호를 학원으로 보내면서 집착했다. 오죽하면 수영 코치는 엄마에게 준호가 메달 딸 수 있는 방법으로 “네가 없으면 딴다.”라고 말했겠는가. 저런 엄마가 어디 있어, 너무 과장되게 표현했어,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작년에 부산에서 만났던 한 중학생 여자 아이가 떠올랐다.
청소년 문학을 주로 쓰다 보니 중, 고등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강연이 끝난 후 아이들이 하는 질문은 거의 비슷하다. 진로에 관한 질문 중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제 꿈을 부모님이 반대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다. 그 여학생도 그 질문을 했는데, 좀 이상했다. 전혀 울 분위기가 아닌데, 다른 아이들이 희희낙락거리고 있는데 뜬금없이 울먹이며 내게 물었기 때문이다. 강연이 끝난 후, 여자애가 질문을 하게 된 사연과 우는 이유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자애는 실용음악을 배우고 싶은데, 엄마는 쉽게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조건을 내세워 전교 10등 안에 들면 실용음악 학원을 다니게 해준다고 했고, 여자애는 학원을 다니고 싶어 열심히 공부를 했다. 여자애는 약속대로 전교 10등 안에 들었지만, 엄마는 말을 바꿨다.


“전교 5등 안에 들면 보내줄게.”


여자애가 울었던 이유는 질문을 할 때 옆자리에 자기 엄마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애가 전교 5등 안에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엄마는 또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것 같다. 딸의 성적이 좋으면 좋을수록 예체능 쪽으로 나가는 게 더 아깝다고 여길 테니까 말이다.
영화 속 준호의 엄마와 부산에서 만난 여학생의 엄마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준호 엄마의 말처럼 자식이 “꾸리꾸리하게 살”까봐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하지만 맞아가면서까지 1등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면서 지키는 전교 등수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우리가 소도 아닌데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반 아이들의 성적표를 교실 앞 게시판에 붙였다. 누구 수학 점수가 몇 점이고, 영어 점수가 몇 점인지 뿐만 아니라, 반에서 1등부터 45등이 누군지 반 아이들 모두가 다 알았다. 나의 전 세대는 전교생들이 다 보는 복도 게시판에 전교 등수를 1등부터 300등까지 적어놨다고 하니, 우리 때가 조금 더 나았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거나 이거나 둘 다 도긴개긴으로 참 말도 안 되는 제도였다.
요즘은 인권침해 등의 문제로 게시판에 성적표 공개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에서 순위와 등급 매기기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수능 입학 점수에 따라 대학 앞글자만 따서 원소나 왕조 순서 외우듯 외우질 않나(이걸 두고 종종 각 대학에서 싸움이 나기도 한다. 우리대학이 먼저니, 너희 대학이 뒤니 하며 말이다), 아파트 값을 기준으로 동네를 평민부터 황제까지 등급을 매겨놓은 표도 있다.
최근에는 부모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어린 아이들의 입에서 자기는 무슨 수저니, 하는 말이 나오는 걸 보면 꽤 많이 씁쓸하다. 학교강연을 갔을 때 내게 무슨 수저냐고 질문을 한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평가기준인 학력, 재산을 아이들이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객관적인 숫자로 순위를 좀 매긴다는데 뭐 그렇게 까칠하게 굴 게 있냐고 물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위에 다른 ‘의미’와 ‘가치’가 동반하기에 문제가 된다. 순위화, 등급화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착각을 하게 된다. 높은 순위에 있는 대학에 나오거나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자신이 1등급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2등급, 3등급이라 생각한다. 반대편에서는 자신이 1등급이 아니라며 자책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우습게도 소고기나 우유에 매기는 등급을 사람들이 자신 스스로 매기고 있다.
그러다보니, 1등급이 다른 등급보다 특별하고 잘났다고 착각하여, 자신의 기준에서 낮은 등급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생긴다. 한창 문제가 된 ‘갑질’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 (원래 갑-을은 수평적 나열인데, 어느 새 우리사회에서 수직, 주종의 의미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1등급 대 2등급 혹은 A등급 대 B등급으로 만나게 되면 갑질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등급을 매기는 건 고기나 우유에만 했으면 좋겠다. 사람은 소가 아닌데, 그래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소와는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게 맞을 텐데, 스스로를 소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지금은 네거티브섬 게임 중


친한 언니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데,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학벌 위주의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단다.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벌을 두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걸 화두로 삼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 학생이 손을 들더니 “저희보다 윗 대학 아이들이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고, 다른 학생들이 그 말에 놀랄 줄 알았더니 웬걸, 나머지 학생들이 “맞아요.”하며 그 말에 동조했다는 거다.
지금 많은 이들이 순위화, 등급화를 문제 삼기보다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경쟁구도를 자처하고 있다. 물론 경쟁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경쟁을 통해 더 노력하여 발전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의자뺏기를 하고 있다. 여전히 계층갈등은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더 심화된다면, 과연 기득권 층에게는 이익만 있을까? 순위매기기 싸움에서 다시 ‘거의 2등’은 1등이 되려고 하지 않을까? 이러한 경쟁은 모두에게 전혀 이롭지 않다. 지금 우리들은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 네거티브섬 게임(모두가 얻은 이익보다 손실 크기가 큰 것을 말함) 중이다.



새로운 고민의 시작


내게 “선생님은 무슨 수저예요?” 묻는 아이에게,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이고, 앞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거라 대답했다. 왜냐하면 내가 들고 있는 수저의 색깔이 중요하기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무언지가 더 중요하니까. 금수저를 들고 태어났다고 금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흙수저를 들고 있다고 흙만 먹는 건 아니다. 수저 등급의 분류 기준은 딱 하나 ‘돈’일 뿐인데, 돈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건 너무 천박한 사고가 아니냐고, 돈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나는 덧붙였다.
이 대답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무언가 개운치가 않았다. 그 천박한 사고가 사회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으니까 말이다. 가령 로스쿨 부정입학 같은 경우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전혀 공정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스개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저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한 명의 개인이 순위화, 등급화를 문제화 삼는다고 하여 사회가 금방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한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금수저, 흙수저 분류를 듣고 지금 나는 무슨 수저일까 고민하는 대신, 수저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언지, 문제가 된다면 이걸 어떻게 없앨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
십대들이 “사회는 원래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말 대신 “틀렸어.”, “잘못됐어.”라고 반박을 했으면 좋겠다. 기성 세대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유익하지 않은, 아니 해로운 관습과 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바꿔나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지금의 십대들이 자라 기성세대가 되는 그 날에는 상대가 살아야 나도 사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포지티브섬 게임이 가능한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부디 세상의 준호들이 자라서 준호의 엄마가 되지 않길.









김혜정
작가소개 / 김혜정

- 1983년생.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주로 쓰는 작가, 실은 이야기 중독자. 이야기를 읽고, 보는 걸 너무 좋아하다 보니, 직접 만드는 작가가 되었다. 1년에 150여 권의 책을 읽고, 50여 편의 영화를 본다. 이제까지 쓴 책으로 『하이킹걸즈』, 『닌자걸스』, 『판타스틱걸』, 『다이어트 학교』, 『텐텐영화단』, 『잘 먹고 있나요?』 등 청소년 소설과 『우리들의 에그타르트』, 『맞아 언니 상담소』 등 동화, 에세이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 있다.


《문장웹진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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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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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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