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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기자단의 사심만발 인터뷰] 고마워, 과연 연웅이야

  • 작성일 2015-08-19
  • 조회수 1,116


[문학특!기자단의 사심만발 인터뷰]



고마워, 과연 연웅이야, ‘너무 완전 정말 몹시 꺄울 와!’

-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극작가 류연웅 인터뷰




강요한(문학특!기자단 3기)





그동안 글틴 웹진에 ‘글틴 출신 선배’와 ‘작가’를 만나는 인터뷰는 많이 있었지만, 실제 ‘글틴’을 만나보는 자리는 없었다. 글 쓰는 십대. 글틴이라는 이름 그대로, ‘글 쓰는 십대 인터뷰’를 기획하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친구가 바로 류연웅이다.
류연웅은 고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면서, 두 개의 극을 올린 극작가이기도 하다. 2015년 글틴 캠프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굉장히 엉뚱하면서 통통 튀는 친구로 기억됐다. 그렇기에 지난 7월 26일 일요일, 약속 장소인 홍대로 가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류연웅은 어떻게 문학을 접하게 되었으며, 예고에 입학하고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을까? 그간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Q. 강요한 글틴기자(이하 강) :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자, 극작가로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류연웅 (이하 류) : 안녕하세요, 고양예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19살 류연웅입니다. 예고에서 현재 소설 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제 장점은 단점이 없는 것이고, 단점은 장점이 없는 것입니다. 평일에는 일산에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고 주말에는 인천에서 열심히 놀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입니다. 별명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연웅’, ‘미간 깡패’, ‘리우야눙’이에요.(정색)


Q. 강 : 평범하다고 하기에는 범상치 않은 자기소개시네요. 문예창작학과에 재학하시면서, 또 현재 극작가로 활동하시면서 글을 많이 쓰실 텐데요. 혹시 글을 쓰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A. 류 : 고양 예고에 오기 전에는, 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글에 큰 관심도 없었고, 그저 예고를 하나의 도피처로 생각하고 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문창과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붙어서 기분 좋게 입학했어요.
그래서 예고 처음 입학했을 때는 되게 헤매다가, 박민규 작가의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그게 ‘너무 완전 정말 몹시 꺄울 와! 미친 듯이 좋아서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소설에 이런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 호수에서 친구와 낚시를 하는데, 너구리가 튀어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진짜, 그 호수에 빠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저에게 대단하고 큰 의미를 준 소설이고, 그 호수에서 튀어나온 너구리 같은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너굴!


Q. 강 : ……. 너구리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니, 나름 포부 있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지금 활동하고 계신 극작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답변 기대해 봅니다.
A. 류 : 제가 예고에서 1학년 6월에 월말 평가를 봤는데, 시제로 시계가 나왔어요. 그때 소문이 있었는데, 어떤 선배가 백일장에 나가서 ‘미소’라는 시제를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를 써서, 장원을 받았다는 소문이었죠. ‘바로 이거다!’ 싶어서, 음악 시간에 가창 수행평가를 보는데, 가사를 외워오지 않은 학생들이 50분 내내 비트박스를 하면서 ‘뻐팅기고’ 그 비트박스를 보고 선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우리는 초심을 잃었어’ 하고 깨닫는 콩트 소설을 썼어요.
‘시계’를 ‘시간 계략’으로 분해해서 우긴 소설이었는데, 저희 실기 선생님께서 이걸 단편소설로 써 보라고 하셨어요.
다음 날, 비트박스를 하는데 교장이 들어오고, 교장이 학생들의 비트박스를 막기 위해서 경찰을 부르고 소방관을 부르고 박근혜를 부르고 오바마를 부르고 예수님을 부르지만, 모두들 학생의 비트박스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단편소설로 써서 갔어요.
그걸 본 선생님이 이번에는 이걸 뮤지컬 대본으로 써 오라고 하셨어요. 이 주일 간 고시텔 방에 틀어박혀 다이제와 서울우유만 먹으면서 ‘밀가루 덩어리화’한 채로 써서 갔더니, 이걸 국립극단 공모에 내보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당선이 되었고, 국립 극장 ‘달오름’에서 쇼케이스지만, 실제로 공연도 했고 너무나도 감사한 기적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 거죠.


Q. 강 : 오우, 굉장히 다이나믹한 일화네요. 원래 다음 질문으로 첫 데뷔작을 물어보려 했었는데, 다 답변을 해주셨어요. 그렇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쓴 소설이나 극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A. 류 : 『밤의 산책가들』이라고, 올해 초부터 우란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이신 김드리 작곡가님과 협업한 작품이 있어요. 불면증 소년과 우울증 소녀가 우연히 만나서 계속해서 산책을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이 사람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하는 걸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누군가는 ‘저 녀석들 왜 밤에 안 자고 싸돌아 댕기는 거야.’ 하고 말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이유 없이 산책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직 제가 대본을 완성하지 못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꼭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작품입니다.


Q. 강 : 기대가 되는 작품이네요, 극으로 올리면 꼭 알려주세요. 보러 가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질문은, 사실 작가들에게 한 번씩은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인데요. 혹시, 류연웅 군은 어떤 문학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궁금하네요.
A. 류 : 우선, 저의 문학관에 대해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문학이 무조건 ‘잘 살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보면, 저렇게 잡아 온 고래가 다 작살났는데도 ‘잘 살 수 있다’는 얘기고, 카프카의 『변신』은 벌레처럼 되지 말고 ‘잘 살자’는 얘기고,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신을 파괴하지 말고 ‘잘 살자’는 얘기라고 생각해요.
결국, 좋은 작가는 이 똑같은 ‘잘 살자’는 얘기를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얘기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고3이 되었고, 문학이 입시화되면서 제 눈에는 대부분의 글들이 유행만 남기고 다양성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잘 쓴 글이다’라는 판단이 생기기 시작했잖아요. 더 재미있는 얘기보다는, 좋은 문장을 배우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고, 그러면서 자기 안에 있는 예술가들을 죽여 가는 문학입시생들이 보여서 너무 안타까워요. 물론, 저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구요.


Q. 강 :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게 되는 답변이네요. 그렇다면 연웅 군이 생각하는 ‘잘 살자’라는 얘기를 가장 연웅 군의 맘에 들게 하는, 연웅 군이 좋아하는 작가는 누가 있나요?”
A. 류 : 박민규, 김사과, 김영하, 오쿠다 히데오, 아멜리 노통브, 폴 오스터, 박솔뫼, 한유주, 샐린저, 배삼식, 김애란, 니콜라이 고골, 하퍼 리, 방현석, 임철우, 윤고은, 태기수….... 작가님들, 글을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빼 먹은 분들 있으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Q. 강 : 오, 이렇게 작가 추전을 받고 가네요.(웃음) 글을 정말 좋아하시고, 많이 쓰시는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하지만 연웅 군이 하루 종일 글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평소에 즐기는 연웅 군의 취미가 있다면?
A. 류 : 저는 게임도 별로 안 좋아하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아, 물론 맨유 경기는 주말마다 봅니다. 여하튼, 제 유일한 취미는 산책이에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도 하고, 반바지 입고 그냥 뛰기도 하고, 버스 타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무런 이유 없이 버스타고 있으면 참 좋아요. 경기7727, 경기150, 인천66, 서울601, 서울740. 이렇게 버스를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걷는 길은 일산하늘마을에서 탄현 역까지랑, 가양대교에서 화곡 역까지. 버벌진트 앨범 들으면서 걸어요.


Q. 강 : 성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이제 두 가지만 더 묻고 인터뷰를 마칠 건데요, 아까 문학에 대한 질문에서 입시를 언급해 주셨는데요. 아무래도 고3이다보니까, 입시에 대해 더 민감하고 여러 가지 구체적으로 느끼는 것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돼요. 문창과 입시, 더 나아가 입시에 대해 연웅 군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궁금하네요.
A. 류 :제가 연대 백일장 예선에 600매짜리 소설을 냈어요. 한경대 예선에서는 2학년 월말 평가 때 썼던 글 세 개를 모아서 초인 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냈어요. 참고로, 저 세 개의 글은 전부 실기 점수 꼴지를 받았던 글이에요. 모두 예선에서 통과했는데, 제가 솔직히 정말 놀랐거든요. 그리고 느낀 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것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제가 대산 금상을 받았던 ‘팝콘 전쟁’도 비슷한 경우였어요. 그 글을 보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입시에서 왜 그런 글을 쓰느냐’라는 반응을 보였거든요.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저는 입시용 글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입시용 글이라는 기준에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색깔을 지켜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예고에 다니고 있는데 하교할 때 보면 무용과 친구들이 죽어라 무용하는 모습이 보이고, 음악과 친구들이 죽어라 연주하는 소리도 들려와요. 글도 죽어라 써야 하는데…….(웃음)


Q. 강 : 잘 들었습니다, 제 점수는요.(웃음) 농담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입시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그리고 고생할 글티너들, 혹은 글틴에게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류 : 며칠 전에, 오랜만에 친한 형을 만났는데, 그 형이 제게 물어봤어요. 연웅아 잘 살고 있니? 그래서 전 거짓말을 했어요. 아 저는 정말 잘 살아요. 그랬더니 형의 표정이 어두워졌어요. 그리고 이렇게 대답하더라고요. ‘아, 이런 질문들은 원래 잘 못 산다는 말을 유도해서 너도 나처럼 인생 망했구나, 라는 동질감을 느끼기 위한 질문이었는데……. ’그날 밤,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우리 모두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됩시다. 고맙습니다.



누구에게나 걱정이 많을 입시를 앞두고 있을 때인데도 불구하고, 연웅은 활기찼고, 유머러스했다. 그 밝은 성격 탓에 같이 있는 내내 즐거운 자리가 되었다.
특히,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문학’과 본인의 작품에 대해서 얘기할 때, 진지하면서도 활기찬 모습은 ‘글틴’의 이미지에 어울렸다. 함께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생각하던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더 많은 글티너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앞으로도 많이 다룰 예정이다. 기대해도 좋다.)


류연웅-ss사진 1. 통통 튀는 글티너, 류연웅


20150730_intrv사진 2. 고양예고에서 【북치기 박치기】공연 중인 류연웅



《글틴 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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