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사심만발 인터뷰]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허승화 인터뷰

  • 작성일 2015-06-21
  • 조회수 1,512


[사심만발 인터뷰]



시로부터 영화까지

-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허승화 인터뷰




김선정(문학특!기자단 2기)
이상학(문학특!기자단 3기)





문청들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들은 대개가 서사창작과를 떠올린다. 그러나 적잖은 문청들이 영상원에 입학한다. 관계가 있어 보이는 듯도, 없는 것 같기도 한 영상원은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승화 씨는 고양예고 출신으로 시를 준비하다 영화과로 진로를 변경한 한예종 영화과 4학년생이다. 5월 23일 토요일,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문학추천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허승화 씨를 만났다. 그는 당일 촬영에서 황인찬 시인의 『구관조 씻기기』를 감동작으로 꼽았다. 촬영이 끝난 후 글틴기자단은 캠퍼스 인근 카페에서 문청들이 지닐 법한 몇 가지 궁금증을 해소했다. 왜 시에서 영화로 전공 분야를 바꾼 것일까? 영화를 만들면서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영상원은 어떻게 입학했을까? 시로부터 영화에 이르게 된 허승화 씨를 만나보자.



Q. 이상학 글틴기자(이하 이) : 반갑습니다. 우선 허승화 씨는 시에서 영화로 진로를 변경하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들어보고 싶네요.
A. 허승화(이하 허) : 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다른 분야도 배워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 시를 배우면서 느낀 것은 시라는 건 결국 ‘나 스스로 쓰면서 배워나가는 것이다’였습니다. 다른 것들을 배우고 더 세상을 알아가는 것도 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과를 선택했습니다.


Q. 김선정 글틴기자(이하 김) : 영상원의 생활과 수업은 다른 대학 생활과 어떻게 다른가요?
A. 허 :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건 모든 대학 생활이 똑같은 것 같아요. 다만 내 작품을 늘 염두에 두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게 다른 것 같습니다. 전 연출과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수업을 꾸려 듣고 있습니다. 1~2학년 수업과 과제가 정말 힘든데, 그만큼 기본기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성장한 게 다라고 생각할 정도예요. 이 외에도 좋은 수업과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Q. 김 : 한예종 영상원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A. 허 : 작업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학생이 원할 때 최신 영상 장비(조명, 촬영, 영상 편집 장비 등)를 빌릴 수 있어요. 편집실도 넉넉하게 구비돼 있어 학생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어요. 이정도 장비와 시설을 보유한 학교가 없거든요. 만학도가 많기 때문에 나이 차이가 커서 후배라고 해도 한참 어른인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강하지 않고 선배가 후배의 작품을 도와주는 게 그렇게 문제되지 않기에, 편하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 연기과 등의 다른 학과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활발합니다. 다만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은 석관동 캠퍼스에, 음악원과 무용원은 서초동에 있는 다른 캠퍼스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음악이나 무용하는 이들과 작업하고 싶은 작품이 생겨도 협업이 어려운 점이 아쉽습니다.


Q. 이 : 한예종 영화과에 진학하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A. 허 : 제가 들어올 당시 한예종은 1차와 2차 시험이 있었어요. 1차 시험은 입상 경력으로 대체됐고, 2차 시험은 주제를 주고 글쓰기를 통해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이 됐어요.


Q. 이 : 입학을 하신 뒤에도 몇 편의 영화를 만드신 걸로 알고 있어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가 영화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지, 혹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되나요?
A. 허 : 영화를 배우면서 영화는 시와 굉장히 다르다고 느꼈어요. 영화는 간단하게 사운드, 편집, 촬영, 연출, 시나리오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시를 활용할 수 있거나 시적인 감각을 이용할 수 있는 영역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간략하게 (시나리오 제외) 연출·제작·촬영·조명·편집·사운드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대부분 스태프들을 모집하고 촬영하고 편집하는 일이에요. 발로 뛰는 일들이기 때문에, 시를 배운 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시와 영화 두 가지 모두 제가 창작하는 것이라 결국 주제나 이야기가 겹치는 부분이 생기곤 해요.


Q. 김 : 잠시 문학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글을 쓰던 철학과 학생으로서 다시 글을 쓰는 게 두렵곤 합니다. 그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알고 싶어요.
A. 허 : 고등학생 시절에 대산문학캠프에 간 적이 있어요.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말이 있는데, '시는 도도한 여자 (꽃일 수도 있어요) 같아 하루라도 손길을 안 주면 시들어버린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 꾸준히 한 줄이라도 쓰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게 하기 힘들었던 거죠. 대학 들어와서 일 년 정도 글을 못 썼어요. 2학년 때도 비슷했고요. 못 쓸 것 같은 두려움에 쓰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반년 전부터 될 대로 되라, 일단 쓰고 보자 하는 생각으로 다시 펜을 잡았습니다. 당장 누구에게 평가받을 것도 아니고요. 요새는 거의 매일 쓰고 있는데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써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쓸 생각입니다.


Q. 김 : 서사창작과, 극작과 수업을 청강하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수업을 들으셨고,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허 : 제가 들은 수업은 황지우 선생님의 '명작읽기'와 '정전연구'입니다. '명작읽기'는 그리스신화와 비극부터 시작해서 인류사의 명저서를 읽는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 체계적으로 서사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서사의 씨앗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사소'와 서사의 기본 줄기를 배울 수 있었어요. 이야기라는 것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황지우 선생님은 '모든 서구 근대문학은 그리스신화에 각주를 단 것에 불과하다'란 말씀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제가 만드는 작품에 가져올 수도 있었습니다.


Q. 이 : 문학과 영화는 굉장히 다르군요.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A. 허 : 일단 몸이 굉장히 힘들어요. 인원을 모으는 것도 힘들고 추운 날, 더운 날 야외에서 촬영하게 되면 그 자체로도 힘들고요. 지난번에는 제작비 절감 차원에서 20시간 동안 촬영을 한 적도 있어요. 김밥 사다 놓고 온종일 영화를 찍으면서 잠도 못 잤고요. 그리고 정말 미안한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데 내가 갚아줄 방법이 없을 때 가장 힘들어요. 이번 영화 촬영 때도 일본어를 도와주신 분이 계시는데,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보답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Q. 김 : 최근 건국대 영화학과와 영상학과의 통폐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어요.
A. 허 :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제작방법 자체가 다릅니다. 애니메이션은 작화를 한 프레임으로 그려야 해요. 그리고 일 초당 24프레임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림 실력과 컴퓨터 작업이 필요합니다. 영화는 실사를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입니다. 하나에만 집중해도 일 년에 전체적으로 둘러보는 게 불가능한데, 두 개를 동시에 배우는 건 안 배우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 : 마지막 질문입니다. 문학을 하는 학생 또는 사회인 중에서도 영화와 영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들에게 필요한 소양이나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A. 허 : 우선 영화 쪽에서는 버티는 힘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성실함도 중요하구요. 그다음 커뮤니케이션 능력 정도가 있겠네요. 그리고 최악의 상황들을 생각해 보신 뒤에 신중하게 선택하셨으면 해요. 이 일 자체가 졸업한다고 해서 일이 확정되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과 유사한 과정은 있지만, 석사 과정도 없고요. 평생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 알아두신 다음에 결정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못 버티는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중 허승화 씨는 영화를 배우고 관련 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그럼 영화과로 온 것을 후회하세요?”라고 묻자, “너무 급한 일들에 밀려서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배운 4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영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진로를 선택하라는 당부에는 진심이 묻어났다.





《글틴 웹진 6월호》


추천 콘텐츠

아무 문제 없음

아무 문제 없음 고비읍 오른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입을 틀어막고 참아 보려는 듯하지만, 결국은 끕끕 새어 나오는 소리. 내 바로 왼편에 앉은 아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내기 바빴다. 사방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 건 무대 위의 한 남자애가 울기 시작하고서부터였다.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그 사랑 다 돌려드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게요. 저를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 그 애는 울먹이느라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누군가가 크게 그 애의 이름을 연호하자 팬들이 한목소리로 그 애의 이름을 외쳤다. “연홍아, 울지 마!” “연홍아, 사랑해! 더 많이 사랑할게!” “최연홍! 행복하자!” 반짝거리는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눈부신 조명을 받는 무대 위의 남자애를, 이미 많이 행복해 보이는 그 애를 팬들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커다란 공연장 안을 둘러보았다. 2만 명이 앉아 있는 이 공연장 어딘가에 송리윤도 있었다. 다른 팬들처럼 송리윤도 그 애를 보고 울었을까. 더 사랑해 주겠다고 외쳤을까. 따로 연락도 한 적 없고, 밥 한 번 같이 먹은 적 없지만 그 애는 송리윤에게 사랑받았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대가 없이. 세븐플래닛은 마지막 무대라면서 팬들에게 함께 부르자고 했다. 팬들은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알고 있는지 막힘없이 따라 불렀다. 3시간쯤 콘서트가 진행되는 동안 세븐플래닛이 불렀던 노래 대부분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노래들이었다. 애초에 나는 세븐플래닛에 관심이 없었다. 멤버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관심도 없는 세븐플래닛 콘서트 티켓을 산 건 오로지 송리윤 때문이었다. “여러분, 오늘 즐거웠나요?” “네!” “행복했나요?” “네!” “저희도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엔딩 멘트를 던졌다. 아까는 우느라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던 최연홍이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세븐플래닛과 가디언이 함께한 지 벌써 5년이 됐어요. 이만하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생 서로 사랑하고 아껴 줘요. 알았죠?” 팬들은 큰 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다. 어딘가에서 송리윤도 같이 외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할 말 있어?” 송리윤이 근처에서 쭈뼛대는 내게 물었다. “저기…….” “쉬는 시간 다 끝나 간다. 아까운 시간 잡아먹지 말고 빨리 좀 말해 줄래?” “나도 갔었어, 어제. 세븐플래닛 콘서트 말이야.” 혹시나 반가워해 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송리윤의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다. 하지만 송리윤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여느 때처럼

  • 관리자
  • 2022-10-01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너와 나의 알싸한 세계 백온유, 『페퍼민트』(창비, 2022) 김젬마 재난이 남긴 것들 백온유의 『페퍼민트』는 준비 없는 재난 앞에 닥친 기약 없는 기다림과 불투명해진 미래를 견디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프록시모 바이러스’ 후유증으로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돌보는 ‘시안’과, 슈퍼 전파자라는 낙인으로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 사는 ‘해원’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전염병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시안과 해원은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였지만, 바이러스가 삶에 침투하자 이들의 평범한 일상과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의 세계가 멈추고 자신의 미래까지 멈춰버린 시안은 돌봄 노동을 수행하느라 정작 자신의 세계여야 할 학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그저 자신의 하루를 견디고 버티며 사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희망이나 미래를 품을 수 없는 고단한 삶 속에 놓여 있는 시안의 일상은 위태롭고 무력할 뿐이다. 엄마가 깨어날 거라는 희망보다 엄마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에 익숙해진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를 누구보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돌보지만 결국 모든 정성과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들에 지쳐 있다. 한편 슈퍼 전파자라는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불안함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지원’으로 개명하고, 이사와 전학을 선택한 해원은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마치 바이러스가 자신의 삶에 없었던 것처럼 평범하게 살아간다. 가족만큼이나 끈끈했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6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들의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 공백은 두 사람의 잃어버린 시간과 멀어진 마음의 거리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시안과 해원은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낀다. 시안은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해원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자신을 짓눌러 왔던 감정의 화살을 해원에게 돌린다. 해원은 유일하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시안의 등장이 당혹스럽기만 하고 지난 시간을 들추는 것 같아 불편하다. 희망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는 시안과 과거로부터 도망쳐 평범한 삶을 꿈꾸는 해원, 이 두 사람은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 고여 있는 삶 재난을 준비할 시간도 없이 엄마와 이별을 한 시안은 식물을 돌보듯 엄마를 간병한다. 엄마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엄마가 썩지 않도록 기저귀를 자주 갈아 주는 것뿐이지만, 시안은 엄마의 미각을 깨우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엄마가 좋아하던 페퍼민트 차를 매일 우려 입에 적셔 준다. 시안은 매일 같이 차를 우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할 뿐 아니라, 절망과 무력함으로 점철된 일상에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름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엄마는 고여 있는 것 같다가도 우리 삶으로 자꾸 흘러넘친다. 우리는 이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 것이다. 우리는 썩을 것이다.(98쪽) 시안이 오랜 간병 경험으로 얻은 것은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시

  • 관리자
  • 2022-10-01
K-할머니의 이름은

[리뷰 - 청소년소설] 기존 〈글틴스페셜〉이 9월호부터 〈Part.g〉로 변경되었습니다. 〈Part.g〉는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은 물론 창작희곡과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영역의 '작품'과 '리뷰'를 게재할 예정입니다. K-할머니의 이름은 유은실, 『순례 주택』(비룡소, 2021) 김젬마 불편한 것들에 대하여 동화나 청소년소설에서 노년 여성 캐릭터는 대개 죽음이라는 소재와 연관되거나 주인공에게 정서적인 위안을 주고 성장을 돕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들은 주로 돌봄 노동과 모성의 주체로 호명되다 보니 자신의 이름보다 누군가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로 불려 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자신을 이런 방식으로 규정하는 호칭들에 매우 민감한 이가 있으니, 바로 『순례 주택』의 건물주 순례 씨다. 75세인 순례 씨는 어머니, 할머니, 사부인, 동거녀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과 가족 단위로 엮이는 호칭들을 불편해한다. 이러한 호칭들은 순례 씨의 다채로운 삶과 이력들을 괄호 칠 뿐 아니라 순례 씨의 바운더리를 침범하는 무례함을 담고 있다. 순례 씨는 사별한 남자친구의 손녀인 수림을 손녀가 아닌 최측근으로 호칭 정리하며 할머니와 손녀라는 전형적인 관계 방식에서 벗어난다. 그는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기 위해 순례(巡禮)로 개명할 만큼 자신의 이름에 대한 애착과 소명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가족으로 소환될 뿐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경험이 없는 ‘K-할머니’의 이름은 자신을 옭아매는 규범적인 호칭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재정의 된다. 순례 씨는 호칭뿐만 아니라 물질과 돈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필요 이상의 것들을 덜어내는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다. 이산화탄소를 마구 배출하는 인간들과 쓰고 남는 돈, 썩지 않는 쓰레기가 인생 최대의 고민인 그는 푸짐하고 손 큰 할머니의 밥상이 아닌 노동력을 최소한으로 하는 간단하고 소박한 밥상을 차린다. 순례 씨는 정직하게 땀 흘려서 노동하는 삶을 추구하며 세상과 물질에 욕심 없는 다소 초월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기만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다. “월세 밀리는 건 참아도, 분리배출 제대로 안 하는 건 못 참”(80쪽)을 만큼 그는 순례 주택의 생활 수칙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하고 단호하다. 이렇게 순례 주택 입주민들은 공용 생활 수칙과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며 사는 것을 중요시하고, 무엇보다 이들은 “자기 힘으로 살아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53쪽)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유은실의 『순례 주택』은 고정된 공간과 다양한 인물들의 대화를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순례 주택이라는 공동체의 복작거리는 삶을 그린다. 이는 사건이 인물과 장소의 활용도가 높고 이를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는 시트콤의 형식과 비슷하다. 『순례 주택』은 등장인물의 이름, 나이, 직업, 특징 등을 세세하게 묘사하며 이

  • 관리자
  • 2022-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