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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여행④] 네루다의 집

  • 작성일 2015-06-21
  • 조회수 1,543


[여행에세이_이 또한 여행④]



네루다의 집

- 칠레의 이슬라네그라



양재화



동지들이여, 나를 이슬라네그라에 묻어주오,
내가 아는 바다 앞, 그 주름진 마디마디 앞에,
잃어버린 눈으로 다시는 볼 수 없을
바위와 파도가 머무는.
-파블로 네루다, 『모두의 노래』 중에서



시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은 ‘메타포’적이었다. 발파라이소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때, 바로 앞 도로로 족히 이삼백 명은 되어 보이는 시위대가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해 왔다. 알고 보니 길 건너편이 의회 건물이었다. 도로는 진즉에 비워진 상태였고, 의회 진입로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시위대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전투경찰들이 시위 진압용 장갑차를 앞세워 도열해 있었다. 초여름의 찬연한 햇살이 시위대와 진압대 모두에게 공평하게 떨어지는 정오 무렵,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풍경은 거의 초현실처럼 느껴졌다. 나는 잔뜩 긴장해 있는데, 주위의 사람들은 익숙한 일인 듯 느긋한 표정으로 시위대의 구호를 따라 외치거나 함께 박수를 치며 휘파람을 불거나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기에 바빴다. 이내 살수차에서 공중으로 물대포가 쏟아지고, 그와 동시에 시위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물줄기가 거세질수록 목소리 또한 거세졌다. 전투경찰의 물대포가 록페스티벌에서 관객을 향해 뿌려지는 물줄기라도 되는 것처럼. 의회 앞 도로가 여름 축제 현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위대를 줄곧 졸졸 따라온 커다란 검둥개 한 마리가 앞으로 나서 신나게 물을 뒤집어쓰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지 살수는 약 10여 분간 간헐적으로 이어지다가 멈추었고, 이후에 시위대는 차도에서 비켜나 의회 앞 보도와 계단에 열을 맞추어 늘어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구호를 외친 뒤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신속하게 해산했다. 민주화된 칠레의 단편, 평생을 민중의 투사로 살았던 파블로 네루다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 더없이 어울리는 전조였다.


p__1
- 사진 1.이슬라네그라로 가기 전 맞닥뜨린 시위 현장


‘칠레의 민중 시인’ ‘노동자의 친구’ ‘열혈 공산당원’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서는 흔히 주워섬기는 수식어 외에 아는 바가 없었다. 그의 시와 삶을 모르고서야 의미 없이 흩날릴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한 말들이다. 그러니 오랫동안 책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네루다의 양장 시집 두 권을 그 긴 여행길, 무거운 짐에 끼워 넣은 것은 한 줌의 의무감과 알량한 허세에서 비롯됐음을 고백해야겠다. 칠레에는 네루다 재단에서 직접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생가만 세 군데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발품이 드는 이슬라네그라를 택한 것도 그곳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발파라이소에서 묵은 민박집 주인 우고 아저씨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다. 칠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고, 네루다를 잘 몰라도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며 풍경이라고 했다.
내가 거쳐 온 수도 산티아고와 산티아고에서 110킬로미터 떨어진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에도 네루다의 집이 있지만, 발파라이소에서 다시 45킬로미터 떨어진 이슬라네그라의 집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시인이 살아생전 가장 아꼈으며, 중년부터 말년까지 칠레에 머무는 시간 동안 주요 작품들을 써낸 곳이자 그토록 사랑한 마지막 아내 마틸데 우루티아와 함께 잠들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로 유명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원작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거리상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동네마다 들르는 완행버스는 하염없이 단조롭게 이어지는 길을 달려 두 시간여 만에야 이슬라네그라에 나를 홀로 떨궈 놓았다. 정류장에는 이름도 안내판도 없어서 제대로 내린 게 맞나 싶을 때, 근처 레스토랑에서 밖에 세워둔 메뉴판에 네루다가 특별히 좋아해 송가까지 바친 생선 수프 요리인 ‘칼디요 데 콩그리오’가 가장 먼저 적혀 있는 걸 보고 안심했다. 동양 여자가 이곳을 어슬렁거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기에, 사람들은 내가 묻기도 전에 이미 눈빛으로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루다? 저쪽으로 쭉 가시오.” 양옆으로 소나무가 우거지고 붉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소로를 따라가자, 갈림길의 공터에서 옷을 더럽히며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너머로 파도 소리가 겹쳐졌다.
이슬라네그라(Isla Negra)는 스페인어로 ‘검은 섬’이라는 뜻이고 우리나라 책이나 언론에서 간혹 ‘네그라 섬’으로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섬이 아니다. 태평양에 면한 한적한 바닷가 마을로, 해안에 검은 바위가 많아 네루다가 이름 붙인 것이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네루다는 1937년 유럽에서 돌아와 평생의 숙원인 『모두의 노래』를 집필할 공간을 찾고 있었다.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슬라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중에서)
1938년에 네루다는 이곳 바닷가의 작은 땅과 그보다 더 작은 석조 오두막을 출판사들의 도움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1943년 겨울부터 무려 1965년까지 친한 건축가들과 더불어 직접 집을 증축하고 가꾸어갔다. 네루다는 이를 “집이 점점 자라났다. 꼭 사람처럼, 꼭 나무처럼”이라고 표현했다. 겉으로 보면 마치 여러 채의 오두막을 얼기설기 잇댄 것처럼 보인다. 내부의 낮은 천장, 갑판을 닮은 투박한 나무 바닥,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복도, 굳이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이 집이 ‘배’를 모티브로 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평생 바다를 동경하며 바다에서 영감을 얻었던 시인의 집다웠다. 길고 좁은 집 구조는 또한 그가 바다와 시만큼이나 사랑했던 조국 칠레를 연상케 했다. 아니, 해안선을 따라 길게 지어진 집은 그 자체로 ‘칠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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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네루다의 집 앞으로 펼쳐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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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1, 3-2. 조금씩 덧붙여나가 서로 다른 자재와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


거실, 식당, 침실, 서재 등 모든 공간에는 바다를 향해 커다란 창이 나 있다. 집 전체가 바다로 무한히 트여 있는 듯하다. 집안을 가득 채운 주요 수집품들도 전부 바다와 관련된 것이다. 뱃머리에 달던 조각인 선수상(船首像), 돛, 키, 유리병 안에 든 배 모형, 해도, 조개껍데기, 네루다가 자서전에서 “가장 칠레다운 고래”라고 표현한 향유고래의 이빨 등등. 모두 시인으로, 외교관으로 전 세계를 여행했던 네루다가 열정적으로 사들이거나 선물 받은 것들이다. 그러나 집안 가득한 물건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럽다거나 허영을 부린다는 인상은 조금도 풍기지 않았다. 조금 놀라면서, 나는 그 물건들에서 마치 어린아이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잡동사니들을 주워 모은 듯한 천진함을 느꼈다.


p__4
-사진 4. 네루다의 수집품 일부가 전시되어 있는 서재
(실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부득이 자료 사진을 인용했다. )
출처: (http://www.bbc.com/travel/story/20141020-chile-through-pablo-nerudas-eyes)


p__5
-사진 5. 바깥에서 들여다본 바.
집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네루다가 직접 술을 내던 바 천장의 서까래에는
세상을 떠난 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 마치 어제 신고 벗어놓은 것처럼 광이 나게 닦여 가지런히 놓인 가죽 구두, 그가 즐겨 쓰던 베레모를 비롯해 영국 근위병 모자와 베트남 전통 모자 ‘농’에 이르는 각종 모자, 담배 파이프, 양 모양 쿠션, 개 모양의 스테이플러, 펜, 그리고 그가 시를 쓸 때 사용하던 그 유명한 초록색 잉크병 등에서도 네루다의 성정이 짙게 묻어났다. 양말, 양파, 마늘, 감자, 소금 등 온갖 사소한 사물을 기리는 시를 남기기도 했던 네루다였기에, 작은 물건에서도 애정이 엿보였다. 상원의원을 지낸 정치인이자 외교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시인 이전에 사랑하는 것이 많았고 풍류와 유머가 넘쳤던 인간 네루다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 집은 취향의 박물관이자, 유년 시절의 기억부터 말년의 정신까지 아우르는 한 생애의 박물관, 또한 모든 사물이 한 인간을 우회해 가리키는 메타포의 박물관이었다. 곧 이슬라네그라의 집은 그가 빚은 형체 있는 시였던 것이다. 바닷속을 유영하는 기분으로 집안을 천천히 거닐면서 나는 그 집과 네루다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박물관 카페에 앉아 그가 사랑했던 파도 소리를 들으면서, 그때껏 별생각 없이 지고 다니던 그의 시집을 펼쳤다. “(그의) 시가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네루다, 「시」, 『이슬라네그라 비망록』 중에서)


p__6
-사진 6. 네루다가 이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가서 울리던 종.
이 ‘의식’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그의 마지막 귀환을 알리는 장치로도 등장한다.
소설에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네루다가 그리워하는 이 종소리를
녹음기에 담아 파리에 있는 그에게 보낸다.


p__7
-사진 7. 바다에 좀 더 가까이 자리한 파블로와 마틸데 부부의 무덤.
별다른 장식 없이 이슬라네그라의 돌만으로 두른 소박하고 정갈한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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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8. 이슬라네그라에서, 파블로와 마틸데 부부



< 에필로그 >


사람들이 시위를 벌이던 발파라이소의 칠레 의회 건물은 1973년 9월 11일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피의 독재를 단행한 피노체트가 산티아고 시내에 있던 구 의회를 폐쇄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발파라이소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의 근거지이자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는 암호명의 쿠데타 진군 명령이 최초로 내려진 곳이다. 미국의 닉슨 정부가 지원한 군사쿠데타로 인해, 민중이 투표로 선출한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의 수장이었던 아옌데 대통령은 최후까지 대통령궁을 지키다 전 국민에게 남기는 라디오 연설을 끝으로 자살했거나 사살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2일 뒤 아옌데의 동지였던 네루다 또한 암투병 끝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사경을 헤매면서도 “사람들을 쏴 죽이고 있어! 사람들을 쏴 죽이고 있다고!”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독재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네루다가 『모두의 노래』에서 시를 빌려 남긴 유지대로 이슬라네그라의 바닷가에 묻히기까지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내가 갔을 때 이슬라네그라의 무덤 속에는 네루다의 유해가 없었다. 2013년, 네루다가 독재 정권에 의해 독살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유해를 발굴해 재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후 타살의 흔적은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많은 이들의 반발로 지금까지 재매장되지 못하고 있다.



양재화


- 대학에서 언론정보학 등을 전공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편집자로 1년 중 10개월은 돈을 벌고 2개월은 여행하며 살고 있다. 홈리스의 자립을 돕는 잡지 《빅이슈》에 ‘여행의 뒷모습’이라는 글을 연재했다.
blog.naver.com/moodforlife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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