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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연재 소설] 생택쥐베리 가 27번지_제1회

  • 작성일 2015-06-15
  • 조회수 1,089

[중편 연재 소설]



생텍쥐페리 가 27번지 (제1회)



전삼혜




삽화_쌩택쥐베리-가-27번지


1. 사막 한 가운데 신이 있었다


병원에 가는 거야.
수업 도중 의료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에바, 라고 내 이름이 불리자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에스텔이 내 가방을 챙기는 게 보였다. 다녀올게, 라고 나는 교실 문을 닫기 전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수업이 멈추었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의료반 선생님을 따라 나는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병원으로 가는 워프 게이트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료반 선생님이 나에게 워프 카드를 건네주었다. 아마도, '병원' 워프 게이트로 가는 워프 카드인 것 같았다. 목적지를 표시하는 난에 '웨일-병원'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나는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드 뒷면을 뒤집어보았다. 워프 게이트 이용 시의 주의사항, 워프 게이트의 좌표, 혹 잘못된 곳으로 워프했을 때의 대처 요령. 손 안에 들어오는 워프 카드 아래를 훑어보다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 카드를 넣었다. 의료반 선생님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많이 떨리니?"
부드러운 미소를 띤 선생님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으러 가는 거잖아요."
"그래."
만족할 만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의료반 선생님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왼쪽 주머니에 실수로라도 손을 집어넣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워프 게이트까지 가는 긴 복도 곳곳에는 모니터가 붙어 있었다. 모니터에서는 오늘의 날씨, 웨일 병원의 의료 실적, 세계의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태연한 척, 조금은 신기한 척 행동했다.
나으러 가는 거잖아요.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나으러 가지 않을 것이다.
오른쪽 주머니가 아닌, 왼쪽 주머니의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웨일 센터라고 불렸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나 병이 있어 전국의 고아원에 버려지는 아이들을 웨일 재단이 거두어 기르며, 교육과 치료를 담당한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검사를 받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병원으로 보내져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치료를 받은 아이들은 웨일 재단을 떠나 바깥 세계로 나갔다. 병원으로 간 이후에 아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잘 지낸다는 편지가 종종 재단 내의 방송을 통해 낭독되기는 했지만 아이들은 재단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플 때의 기억을 되돌아보기 싫을 거야.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재단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그렇게 일축했다. 사회생활을 하느라 바쁘고, '정상'이 되고 나면 이곳에서의 기억은 모두 잊고 싶어질 거라고. 웨일 재단이 아이들을 학대하거나 환경이 열악한 곳은 아니었다. 병명, 혹은 장애에 따라 개인에게 적합한 훈련을 받고 식사를 제공받았다. 교육 프로그램도 훌륭했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외부와 통신을 통해 참가할 수 있는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아오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단지 병원에 가서 완벽한 '치료'를 받기 전 학교 밖으로, 재단 부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웨일 재단에서의 삶은 여느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나았다.
웨일 재단의 아이들은 지병을 갖고 있는 아이나 장애아에 대한 편견이 없다. 신체 결손, 호흡기나 심장 계열 질환, 태내 약물 중독, 마비, 시각장애나 언어장애, 청각장애에 이르기까지 웨일 재단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은 것 같았다. 열두 살부터 이루어지는 1인 1실 기숙사 생활 전에는 매일을 '웨일 차일드'들을 마주하며 보았으니, 편견이 생기려야 생길 수 없었다. 오히려 아무런 장애가 없는 것이 분명한 바깥의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색했다. 저 사람도 사실은 어딘가 아픈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편리했다.
내 이름은 에바. 나는 선천적으로 심장과 호흡기에 병이 있다. 전력질주를 할 수 없다. 정기적으로 호흡기 질환과 관련된 약물을 투여 받지 않으면 호흡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오늘은 내가 '병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이미 우리 반에서도 몇 명이 병원으로 갔기 때문에 이별은 익숙했다. 더 이상은 쓸 일이 없는 물건들이 든 가방을 놓고 일어나 의료반 선생님을 따라가면 된다. 아이들은 축하도 아쉬움도 보이지 않았다. 이별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저 애는 이제 치료를 받을 것이고, '더 나은 몸'으로 살아갈 테니까. 병원으로 가는 것을 축하할 필요도 없었다. 저 애는 이제 다시는 우리와 만나지 못할 테니까. 의례적인 인사, 의례적인 답변. 그리고 사라짐. 방 하나는 비고 그 자리에는 또 다른 '아픈 아이'가 들어온다.
그렇게 하루가, 일주일이, 일 년이 돌아가는 곳이 웨일 재단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평범하게 '병원'으로 갈 거라 생각했다.
내 방 벽지 속에서 카드 하나를 발견하기 전까지.


그 카드는 봉투에 담긴 채, 벽과 바닥 사이 벽지 뒤에 감추어져 있었다.
책상 뒤로 굴러간 타블렛 펜을 꺼내려고 책상과 벽의 틈 사이를 헤집지 않았다면 몰랐을 자리였다.
타블렛 펜 대신 작고 딱딱하게 튀어나온 무언가가 손끝에 걸렸고, 손톱으로 조금 긁자 그 부분의 벽지가 뜯어졌다. 책상과 벽 사이에 팔을 집어넣어 헤집는 행동마저 나에게는 숨이 찼다. 쌕쌕거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꺼내본 봉투에는 목적지가 새겨져 있지 않은 워프 카드 한 장, 타이핑된 짧은 편지.
발신인은 '아델'이라고 되어 있었다. 수신인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편지는 '우리들은'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다음 주 화요일에 떠날 거야. 워프 게이트에서 이 카드를 써. 어디로 가야 할지는 네가 직접 골라. 행운을 빌어. 아델.'
다음 주 화요일이 언제인지 나는 몰랐다. 카드를 발견하고 서너 주를 기다려 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사건도 없었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카드가 '랜덤 워프 카드'이고 자신이 원하는 곳은 워프 게이트가 설치되어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일회용이기 때문에 그곳에 도착하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다른 카드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것.
화요일.
어쩌면 다음 주 화요일이란 건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과거일지도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웨일 재단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았다. 그 중 한 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학교 건물에 원인불명의 폭발 사고 발생.
그날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어느 화요일이었다.
다른 자료들을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알아보려고 했지만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폭발 사고가 있었고, 그래서 학교의 일부가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것. 누가 다쳤는지, 몇 명이 다쳤는지, 죽은 사람은 없는지. 아무 것도 나와 있지 않았다. 자료만 본다면 꼭, 아무도 없는 밤에 일어난 사건 같았다. 결과는 있지만 목격자도 없고 피해자도 없는. 깊고 깊은 바다 속에서 잠시 일어난 폭발처럼.
선생님들에게 묻자 '잘 모른다'는 말만 돌아왔다. 에바, 갑자기 학교 역사에 관심이 생겼어? 몇몇 선생님은 나에게 되물었고 나는 학교 건물에 가 있는 금에 대해 궁금해졌다고 둘러댔다. 웨일 재단의 학교 건물에는 곳곳에 큰 금이 있었다. 일부러 그 금을 감추려 들지 않고 금을 경계로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것들은 건물의 상처라기보단 문신이나 바디 페인팅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폭발 사고가 있었지' 정도만 말할 뿐 나에게 자세한 정보를 주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만으로 '병원'으로 가는 기회를 버리고 재단을 빠져나가려는 거냐고 누군가 물으면 어떻게 대답했을지 나도 모르겠다. 웨일 재단의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가 워프 게이트였고, 우리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은 일생에 단 한 번, 병원으로 가는 날뿐이었으므로. 단지 우연히 시기가 겹쳤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 카드를 발견한 이후 나는 늘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검사 결과 '이제 병원으로 가도 되겠다'는 판정을 받은 후에 카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통보는 아무런 예고 없이, 수업 시간 중에 이루어진다. 모두가 모여 있는 앞에서 나오라는 말을 듣고 병원으로 간다. 그렇다면 나도 언제 병원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으니 교복 주머니에 늘 카드를 넣고 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워프 게이트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었다. 몸을 완전히 분해해 다른 공간으로 보낸 후 재조립하는 과정이 워프의 통상적인 패턴이었다. 가장 권장되는 사항은 완전히 알몸으로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아니면 특수한 보호복을 입거나. 하지만 보호복이 대량 생산될 만큼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워프 게이트 바로 옆에는 탈의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나를 먼저 탈의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옷은 벗고, 혹시라도 액세서리 같은 게 남아 있지 않도록 조심해. 귀걸이를 하고 워프했는데 귀걸이가 배꼽에 박힌 채로 저쪽에 나타나면 안 되잖아?"
상투적인,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려는 농담에 나도 웃었다.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모두 벗었다. 머리끈을 풀고, 팔에 하고 있던 팔찌도 뺐다. 가슴과 허리와 엉덩이가 그리는 곡선이 탈의실 거울에 비쳤다. 적당한 영양을 공급받고 알맞은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받은 몸은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해 보였다. 태내 약물중독 때문에 식이장애를 앓고 있는 카인보다는 조금 통통했고, 마비 때문에 운동을 잘 하지 못하는 데보라보다는 말랐다. 나는 옷을 곱게 개며 반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아비가엘, 악현, 아드쉬, 보나, 베티, 카인, 카스티엘, 데보라, 다정, 다카시, 이브, 에스텔. 또 몇 명이 있더라. 먼저 치료를 받으러 병원으로 떠난 아이들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 있던 카드를 손에 쥐고 워프 게이트를 나왔다. 밖에서 의료반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됐어?"
"네."
"워프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넣으면 자동으로 네가 갈 곳이 표시될 거야.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면 그냥 눈을 감고 몸에 힘을 빼. 눈을 뜨면 병원일 거야. 곧 병원에서 보자. 에바."
워프 카드를 투입구에 넣자 의료반 선생님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워프 게이트의 코드네임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하는 곳, 패스워드가 없어도 되는 곳. 내가 가야 하는 곳은 어디지? 시간이 없다. 언제 선생님이 눈치 챌지 모른다.
"에바?"
서둘러.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지 않자 의료반 선생님이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이름을 훑어보다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생텍쥐페리 가 27번지'
기계음이 상냥하게 안내 멘트를 시작했다.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10, 9, 8, 7."
나는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눈을 감았다.
"6, 5, 4."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심지어, 이곳을 떠난다고 해서 그 비밀이 밝혀질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내가 택한 워프 게이트가 범죄 소굴이거나 바다 한가운데일수도 있지만.
"3, 2, 1."
워프 게이트가 불량이라,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고 온 몸이 분해된 채 공간의 이물질이 될 수도 있지만.
"0."
나는 단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왜 병원으로 간 아이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않을까.
왜 아이들이 보내오는 편지는 육성으로 녹음되지 않고 방송 담당 선생님이 낭독할까.
왜 누군가는 '병원으로 가고 싶지 않아'라고 속삭이듯 말했을까.


왜 내 방에 이 카드가 숨겨져 있었을까.
나는 알고 싶어.


"워프를 시작합니다."
온 몸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중압감이 몸을 눌러왔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사막에 있었다.


항상 따뜻하던 공기와 서늘한 바람이 불던 곳에서 사막으로 내던져진 충격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전까지 외부에서 오는 충격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었다. 내가 싸워야 하는 고통은 오로지 내 안에서 날뛰는 심장과 호흡기뿐. 그런데 여기는 대체 어디야? 어째서 숨을 쉴 때마다 몸 안쪽까지 모래가 스며드는 거야? 뜨거워. 뜨거워. 뜨거워.
알몸으로 워프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나는 주저앉았다가 튕겨지듯 일어났다. 뜨거워! 몸에 닿는 모든 것이 타오르고 있었다. 여긴 대체 뭐야, 어디야? 사방이 온통 모래뿐. 모래에 닿는 햇볕뿐. 저게 내가 아는 그 태양이 맞아?
사막인가.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숯불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단 하나의 구조물을 향해 내달렸다. 비행기? 뭐야, 이 구시대 교통수단은. 문은 어디야? 안으로 들어가야 돼. 이건가? 이거야? 나는 손잡이로 짐작되는 부분을 움켜쥐었다.
"아아악!"
...뜨거워.
쓰러지면 죽는다는 걸 어렴풋하게 인식하면서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등 뒤가 타오르는 감각이 마지막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병원도, 모래 위도 아니었다. 찢겨진 의자 위에 내가 누워 있었다. 온 몸에는 냉각 팩이 덧대어져 있었다. 몸을 일으켰더니 온 몸이 쓰라렸다. 나는 내 팔다리를 살펴보았다. 빨갛게 군데군데 물집이 잡히고 부풀어오른 몸.
부풀어오른 피부가 얇은 시트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나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누군가를 부르기라도 한 것처럼 어두운 실내 저 쪽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살았네?"
나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을 나이. 아마도 여자. 소매 없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그 사람이 내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죽게 놔둘까 하다가, 괜히 발각이라도 되면 더 귀찮겠다 싶어서."
나를 보는 눈에는 친절이나 다정함, 안쓰러움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보는 듯한 무심한 시선.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또 다시 상처에 무언가가 닿았지만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른다고 해도 나를 동정하거나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다.
"적당히 나으면 꺼져. 어떻게 왔는지는 말해주고."
시크릿 모드를 진즉에 걸어버릴걸, 그 사람은 짧은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투덜거렸다. 공포와 당황에 질려 있던 내 의식도 점차 제자리를 찾았다.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그 사람의 몸이 온전한 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마치 웨일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아는 세계는 웨일뿐이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웨일?"
그러자 그 사람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 뭐라고 했어?"
나는 고통을 참으며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어차피 알몸이었고, 저 사람이 당장 덤벼든다 한들 나는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겠지만.
"웨일."
"하!"
순식간이었다.
그 사람이 팔을 한 번 휘두르자마자 왼팔 팔꿈치 아래 달려 있던 의수의 끝이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했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그 사람은 송곳을 정확하게 내 미간에 가져다댔다.
"웨일이 너를 보냈어?"
나는 침을 삼켰다. 미간에 닿는 따끔함.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
"아니야."
"그럼 어떻게 찾아왔어?"
나는 워프 카드나 종이쪽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내 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그랬지. 머리끈 하나마저도 저 쪽에 모두 놓고 왔지. 미간에 닿은 송곳이 조금씩 더 깊이 파고드는 게 느껴졌다. 콧날 위로 뜨거운 핏방울이 흘렀다. 나는 더듬더듬 기억나는 이름을 꺼내놓았다.
"아델."
"뭐?"
침착함을 가장한 분노를 담고 있던 그 사람의 눈빛이 당황으로 바뀌었다.
"아델? 이런 미친, 아델이 재단으로 숨어들어갔어? 너, 아델을 만난 거야?"
대화의 주도권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몸을 슬쩍 뒤로 빼며 말했다.
"이거 치워. 치우면 다 말할게."
"배짱 좋다?"
치우지 않겠다는 듯 그 사람이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나는 조용히 그 눈을 올려다보았다. 잊고 있던 것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치료받지 못하면 죽어."
그 말이 그 사람의 어딘가를 건드렸는지, 그 사람은 낄낄 웃으며 왼팔을 다른 방향으로 휘둘렀다. 송곳 모양이던 의수가 다시 사람의 손 모양으로 되돌아왔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 정말 '웨일의 아이'구나?"
"응."
"재밌는 일이네."
그 사람은 몸을 조금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댔다. 그 사람 눈에 상대는 알몸의 여자애. 게다가 가슴팍에는 삽관 자국까지 있다. 여차하면 한 손으로도 제압할 수 있는 약한 적. 솔직히 말하자면, 그 사람은 웬만한 남자도 충분히 이길 것 같았다. 땀에 젖은 민소매 셔츠 아래로 두드러진 가슴이 그 사람이 약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 날것의, 짐승의 냄새가 났다. 남녀를 떠나서 그냥 짐승. 우리에서 뛰쳐나와 사막에 혼자 사는 생물.
"얘기해. 전부."
그것이 나와 안나가 처음 만난 때였다.


내가 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안나는 계속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적었다. 종이 위를 스치는 연필의 모습은, 연필이 지나갈 때마다 미세하게 흩날리는 목탄가루는 경이로웠다. 종이와 연필이라니 얼마나 구세대적인 필기 방식이야. 하긴 그렇게 따지면 이 비행기도. 이런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았고 저런 구식 장치로 사람들이 공부를 했다니. 무언가를 쓰고 그리면서도 안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아, 내 이름은 안나야. 그 말을 이후로 안나는 '그래서?' '그리고?' 같은 추임새도 없이 내 말을 듣기만 했다.
그러나 나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안나에게서는 야생동물의 날카로운 기운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라도 허튼 짓을 하면 내 목을 당장 비틀어 버릴 것만 같은 포악함.
혹은 생명력.
내 모든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찼다. 안나는 연필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건 내가 살던 기숙사 건물이었다. 각 층마다 있는 방마다 엘리베이터의 위치 하나하나까지 모두 같았다. 안나는 나에게 그 그림에서 방 하나를 짚으라고 했다.
"네가 살던 방을 짚어봐."
나는 내 방을 짚었다. 안나는 빠르게 몇몇 이름들을 발음했다. 아델의 이름도 그 속에 흘러가듯 지나갔다. 안나가 한 이름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물었다.
"에이쥬어."
"에이쥬어?"
"네 방의 주인."
안나는 불친절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배려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안나의 질문에 몇 번이고 보충 질문을 해야 했다.
"옛날에, 에이쥬어라는 애가 그 방에 살았다는 거지?"
"그래."
나는 안나의 눈치를 보며 침을 삼켰다.
"그리고 너도 그 때는 웨일에 있었어?"
안나의 몸에서 일렁이던 기운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어디까지 알아?"
안나가 처음으로 나를 배려하는 질문을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몰라."
"그러면서 여기로 왔어?"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운 것도 없지."
내가 짐짓 강한 척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안나가 깔깔 웃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알몸에다가 피부는 시뻘겋게 부풀어오르고 곳곳에 물집이 잡힌 여자애가 강한 척을 해 봐야 얼마나 위협이 되겠는가.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재미있네. 신기해."
나는 아픈 팔에 냉각 팩을 가져다댔다. 안나가 재미있어하건 말건, 나는 나에게 닥친 통증이 더 급했다. 냉각 팩은 이미 미지근해져 있었다. 안나가 흥미롭다는 듯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까무잡잡한 얼굴, 목 근처에서 제멋대로 잘린 머리카락. 곳곳의 흉터.
"그래서, 너는 무슨 타입이야? B? C나 D는 아닌 것 같은데, E야?"
나는 미지근한 냉각 팩을 내려놓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와,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안나가 몸을 뒤로 젖히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대단해, 웨일. 퍼킹 마더.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애들을 속일 수 있지."
웨일이 대체 뭘 속였다는 걸까.
아무튼 안나가 보인 반응과 지금까지의 대화 아닌 대화를 종합해 보면, 안나는 한때 웨일에 있었을 거다. 그리고 내 방은 그때 에이쥬어의 방이었고, 내가 있는 곳이 여학생 기숙사니까 아마 에이쥬어란 사람도 여자겠군. 그러니까 나는 2년 전의 그 사고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이 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어.
어라.
그러고 보니 나는 2년 전에도 어린아이가 아니었는데, 왜 그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지.
그때 난 뭘 하고 있었지? 집중 치료 기간이어서 병원에 있었나? 아니야. 계절이 달라. 그렇지만 왜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 2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어. 그 카드를 발견하기 전까지.
찌르는 듯한 통증이 머리를 관통했다. 나는 밀려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쌌다. 안나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내 주변에 널려져 있던 다 식은 냉각 팩이 하나씩 거두어졌다. 손을 떼고 눈을 뜨자 비행기 안 저쪽에서 안나가 새 냉각 팩을 가지고 오는 게 보였다.
안나는 내 팔과 다리에 얼어 있는 냉각 팩을 하나씩 대주고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타입이니 뭐니, 내가 질문을 너무 어렵게 했네. 다시 물을게. 넌 이름이 뭐야?"
안나가 흥미롭다는 듯 연필을 들고 물었다. 나는 냉각 팩으로 몸을 식히며 대답했다.
"에바."
"E-V-A?"
안나는 내 이름 철자를 종이에 적고, 옆에 몇 단어를 더 휘갈겨 적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나에게 내밀었다.
"아까 타입이라고 물은 건 그거야. 웨일 재단의 애들이 '정상인과 다른' 몸이라는 건 너도 알지? 충분히 봐왔을 거고. 이렇게 나눴다고 생각해 봐. 예를 들어서."
안나는 A부터 E까지 철자를 쓴 옆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톡톡 두드렸다.
"A는 신체 결손, B는 시각장애나 청각장애처럼 의사소통의 어려움, C는 태내 약물 중독이었나? 정신질환 계통. D는 근육과 감각 마비. 그리고 E는 체내 주요 기관에 병. 심장이나 호흡기."
"그게 내 이름과 무슨 관계가 있는데?"
"너희와 우리의 모든 이름과 관계가 있지."
안나는 오른손의 금속 검지와 약지 사이에 연필을 끼고 능숙하게 돌렸다.
"내 이름은 안나. 보다시피 사지 결손이지. 그리고 너네 반 친구들은?"
친구들?
악현은 열 발가락이 모두 없다. 카인은 간질 발작이 있었지. 데보라는 근무력증이 진행되고 있었고, 나는 심장과 호흡기에 병이 있다.
"안나의 A는?"
퀴즈라도 내듯 자못 환하게 웃는 안나를 보며, 나는 질렸다는 얼굴로 답을 말했다.
"사지결손?"
"정답."
물이라도 가져올게. 문제를 맞췄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또 객실 통로 저편으로 사라지는 안나의 뒤에 대고 내가 소리쳤다.
"뭐야, 우리 이름이 장애 여부에 따라 지어졌다는 거야?"
안나가 물 두 잔을 가져와 내 앞에 한 잔을 내려놓았다. 손바닥도 화상을 입었기 때문에 나는 찡그리며 그 잔을 받아들었다. 물은 시원했지만, 내 마음 속에 들끓는 이상한 감정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막처럼.
"그렇게 말한 적 없어."
"그럼 대체 뭐야?"
나는 내가 가진 최대한의 증오를 담아 안나를 노려보았다.
하잘것없는 증오였다. 아직 나는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증오할 만한 환경에 놓여본 적이 없었으니까. 몸과 마음에 조금씩 상처가 있지만 평범하고 다정한 친구들과 평화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사나운 야생동물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안나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를 들여다보았다. 까만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 이름이 네 탄생에 선행했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너희는 어떻게 배워? 너희의 탄생에 대해서."


우리의 탄생?
우리는 어딘가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어디 태생인지도 모른다. 궁금하지도 않다. 부모는 우리의 장애나 병 때문에 우리를 버렸고, 우리는 운 좋게 웨일 재단에 맡겨져서 치료를 받으며 자라왔다.
그렇게 교육받았다. 그렇게 배웠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고.
내 말을 듣자 안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창조주께서는 창세신화도 바꾸는 힘을 지니셨네."
"너는 다르게 배웠다는 거야?"
내 질문에 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배웠다는 건,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쳤냐는 이야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나의 다음 말이 내 몸을 얼어붙게 했다.
"아니, 배운 건 아니야. 다만 직접 보았을 뿐이지."
태어나는 장면을 보았다고?
어떻게?
"1세대에게 실패했으니 다음 세대에게는 절대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걸까. 퍼킹 마더는 정말 대단해. 이쯤 되면 마더가 지구를 창조했다고 해도 웨일 재단 애들은 믿을걸."
마더는 또 누구야.
"너도 설명해."
나는 손을 뻗어 안나의 미간을 가리켰다. 안나가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리면서도 내 손을 치우지 않았다.
"협박하는 거야? 구해 준 사람을?"
나는 밀리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떴다.
"기브 앤 테이크야. 나에 대해서 중얼중얼거리는 사람을 보면 당연히 묻고 싶어지지."


안나의 말을 다 듣고 난 나는 담요를 잡아당겼다. 비행기 안은 열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보수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한기는 어디에서 스며드는 걸까.
안나가 방금 전까지 알려준 이야기가 머리 안에서 차가운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녔다.
우리의 출생. 웨일 재단. 병원. 치료. 그리고 밖으로 나간 사람들. 나는 한기를 참으며 물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안나의 눈은 아까와 다르게 차분해져 있었다.
"지구는 둥글어. 사막은 낮에 뜨겁지. 내가 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 네 상황을 생각해 봐. 내가 한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그렇지만!"
나는 악을 썼다. 목구멍에서 비릿하게 피 냄새가 올라왔다. 안나가 물 한 잔을 더 따라왔다. 이번에는 미지근한 물이었다.
"천천히 마셔. 너 E타입이면 운동은 물론이고 흥분하는 것도 몸에 나쁠 텐데. 정확한 병명은 뭐야? 만성 폐질환?"
나는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목으로 넘겼다. 물 반잔쯤을 마시고 나서야 나는 목의 피 냄새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사막이라면 물도 귀할 텐데. 그 생각을 하고 나자 안나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심장병. 그리고 만성 결핵."
"힘들겠네."
안나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남은 물을 마시는 동안 안나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E타입은 처음 봤어. '불의의 사고'가 터지면 그 애들이 가장 빨리 죽어버리는걸. 우리 때 있던 애들은 에드하고 에즈라였나. 쌍둥이였는데."
죽은 친구들을 말하는 안나의 말에는 아쉬움이나 서글픔이 없었다.
"아무튼, 미안해. 처음에는 네가 웨일에서 보낸 스파이나 뭐 그런 건 줄 알았어. 아델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까지도 긴가민가했고. 그런데 네 반응을 보니, 웨일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이렇게 연기력 끝내주는 스파이는 못 만들 것 같다."
안나는 기지개를 한 번 펴고 의자에 길게 누웠다.
"뭐, 네가 정말로 연기력이 뛰어난 스파이일지도 모르지. 그래도 내가 잡혀가면 정상참작 정도는 해줄 거지? 나는 너를 구해줬잖아. 네 작전이 실패해서 내가 너를 모른 척했어 봐. 너는 지금쯤 사막도마뱀의 먹이가 되었을 거라고. 잘 구운 고깃덩이."
"끔찍한 소리 하지 마."
"현실인걸."
안나가 몸을 반쯤 일으켜 내 쪽을 건너다보았다.
"너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 거라고 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안나의 말이 계속 이어졌으니까.
"우리는 치료를 받아서 죽은 친구들을 봤거든."
그걸 보지 않았다면 아델이 사고를 칠 일도 없었을 거야. 웨일은 우리에게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라'라는 의미로 죽은 친구들의 소식을 전해줬겠지. 하지만 퍼킹 마더는 신이 아니었어. 전지전능하지 못했다고.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투명하게 우리에게 공개한다면 우리가 그 길을 묵묵히 따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멍청한 퍼킹 마더. 그러니까 당신은 틀렸다는 거야. 안나의 말은 띄엄띄엄 계속 이어졌고 나는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여전히 쓰라리지만 통증이 많이 줄어든 몸 위로 담요를 끌어당기며 안나의 말을 들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엄마 주제에. 마더 웨일이라니."




작가소개 / 전삼혜(소설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제8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으로 장편소설 『날짜변경선』과 『내일의 무게』(공저) 『어쩌다 보니 왕따』(공저) 『조용한 식탁』(공저)이 있다.



《글틴 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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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중국에서 퍼지는 한국 문학의 ‘전파(電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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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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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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