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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서 괴작까지 19] 잘 울기, 잘 헤어지기

  • 작성일 2014-12-17
  • 조회수 641


[영화 칼럼_명작에서 괴작까지 19]



잘 울기, 잘 헤어지기


정세랑(소설가)





순간순간 기대는 어깨, 나누는 체온, 연결되어 있는 눈빛이 아프게 아름답다. 한 걸음 물러서면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어떻게도 미화할 수 없는 고통이 끄트머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투명하게 아름답다.


잘하는 게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데, 우는 것만큼은 건강하게 잘 운다. 혼자 있을 때 왈칵 울고 다음 날이면 괜찮아진다. 몇 년 전인가 눈물이 빠져나가는 길이 막혀서 안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 배수 문제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눈 건강에도 마음 건강에도 배수는 중요한 것 같다. 가끔 어떤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아, 저 사람 건강하게 울지 못할 것 같아’ 하고 걱정이 될 때가 있다. 항상 울고 있는 느낌이 들거나 혹은 엉뚱한 순간에 울어버릴 것 같아서 말이다. 눈물과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 칼럼이 마지막 회라서다.


<왕자와 무희>는 1957년에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릴린 먼로가 함께 만든 영화인데, 아주 매력적인 영화지만 당시 흥행은 별로였다고 한다. 왜인지 알 것 같다. 경쾌한 분위기인데도 어딘가 쓰디쓴 구석이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왕자라고 하지만 동화 속의 왕자가 아니라 1차 세계대전 직전 발칸 반도의 왕자이자, 40대 홀아비인 로렌스 올리비에가 극단의 무희인 마릴린 먼로를 유혹해 원나잇스탠드를 하고자 한다. 예민한 동유럽 정세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고 정략결혼으로 평생 사랑을 알 기회가 없었던 이 중년의 왕자님은 원나잇스탠드가 오래된 습관이다. 솔직한 성격에다 권위에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마릴린 먼로는 깔깔깔 웃으며 어설픈 유혹을 거부하고, 대신 이 완고하고 메마른 왕자에게 진짜 사랑을 가르쳐주고 싶어한다. 두 사람은 계속 헤어진다. 네 번, 다섯 번 똑같은 이별 인사를 반복하는데 그 변주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처음엔 유혹에 실패한 왕자가 무희를 내쫓으려 하고, 뒤로 갈수록 두 사람의 감정이 발전하면서 애틋해진다. 종국에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져서 언뜻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1957년의 관객들도 지금의 우리도 그 이후 곧 닥쳤을 전쟁을 알고 있다. 즐거운 듯 애잔한 독특한 영화였다. 흥행에 실패했다 해서 좋은 영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큰 마감을 하나 넘기고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 위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때 고른 영화가 <안녕, 헤이즐>이었다. 아주 좋은 영화였지만 상으로 고를 영화는 아니었다. 엉망으로 울어버렸으니 말이다. 전혀 신파가 아니라 해서 골랐는데 신파가 아니라서 더 울었다. 시작하자마자 울어서는 끝날 때까지 계속 울어서 목이 마를 정도였다. 책은 더 좋다는데 읽을 엄두가 안 난다. 인생은 대개 짧고 불공평하다. 우리가 각자 맞이할 죽음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는지, 우리의 작은 머릿속에 똑똑하고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 전혀 고려해주지 않고 닥쳐올 것이다.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은데, 도무지 잊을 수 없도록 일찍부터 혹독하게 죽음과 마주봐야 하는 이들도 많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그랬다. 갑상선 암이 전이되어 폐 기능이 손상된 헤이즐은 항상 산소통을 들고 다니고, 역시 암 때문에 다리를 잘라낸 어거스터스는 의족에 의존한다. 두 사람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다가 만나서는, 싸움을 싸움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어간다. 오래 살 수도, 근사한 무엇이 될 수도, 흔적을 남길 수도 없다. 작게는 계단을 오르는 것에서 크게는 여행을 하는 것까지 어렵기만 하지만 순간순간 기대는 어깨, 나누는 체온, 연결되어 있는 눈빛이 아프게 아름답다. 한 걸음 물러서면 결국 모두의 이야기다. 어떻게도 미화할 수 없는 고통이 끄트머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투명하게 아름답다.


<서칭 포 슈가맨>은 주변의 여러 사람이 꼭 보라고 추천했는데 계속 미뤄왔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장의 앨범만 내고 사라진 뮤지션 이야기가 남 같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언제까지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을까, 겨우 5년차 작가라 자주 겁이 난다. 출판계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것의 영향도 받을 것이고, 그것과 별개로 독자들이 더 이상 내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지 않는 순간도 올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만큼 사랑하는 일과 헤어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70년대 디트로이트에서 활동했던 로드리게즈의 앨범은 미국 시장에서는 반향을 얻지 못했지만, 남아공에서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밀리언셀러가 된다. 중간에서 누가 주먹구구식으로 일했는지, 착복해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성공은 당사자에게 닿지 않고 결국 로드리게즈는 활동을 멈춘다. 수십 년간 사랑을 받은 앨범의 주인공치고 알려진 정보가 너무 없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은 남아공 음악계 사람들이 몇 년간 추적을 한 결과가 이 다큐멘터리 영화다. 내내 흐르는 로드리게즈의 곡들은 굉장해서, 아티스트의 행운과 불운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한다. 업계 전반의 상황도, 기획과 전략을 짜줄 전문가와 팀이 되는 것도, 한두 번의 실패에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경제적 환경도 중요하다. 그 모든 걸 운으로 부르지만, 운으로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로드리게즈의 삶은 그야말로 영화적이지만, 한참 울고 나니 그래도 아티스트들이 더 쉽게 성공하고 더 많이 사랑받고 무엇보다 더 온당한 대우를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지금껏 이 코너를 읽어준 당신이 잘 우는 사람이면 좋겠다. 개운하게 울어서 고인 것 때문에 아프지 않을 사람이면 좋겠다. 잘 우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그리 많지 않지만, 눈을 씻으면 새롭게 보이는 지점들도 분명 있다. 1년 반이 넘도록 매달 한 편씩 쓰는 게 즐거웠다. 작고 즐거운 지면이었다. 영화를 함께 보는 것만큼 친밀한 관계도 없기에 언제나 가까이 여겼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많이 웃고 많이 울어서 당신이 더 맑아져 있기를 바란다.




정세랑 (소설가)kim-hae-jun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이만큼 가까이』로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이 있다.




《글틴 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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