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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글_8월_벽]‘터부의 벽’은 단지 ‘종이벽’에 불과하단 걸, 이미 알고 있어요

  • 작성일 2013-08-15
  • 조회수 578



‘터부의 벽’은 단지 ‘종이벽’에 불과하단 걸, 이미 알고 있어요

― 1인 출판 후기-


김선정(필명 : 터부의 벽)




저번 봄, 나는 책을 냈다. 고등학생 시절 쓴 글을 모아 만든 소설집이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교보문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종이벽》이라 검색하면 나의 소설집을 주문할 수 있다. 돈 많이 들었겠다고요? 아니요, 하나도 안 들었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직접 했거든요!
글 구상은 많이 하지만 단 한 편도 완성치 못한 상태, 중학생 시절의 글쟁이로서의 내 모습이었다. 시간을 많이 뺏길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미 쏟아내듯 일기를 쓰던 상태라 어차피 글에 투자하는 시간은 상당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제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국어 수행평가가 계기였다.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보고서를 자유로운 양식으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나는 소설을 선택했다. 수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진 못했지만, 그 후로도 나는 또 다른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는 글에 대한 갈망을 참을 수 없었다. 진학한 고등학교가 국제고등학교라, 다양한 수행평가와 숙제, 공부거리로 넘쳐났지만 말이다.
중학생 시절 내가 그토록 국제고등학교를 바란 이유는, 단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깊은 사고를 하고 그걸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서였다. 알다시피 대부분 중학교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생전 처음 접한 토론수업, 영어발표와 아침 태권도 그리고 논문작성 등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이 깨지기도 했고, 그러한 고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고 느껴져 너무도 힘들고 외로웠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빗대자면 '천장부터 바닥까지 잘난' 이곳에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게다가 입학 후 토론수업에서나 일상에서나 친구들이 내 말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고, 내 생각을 전달하는 데는 말보다는 글이 최선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내 생각을 글에 녹여냈다. 글을 잘 쓴다는 자신은 없었다. 단지 계속 쓰다 보면, 잘 써지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확신만을 가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막연하나마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었고, 그 확신은 지금 확실함이 되었다.
이런 나는, '고등학생 시절 글을 쓰지 않은' 나를 상상할 수 없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 다니는 고등학교를 특별히 선택해 들어온 목적을 상당히 잃어버렸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에게 글쓰기란 필요한 일이었다. 반드시.
그런 나도 고3이 되었고, 그 전 겨울 방학 때도 열심히 글을 썼던 나는 이제는 글 쓸 일이 없을 줄만 알았다.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내신과 아예 없는 공인 점수로도 고려대 국문학과에 합격한 선배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시며 제안하셨다. “너도 이 선배께 물어봐서 그간 쓴 글로 책 좀 만들지 그래?”
사실 나도 그간 쓴 글을 모아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선배께 어떻게 책을 냈는지 물어봤다. 그냥 학교 선생님께 부탁해 함께 만들었다고 대답하셨다. 이런 운 좋으신 분. 나는 '자가 출판', '1인 출판' 등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했다. 그러다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교보문고에 자가 출판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무료로!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다 편집해야 하지만. 그런데 정작 책 제목을 정해야 할 순간, 그동안 내가 왜 이 고민을 미뤄왔는지 알 것 같았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제목으로 할까 싶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떠올랐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들은 듯한. 이미 나는 이 소설집 제목은 단 하나뿐이란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Yellowcard의『Paper Walls』였다. 아래의 인터뷰를 읽는다면, 내가 왜 이 앨범의 메시지를 그토록 좋아하는지 알 것이다.


“살아오면서 정말 수도 없이 많은 굴곡을 만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런 것들이 엄청나게 높은 벽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결국 극복하고 나면 결국 종이로 만든 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죠. 그냥 쭉 찢어버리면 간단하니까. 물론 이번 음반의 타이틀은 앨범의 마지막 곡과 제목이 같기도 합니다. 다분히 공개적으로 쓰인 일기처럼, 우리들의 삶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죠.” (2009.03.30 인터뷰)


고등학생인 나에게 있어, 소통이라는 높은 벽을 단순한 종이벽으로 만들어 낸 건 결국 종이에 쓰인 글이니까. 내 필명이 '터부의 벽'인 데도 이유가 있다. '터부의 벽'은 최인훈 작가님의 대표작 《광장》에 등장한다. 《광장》을 읽다 이 단어가 나오는 순간, ‘아, 이 단어다’ 싶었다. 소통을 가로막는 ‘터부의 벽’을 부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실제 내가 쓴 글을 보더라도 소통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내가 가장 자랑스레 여기는「핫스팟」과 「이모티콘」은 스마트폰을 통한 일그러진 소통이 주제를 이룬다. 「자화상」은 세나('새로운 나'를 만들어준다는 의미로 이름을 지었다)라는 친구를 통해 주인공이 자신과의 화해를 모색한다. 「옥색 다이너마이트」는 세밀한 시선으로 소통을 통해 불합리에 맞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출판 프로그램에는 책을 만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종이책을 만드는 방법이고 두 가지가 전자책인데, 나는 전자책 만드는 방법이 종이책 만드는 방법인 줄 알았다가 잘못을 깨닫고 다시 방법을 바꿨다.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선 우선 규격에 맞는 한글 파일에 글을 모아야 한다. 정말 책 한쪽을 다루듯 말이다. 그리고 제공된 프로그램을 내려 받아 PDF 파일로 변환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본 인쇄 상태와 책 크기에 맞게 길이를 바꿔야 하는데, 처음 할 때는 헷갈리지만 작업이 거듭될수록 익숙해졌다.
책표지 디자인은 절친한 친구에게 부탁했다. 친구도 고3이기에 쉽게 만들어 달라고 거듭 말했는데, 하나에 집중하면 아무도 못 말리는 친구는 표지 작업에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그 작품은 친구 부모님의 블로그에 올라가 있는데, 함께 적힌 글을 보고 나와 우리 부모님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책표지를 만들 때 나 역시 계속 함께 있었고, 나는 제발 너무 시간 많이 들이지 말라고 그토록 말했는데. 친구는 왜 자신의 부모님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며 화를 냈고, 우리는 친구가 되어 처음으로 다퉜다. 곧 괜찮아졌지만, 사실 아직도 이때를 회상해보면 좀 기분이 그렇다.
판매신청 승인을 축하한다는 메일이 도착했다. 그때 나는 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빨리 집에 가서 책을 주문할 생각뿐이었다. 누구든 자신이 낸 책 한 권 갖는 게 꿈일 텐데, 고3이라는 신분에 그런 기회를 얻게 되다니! 일주일가량을 기다리니(주문한 만큼 책을 찍어내는 형태라 좀 시간이 걸렸다.) 책이 도착했다. 신기해서 펄펄 뛰어다니면서도, 조금은 허탈했다. 내가 편집을 하는 데 지쳐 결과물을 보고서도 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여튼 나는 책 맨 앞 내지에 편지와 사인을 각각 적어 그걸 담임선생님과 국어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누었다. 그리고 나와 다양한 접촉이 있었고, 언젠가 방문한 적도 있는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과 작년 교지 인터뷰에 응해주셨던 이경혜 작가님께도 보냈다. 글틴의 이계윤 선생님께 보낼 책도 준비했다. 편지까지 다 써놨는데, 기숙사에서 나올 기회가 없어 계속 보내지 못하고 있다. 정말 곧 보내야지.
어느 날 한 국어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내 손을 꼭 붙들고 말씀하셨다. 작년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이다. “그 책 내는 방법 OO에게도 알려줘라, 응?” 그분은 동시에 올해 OO의 담임선생님이시다. 나는 아직도 그때 선생님 눈빛이 생생히 떠오른다.
최근 두 주간 나는 시집과 잡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승인신청이 정상 처리되었다. 자필로 쓴 글을 사진으로 첨부하느라 저번보다 훨씬 힘들었던 잡문집이었다. 원래 시는 잡문집에 포함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많아 따로 만들었다. 다 합쳐보니 잡문집과 시집이 1,300여 쪽이나 나와 (‘무슨 글을 이리도 많이 썼나?’라고 생각하며) 잡문집을 상하 편으로 나눠 내기로 했다. 소설집의 200여 쪽을 합치면 대략 고등학교 시절 3년간 1,500쪽 넘게 써온 것이다. 책으로 내도 괜찮은 부분만 도려내었는데도 이 정도다. 나도 이렇게 많이 쓴 줄은 몰랐다.
그러고 나니 수능 날이 두 자리 수 앞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제 다시 공부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나는 또 글을 쓰고 있다. 올해에 남길 수 있었던, 출판에 관한 추억을 기록하고 싶어서이다. 뭐랄까, 이제야 글이 제대로 정리된 거 같아 마음이 가뿐하기도 하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바랐던 성장과 소통, 이 드디어 마무리를 지은 거 같아서. ‘터부의 벽’이 ‘종이벽’임을 깨닫고 북북 찢어버린, 고통이자 환희의 고등학생 시절 3년.




《글틴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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